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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왕대산의 무공.

   

    잠시 고민하던 서준은 이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좋죠.”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무공이라는 것은, 실제 가치가 어떻든 그 가문 구성원들에게 있어 굉장한 의미를 가진다.

   

    그걸 남에게 가르쳐준다는 건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할 수 없는 소리였다.

   

    “고맙소 은인.”

    “제가 고맙죠.”

   

    자신이 무공을 눈으로 보고 대충 베낄 수 있다지만, 그건 겉핥기에 불과하다.

   

    청류검 같은 경우에도 겉보기만 비슷하지 실질적으로 따지고 들면 같은 무공이라기에는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고, 그렇게 나쁜 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무공이라는 것은 스스로에게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니까. 

   

    더욱이 대략적인 내공의 흐름과 겉으로 보이는 심상을 따오는 것만으로도 무공 증진에 큰 도움이 되기에, 그 무공을 쓰건 말건 결과적으로는 무조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알려주는 경우는 또 다르다.

   

    아예 창시자의 의도를 대놓고 알 수 있는 기회. 자신이 빈자리를 마음껏 채워넣은 무공과는 달리,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무공을 알 수 있는 기회다.

   

    “혹시나 해서 묻겠소만, 은인께서는 신공을 익히셨소?”

    “어…, 왜요?”

    “보통 그 정도 되는 심법은 색이 짙어 다른 무공과 잘 어우러지지 못하기 때문이오.”

    “아, 그런 거면 상관 없어요.”

   

    내가 누구?

   

    MUGONG 고수 이서준. 황운신공으로도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펼칠 수 있는 남자.

   

    물론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되겠지 뭐.

   

    “그렇다면 좋소. 이 왕대산, 최선을 다해보리다.”

   

   

    *

   

   

    둘은 춘 노파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람이 없는 뒷마당을 수련장으로 삼았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가 지났을까?

   

    왕대산은 허공에 나뭇가지를 휙휙 휘두르는 서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는 제자를 가르쳐본 경험이 꽤 있었다.

   

    소령이의 호위인 장유호 역시 일류에 오르는 데 그의 도움이 있었으니, 그는 스스로 누군가를 가르치는 데 꽤 재능이 있다 자부할 수 있었다.

   

    ‘근데 이 정도는 아닌데….’

   

    왕대산이 멍한 표정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본래 은인인 그에게 가르쳐주려 했던 것은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왕씨도법이었다.

   

    심법의 경우 이미 익히고 있는 심법이 있으니 가르쳐줘봤자 의미가 없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은인의 자질은 그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도법을 얼추 알려주긴 했는데, 왜 그의 내공에서 자신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는 거 맞죠?”

    “어…, 그렇소.”

    “흠.”

   

    은인은 잠시 턱을 짚고 고민하더니 손을 내밀었다.

   

    “잠깐 그거 좀 빌려도 돼요?”

    “도 말이오? 물론이오.”

   

    도를 건네자 은인이 곧바로 그 위로 도기를 씌웠다.

   

    “허….”

   

    도기와 검기는 비슷한 듯 다르다. 도와 검이 비슷한 듯 다른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 만큼 아무리 검기를 쓸 수 있다 해도 안정된 도기를 내뿜으려면 조금 시간이 걸리는 법인데….

   

    “아, 좀 알겠다.”

   

    뭐를 또? 왕대산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진 순간, 서준의 도가 움직였다.

   

    쐐액-!

   

    바람을 가르는 도가 매섭다. 

   

    검과 달리 베는 데 특화된 도의 움직임이었다. 묘하게 이질감이 있던 그의 도법이 이 순간 제자리를 찾았다.

   

    “으, 은인…? 지금 뭐였소…?”

    “도기를 써보니까 좀 알겠더라고요. 신도합일身刀合一이라 해야 되나.”

    “아, 아니…. 그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닌데….”

   

    깨달음을 얻어 신도합일을 이루는 거지 신도합일을 이뤄 도법을 깨닫는 게 아니다.

   

    이건 물을 마셔서 갈증이 해소되는 것을, 어떻게든 갈증을 해소했으니 물을 마신 셈이라는 것과 같은 소리였다.

   

    얼핏 들으면 말이 되는 소리같지만 그러면 도대체 갈증을 어떻게 해소했단 말인가.

   

    침을 삼켜서? 그러면 일 주 간 침만 삼켜도 목이 안 마르다고?

   

    그렇다. 지금 왕대산은 그와 같은 기적을 코앞에서 목도했다.

   

    터무니없는 소리가 눈앞에서 증명되어버리니 왕대산은 스스로 납득하기 시작했다.

   

    “대단하오 은인…! 은인은 하늘이 내린 천재임이 틀림없소!”

    “아유, 뭘 또 그렇게까지야.”

    “아니! 이 왕대산이 장담하오! 은인은 멀지 않은 미래에 그 위명을 떨칠 것이오! 이 중원 전체에!”

   

    흥분한 왕대산은 이상한 생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그냥 심법도 가르쳐줘도 될 것 같은데? 이 정도 천재면 알아서 잘 쓰지 않을까? 오히려 지금이 제일 저점일 것 같은데, 가르쳐주면 나중에 왕씨가문에 홍복이 되지 않을까?

   

    “은인! 이것도 한 번 배워보시겠소?”

   

    왕대산의 밑천이 전부 털리기 두 시진 전의 이야기였다.

   

   

    *

   

   

    “오, 나름 괜찮은데? 그렇죠 아재?”

