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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결국에 내 목적은 하나다. 데케이에게 굴욕을 안겨주는 것.

       

       그 어떤 미사여구를 붙인다 한들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생각을 해보았지. 어떻게 하면 그가 굴욕을 느낄 지에 대해서.

       

       내가 천마로서 데케이를 쓰러트리는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모두가 그럴 것이라 생각하는 상황에서 내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 한들 그건 데케이의 굴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기껏해야 질만해서 졌다. 혹은 졌지만 잘 싸웠다. 같은 이야기나 듣겠지.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희망을 줘야 한다. 기회가 엿보이는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게 편사라는 캐릭터였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면 악평밖에 나오지 않는 녀석.

       

       최약이라고. 누구도 살리지 못한다는 아이.

       

       이걸로 데케이를 밟아준다면 모두들 즐거워하지 않겠나.

       

       보라. 내가 편사를 고른다고 하자마자 채팅창의 아해들이 발작을 일으키지 않느냐. 얼마나 인식이 안 좋으면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일까.

       

       나로선 잘 된 일이었다. 실망이 커야 이후의 즐거움도 더 커지는 법 아니겠느냐.

       

       편사를 고르고 나서 슬쩍 채찍을 휘두르자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아해들은 왜 이 캐릭터를 그리 싫어하는 것일까.

       

       이전에 플레이를 해 봤을 때 나는 이 캐릭터가 왜 그리 나쁜 평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캐릭터에 깃든 경지는 높았다. 안에 머무르는 내기는 정순했으며 보정으로 사용하는 기술에도 꽤 괜찮은 이치가 스며들어 있었지.

       

       아마도 다른 아해들이 편사의 이치를 이해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만.

       

       이윽고 풍경이 바뀌었다. 어느 시장 거리의 모습으로.

       

       자기가 산을 타고 가지고 온 물건을 봐달라는 이들. 굶어 죽을 것 같다며 한 푼만 달라 구걸하는 이들. 이거 불량품 아니냐 상인에게 따지는 이들.

       

       평범한 저잣거리의 풍경이지만 이곳도 아피스에서 제공하는 여러 투쟁의 장소 중 하나였다.

       

       몇 번인가 이 곳에서 다른 이들과 싸운 적이 있다만 그 때마다 개판이 났던 걸로 기억한다.

       

       갑자기 관군이 나타나서는 진압을 하려 들지 않나.

       

       상대가 무슨 귀물을 얻어서 힘을 얻지를 않나.

       

       개방 패의 고수가 난입을 해서 나를 공격하지를 않나.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상황이 펼쳐져서 입으로 말하기 버거울 지경이었다.

       

       거기에 길도 복잡한데다 인파도 많아 도망치기도 좋은 곳이니. 대충 데케이의 의도를 알겠군.

       

       정면 승부를 피하겠다는 것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데케이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등에다 활을 맨 캐릭터를 가지고 나왔다.

       

       길게 뻗은 귀와 금발이 인상적인 남자 캐릭터였는데 그 주변에는 자그마한 요정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매치가 준비되었습니다.]

       [편사 VS 정령궁수]

       [20초 후에 게임이 시작됩니다.]

       

       “승부를 피할 셈이구나.”

       

       저 캐릭터가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만 활을 무기로 골랐다는 것은 싸워주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 없었다.

       

       활은 싸움이 아닌 사냥을 위한 무기이니 말이다.

       

       “제가 화령님을 정면에서 어떻게 이깁니까.”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만 치졸해보이긴 하는구나.”

       

       가볍게 도발을 해보았으나 데케이는 반응하지 않았다.

       

       마음을 굳게 먹은 모양이구나.

       

       좋다. 그대가 사냥꾼이 될 셈이라면 내 기꺼이 어울려 주마.

       

       다만 하나는 기억하거라. 호랑이를 사냥하겠다 나선 이들은 대개 호랑이의 이빨에 죽는다는 것을.

       

       [3]

       [2]

       [1]

       [경기 시작]

       

       “실피드!”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데케이가 정령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자 맹렬한 바람과 함께 흙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이 틈에 거리를 벌릴 생각이겠지만 안타깝구나.

       

       무인에게 시야라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단다.

       

       눈을 감은 채 기감을 펼치자 등을 돌린 채 달아나는 데케이의 모습이 보였다.

       

       발을 움직이는 대신 채찍을 휘둘렀다.

