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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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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쮸아압 소리를 내며 피를 흡수하던 검이 잠시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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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뭐? ]
    “으앗! 멈추지 말고 빨리 피 빨아먹어! 옷이 피에 젖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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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이 피를 흡수하는 걸 멈추자 상처에서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구멍이 생긴 옷은 잘 수선하면 쓸만하겠지만, 피가 묻은 옷은 세탁하기 꽤 까다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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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호통에 검이 작게 몸을 떨며 놀라더니 허겁지겁 피를 빨기 시작했다. 밖으로 새어 나오던 피가 순식간에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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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뭐지?”
    “우리가 모르는 흑마법인가?”
    “역시 위대하신 분이었어..”
    “다,다들 귀를 막아! 자칫 귀를 기울였다가 죽을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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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들이 허겁지겁 귀를 틀어막고 구석에 모여 몸을 덜덜 떨었다. 겁에 질린 몸짓과 달리 눈동자에 희망이 너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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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힘을 가졌다는 말은 곧 이번 경기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말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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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왜 안 죽는 거지? 벌써 미라가 되고도 남아야 하는데! 네 녀석 정체가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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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이 혼란에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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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이거 어떻게 갚을 거야?”
    [ 무,뭣? ]
    “허, 무전취식도 아니고 남의 옷을 뚫은 데다가 피까지 빨아먹고 튀겠다고?”
    [ 그….그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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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개그 세계에서 주부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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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일을 하면 정규직 과학자처럼 주방이고, 세탁실이고 전부 폭파해버리는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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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의 주부는 ‘전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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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아이들을 두 팔에 세 명씩 매달아 그네를 태울 수 있고, 할인만 한다면 쌀 포대 10개는 거뜬히 들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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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요일마다 한정으로 판매하는 세일 상품이나 계절 특가 할인 매장에선 무시무시한 힘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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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뿐인가? 정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시장에선 어마어마한 심리전을 펼치며 협상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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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부로서 살아왔던 내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놈은 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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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헌혈해도 기프티콘을 주는 시대인데, 검이라는 이유로 도망칠 생각은 아니겠지? 에이, 설마.”
    [ 헌..혈? 기프…뭐? 시,시대가 그렇게 바뀌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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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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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 가르간도아, 수백 년 전 피가 강을 이룰 정도로 무수히 많은 생명을 죽였던 강력한 마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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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간도아는 피를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강해지는 마검이었기에, 최강의 마검이자 최악의 마검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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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간도아의 잔혹한 점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이가 검을 들어도 어김없이 학살자로 만들어 버린다는 데 있다. 사용자의 정신을 붕괴시키고 오로지 생명을 학살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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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르간도아는 아군과 적군의 구분을 하지 않고 피를 탐했기 때문에, 마계 쪽에서도 위험한 무기로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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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가 강처럼 흐르고, 수많은 생명이 죽어버린 날. 드래곤 로드가 마검 가르간도아를 봉인해 무저갱에 처박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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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무시무시한 마검이 쓰레기 같은 검들 사이에 처박혀 있던 건 전부 마왕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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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이 중간계를 침범하면서 차원이 흔들렸고 무저갱에 처박혀 있던 마검이 거대한 마기에 자석처럼 끌려가 마왕의 땅 위에 소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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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시간 피를 흡수하지 못해 마검은 매우 낡은 꼴이 되었다. 그 탓에 쓰레기 검들 사이에 처박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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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째서냐…! 어째서 죽지 않는 것이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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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리안의 피를 쫙쫙 빨아먹으며 당황스러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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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에게 찔리고도 미치기는커녕 짜증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나, 성인 10명분의 피를 흡수했음에도 멀쩡해 보이는 리안의 모습이 경악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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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몰랐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피가 무슨 땅 판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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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을 더욱더 당황스럽게 만드는 건 깐깐한 목소리로 대가를 내놓으라는 저 말이었다. 항상 두려움 혹은 경외의 대상이었던 마검에게 리안의 태도는 혼란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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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가 뭘 해보기도 전에 정신 붕괴로 이겨 먹었던 마검에게 리안의 단호한 태도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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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그럼 내 힘을 빌려주마! 내 힘을 사용하면 넌 지상 최강이 될 수 있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전부 얻을 수 있는 힘을 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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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이을수록 마검은 자신감을 찾아갔다. 그렇다. 그는 어디 내놓아도 모두가 탐낼만한 최강, 최악의 마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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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걸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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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돌아온 건 “겨우 그거?”라는 표정이었다. 마검은 땀샘이 없음에도 식은땀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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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참, 겨우 힘 좀 빌려주는 걸로 땡 칠 수 있는 거면 이 세상 고생하는 사람 하나도 없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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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세상 물정 모른다는 듯 혀를 차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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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됐네요. 됐어. 그냥 검신이나 녹여서 파는 게 더 값지겠네.”
