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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아직 하루가 시작되지 않은 새벽. 창문을 여니 아직 해가 뜨지 않아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고, 특유의 건조함이 바람을 통해 우리를 맞이했다.

         

       “가시죠.”

       “그래.”

         

       프란체를 들어 안고 창틀을 넘어 공작저를 빠져나왔다. 카자르의 집으로 가는 길에 물었다.

         

       “연설문은 준비하셨습니까?”

       “준비하긴 했는데…….”

       “잘 안 되셨습니까?”

       “그래.”

         

       입술을 오므리는 프란체. 급하게 만든 연설문에 자신이 없다는 게 축 늘어진 어깨를 통해 느껴진다. 나는 그녀를 위로했다.

         

       “걱정 마세요. 모든 게 잘 풀릴 테니까.”

       “…내 연설문, 확인해보지 않아도 되겠니?”

       “공녀님의 능력을 확인하는 거니 이번엔 저도 참견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 부담스러운데.”

         

       내가 모든 걸 해줄 수는 없다. 때로는 그녀 자신의 힘으로 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자신의 편을 만드는 힘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사라질 때를 대비해서 프란체의 능력도 키워둬야 하니까.

         

       그렇게 프란체와 새벽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카자르의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앞에는 말 두 마리가 이끄는 커다란 상단 마차가 하나 보였다.

         

       “도착했네요.”

         

       카자르의 집 앞으로 도착하니 그녀는 이미 문 앞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우리가 늦진 않았나?”

       “아뇨, 저도 방금 나온 터라.”

       “그럼 가자.”

         

       나는 상단 마차의 뒤에 먼저 올라가 프란체의 손을 잡아주었다. 카자르는 익숙하다는 듯이 올라왔다.

         

       “상단 마차를 타는 게 익숙한가?”

       “그렇죠. 세이렐 백작령에선 상단 마차를 얻어 탈 때가 많았거든요.”

         

       마차 탈 돈도 아끼는 카자르답다고 해야 하나. 서민적인 삶에 익숙하다. 프란체가 말했다.

         

       “그만 떠들고. 출발부터 하지.”

         

       앞에 타 있던 마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움직였다. 그의 얼굴은 커다란 상인 모자에 의해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셀다스의 암흑 길드에서 나온 인력이군.’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는 길에 카자르가 물었다.

         

       “이제 어떡하실 거예요?”

       “뭘 어떡해.”

       “습격 계획이요. 무작정 다 때려 부수고 쳐들어갈 건 아니잖아요?”

         

       그건 정해둔 게 있다.

         

       “프리다 의류 공장은 지금도 일을 하고 있을 거야.”

       “지금 새벽인데요?”

       “그래. 그 사람들은 하루에 4시간 밖에 못 자니까.”

         

       하루에 4시간이라는 말에 프란체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카자르가 경악했다.

         

       “아니, 사람이 하루에 4시간만 자고 살 수 있어요?”

         

       일명 나폴레옹 수면법.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살 수 있긴 해. 내가 실천했었으니 실제로도 가능하기도 하고.

         

       “그 사람들은 극도로 착취당하고 있어. 그러니 하루에 잘 수 있는 시간은 4시간 뿐이지.”

       “아니, 그런 취급을 받는데 왜 저런 곳에서 일 한데요? 다른 일 할 게 그렇게 없나?”

         

       괜히 씩씩거리는 카자르. 프란체도 말을 보탰다.

         

       “그러니까. 내가 평민들의 삶을 살아보거나 직접 느껴본 적은 없지만, 너무하다고 느껴지네. 아니, 너무한 수준이 아니야. 심각해. 제국의 어떤 상단도 저런 식으로 운영하진 않을 거야.”

         

       혀를 내두르는 프란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안타까운 한숨을 내뱉었다. 내가 말했다.

         

       “저 사람들이 착취를 견디는 이유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의 꿈 때문일 수도 있지. 사람은 대개 불합리한 취급을 받아도 미련함이 남는 법이니까.”

         

       게임에서 ‘불운을 맞이한 천금의 재능’ 퀘스트를 진행하던 때, 이 사람들은 뭐하러 이곳에 계속 머물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멍청한 사람들이 아닌가, 의심도 들었다.

         

       그러나 그건 내 오만한 생각이었다. 그들은 각자 꿈이 있었고, 미래를 보는 희망이 있었다. 의상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버티고 있던 것이다.

         

       그 외에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찍이 부모를 잃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장남, 장녀. 과부가 되어 혼자 자식을 키워야 하는 부인까지.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고,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나는 진실을 안 뒤로는 그들에게 함부로 뭐라 할 수 없었다.

         

       카자르는 미련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요. 만약 제가 마법을 배우고 싶어서 제자로 들어갔는데, 착취만 당하고 있으면 독학하고 만다! 하면서 나갈 거 같아요.”

