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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도마뱀한테 말을 거는 게 일종의 문화일까?

         

        백연영도 그렇고 이 사람도 그렇고.

         

        백연영은 그렇다 치자.

         

        나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니 일종의 유희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여자는 대체 뭘까.

         

        내가 마음 착한 악어왕도마뱀이 아니라 사악한 코모도왕도마뱀이었으면 이미 꿀꺽 삼켰을 텐데.

         

        내 야생의 감이 엮이면 굉장히 피곤해질 거 같다고 말해준다.

         

        치료도 해줬고 기운도 넘치는 걸 보면 이제 도리는 다한 상황.

         

        갈 길 가면 된다.

         

        엮이지 말아야지.

         

        “자, 잠깐만요.”

         

        훽 하고 내 꼬리를 잡았다.

         

        얼굴에는 나 소심해요라고 적혀 있는데 생각보다 대범한 행동을 하네.

         

        꼬리로 칼을 쥐고 있어서 좀 위험할 텐데.

         

        “그르르….”

         

        조심하라는 의미로 낮게 울었다.

         

        “히, 히익! 그, 그게에….”

         

        금방 쩔쩔매는 만두 머리 여자.

         

        싱겁기는.

         

        그래. 만나서 반가웠고 이제 안녕이다.

         

        “저, 저도 데려가 주세요!”

         

        ….

         

        고개를 좌우로 둘러봐도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저 말을 나한테 한 걸까?

         

        일단 문제가 크게 두 개가 있다.

         

        하나는 내가 도마뱀이라는 거다.

         

        도마뱀한테 말을 걸고 있다.

         

        그것도 내가 자기 말을 알아듣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거 같다.

         

        물론 알아듣는 건 맞긴 한데, 평범한 도마뱀은 못 알아듣는다.

         

        도마뱀에게 말을 거는 괴짜는 내 스승 하나면 족하다.

         

        두 번째 문제는 내가 저 녀석의 상상 속에는 엄청 못된 식인 도마뱀이라는 거다.

         

        아까만 해도 잡아먹지 말라고 벌벌 떨었고 지금도 오들오들 떨고 있으면서.

         

        나 보고 데려가라고?

         

        기각이다. 기각.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다.

         

        자고 있는 나를 묶은 후 도마뱀 꼬치구이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르르르….”

         

        거절의 의미로 낮게 으르렁거렸다.

         

        갈색 머리카락의 여자는 품 안에 손을 넣었다.

         

        무언가 꺼내려 하고 있었다.

         

        안에 들어 있는 게 많은지, 한참이나 뒤적거렸다.

         

        암기일까 봐 걱정했는데 저렇게 허둥대는 꼴을 보면 그럴 리는 없겠구나.

         

        열심히 해봐.

         

        난 갈게.

         

        “대,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이걸!”

         

        당당하게 내민 갈색 물체가 보인다.

         

        주변에 포슬포슬한 하얀 가루가 뿌려진 모양새였다.

         

        아니, 저건 가루를 뿌린 게 아니다.

         

        내부에 있던 당분이 건조되는 과정에서 겉면에 하얗게 일어난 거뿐이다.

         

        “이게 힘들게 구… 꺄아아악!”

         

        쉬릭!

         

        손에 있던 곶감을 혀로 채갔다.

         

        우물우물.

         

        입에서 퍼지는 단맛의 향연.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었다.

         

        말린 과일 특유의 단맛이 혓바닥을 가득 메웠다.

         

        역시 인간이 좋긴 좋아.

         

        이런 걸 만들어 먹을 수도 있고.

         

        누구는 미식이라고 해봤자 회 떠서 먹는 게 최선인데.

         

        “그르릉.”

         

        혹시 더 없니?

         

        “후, 후후…. 강한 영물일수록 건시를 좋아한다는 게 사실이었구나…. 보, 보이죠? 이거 다 드릴 테니까….”

         

        쉬릭!

         

        추가로 꺼낸 곶감도 채갔다.

         

        곶감을 품에 넣고 다니다니 어느 집 자제인지는 몰라도 교육 하나는 잘 받았네.

         

        단 음식은 언제나 옳다. 은룡굴에서 먹은 그 정체 모를 경단을 빼면 단 음식을 먹은 기억이 없다.

         

        비록 양은 적지만 열량과 맛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입가에 붙은 곶감을 혀로 핥았다.

         

        내게 곶감을 기증한 여자는 무언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마, 마음에 드셨죠? 이제 절 데려가 주세요!”

         

        응?

         

        그런 말을 했었나?

         

        “자, 잠깐만요! 왜 그냥 가시는 거예요!”

         

        도마뱀은 원래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다.

         

        눈앞에 곶감이 있길래 먹은 것뿐이고.

         

        간수 못한 사람 잘못이지.

         

        암, 그렇고말고.

         

        “야, 양심 없는 도마뱀아!”

