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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49

   좆 됐네. 완전히 좆 돼버렸어.

   

   웃는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는 것 좀 봐.

   

   하아아. 이래서 내가 2왕비랑 만나기 싫어했던 건데.

   

   파티에서 자기 세력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야 할 인간이 왜 여기에 온 거냐.

   

   진짜 이해가 안 되네.

   

   ‘할아버지. 이제 어떡하죠?’

   

   방금 전에 연설할 때처럼 무슨 말을 하더라도 악화되기만 할 것 같은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까요.

   

   성기사이자 귀족이었던 루엘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냥 마음대로 해도 된다.>

   ‘…지금 자기 일 아니라고 막말하는 거에요?’

   <내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느냐. 저 쪽은 네가 필요하지만 넌 저 녀석이 필요치 않으니 막무가내로 대해도 괜찮다고.>

   

   왕비니 공작가니 하는 지위는 지금 이 자리에서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며 할배는 말을 했지만 난 차마 거기에 수긍할 수 없었다.

   

   정치적으로 보면 할배의 설명이 옳겠지. 2왕자가 1왕자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내가 필요할 테니 내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저 쪽은 강하게 나올 수 없어.

   

   그렇지만 말야. 사람이라는 건 언제나 이성에 따라 움직이는 게 아니잖아.

   

   세계의 역사에는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할 결정을 해서 패망한 이들이 차고 넘친다고.

   

   2왕비가 그 대열에 합류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어.

   

   그리고 뭣보다 나한텐 메스가키 스킬이 있잖아.

   

   날라갔던 이성도 만들어내는 이 파멸적인 도발 앞에서 과연 2왕비가 이성을 지킬 수 있을까?

   

   “정말. 파트란 공작의 말에 틀린 게 없군요. 당신은 너무도 오만해요.”

   

   우와. 괜히 왕국의 왕비가 된 게 아니라는 건가?

   

   어떻게 그 소리를 듣고도 저런 식으로 포장이 가능한 거지?

   

   2왕비의 감정조절 능력에 감탄을 더하고 있으려니 그녀가 엉망이 된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말을 이었다.

   

   “뭐. 좋아요. 당신에게는 오만해도 괜찮을 재능이 있으니까. 이번 한 번은 무례를 넘겨드리죠.”

   

   저기 죄송한데 이번 한 번으로는 무례가 안 끝날 것 같은데요.

   

   노괴왕비라는 호칭이 고정된 이상 어지간한 일이 생기는 게 아니면 계속 그렇게 부를 텐데요.

   

   “왜 또 입을 꾹 다문 거죠?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건가요?”

   

   아뇨! 아뇨! 지금 저한테는 이게 최선의 예의에요!

   

   입을 여는 순간 또 어떤 재앙이 펼쳐질지 몰라서 입술을 깨물고 있는 거라고요!

   

   “추잡한 노괴왕비라는 단어가 제게 건넬 유일한 말이란 거군요.”

   

   갸아악!

   

   그게 아니라니까요?! 오해에요! 오해!

   

   제발 왕비님이 지닌 혜안으로 카리아마냥 제 표정을 해석해주세요! 제 진심을 알아주세요! <여아야.>

   

   ‘또 뭔데요!’

   <아까부터 너는 계속 비웃음으로 왕비를 도발하고 있었다.>

   ‘…진짜요?’

   

   슬며시 입가를 매만졌더니 한 쪽 입꼬리가 삐죽 올라와 있는 게 느껴졌다.

   

   진짜네.

   

   응. 진짜야.

   

   …

   

   하. 씨발 진짜 이 개같은 메스가키 스키이이이일!

   

   “하.”

   

   분노가 잔뜩 서린 헛웃음을 들은 순간 난 진지하게 시계탑 아래로 뛰어 내려서 긴급탈출을 하는 걸 고민했다.

   

   이 자리에서 계속 얼굴을 마주할 바에야 빠른 도주를 택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물론 그것도 큰 무례겠지만 여기에서 대화를 하는 것보다는 덜한 무례일 것 같은데?

   

   그래. 그러자. 어차피 지금의 나는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진다고 다칠 사람도 아니니까.

   

   분명 괜찮.

   

   “어미나 딸이나 무례하긴 매한가지군요. 베네딕 알른의 위광이 언제까지…”

   

   어미. 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혼잡하던 머릿속에서 모든 생각이 흩어지고 텅 빈 자리에 냉정함이 자리한다.

   

   이성에서 시작된 합리적임이 아니라 끝없이 차오르는 분노 속에서 만들어지는 냉철함이.

   

   이유는 잘 모르겠다.

   

   내가 한 행동이 있으니만큼 2왕비가 저런 불평 정도는 할 수 있다.

   

   사실 모욕이라 하기에도 애매하다. 루시의 어머니가 과거에 어떤 행동을 저질렀다면 그녀의 짜증은 합당하니까.