    [ 뭣?! 너,너 내가 어떤 검인 줄 알고! 이 몸은 무려 최강의 -.. ]
    “손잡이도 꽤 쓸만해 보이는데 비싸게 팔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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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식은땀이 줄줄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가 아무리 최강의 검이었다고 해도 그건 몇백년전 과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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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오랜 봉인으로 힘이 굉장히 약해진 상태였다. 이대로 용광로에 녹여버리면 그대로 녹아버릴 게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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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것만큼은 안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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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경험 제로, 수백 년 동안 혼잣말만 늘었던 마검은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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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건 너무 섣부른 선택이다! 저,적어도 한 번쯤은 사용해보고 그래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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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리안이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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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 딱 봐도 낡아 보이는 검들 사이에 있던 허접한 검일 게 뻔한데. 무슨 확인이 필요하겠어?”
    [ 허,허접?! 나는 절대 허접한 검이 아니다! 드래곤조차 봉인하는 게 겨우 였던 위대한 마검이란 말이다! ]
    “오? 드래곤조차?”
    [ 그래! 그것도 평범한 드래곤이 아니다! 무려 드래곤 로드조차 겨우 봉인했던 마검이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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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없이 채찍만 맞다가 겨우 당근 좀 물려줬더니 신이 나서 날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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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증거가 없으니..”
    [ 에잇! 당장 나를 사용해라! 그러면 너도 내 위대함을 알게 되겠지! ]
    “확인하는 것까진 괜찮은데…한 번 휘둘러 본다고 뭘 알 수가 있나?”
    [ 그렇다면 마음에 들 때까지 나를 휘둘러도 좋다! 분명 내 위대함에 경외하게 될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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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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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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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굳이 빙빙 돌아가며 마검의 입에서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다.’라는 말을 꺼내게 만든 건 마검의 계약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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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시간 봉인되어있던 마검 조차 리안의 몸을 조종해 배를 찌르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제 의지대로 쉽게 사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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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의 뜻대로 마검을 사용하기 위해선, 마검의 힘을 찍어 누를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거나 지금처럼 약속을 받아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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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마검과 약속을 할 땐, 악마의 계약처럼 대가를 원하거나 횟수를 정해 몇 번 쓰지도 못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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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 가르간도아 또한 딱 한 번만 리안을 도와주려 했지만, 리안의 채찍과 당근에 당해 “만족할 때까지 사용해도 된다.”라는 무서운 말을 꺼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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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게 말해 사회 경험이 전무한 이가 블랙기업 계약서에 사인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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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뭐…”
    [ 크하하하! 그래! 어서 나를 휘둘러라! 내 위대함을 알고 경악하고 찬탄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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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미래가 저당 잡혔다는 걸 모르는 마검은 그저 신이 나서 호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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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컹,촤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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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라! 너희들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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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준비가 되었다는 듯 닫혀있던 창살이 올라갔다. 리안은 배에 박혀있는 마검의 손잡이를 잡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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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피 못 막아?”
    [ 그 정도는 간단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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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못해도 인간 100명분의 피를 흡수한 덕분에 마검은 간단한 마법 정도는 사용할 수 있었다. 마검의 말대로 검을 뽑아냈음에도 피가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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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뚫린 배 위에 투명한 막 같은 게 흘러나오는 핏물을 막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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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건 피가 흘러나오지 못하게 할 뿐, 그 이상의 효과는 없다. 상처가 아물지는 않을 거란 소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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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혹여나 검을 휘둘러보기도 전에 리안이 죽을까 걱정되어 넌지시 이야기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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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아 -, 괜찮아괜찮아. 옷에 피만 안 묻으면 됐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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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을 베어낸 마검조차 황당할 정도로 태연한 말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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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이, 억지로 끌어내 주길 바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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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과 속닥거리는 사이 시간이 꽤 흘렀는지 험상궃게 생긴 남자가 미간을 찌푸린 채 다가왔다. 전처럼 리안을 투기장에 던져버리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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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무기를 고르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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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머쓱하게 웃으며 성큼성큼 입구 쪽으로 향하자 남자가 혀를 차며 물러났다. 귀를 가리고 있던 노예들이 덜덜 떨며 리안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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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와아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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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함성을 들으며 리안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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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저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나? 뭔…매일 같이 소리를 지르지? 알바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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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극히 개그 주민다운 생각을 하며 마검을 늘어뜨린 채 투기장 가운데까지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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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명의 용감한 검투사가 맞서게 될 마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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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컹, 촤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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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너편에 철창이 위로 올라가고 그들이 싸워야 할 마물이 쿵쿵, 거친 발걸음 소리를 내며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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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후원해주신 혈소연님! 익명님! 후원 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0;9

