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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에~ 안녕하십니까, 저희 ‘군도 가고 싶은대로 간다’ 호에 탑승해주신 승객 여러분. 저는 선장이자 항해사인 군도 박사입니다. 저희 배는 정확히 13분 뒤 즈라문 군도로 출발할 예정으로….”

         

         

        왜 선장이자 항해사인데 박사라고 할까.

         

        성이 박사인가.

         

        그리고 작은 항구마을 선장 주제에 서비스 정신이 투철했다.

         

        극존칭으로 항해 플랜까지 세세히 알려주다니 최신식이다.

         

         

        “의외로 배가 크다.”

         

         

        루시가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즈라문 군도로 가는 유일한 배편이라고는 하지만 배가 범선급이었으니까.

         

         

        “사람도 꽤 많고 말야.”

         

         

        그리고 이 범선급 크기에 사람도 최대한 많이 탑승한 상태였다.

         

        전생자 이씨의 기억으로 충만한 린은 루시에게 그 이유를 알려줬다.

         

         

        “즈라문 군도는 지금 축제 기간이거든.”

         

        “축제?”

         

        “2대 용사를 기리기 위한 축제.”

         

        “그렇구나….”

         

         

        루시에게는 이미 2대 용사와 마검 이야기를 해놓은 상태였다.

         

        자신처럼 동료들에게 모함받고 배신당한 용사.

         

        2대 용사와 4대 용사 모두 뒤통수를 당하다니

         

        정확히 말하면 1대와 3대는 마족 침공을 막다 전사하고 2대와 4대는 배반당했다.

         

        루시는 그나마 마왕 토벌을 완수했다는 특이점이 있었지만.

         

        그러고보니 둘 다 자신의 최대 업적을 달성한 직후 배신당했다는 건 같았다.

         

         

        “2대 용사의 위업과 그 넋을 기리기 위해서 하는 축제래. 크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나름 해마다 찾는 사람들 규모가 어느정도 있는 모양이야.”

         

        “…죽고 나서 기려봤자 뭐한담.”

         

         

        루시는 퉁명스럽게 불평했다.

         

        아무래도 2대 용사와 자신이 겹쳐 보이다 보니 짜증이 났다.

         

         

        “만약 내가 마왕 토벌 직후에 녀석들이 바라던대로 죽었다면 이렇게 축제나 열어주고 끝냈겠지?”

         

        “음, 조금 달라. 즈라문 군도 축제가 2대 용사를 위한 거라는 걸 아는 사람이 극히 적거든.”

         

        “어째서?”

         

         

        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것도 루시에게 들려주기 껄끄럽긴 했다.

         

         

        “즈라문 군도는 2대 용사의 고향이기도 해. 그래서 용사의 여동생과 군도 사람들이 반역자로 처형당한 2대 용사 장례식을 대놓고 할 수 없으니 일부러 축제 형식으로 시작한 거야.”

         

        “그게 뭐야….”

         

        “애초에 2대 용사를 기리는 축제인데 아는 사람이 적은 거부터가 앞뒤가 안맞잖아?”

         

        “그렇지.”

         

         

        순순히 납득하긴 했지만 불만은 해소되지 않았는지 루시는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짜증 나. 마음에 안 들어.”

         

         

        린도 2대 용사 스토리는 마음에 안 들기는 매한가지였다.

         

        게임 내에서도 모함 당해 죽은 이후의 여신 징벌만 직접적으로 알려주고, 그 외의 비하인드는 게임 곳곳에 이스터 에그처럼 암시만 있었다.

         

        그렇기에 린이라 하더라도 2대 용사 스토리는 완벽하게 다 알고 있지 않았다.

         

         

        “있잖아, 린.”

         

         

        루시가 린에게 더 밀착했다.

         

         

        “여신님은 2대 용사가 죽고 나서 직접 천벌을 내리셨잖아?”

         

        “맞아, 그랬지.”

         

        “나는 여신님께서 날 위해 보내주신 사람이 린이라고 생각해.”

         

         

        부끄러운 듯 어깨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난 행운아야. 2대 용사는 죽고나서 배신자들의 손자가 장성할 즈음에야 천벌을 내리셨는데, 난 죽기도 전에 린에게 구원 받았으니까.”

         

         

        린도 머쓱했다.

         

        어떻게 보면 전생을 각성하고 나서부터 의도적으로 움직였으니 루시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자신을 추켜세워주는 말이 너무나도 낯간지러웠다.

         

        그게 비록 둘만의 대화일 뿐이더라도.

         

        여신이라….

         

        사실 여신보다는 마신이 더 문제인데 말이지.

         

        여신은 대개 인류를 강화시키는 쪽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마신은 여신 몰래 인류를 약화시키거나 배신시키는 뒷공작을 수도 없이 펼친다.

         

        특히 용사 파티를 비롯한 영웅들에게 거절하기 힘든 대가를 제시하여 계약을 맺는 랜덤 이벤트는 아주 그냥 대놓고 플레이어 엿 먹으라고 만들어 놓은 장치였다.