         

       그건 다른 얘기잖아.

         

       “마법은 달라. 마법사는 무조건 수요가 있을 수밖에 없는 인력이지. 그런데 의류 업계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는 어떨까? 특별한 인력이 아닌 이상 대체가 가능하지. 여기서 제국의 의류점은 프리다가 독점하고 있다? 답이 없는 상황이야.”

         

       내 말에 카자르와 프란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네.”

       “…선택지가 없는 거군요.”

         

       사람의 꿈을 가지고 노는 게 제일 악질인 법. 눈앞에 희망만 보여주고, 그 희망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 차버리는 행위.

         

       프리다의 마담은 마땅한 벌을 받을 것이다.

         

       게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때. 마차가 멈춰섰다.

         

       “도착했습니다.”

         

       공장으로 가는 제국의 경계선에 도착했다. 우리가 타고 왔던 상단 마차와 같은 크기의 마차들이 즐비해 있었다. 우리가 타고 온 걸 포함하면 9개인가. 크기를 생각하면 충분하겠지.

         

       “공녀님. 출발 신호를.”

       “…내가?”

       “그럼 제가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머뭇거리던 프란체가 큰소리로 외쳤다.

         

       “다들 목적지는 알고 있겠지? 바로 출발!”

         

       덜컹! 빼곡한 마차들이 한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의 마차가 가장 앞에 섰다.

         

       “다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니 준비하세요. 공녀님은 카자르의 옆에서 절대 벗어나지 마시고.”

         

       프란체가 갸웃거렸다.

         

       “왜? 위험한 거라도 있니?”

       “예. 경비병이 있으니까요.”

         

       퀘스트를 진행하던 당시. 꽤 많은 경비병이 대기하고 있었다. 100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을 통솔하기 위한 경비병들. 나는 카자르에게 말했다.

         

       “카자르. 공녀님 잘 지켜.”

       “혼자서 경비병을 상대하시게요?”

       “그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소드 마스터의 힘은 압도적이니까. 일개 경비병이 절대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때. 저 멀리서 공장의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 소리쳤다.

         

       “다들 여기서 대기한다!”

         

       마차가 멈춰 서고, 우리는 마차에서 내렸다.

         

       “갑시다.”

         

         

       * * *

         

         

       공장의 형태는 가공된 나무로 이루어진 커다란 저택. 경비병은 입구에 2명, 내부에 10명이 들어가 있다. 나는 기척을 숨기고 공장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경비병들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오, 그 새끼들 지금 술 마시고 있겠지?”

       “그렇겠지.”

       “하. 오늘 모처럼 술 마시는 날인데 하필이면 당직이냐.”

         

       시답잖은 대화였다. 나는 그들이 잡담을 나누던 사이 빠르게 접근해 한 명의 목젖을 강타했다.

         

       빠악! 난데없이 목에 주먹을 맞은 경비병이 목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옆에 있던 경비병이 동그란 눈으로 소리치려던 그 순간. 허리를 돌리며 주먹을 뻗었다.

         

       털썩. 소리 없이 스쳐 지나간 주먹에 턱이 돌아간 경비병이 동공을 위로 올리며 쓰러졌다.

         

       “이제 오세요.”

         

       카자르와 프란체가 살금살금 걸어왔다.

         

       “들어가죠.”

         

       그녀들은 침을 무겁게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끼이익. 공장의 문을 열었다. 역시나.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나는 허리춤에 있던 검집을 들었다.

         

       “돌아다니는 경비들을 처리하고 올게요.”

       “알겠어.”

         

       나는 씨익 웃어주곤 바로 움직였다. 아예 기척을 숨기고 움직여서 그런지, 작업에 집중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전혀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돌아다니는 경비병들을 하나, 둘씩 제압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은밀하게 검집으로 정수리를 내려찍거나, 손날로 목덜미를 강타하는 등. 경비병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렇게 한 다섯 명쯤 잡았을까. 경비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야, 다른 애들 어디갔어?”

       “모르겠는데요?”

       “이 새끼들 어디서 농땡이 피는 거 아니야?”

         

       대장으로 보이는 경비병이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야! 다 일로 모여봐!”

         

       곳곳에 퍼진 경비병들이 한 곳으로 모였다. 지금이 처리하기 좋은 적기다. 나는 자연스레 그들이 집합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뭐야, 네 명 어디갔어?”

       “모르겠습니다.”

       “음? 근데 너는 누구냐?”

         

       경비병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침입자.”

         

       빠악! 손에 든 검집으로 경비대장의 턱을 날렸다. 고개가 돌아가며 힘없이 쓰러졌다.

         

       “뭐, 뭐야!”

       “뭐긴, 침입자라니까.”

