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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양혜인의 일상은 단조롭다.

        

       새벽 일찍 일어나는 것을 제외하면, 해야 할 일이 많지는 않다. 저택의 청소는 전담 사용인이 따로 있다. 정원의 손질도 전문 사용인이 따로 존재했고, 당연히 요리도 하지 않는다. 명목상 그 모든 것을 지휘하는 것은 양혜인이었지만, 사실 저택 내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루틴이 아주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기에, 양혜인이 따로 신경을 써야 할 이유가 없었다.

        

       누군가가 피치 못할 이유로 일을 그만두거나 쉬어야 할 때도, 이 저택이 아닌 더 윗선에서 사람을 금방 골라서 보내주었다. 대기 인력은 언제나 충분했고, 그렇기에 한순간 사람이 비어도 그 자리가 금방 찼다.

        

       사용인 간에 살갑게 대화를 나누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직원 수칙에 그렇게 하도록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택 내에서 침묵을 지키다 보면 결국 그 침묵 자체가 몸에 옮겨붙게 되었다.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말수가 줄었다.

        

       분기별로 한 번씩 찾아오는 회장을 제외하면, 손님도 없다. 재계에서도 예사라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할 수 있는 것은 예사라의 약혼자인 윤다호뿐이다. 그걸 대화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는 가정하에서만 그렇지만.

        

       그렇다고 윤다호가 직접 저택에 찾아올 일은 없다. 약속은 모두 저택 바깥으로 잡혔으니까.

        

       그렇기에 이 저택은 언제나 우울한 공간이었다. 사람 간의 살가운 대화가 오가지 않는, 그저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가는 이들만이 있는 집. 아마 양혜인의 전임자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간 가장 큰 이유는 거기에 있으리라.

        

       그럼에도, 이 저택에 들러붙어 일을 하는 자신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

        

       양혜인은 전임자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들어본 적이 없다. 어쩌면 양혜인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양혜인만큼 좋은 대학을 나오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고, 봉급이 더 적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길 그만두더라도 그 경력을 다른 직장을 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을지도.

        

       양혜인은 분명 좋은 대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고, 그 성적을 바탕으로 좋은 회사에 취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것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지금의 양혜인에게 ‘커리어’라고 할만한 것은 없으니까.

        

       아무리 좋은 대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어도, 그 스펙을 바탕으로 양혜인이 가지게 된 직업은 사용인이었다. 아무리 좋게 봐주더라도, 이 사용인이라는 직업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밖에 없었다. 일을 그만두더라도 후에 다른 회사에 취업할 때 스펙으로 내밀기에는 다소 힘든 직업이다.

        

       좋은 회사에 들어갔어도, 그 회사에서 일한 적이 없으니 업무적인 내용은 하나도 모른다. 지난 몇 년 동안 양혜인이 해온 일은 예사라라는 아이의 뒤를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챙겨주는 것뿐이었으니까.

        

       어쩌면 이제 막 회사에 취업한 양혜인에게 그렇게 고액의 금액을 제시하면서 이 직업을 권유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조로운 일터에서 더 오랫동안 계속 일할 사람을 미리 뽑아 그 단조로움을 유지하기 위하여.

        

       예사라라는 존재의 일상에 일 파문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만약 정말로 유진 그룹의 회장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그 생각은 확실하게 들어맞았다.

        

       올해 첫날밤에 예사라가 온몸을 비틀며 비명을 지르기 전까지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어린 소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곤 생각할 수도 없는 끔찍한 비명이었다.

        

       양혜인은 예사라의 방문을 열었을 때 흘러나온 시큼한 냄새를 기억한다. 단순한 땀 냄새가 아닌, 침대 위에서 나서는 안 될 냄새.

        

       처음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고, 그다음 밀려온 감정은 공포였다.

        

       만약 예사라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양혜인의 미래도 끝이었으니까.