       

       경지에 이른 편사는 채찍을 마치 제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법이니.

       

       내 의지에 따라 뻗어나간 채찍은 데케이의 발목을 쳐냄으로써 그가 바닥을 구르게 만들었다.

       

       흙먼지 사이로 몸을 움직이자 화살이 날아들었다. 허나 활을 쏘는 모습조차도 보고 있었기에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가 쉬이 도망을 허락할 것 같았느냐?”

       “알고 있습니다! 이프리트!”

       

       데케이의 외침과 동시에 주변의 상점들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함께 소란이 커졌다. 점차 복잡해지는 인파 사이로 모습을 감출 셈인가.

       

       보통이라면 좋은 판단이겠지만 그가 고려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끄아악!”

       

       본인은 사람을 해치는 데에 아무 망설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데케이의 앞을 가린 이를 쳐내고서 데케이의 손을 노리고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은 위협적인 무기다.

       

       자그마한 힘으로도 공기를 터트리고, 살을 찢고, 뼈를 진동시키지.

       

       그런 무기 위로 강기가 둘려 봐라. 경지에 이른 무인이 사용하는 채찍은 몸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몸을 찢어버리는 병기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게임이니 그런 잔혹한 풍경이 연출되지는 않겠지만 활을 쏘는데 장애가 생기기는 할 터.

       

       였으나.

       

       바닥에서 땅이 솟아올라 내 채찍을 가로 막았다.

       

       흐음. 정령이라는 것이 거슬리기는 하는구나.

       

       저것도 채찍에 맞으면 죽기는 하려나. 저런 존재를 만나본 적이 없어 무어라 확신을 내리지 못하겠군.

       

       내가 생각을 하는 사이 데케이가 인파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이 장소를 고른 것이 그대이니 아마 무언가 수를 준비해 두었겠지.

       

       그대는 무인이고. 승리를 갈망하는 사람이니까.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오지 않았을 거라 믿네.

       

       그러니 부디 지난 번 외신을 불렀을 때처럼 나를 즐겁게 해주기를 바라네.

       

       *

       

       “저 사람 채찍은 또 왜 저렇게 잘 다루는 건데!”

       

       – 채찍이 노움이 세운 벽을 잘라버리던데?

       – 채찍 든 천마님이라니. ㅗㅜㅑ

       – 오우야는 무슨. 저거에 맞으면 죽어요.

       

       데케이는 필사적으로 달렸다.

       

       그가 오늘 정한 전략은 아주 단순했다.

       

       어차피 정면으로 싸워서는 승부가 안 된다.

       

       화령이 천마를 고르지 않았다 한들 기본적인 실력의 차이가 너무 크다. 맞붙어서 승산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데케이는 일부러 변수가 많은 이 맵을 선택했다.

       

       무협 시장맵.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변수가 널려 있어서 실력 있는 프로들이 가장 싫어하는 맵이다.

       

       가끔 아무리 필사적으로 게임을 해도 운빨 때문에 지는 경우가 생기는 곳이거든.

       

       보통 실력 있는 프로들은 이 맵을 피하고, 비교적 약하다 평가받는 프로들은 이 맵을 고른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해서는 변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프로를 은퇴하기 직전 데케이는 이 맵에서 살다시피 했다.

       

       당시 그의 피지컬은 이미 바닥을 찍던 중이었고, 미친 듯 쏟아지는 신인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변수를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데케이의 별명 중 하나가 시장 주인이었을까.

       

       전현직 프로 코치를 다 합해도 데케이보다 이 맵에 관해 잘 아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슬슬 관군이 출동하는 중일 거에요.”

       

       관군은 이 시장의 치안을 담당하는 이들이다.

       

       시민들의 피해가 일정 이상 발생하면 시민에게 피해를 입힌 유저를 공격하러 나타나지.

       

       트리거를 발생시킨 건 시장을 불태운 데케이지만 추격 과정에서 화령이 시민을 공격했으니 어그로는 양분되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건 먼저 발견된 쪽을 공격하겠지.

       

       그래서 데케이는 화령을 관군이 오는 쪽으로 유도할 예정이었다. 그녀가 관군의 공격을 받도록.

       

       화령이 관군과 싸우는 동안 다른 변수를 찾아낼 수 있도록.