   

   그리고 나는 루시의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아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진정으로 딸을 사랑했다는 것 뿐.

   

   이름조차도 모르는 사람의 모욕을 들은 셈인데 왜 화를 내겠는가.

   

   그러니까 이성적으로 생각을 해봤을 때 난 2왕비에게 분노할 이유도 명분도 없다.

   

   허나 내 가슴은, 감정은, 잔뜩 뜨거워진 머리는 이성의 제안을 무시했다.

   

   그들이 외치는 바는 하나였다.

   

   되갚아주자.

   

   복수하자.

   

   눈앞의 썅년이 분노를 참다못해 눈물을 흘리게 만들자.

   

   만일 여기에 서 있는 것이 페이비였다면 감성을 억누르고 이성의 이야기를 따랐겠지만.

   

   난 아냐.

   

   아. 젠장.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방금 전에 할배가 이야기했잖아? 막무가내로 나가도 상관없다고.

   

   음험한 귀족 사회와 교회 양 쪽을 경험한 사람이 괜찮다 그랬는데 뭐 문제가 생기겠어?

   

   “푸흐흫♡”

   

   꾹 다물고 있었던 입에서 웃음소리를 내며 눈을 가늘게 뜬다.

   

   그러자 주절주절 불평을 늘어놓던 2왕비가 미간을 찌푸리고서 내 답을 기다린다.

   

   어디 할 말이 있다면 해보라는 듯.

   

   2왕비의, 세나르의 태도는 분명 자신감의 발현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꺼내더라도 무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의 표현이었다.

   

   “왜 그렇게 화가 잔뜩 나셨나요?♡ 벌써 갱년기가 오신 건가요?♡ 병신왕자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상당한 노산이었나보네요~♡ 많이 힘드셨겠다~♡”

   

   그 여유를 박살내는 데에는 한 마디면 충분했다.

   

   “…알른 영애.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거죠?”

   

   억지웃음조차 지을 수 없게 된 세나르를 보며 한층 더 입꼬리를 끌어 올린다.

   

   벌써부터 정색을 하면 곤란해. 난 이제 막 시작을 했을 뿐이라고.

   

   “헛소리라뇨?♡ 뭐가요?♡ 전 사실밖에 말한 적 없는데?♡”

   

   정말 모르겠다는 듯 고갤 갸웃거리자 이빨을 아득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나르는 모를 것이다.

   

   지금 분노에 잠식당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약점을 드러내고 있는지.

   

   얼마나 다양한 공격거리를 주고 있는지.

   

   자기 딴에는 왕비 다운 처신을 하고 있다 생각하고 있겠지만.

   

   글쎄.

   

   약점파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

   

   “정말이에요♡ 저만큼 거짓말에 서툰 사람도 없을 걸요. 노괴 왕비님?♡”

   “…무례를 받아주는 것도 정도가.”

   “이 허접 아카데미는 왜 그렇게 싫어하시는 건가요?♡”

   

   지금 내 눈에는 보인다.

   

   아카데미 건물을 볼 때 세나르의 눈동자에 담기는 꺼림칙함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소울 아카데미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체 학생시절에 뭘 하고 다니셨길래♡ 하긴 병신 왕자님의 어머니시니까♡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겠네요♡”

   “적당히 해.”

   

   이제는 존대마저 내다버렸나.

   

   그렇지만 아직이야.

   

   아직 내 마음의 열기는 가시지 않았어.

   

   “병신 왕자님께 차갑게 대하는 것도 그런 이유인가요?♡ 자기랑 똑 닮은 자식이 나와서 동족혐오를 겪고 계신가요?♡”

   “하. 그러는 너는? 위선으로 가득했던 어미 아래에서 태어난 것 치고는 너무 과하게 솔직하지 않아? 왜. 어미를 따라하긴 싫었나보지?”

   

   내 주먹에 힘이 들어간 것을 보고 세나르가 입을 삐죽댄다.

   

   좋아. 알겠어. 어디 한 번 끝까지 가보자고.

   

   “선함을 위선이라 표현하는 걸 보니 노괴왕비님의 인격이 느껴지네요♡ 역시 첫 번째가 되지 못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니까요♡”

   “하하하. 그래. 맞지. 겉모습만큼은 쓸데없이 괜찮은 네가 혼담 하나 받지 못하는 것도 인격의 문제고 말야.”

   “어머나♡ 못 하는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푸하핳♡ 노괴왕비님의 학창시절이 어땠는지 알 것 같네요♡”

   “헛된 희망으로 가득 차서 좋겠네. 나이 처먹고 혼자 살면서도 그런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길 바랄게.”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려니 평소보다도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메스가키 스킬의 영향인지 나란 인간이 원래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저 빌어먹을 년의 입을 가로 막는 것.

   

   처음 2왕비가 시계탑에 도착했을 때를 떠올린다.

   

   위로 올라오는 다급한 하이힐 소리.

   

   먼지투성이가 되어버린 모습.