        

       ……다행히,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경찰은 별다른 문제 없이 물릴 수 있었고, 의사가 입을 다물게 만들기도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진료기록은 회장에게 갔다. 혹시 자기 수양딸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어떤 감정을 보일까 했지만, 회장 쪽으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분기별로 방문’이라는 원칙을 꾸준히 지키려는 것일까.

        

       지독하다고 생각했다가, 양혜인은 금방 고개를 저었다.

        

       지독하기로 따지자면, 자신도 마찬가지였으니까.

        

       한 아이가 고통받는 찰나에, 자신이 생각한 것은 자신의 안위뿐이었다.

        

       아니, 사실 그 찰나뿐만이 아니었다. 양혜인은 일하는 내내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다. 몇 년을 함께 보낸 예사라가 자신에게 작고 불분명한 목소리로 말을 걸 때도 철저하게 사무적으로 대했다.

        

       전부 다, 자신을 위해서였다.

        

       주어진 업무만 생각하고, 해야 할 일만 한다.

        

       ……아니.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았다.

        

        저택에 갇혀, 최악의 방법으로 학대당하고 있는 아이를, 그저 ‘업무 대상’으로만 바라보았다. 이렇게 삭막한 곳에서 일하는 것은 그저 그만한 대가를 받기 때문일 뿐이라고, 마치 본인이 피해자라도 된 것처럼 생각했다.

        

       처음에는 조금의 죄책감은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 죄책감이라는 것은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사라지는 법이다. 죄책감이 사라진 부분에는 ‘합리화’라는 개념이 들어찬다.

        

       그래, 사라는 일반적인 아이들과는 다르니까.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으니까.

        

       먼 훗날, 완벽히 독립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다 헛소리였다.

        

       사라는 그저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아이였을 뿐이다.

        

       양혜인은, 그 사실을 너무나 늦게 알아차렸다.

        

       그걸 처음으로 제대로 웃어 보이는 사라의 얼굴을 보고 나서야 알아차렸으니까.

        

       *

        

       “오늘은, 무슨 일없었나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요일.

        

       바로 어제는 사라의 친구가 갑자기 찾아오는 바람에 평소의 일상과는 다소 동떨어진 기분이 들었지만, 오늘은 정말로 별다른 일이 없었다. 회장은 사라의 변화를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연락 한 통 없었고, 저택으로 다른 친구가 찾아오는 일도 없었다.

        

       그때의 사고 이후로 사라의 성격이 다소 적극적으로 되었다고 하지만, 사라는 여전히 사용인에게 일부러 말을 거는 일은 별로 없었다. 양혜인에게 말을 거는 일이 훨씬 늘어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안부를 물어보는 것 같은 말은 한 적이 없었다.

        

       저녁 식사 중인 사라 쪽을 바라보았다. 사라는 굳이 이쪽을 돌아보진 않았다. 그저 포크와 나이프를 놀리고 있을 뿐.

        

       순간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양혜인은 얼른 생각을 고쳐먹었다.

        

       “예,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요?”

        

       대답이 돌아오는 것으로 봐선, 잘못 들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양혜인은 시선을 살짝 돌려 근처에 서 있는 다른 사용인을 바라보았다. 둘 다 배 앞에 손을 공손히 모은 채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양혜인은 그들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놀라운 변화.

        

       물론, 바로 어제 친구와 밖으로 나가 한참 뒤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이건 별거 아닌 일이다. 그저 수 년 동안 이어져 온 그들만의 일상이 갑자기 깨지는 것에 놀라고 있을 뿐. 비교적 오랫동안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던 사람들일수록 그 충격이 클 것이다.

        

       저들도 당혹감 이외에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양혜인이 느꼈던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까?

        

       “메이드 일이 고되지는 않은가요?”

        

       심지어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여전히 사라는 이쪽을 돌아보지 않았지만, 그래도 대화를 끝낼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받는 봉급에 비해서는 그리 힘든 일은 아닙니다.”

        

       양혜인은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사용인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대답을 들은 사라의 움직임이 한순간 멈추었다. 접시를 살짝 건드려 나던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멈추자, 식당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잠깐 생각이라도 잠긴 듯 움직임을 멈췄던 사라는, 곧 다시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봉급이 어느 정도 되는지 물어보는 게 실례가 될까요?”