Ilham Senjaya님! 오늘도 읽어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다크 판타지 속 주연들 : 온갖 시련을 겪고, 어마어마하게 노력해서 강해진다.
리안 : 마검을 든다. 배에 꽂는다. 최강이된다.

선작과 추천은 사랑입니다!

오늘도,내일도 행복한 하루되세요!다음화 보기

쮸아압 소리를 내며 피를 흡수하던 검이 잠시 멈칫했다.

[ 무,뭐? ]

“으앗! 멈추지 말고 빨리 피 빨아먹어! 옷이 피에 젖잖아!”

검이 피를 흡수하는 걸 멈추자 상처에서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구멍이 생긴 옷은 잘 수선하면 쓸만하겠지만, 피가 묻은 옷은 세탁하기 꽤 까다롭다.

내 호통에 검이 작게 몸을 떨며 놀라더니 허겁지겁 피를 빨기 시작했다. 밖으로 새어 나오던 피가 순식간에 멎었다.

“뭐,뭐지?”

“우리가 모르는 흑마법인가?”

“역시 위대하신 분이었어..”

“다,다들 귀를 막아! 자칫 귀를 기울였다가 죽을 수도 있어!”

노예들이 허겁지겁 귀를 틀어막고 구석에 모여 몸을 덜덜 떨었다. 겁에 질린 몸짓과 달리 눈동자에 희망이 너울거렸다.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힘을 가졌다는 말은 곧 이번 경기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말과 같았다.

[ 너..왜 안 죽는 거지? 벌써 미라가 되고도 남아야 하는데! 네 녀석 정체가 뭐냐!]

검이 혼란에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너 이거 어떻게 갚을 거야?”

[ 무,뭣? ]

“허, 무전취식도 아니고 남의 옷을 뚫은 데다가 피까지 빨아먹고 튀겠다고?”

[ 그….그게. ]

나는 개그 세계에서 주부로 살아왔다.

집안일을 하면 정규직 과학자처럼 주방이고, 세탁실이고 전부 폭파해버리는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개그 세계의 주부는 ‘전사’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직업이다.

어린아이들을 두 팔에 세 명씩 매달아 그네를 태울 수 있고, 할인만 한다면 쌀 포대 10개는 거뜬히 들고 다닌다.

특히 요일마다 한정으로 판매하는 세일 상품이나 계절 특가 할인 매장에선 무시무시한 힘을 보이기도 한다.

그뿐인가? 정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시장에선 어마어마한 심리전을 펼치며 협상까지 한다.

주부로서 살아왔던 내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놈은 호구다.

“요즘 헌혈해도 기프티콘을 주는 시대인데, 검이라는 이유로 도망칠 생각은 아니겠지? 에이, 설마.”