         

        파티원 한 명이 적으로 돌아서기 때문에 오리지널판에서 그 이벤트 터지면 무조건 리셋이었다.

         

        하지만 해당 이벤트가 플레이어들의 원성을 너무 많이 사자 개발사는 DLC를 출시하면서 이벤트를 아예 삭제시켜버렸다.

         

        단순 삭제라면 DLC 출시 때까지 뻐기는 게 아니라 그냥 패치를 뿌렸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여튼 이놈의 게임사들이란 돈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

         

        그래, 이벤트가 삭제되었다고는 하지만 혹시 모르니 일러두자.

         

         

        “루시.”

         

        “응.”

         

        “만약에 알 수 없는 존재가 와서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면 무조건 의심해야 해.”

         

        “소원?”

         

        “예를 들면 과거를 바꾼다거나?”

         

         

        아르실이 타락할 때의 소원 내용이 이거였지.

         

         

        “자신의 성격이나 성향을 고치고 싶다거나?”

         

         

        이건 나이드리안.

         

         

        “어떠한 존재를 지워버리고 싶다거나?”

         

         

        티그리아인데 왜 이런 소원을 원했는지 모르겠다.

         

        정보가 없다.

         

         

        “뭐 이 정도?”

         

        “뭔가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소원들이네.”

         

         

        그리고 하나같이 루시가 혹할 수 밖에 없는 소원들이었다.

         

        린은 그냥 파티원들의 소원 내용을 나열한 거지만 지금의 루시는 그 3가지 모두 원하고 있었다.

         

        린을 푸대접한 과거를 바꾸고

         

        린에게 성질내고 막말하던 자신을 바꾸고

         

        린을 향한 애정의 큰 오점인 라인폴드라는 존재 자체를 지워버린다.

         

        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린이 하지 말라고 했다.

         

        린이 하지 말라고 했으면 하지 말아야 하는 거다.

         

         

        “응, 알았어.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놈들이 있으면 그냥 베어버릴게.”

         

        “아니 막 베지는 말고.”

         

        “히힛.”

         

         

        어깨에 파묻힌 그대로 린의 체취를 흠뻑 들이마셨다.

         

        언제나 그녀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린의 살내음.

         

        더불어서 루시는 드디어 래빈처럼 린과 시시콜콜한 잡담을 해봤다는 성취감에 기분이 매우 좋았다.

         

        너무 좋아.

         

        이렇게 나대지 말고, 오로지 린 곁에서 린만 위해 살아야지.

         

         

         

        —

         

         

         

        당연하겠지만 군도까지는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몹시 지루했던 린과 루시는 날마다 갑판으로 나가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젯밤에 사람 몇 명이 바다에 빠졌대.”

         

        “사람이?”

         

         

        그거 루시가 던진 거였다.

         

         

        “진상짓도 좀 하던 불량한 패거리라고 하긴 했는데.”

         

         

        곤히 잠든 린을 두고 조심스레 자체적으로 야간 순찰을 돌던 중에 루시는 진상 패거리의 말을 숨어서 듣고 말았다.

         

         

        “기억났어. 맨날 술 취해서 시비 걸고 다니던 사람들?”

         

        “맞아, 루시가 한 번 손보려 했었잖아.”

         

         

        린을 죽인 뒤 자신을 따먹겠다는 말에 루시는 그 자리에서 전부 바다로 던져버렸다.

         

         

        “그 뿐만이 아니야.”

         

        “더 있어?”

         

        “화장 짙고 옷 헐겁고 입고 다니던 여자들 있지?”

         

        “…….”

         

        “왜 그래?”

         

        “헐겁게 입고 다니는 건 언제 또 본 거야?”

         

        “아니 그사람들이 그렇게 입고 다닌 걸 왜….”

         

         

        그래서 그년들도 루시가 바다에 집어 던졌다.

         

        진상 패거리를 처리한 직후 또다시 이런 말소리가 들려왔었다.

         

         

        “그 얼굴 반반한 갈색머리년 옆에 있던 검은 머리 성실해 보이더라?”

         

        “뭐야? 이번 타겟은 걔야? 의왼데.”

         

        “멍청하긴, 그런 쑥맥 같은 녀석들이 알토란처럼 쌈짓돈 모아놓는 거 몰라? 짧은 시간 안에 털어먹기에는 제격이지. 돈주머니만 내 손에 들어오면 그 다음에는 모가지 쓱싹해서 바다에 처넣으면 돼.”

         

        “근데 같이 있던 년이 이쁘긴 이쁘던데 넘어올까?”

         

        “뭘 모르네.”

         

         

        린을 꼬셔보겠다던 여자가 콧대를 치켜들며 으스댔다.

         

         

        “지 이쁜 줄 아는 년이 그런 남자를 만나겠어?”

         

         

        그래서 루시는 모습을 드러내며 물었다.

         

         

        “린이 어디가 어때서?”

         

        “너 뭣… 끄억!”