        

       “…….”

        

       양혜인은 질문을 곱씹었다.

        

       지금은 자신을 누구의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조금 혼란스러운 양혜인이었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회장의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일하는 이 저택은 분명히 사라의 이름으로 되어있다. 양혜인은 회장으로부터 고용되어있지만, 동시에 예사라라는 아이를 돌보는 것이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사라는 마음만 먹으면 이 저택을 비워버릴 수도 있었다. 이 저택 자체가 사라의 사유재산이었으니까. 그저 본인이 그렇게 하지 않았을 뿐.

        

       저 질문은 어떤 이유에서 나온 것일까?

        

       자신의 본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양혜인을 힐난하는 것일까?

        

       아니면 돈만 받으면 무슨 일이건 하는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 둘 다 옳은 말이기는 했다.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양혜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 봉급은—”

        

       *

        

       예?

        

       얼마요?

        

       5억?

        

       물론 양혜인이 말해준 연봉은 딱 5억에 맞아떨어지진 않았다. 그 뒤에 몇백만 원 더 붙었던 것 같은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하긴, 다시 생각해보면 저렇게 젊은 사람을 아예 입주 가정부로 휴일도 없이 부려 먹기 위해선 억 소리 나는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쩌면 양혜인 개인이 가지고 있는 스펙이 내가 짐작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을지도 모르지. 예사라라는 제일 중요한 인물 바로 옆에 심어둘 사람을 아무나 뽑았을 리도 없고.

        

       유서에서 양혜인은 예사라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왔다고 했다. 그러니 대충 3년 정도 일했다는 말이고, 아직 20대 중반에서 중후반으로 보이는 사람이었으니, 여기 왔을 때는 완전히 사회 초년생의 나이였다는 말이 된다.

        

       가정부가 뭐 대단한 스펙이 될 수 있을 리도 없고.

        

       아마 저 5억이라는 돈은, 유망한 인재의 미래를 미리 보상한다는 개념도 포함되어있을 것이다.

        

       “…….”

        

       잠깐 할 말을 잃었던 나는, 다시 손에 들고 있는 나이프와 포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별다른 뜻이 있어서 물어본 것은 아니었다.

        

       그냥…… 지난번에 양혜인이 나한테 말을 걸었던 것이 생각나서 나도 말을 걸어보았을 뿐이다. 따지자면 안부 물어보는 기분으로 물어본 거긴 한데. 이렇게까지 성실하게 대답해버릴 줄은 몰랐다.

        

       남들 앞에서 연봉을 물어보는 것도 어찌 보면 갑질인가?

        

       ……갑질 맞네. 원래 직장에서는 자기 연봉 얘기 잘 안 하니까. 회사에서도 싫어하고.

        

       “……너무 사적인 질문이었나요?”

        

       “아닙니다. 제가 여기서 일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아가씨 덕분이니까요.”

        

       아부하는 건가?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자기 직장 상사가 할만하냐고 물어본 상황에 가깝겠지. 거기 대고 어떻게 ‘힘들어서 때려치우고 싶습니다’라고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보면, 결국 처음 질문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질문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양혜인이 나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해보고 싶은데, 이미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가 너무 확실해서 답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뭐라고 질문하건, 아마 양혜인은 프로페셔널 메이드의 자세로 전부 긍정적인 대답을 할 테니까.

        

       그래도 회장한테 보고도 하지 않고, 내가 저택 밖으로 나가는 걸 허락해 줬다는 것을 생각하면 분명 예사라의 편에 가까운 것 같기는 한데.

        

       뭐, 처음 말을 거는 거니까 실패할 수도 있지.

        

       어차피 양혜인과는 계속 붙어 다닐 예정이니까. 그때그때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확인해보면 될 일이다.

        

       “……그런가요.”

        

       결국, 나는 그렇게 짧게 대답하면서 다음 기회를 노려보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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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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