         

        양심이 없다니.

         

        내가 준 나무뿌리 있잖아.

         

        합당한 대가를 받아냈을 뿐.

         

        “오래 있진 않을 거예요! 다, 다리가 나을 때까지만이라도….”

         

        잠깐 멈췄다.

         

        고개를 돌려서 천천히 살펴보니, 아직 붓기가 남아 있었다.

         

        저 하수오가 만병통치약도 아니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흠.

         

        그런데 아예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겁 좀 주면 후다닥 튀어 갈 거 같다.

         

        “어, 그, 그리고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내가 잠깐 멈춘 것을 긍정의 의미로 본 걸까? 어떻게든 날 잡으려고 용을 쓰려는 게 보였다.

         

        미안하지만 난 널 데려갈 생각이 없단다.

         

        “저, 전 사천에서 온 당소영이라고 해요!”

         

        그래. 통성명 정도야 뭐.

         

        난 은룡굴의 지배자이자 늪지대의 주인이고 거미에게 사랑받는 자 악어왕도마뱀이야.

         

        …가만, 사천의 당 뭐시기?

         

        사천당가?

         

        혀를 날름거리면서 당 뭐시기를 천천히 살펴봤다.

         

        당가라면 오대세가 중 하나인 명문가 아니던가.

         

        그냥 오대세가면 그래서 뭐 어쩌라는 반응을 보였을 거다.

         

        하지만 당가다.

         

        당가=독이라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독은 내가 관심 있어 하는 주제 중 하나였고.

         

        “게겍.”

         

        당 뭐시기야.

         

        우리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 않을래?

         

        “그르르….”

         

        꼬리를 살짝 휘둘러 내 등을 톡톡 건드렸다.

         

        “타, 타라는 거예요?”

         

        타라고 해도 머뭇거리는 당 뭐시기.

         

        검을 입에 문 후, 꼬리로 허리를 휘감았다.

         

        “꺄악!”

         

        생각보다 가볍네.

         

        “잘 부, 부탁드려요오오오!”

         

        …넌 뭐 좀 먹어야겠다.

         

         

        *

         

         

        보금자리에 돌아오니, 투스와 푸스가 졸린 눈을 비비며 내게 기어 왔다.

         

        녀석들.

         

        그냥 자고 있어도 되는데.

         

        “키에엥….”

         

        이게 육아의 뿌듯함일까.

         

        얼른 다시 자렴.

         

        빨리 자야 얼른 크지.

         

        은글슬쩍 내 꼬리를 향해 기어가던 투스가 갑자기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키에에엑!”

         

        깜짝 놀란 투스.

         

        그러고 보니 등에 매달린 이 녀석을 잊고 있었네.

         

        “흐, 흐에엑….”

         

        얘들아 인사해.

         

        오늘부터 함께 지낼, 아니.

         

        독에 관해서 가르쳐줄 당 선생님이라고 해.

         

        “겍겍.”

        “키오옹….”

         

        투스는 어쩐 일인지 뒷걸음질 쳤다.

         

        정신을 차린 당소영은 내 등에서 내려왔다.

         

        “과연 고모도 대협…! 보금자리에 독충을 기르고 계시다니.”

         

        코모도도 아니고 대협도 아니다.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닐 거다.

         

        그런데 투스야. 너 왜 그렇게 벌벌 떠니?

         

        “키에엥….”

         

        사람을 처음 봐서 그런 건가.

         

        원체 겁이 많은 녀석이라 그러려니 했다.

         

        “키엑?”

         

        투스가 빠지고 앞으로 온 건 푸스.

         

        다리를 이리저리 흔들더니, 갑작스럽게 경계 태세를 갖췄다.

         

        “키아아아악!”

        “꺄악! 왜, 왜 그러세요오오….”

         

        푸스의 반응에 힘이 났는지, 저 구석에서 투스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키에에엑!”

         

        하긴 처음 보는 사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안심하렴.

         

        머리가 조금 이상한 거 같지만, 그래도 착한 사람이야.

         

        “게게게겍.”

         

        하지만 투스와 푸스는 내 말에도 진정하지 않았다.

         

        내가 데리고 왔으니 안전하다는 건 알텐데, 왜 이렇게 반응하는 거지?

         

        “어, 어? 잠깐만. 이 거미들은….”

         

        응?

         

        너 반응이 왜 이래.

         

        “히익! 아니, 오해. 오해예요!”

         

        혹시 둘이 구면이니?

         

        “키에에에엑!”

         

        당소영은 횡설수설하며 손을 마구 저어댔다.

         

        “아니야! 내가 그런 게 아니야! 난 그냥….”

         

        마구 달려드는 투스와 푸스.

         

        “난 다른 쪽 관리자였다구요! 내가 아니야!”

         

        투스와 푸스는 그녀의 해명에도 태세를 풀지 않았다.

         

        거미들의 시선은 내게 가 있었다.