         

         

        비명 지르면 린이 잠에서 깰 수 있으니 곤란하다.

         

        있는 힘껏 두 년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넣고 멱살을 잡아 바다로 던져버렸다.

         

        워낙에 파도가 거친 지라 빠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린에 비하면 나 따위는 한참 부족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루시는 환한 달빛을 보며 싱긋 웃었다.

         

        여신님, 오늘도 린을 위해 세상을 지켰어요.

         

         

        “루시? 루시?”

         

        “응, 린 듣고 있어.”

         

        “여튼 갑판에서는 조심하자. 특히 난간 같은데 너무 가까이 가지 말고.”

         

        “응, 걱정해줘서 고마워 린.”

         

         

        그의 걱정을 받을 수 있다니 황홀하다.

         

        너무 티내지는 말자.

         

        린이 곤란할 수도 있으니까 적당히 목에 키스 정도만….

         

         

        “에~ 안녕하십니까, 저희 ‘군도 가고 싶은대로 간다’ 호에 탑승해주신 승객 여러분. 저는 선장이자 항해사인 군도 박사입니다. 저희 배는 정확히 13분 뒤 즈라문 군도에 도착할 예정으로….”

         

         

         

        갑작스럽게 울려퍼진 안내 방송에 루시는 화들짝 놀랐다.

         

        운영하고 있는 마을은 작은데 배는 범선급이고 안에 방송용 마법 장치도 있다니 여러모로 미스테리한 구석이 많았다.

         

         

        “린, 도착이래!”

         

        “응 준비하자.”

         

         

        루시는 아쉬우면서도 앞으로 펼쳐질 여행이 기대됐다.

         

        배에서 지내는 동안 밉보일 짓도 하지 않았고 린과 꿈에 그리던 잡담도 실컷 했다.

         

        배에서의 일정은 끝나지만 마침 즈라문 군도는 축제 기간.

         

        린은 이번에도 마족이 있다고 미리 말해줬지만 루시는 얼른 마검을 얻어 퇴치해버리고 그와 조금이라도 축제를 즐기고 싶었다.

         

        드디어 배가 선착장에 닿았다.

         

         

        “린 우리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돼?”

         

         

        기대를 안고 물어본다.

         

         

        “걱정 마, 루시. 내가 다 준비해놨어.”

         

        “정말?”

         

        “우린 바로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갈거야.”

         

        “정말?!”

         

         

        루시는 뛸듯이 기뻐했다.

         

        린도 같은 생각이었구나.

         

        자신과 축제 데이트를… 아냐, 아니야.

         

        까불지 마 루시.

         

        아직 넌 린에게 선택받지 못했고 용서도 못받았어. 나대지 좀 말아봐.

         

        그럼에도 히죽히죽 웃음이 새어나오는 걸 막기 힘들었다.

         

         

        “완전히는 아니겠지만 나름 축제도 즐기면서 돈도 벌 수 있어.”

         

         

        아니야! 이것 봐봐! 즐길 수 있다잖아!

         

        돈도 벌 수 있고!

         

        …어?

         

         

        “돈을 어떻게 벌어?”

         

         

        멍하니 되묻는 루시.

         

        하지만 린이 대답해주기 전에 선착장 부둣가에 커다란 덩치가 튀어나와 소리 질렀다.

         

         

        “야아-! 이번에 축제 짐꾼 알바하는 놈들 퍼뜩 튀어나와라!”

         

        “저요! 저요!”

         

         

        린도 손을 번쩍 들더니 소리를 지르며 튀어나갔다.

         

        평소와 다르게 어딘가 살짝 신나 보이는 모습이 낯설다.

         

         

        “오! 패기가 좋네! 너 이름이 뭐냐!”

         

        “춘식이요! 이춘식!”

         

        “그래 춘식아! 너 혼자냐?”

         

        “아뇨!”

         

         

        린은 루시를 향해 손짓했다.

         

         

        “순이야! 일루와 얼른! 이거 인기 많다! 자리 금방 차!”

         

         

        이전의 루시였다면 여기서 맥빠지고 실망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루시는 그녀를 향해 웃으며 손짓하는 린을 보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걷잡을 수 없이 쿵쾅거렸다.

         

         

        “순이야!”

         

        “지금 갈게!”

         

         

        순이도 춘식이 곁으로 씩씩하게 달려갔다.

         

         

        “넌 무슨 순이냐?”

         

        “이, 이순이요!”

         

         

        은근슬쩍 린과 같은 성을 대본다.

         

        마치 부부인 것처럼.

         

         

        “여자애라… 좀 힘들텐데 잘할 수 있겠어?”

         

         

        덩치가 걱정스럽게 묻자 순이는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춘식이를 가리켰다.

         

         

        “얘랑 같이하면 잘할 수 있어요!”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He Became the Only Ally of the Abandoned Warrior

Abandoned Hero's Only Ally, 버림받은 용사의 유일한 아군이 되었다.
Score 6.8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saved the Warrior who used to ignore and bully me and now she is obsesse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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