[ 헌..혈? 기프…뭐? 시,시대가 그렇게 바뀌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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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검 가르간도아, 수백 년 전 피가 강을 이룰 정도로 무수히 많은 생명을 죽였던 강력한 마검이다.

가르간도아는 피를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강해지는 마검이었기에, 최강의 마검이자 최악의 마검이라 불렸다.

가르간도아의 잔혹한 점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이가 검을 들어도 어김없이 학살자로 만들어 버린다는 데 있다. 사용자의 정신을 붕괴시키고 오로지 생명을 학살하는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가르간도아는 아군과 적군의 구분을 하지 않고 피를 탐했기 때문에, 마계 쪽에서도 위험한 무기로 다뤄졌다.

피가 강처럼 흐르고, 수많은 생명이 죽어버린 날. 드래곤 로드가 마검 가르간도아를 봉인해 무저갱에 처박아버렸다.

그런 무시무시한 마검이 쓰레기 같은 검들 사이에 처박혀 있던 건 전부 마왕 덕분이었다.

마왕이 중간계를 침범하면서 차원이 흔들렸고 무저갱에 처박혀 있던 마검이 거대한 마기에 자석처럼 끌려가 마왕의 땅 위에 소환된 것이다.

오랜 시간 피를 흡수하지 못해 마검은 매우 낡은 꼴이 되었다. 그 탓에 쓰레기 검들 사이에 처박히게 된 것이다.

[ ‘어째서냐…! 어째서 죽지 않는 것이냐!’ ]

마검은 리안의 피를 쫙쫙 빨아먹으며 당황스러운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에게 찔리고도 미치기는커녕 짜증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나, 성인 10명분의 피를 흡수했음에도 멀쩡해 보이는 리안의 모습이 경악스러웠다.

“아무리 몰랐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피가 무슨 땅 판다고 나오는 것도 아니고.”

마검을 더욱더 당황스럽게 만드는 건 깐깐한 목소리로 대가를 내놓으라는 저 말이었다. 항상 두려움 혹은 경외의 대상이었던 마검에게 리안의 태도는 혼란 그 자체였다.

상대가 뭘 해보기도 전에 정신 붕괴로 이겨 먹었던 마검에게 리안의 단호한 태도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 그,그럼 내 힘을 빌려주마! 내 힘을 사용하면 넌 지상 최강이 될 수 있다.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전부 얻을 수 있는 힘을 주마! ]

말을 이을수록 마검은 자신감을 찾아갔다. 그렇다. 그는 어디 내놓아도 모두가 탐낼만한 최강, 최악의 마검이다!

“그걸로 끝?”

그러나 돌아온 건 “겨우 그거?”라는 표정이었다. 마검은 땀샘이 없음에도 식은땀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허참, 겨우 힘 좀 빌려주는 걸로 땡 칠 수 있는 거면 이 세상 고생하는 사람 하나도 없겠네.”

리안은 세상 물정 모른다는 듯 혀를 차다가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됐네요. 됐어. 그냥 검신이나 녹여서 파는 게 더 값지겠네.”

[ 뭣?! 너,너 내가 어떤 검인 줄 알고! 이 몸은 무려 최강의 -.. ]

“손잡이도 꽤 쓸만해 보이는데 비싸게 팔리겠지?”

마검은 식은땀이 줄줄 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가 아무리 최강의 검이었다고 해도 그건 몇백년전 과거였다.

지금은 오랜 봉인으로 힘이 굉장히 약해진 상태였다. 이대로 용광로에 녹여버리면 그대로 녹아버릴 게 뻔했다.

[ ‘그것만큼은 안돼…!’ ]

사회 경험 제로, 수백 년 동안 혼잣말만 늘었던 마검은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 그건 너무 섣부른 선택이다! 저,적어도 한 번쯤은 사용해보고 그래야지! ]

그 말에 리안이 눈을 번뜩였다.

“에이, 딱 봐도 낡아 보이는 검들 사이에 있던 허접한 검일 게 뻔한데. 무슨 확인이 필요하겠어?”

[ 허,허접?! 나는 절대 허접한 검이 아니다! 드래곤조차 봉인하는 게 겨우 였던 위대한 마검이란 말이다! ]

“오? 드래곤조차?”