       

       시장의 변수는 한 두 개가 아니다. 가장 잘 알려진 개방 고수의 도움이나, 극악의 확률로 출현하는 각성단 이외에도.

       

       체력회복. 마나회복. 신체능력증진. 시장 맵 전용 특수 기술이나 무기 업그레이드 등 다양한 변수가 있다.

       

       최대한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챙길 수 있는 걸 챙겨야해.

       

       그러지 못하면 화령의 손에 작살이 날 테니까.

       

       – 님 뒤! 뒤!

       

       채팅창의 다급한 외침에 고개를 돌리자 천막으로 된 지붕과 지붕을 달리며 자신을 쫓아오는 화령의 모습이 보였다.

       

       왜 저 허술해 보이는 천막 위를 달리는 데 천막이 멀쩡한 거야? 저것도 무공인가?

       

       “실프! 날려버려!”

       

       천막 째로 날려버릴 생각으로 바람의 칼날을 사용했지만 화령은 채찍 한 번을 휘둘러 바람의 칼날을 모두 흩어버렸다.

       

       쉽게 맞아줄 리가 없지. 이 정도는 데케이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정령이 기술을 쓰는 동안 이미 활시위를 당기고 있엇다.

       

       화살이 날아간다.

       

       노리는 곳은 허벅지. 정령의 도움을 받아 쏘아지는 화살은 총알만큼이나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허나 그 화살은 화령에게 닿지 못했다. 화령의 앞에 도달하기도 전에 채찍에 맞아서 반토막이 난 것이다.

       

       “미친.”

       

       너무 압도적이니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저게 어떻게 되는 거야.

       

       어느새 데케이를 추월한 화령이 데케이의 앞에 떨어졌다.

       

       방금 전까지 미친 듯 달렸을 텐 데도 그녀의 몸가짐엔 조금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진짜 괴물이 따로 없네.

       

       편사고 뭐고 그냥 무공만 쓸 수 있으면 아무 상관 없는 거야?

       

       캐릭터의 성능 따위 기본적인 실력으로 커버할 수 있다는 건가?!

       

       “이제 뭐 남은 것이 있느냐?”

       

       데케이는 대답하지 안고 채찍이 들린 손만을 바라보았다.

       

       저게 날아오면 일단 피하고 운디네로 파도를 일으켜서 시야를 뺏자.

       

       시간을 끌면 얼마 안 가서.

       

       “멈춰라!”

       

       그렇지.

       

       이 타이밍에 이 루트로 출현해야지.

       

       오래 안 했는데 몸에 익은 건 역시 그대로구나.

       

       데케이는 화령의 뒤편에서 나온 관군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피스 속 캐릭터가 된 이상 관군은 위협적인 적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예 무시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다.

       

       공격의 대상이 된다면 저들과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다.

       

       데케이건 화령이건 시장에 피해를 입힌 건 똑같지만 그래도 지금 관군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건 화령.

       

       즉. 공격을 받는 건 화령이었다.

       

       “그대의 범행을 좌시하지 않겠다! 얌전히 오라를 받으라!”

       

       화령은 관군을 보며 짧게 혀를 차더니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의 끝이 어느 관군 한 명의 머리에 닿자 투구가 박살남과 동시에 관군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일격.

       

       일격이었다.

       

       하하. 아무리 관군이 잡몹이라지만 저런 식으로 잡는 게 말이 되냐고.

       

       “이 녀석이!”

       

       화령에게 달려드는 관군을 보며 데케이는 다급히 몸을 뒤로 돌렸다.

       

       저들이 시간을 오래 끌어줄 것 같진 않았다. 오래 버텨봐야 30초도 안 되겠지.

       

       그 안에 물건을 챙겨야 한다.

       

       뭣보다 제일 중요한 건 개방 당주의 호리병이다.

       

       그걸 찾아서 맵 중앙에서 기다리는 개방 고수에게 건네주면 개방 고수가 동료로 합류하니까.

       

       개방 고수는 꽤 강한 npc다. 실버나 골드 유저들이 개방 고수와 1:1을 졌다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올 정도로.

       

       화령을 이기지는 못하겠지만 분명 도움은 될 것이다.

       

       솔직히 제일 좋은 건 각성단을 찾아내는 거지만 그건 천판하면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물건이니까.

       

       그가 현장을 떠나고서 얼마 있지 않아 뒤에서 폭음이 울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재미있으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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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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