   

   날 마주하며 드러낸 실망스러운 감정.

   

   그리고 내가 아직 이 세계의 주민이 되기 전, 게임 속에서 만났던 한 여성 모험가가 내게 이 시계탑을 알려주면서 했던 말.

   

   ‘기숙사에서 몰래 빠져 나와서 친구랑 밤구경을 하는 게 낙이었는데. 신분의 차이가 심해서 오래 함께하진 못했어.’

   

   머릿속으로 매도를 그리고 나니 기묘한 확신이 들었다.

   

   이 매도가 저 년의 말문을 막아버릴 것 같다는 확신이 말이다.

   

   “걱정마세요♡ 전 성공을 위해 친구를 내다버리는 누구랑은 다르거든요♡ 혼자가 될 일은 없답니다♡”

   

   그리고 그 확신은 경악으로 물든 세나르의 얼굴로써 증명되었다.

   

   “…네가 그걸 어떻게.”

   “노괴왕비님♡ 좀 자주성을 가지세요♡ 그 자리까지 올라가서 생각을 안 하시면 어떡하나요?♡”

   “대답이나 해!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궁금하세요?♡ 꼭 듣고 싶으신가요?♡ 그런 것치고는 목이 너무 꼿꼿하신 것 같은데~♡”

   “2왕비 세나르 솔라딘의 명이야! 대답해!”

   “불리해지니까 권력에 매달리는 게 참 추하네요♡ 뭐어♡ 어쩔 수 없죠♡ 전 연약하고 불쌍한 귀족 영애일 뿐이니까요♡ 대답을 해드려야겠죠♡”

   

   실핏줄을 세눈 세나르를 보고 있자니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난 그 중에서 세나르가 가장 좆같다고 생각할 선택지를 골랐다.

   

   “제가 어떻게 문을 여는 법을 알았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어떻게 아무 관심도 없는 노괴왕비님의 과거에 대해 알고 있다 생각하세요?♡”

   “…만난 거야? 그 아이를?”

   “정답이에요!♡ 전 우~연히 그 허접 모험가분을 만났고 나중에 친구를 만났을 때 전해달란 말도 들었답니다~♡ 어때요?♡ 궁금하세요?♡ 알고 싶으세요?♡”

   “…”

   “방금 전에 제가 했던 말 기억하시죠?♡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나르의 코앞까지 걸어가서 대놓고 시비를 걸었더니 그녀가 피가 나올 정도로 강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줘.”

   “네?♡ 노괴왕비님의 치졸한 마음만큼이나 목소리가 작아서 잘 안 들리는데요?♡”

   “…알려달라고! 그걸 위해서라면 모든 무례를 용서할 테니까! 뭐든 바라는 걸 해줄 테니까! 제발!”

   “으음♡ 무척이나 간절해 보이시네요♡ 그런데 이걸 어쩌죠?♡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이것 참 죄송해라♡ 푸흐흐흫♡”

   

   멍하니 날 바라보던 세나르의 두 손에 마력이 서린다.

   

   재와 닮은 회색빛의 마력은 그녀의 손 위에 뭉치더니 이윽고 주인의 바람에 따라 형태를 달리했다.

   

   그것은 도끼였다.

   

   귀족 가문의 여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야만의 무기를 양 손에 든 세나르는 방금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분노 속에서 냉철함을 찾은 듯 했다.

   

   “걱정 마. 죽이진 않을게. 들어야 할 게 있으니까.”

   “말로 못 이길 것 같으니 무기를 드시는 군요♡ 야만스럽네요♡ 추잡한 노괴왕비님께 너무도 잘 어울려요♡”

   

   인벤토리에서 방패와 메이스를 꺼내든 나는 도발의 말을 내뱉으면서도 식은땀을 흘렸다.

   

   강하네. 더럽게 강해.

   

   베네딕이나 켄트 백작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의 날 박살내기엔 충분한 수준이야.

   

   얼마나 버틸 수 있으려나.

   

   부디 내가 쓰러지기 전에 파티장의 사람들이 시계탑의 이상을 눈치 채야 할 텐데.

   

   <…여아야. 그냥 바라는 대로 말을 해주면 안 되겠느냐?>

   ‘싫어요.’

   <방금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지금은 자칫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란 말이다!>

   ‘그래도 싫어요. 여기서 꼬리 내리면 지는 것 같잖아요.’

   

   저 쪽에서 먼저 대가리를 박으면 모를까. 난 어머니를 모욕한 인간한테 고개 숙일 생각이 없어.

   

   <루시! 제발 내 말을!>

   “거기서 폼만 잡고 있을 거에요?♡”

   

   할배의 외침을 흘려들으며 웃음을 흘렸더니 세나르가 마주 웃어주었다.

   

   “언제까지 그 웃음이 유지될지 보자.”

   

   달빛 아래에서 서슬 퍼런 날을 드러낸 도끼가 내 목을 노리고서 날아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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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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