         

        내 명령을 기다리는 걸까.

         

        당소영도 내 눈치를 슬쩍 봤다.

         

        “그르륵.”

         

        서로 풀 게 있으면 풀고 가렴.

         

        “이, 이익! 그래요! 화가 풀릴 때까지 절 때려요!”

         

        와.

         

        양심도 없다.

         

        당가의 사람이니 거미의 독은 통하지 않을 거다. 저 조그마한 거미들이 몸으로 공격해 봤자 얼마나 아프겠나. 끽해봐야 10cm도 안 되는 놈들인데.

         

        “대신 이번 일 묻고 가는 거예요!”

        “키에엑!”

         

        씁.

         

        그런데 이 여자는 왜 당연하다는 듯이 거미랑 대화를 하고 있는 거지?

         

        하긴 나도 옆집 뽀삐랑 몇 번 대화해 봤으니까. 대충 비슷한 거겠지.

         

        퍽!

         

        푸스의 몸통박치기가 작렬했다.

         

        “…아파! 아파요! 왜 아프지?”

         

        어이고.

         

        양심이 없는 것도 모자라 엄살까지 부린다.

         

        투스도 신이 나서 짧은 다리로 당소영을 마구 두드렸다.

         

        “아악! 뭐, 뭐야! 왜 이렇게 변한 거예요! 아직 인면지주도 아닐 텐데!”

         

        퍼억!

         

        이어지는 푸스의 몸통박치기 2연격.

         

        “내, 내공을 대체 어떻게 쓰는 거야!”

         

        퍼벅!

         

        “히익! 당신들 대체 뭘 먹은 거예요!”

         

        음.

         

        내가 지나치게 잘 먹이긴 했지.

         

        “취, 취소! 그, 그만 때려요오오오오!”

         

         

        *

         

         

        “흑흑….”

         

        구석에서 흐느끼고 있는 당소영.

         

        …좀 심한 거 아니니?

         

        “키엥!”

         

        아직도 분이 덜 풀린다는 듯이 이를 갈고 있는 투스와 푸스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래도 오늘로 털어내고, 앞으로 잘 지내보자.

         

        한 일주일이면 다리가 다 낫겠지.

         

        그때까지만 참아주렴, 투스 푸스.

         

        “겍겍.”

         

        거미들은 당소영을 너무 신나게 때렸는지, 금방 잠에 들었다.

         

        아까는 조금 무서웠는데, 지금은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는 게 귀여웠다.

         

        잘 땐 천사네, 천사야.

         

        거미들한테 거미줄 이불을 덮어둔 후, 나도 잠자리로 향했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몸을 둥글게 말았다.

         

        날이 점점 쌀쌀해지네.

         

        “…저기.”

         

        당소영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거, 거미들은 전부 자고 있는 거 맞겠죠?”

         

        푸르릉.

         

        코 고는 소리에 안심한 당소영이 재빠르게 내 쪽으로 건너왔다.

         

        너 다리 다쳤다면서.

         

        “헤헤….”

         

        내 눈치를 살짝 본 당소영이 가까운 곳에 앉았다.

         

        “고, 고모도 대협.”

         

        코모도가 아니라 악어왕도마뱀이지만 딱히 지적하진 않았다.

         

        지적할 수도 없었고.

         

        “체, 체온 조절이 힘들다고 알고 있어요.”

         

        파충류의 고질적인 문제지.

         

        “혹시….”

         

        말끝을 흐리는 당소영.

         

        무언가 부끄러운 생각이라도 하는지, 뺨이 발그레해졌다.

         

        아닌가. 저건 거미한테 맞아서 생긴 건가.

         

        “제가 체온을 높여드려도 될까요?”

         

        은근슬쩍 내 옆으로 조금씩 다가오는 당소영.

         

        저 말은 무슨 의미일까.

         

        수상할 정도로 수상하다.

         

        “고 대협은 그냥 가만히 계시면 돼요. 고모도의 독을 챙길 수 있으면 만회를….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 독이 필요한 건가?

         

        까짓거 줄 수는 있다.

         

        그런데 대체 뭐에다 쓰려고 그러지.

         

        그리고 왜 계속 나한테 엉겨 붙는 거야.

         

        “모, 몸이 따뜻해야 독이 잘 나올 테니까아….”

         

        말끝을 흐리는 당소영.

         

        “저도 좀 춥기도 하고오….”

         

        당소영은 단숨에 몸을 날려 뺨을 갖다 댔다.

         

        “후헤…. 잠깐만 이러고 있을게요.”

         

        표독한 눈으로 당소영을 노려보고 있는 푸스의 거미줄에.

         

        “키아아아아악!”

        “꺄아아악!”

         

        푸스는 몹시 화가 난 얼굴로 당소영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아이고.

         

        또 싸우네.

         

        또 싸워.

         

        …푸스 이겨라.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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