         

       나는 모든 집중력을 감각에 쏟아부었다. 그러자 소리가 사라지고 다른 이들의 움직임이 느리게 보였다.

         

       그들 사이를 자유롭게 누비며 목덜미와 턱을 강타했다. 경비병들은 자신이 누구를 상대하는지도 모른 채 바닥에 얼굴을 박았다.

         

       노동자들이 입을 떡 벌리며 나를 바라봤다. 집중하고 있던 작업물을 놔두고, 다들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겠지. 나는 크게 소리쳤다.

         

       “카자르!”

         

       내 외침에 공장의 커다란 아치형 정문이 열렸다. 칙칙한 분위기와 어두운 작업장에 새벽의 빛이 밝아왔다.

       

       그리고 그 정적 속의 공장에서 울려 퍼지는 구두 소리. 프란체가 고개를 뻣뻣이 들며 걸어오고 있었다. 마치 여명에서 탄생한 고귀한 구원자처럼.

       

       완벽한 연출이었다.

         

       “그대들을 이 착취의 현장에서 구해주러 왔음과 동시에, 그대들을 고용하러 왔다.”

         

       노동자들이 중앙에서 울려 퍼지는 프란체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는 의복 사업을 할 예정이다. 그런데 의류는 프리다가 제국에서 독점하고 있지.”

         

       점점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 둘씩 모여드는 노동자들.

         

       “프리다를 이길 수 있는 의류점을 차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그대들이 필요하다. 나와 함께 가지 않겠나? 프리다와는 다르게 정당한 대우를 해줄 거야. 작업 환경도 훨씬 좋을 테지.”

         

       프란체는 그리고, 라고 말하며 말을 이었다.

         

       “제국 최대의 의류점은 바뀔 거야. 프란체 코퍼레이션으로.”

         

       드디어 프란체 코퍼레이션을 인정해줬구나. 매번 구린 이름이라 그랬으면서. 사실 마음에 들었던 게 틀림없다.

         

       “어떤가, 나와 함께 가지 않겠나?”

         

       그때. 어떤 한 사람이 몰려든 노동자들 사이를 뚫고 들어와 질문했다.

         

       “당신들이 이런 여기와 다를 거라는 걸 어떻게 믿죠? 저희는 당신을 오늘 처음 봅니다. 그냥 말하는 것만 믿고 모든 걸 버린 채 참여하라고? 모순입니다!”

         

       날카로우면서도 당연한 질문이다. 과연 프란체는 어떻게 대처할 건가.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는 건 상단으로서 당연하다. 나는 그걸 지킬 뿐. 정 믿지 못하겠다면 어쩔 수 없군. 계속 이 착취의 현장에서 살아가라.”

         

       노동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긍정적인 여론과 부정적인 여론이 서로 부딪혔다. 그러던 그때. 한 소년이 앞으로 나왔다.

         

       불운을 맞이한 천금의 재능, 안드레아였다.

         

       “저는 가겠습니다. 대신,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뭐지?”

       “제가 만들고 싶은 의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피식. 프란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당연한 일이지. 창작자의 자율성을 해치는 일은 절대 해선 안 될 일이니까.”

         

       안드레아의 눈이 크게 떠졌다. 금방이라도 울 것같은 눈망울로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그러자 노동자들은 더욱 술렁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지휘하던 최고의 제작자가 걸음을 돌린 것이다. 당연히 동요할 수밖에 없겠지.

         

       안드레아는 노동자들에게 말했다.

         

       “저는 이분을 믿어보겠습니다. 창작자를 존중해주시는 분이니까요.”

         

       안드레아의 말에 망설이는 노동자들. 프란체는 이때다 싶어 다시 입을 열었다.

         

       “따라올 자들은 따라와라. 나를 믿지 못하는 자들은 여기에 남아도 좋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명심해라.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휙. 프란체는 그리 말하고 등을 돌렸다. 나와 카자르도 등을 돌렸고, 안드레아는 조용히 따라왔다.

         

       프란체가 속삭였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거니?”

       “괜찮습니다.”

       “연설은 어땠니?”

       “어… 그냥 그랬습니다.”

       “…그렇구나.”

         

       시무룩해진 프란체. 나는 그녀를 위로했다.

         

       “그래도 안드레아를 설득했으니 괜찮은 거죠.”

         

       그때. 뒤에서 노동자들이 소리쳤다.

         

       “가겠습니다!”

       “저도 갑니다!”

       “더이상 이런 좆같은 공장에서 일하기 싫어!”

         

       씩씩거리며 힘차게 발을 내딛는 노동자들. 프란체는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잘 생각했다. 그 용기 있는 선택에, 그대들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성공했군.

         

       남은 건 셀다스와 공작에게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프란체 코퍼레이션을 알릴 차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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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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