[ 그래! 그것도 평범한 드래곤이 아니다! 무려 드래곤 로드조차 겨우 봉인했던 마검이란 말이다! ]

정신없이 채찍만 맞다가 겨우 당근 좀 물려줬더니 신이 나서 날뛰기 시작했다.

“근데 증거가 없으니..”

[ 에잇! 당장 나를 사용해라! 그러면 너도 내 위대함을 알게 되겠지! ]

“확인하는 것까진 괜찮은데…한 번 휘둘러 본다고 뭘 알 수가 있나?”

[ 그렇다면 마음에 들 때까지 나를 휘둘러도 좋다! 분명 내 위대함에 경외하게 될 테니! ]

리안은 생각했다.

‘넘어왔다.’

리안이 굳이 빙빙 돌아가며 마검의 입에서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다.’라는 말을 꺼내게 만든 건 마검의 계약 때문이었다.

오랜 시간 봉인되어있던 마검 조차 리안의 몸을 조종해 배를 찌르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제 의지대로 쉽게 사용할 수 없다.

주인의 뜻대로 마검을 사용하기 위해선, 마검의 힘을 찍어 누를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거나 지금처럼 약속을 받아내야 했다.

일반적으로 마검과 약속을 할 땐, 악마의 계약처럼 대가를 원하거나 횟수를 정해 몇 번 쓰지도 못하게 만든다.

마검 가르간도아 또한 딱 한 번만 리안을 도와주려 했지만, 리안의 채찍과 당근에 당해 “만족할 때까지 사용해도 된다.”라는 무서운 말을 꺼내고 말았다.

쉽게 말해 사회 경험이 전무한 이가 블랙기업 계약서에 사인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럼 뭐…”

[ 크하하하! 그래! 어서 나를 휘둘러라! 내 위대함을 알고 경악하고 찬탄하라! ]

제 미래가 저당 잡혔다는 걸 모르는 마검은 그저 신이 나서 호탕하게 웃었다.

철컹,촤르르륵!

“나와라! 너희들 차례다!”

마침 준비가 되었다는 듯 닫혀있던 창살이 올라갔다. 리안은 배에 박혀있는 마검의 손잡이를 잡으며 말했다.

“이거 피 못 막아?”

[ 그 정도는 간단하지. ]

못해도 인간 100명분의 피를 흡수한 덕분에 마검은 간단한 마법 정도는 사용할 수 있었다. 마검의 말대로 검을 뽑아냈음에도 피가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뚫린 배 위에 투명한 막 같은 게 흘러나오는 핏물을 막아주었다.

[ 이건 피가 흘러나오지 못하게 할 뿐, 그 이상의 효과는 없다. 상처가 아물지는 않을 거란 소리다. ]

마검은 혹여나 검을 휘둘러보기도 전에 리안이 죽을까 걱정되어 넌지시 이야기해주었다.

“응? 아 -, 괜찮아괜찮아. 옷에 피만 안 묻으면 됐지 뭐.”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을 베어낸 마검조차 황당할 정도로 태연한 말투였다.

“어이, 억지로 끌어내 주길 바라나?”

마검과 속닥거리는 사이 시간이 꽤 흘렀는지 험상궃게 생긴 남자가 미간을 찌푸린 채 다가왔다. 전처럼 리안을 투기장에 던져버리려는 듯했다.

“아아, 무기를 고르느라…”

리안이 머쓱하게 웃으며 성큼성큼 입구 쪽으로 향하자 남자가 혀를 차며 물러났다. 귀를 가리고 있던 노예들이 덜덜 떨며 리안의 뒤를 따랐다.

“우와아아아 -!”

거대한 함성을 들으며 리안은 생각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나? 뭔…매일 같이 소리를 지르지? 알바는 아니겠지?’

지극히 개그 주민다운 생각을 하며 마검을 늘어뜨린 채 투기장 가운데까지 걸어갔다.

“다섯명의 용감한 검투사가 맞서게 될 마물은!”

철컹, 촤르르륵!

건너편에 철창이 위로 올라가고 그들이 싸워야 할 마물이 쿵쿵, 거친 발걸음 소리를 내며 걸어 나왔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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