    “대단…, 하구려.”

   

    짝짝…, 텅 빈 박수소리가 뒷마당에 울려퍼졌다.

   

    자신의 모든 것을 가르치는 데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왕대산의 몰골이 초췌해졌다.

   

    서준은 그러건 말건 새로운 배움을 얻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 차분히 왕씨도법을 되돌아보며 혼원신공에 녹여내면 꽤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아, 이제 슬슬 가봐야겠네. 더 방치하면 춘봉이가 진짜 삐질 것 같아서. 그럼 가볼게요?”

    “…음. 그러시오.”

   

    서준은 손을 흔들며 뒷마당을 떠났다.

   

    어젯밤 묵었던 방에 도착해 슬쩍 고개를 내밀자 바닥에 웅크려 자고 있는 춘봉이의 모습이 보인다.

   

    ‘잘 자네.’

   

    새근새근 숨소리 사이로 작게 도로롱 코 고는 소리까지 들리는 걸로 봐서 딥슬립이다.

   

    조용히 방을 빠져나온 서준은 마당에 멍하니 섰다.

   

    다음 목적지인 화산파까지는 남은 거리가 꽤 있다. 하지만 매월에게 들은 바, 비무 대회까지는 아직 시간이 상당히 많이 남은지라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러면 이제 또 고민해봐야 한다.

   

    성이향은 둘째 치고 다른 여인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시 각자 살던 마을로 돌아가려나?

   

    짧은 고민 끝에 그냥 물어보기로 결정한 서준이 걸음을 옮겼다.

   

    툭툭, 질긴 종이로 된 문창을 두드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이내 발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아, 은인!”

   

    산채에서 처음 만났을 적 가장 먼저 말을 꺼냈던 여인이다.

   

    “오, 표정이 좀 좋아보이네요.”

    “후후, 아무래도 그렇죠. 그 지옥 같았던 곳에서 벗어났으니까요.”

   

    다른 여인들의 표정은 이 여인처럼 밝지만은 않았다.

   

    그런 경험을 한 뒤에 곧바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오히려 이 여인의 정신력이 특출나다 볼 수 있었다.

   

    “혹시 이 뒤에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다들 살던 곳으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아무래도 그럴 것 같아요. 애초에 여기서 먼 곳도 아니다 보니 힘든 일도 아니고요.”

    “아하.”

   

    그러면 이건 됐고.

   

    “혹시 안에 성이향 씨 있어요?”

    “네. 불러드릴까요?”

    “그러면 고맙죠.”

    “잠시만요.”

   

    여인이 잠시 사라졌다 성이향을 데리고 나왔다.

   

    “혹시 쉬는데 귀찮게 한 거 아니죠?”

    “아녜요. 무슨 일이신가요?”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네.”

   

    그녀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왔다.

   

    서준은 잠시 뜸을 들이다, 그녀가 그를 빤히 쳐다볼 때쯤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사람 좋아하죠?”

    “예, 예…?”

    “척 보면 척이죠. 그쪽도 마음 있는 것 같던데.”

   

    느닷없는 연애 컨설팅에 성이향이 잘게 눈을 떨었다.

   

    “가, 갑자기 그 얘기는 왜….”

    “왜긴요. 아까 말했잖아요.”

   

    차마 짝짓기 대작전이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병신 같은 작전명이라는 건 알았기에. 일단 입 밖에 낼 만한 작전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아저씨에게 폐만 끼칠 뿐이에요….”

    “왜요? 그 사람 결혼했어요?”

    “네….”

    “네?”

   

    진짜로? 그럼 아까 그 기류는 뭐였는데?

   

    서준이 당황하자 성이향이 우물쭈물 입을 열었다.

   

    “부인 분이 돌아가신 지 조금 되긴 했어요….”

    “아, 그렇죠? 깜짝이야.”

   

    사랑과 전쟁 한 편 찍는 줄 알았네.

   

    아니지. 이쪽에서는 축첩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려나?

   

    아무튼 그래도 부인이 없다니 마음이 놓이는 건 사실이었다.

   

    “자자, 따라와봐요. 이런 건 원래 생각났을 때 바로 해야 돼.”

    “예에…!?”

    “빨리요.”

   

    서준이 성이향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 어머어머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 것 같긴 한데 신경 쓰지 않았다.

   

   

    *

   

   

    “어디예요?”

    “저쪽이요….”

   

    성이향도 아주 싫지는 않은지 별다른 저항 없이 사내의 집으로 안내했다.

   

    그렇게 도착한 집 앞.

   

    잠시 고민하던 서준이 거칠게 문을 두드렸다.

   

    “어이! 당장 튀어나와!”

    “가, 갑자기 무슨…!”

   

    당황한 성이향. 마찬가지로 당황한 듯 집 안에서 사내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나왔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한 판 뜨자.”

    “예…?”

   

    갑작스러운 개소리에 사내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악! 피 가너무좋아 해병님! 마 한 판 뜨입시더!”

    “아니 무슨…!”

   

    사내가 당황해 입을 쩍 벌렸다. 

   

    서준은 성이향의 어깨를 감싸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갑작스러운 일에 성이향이 몸을 움츠린다. 아주 만족스러운 반응이다.

   

    “흐흐, 먹음직스러운 계집이야. 안 그래?”

   

    예상치 못한 게 하나 있다면 자신이 연기를 좆도 못 한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깨달은 것이다.

   

    ‘…좆됐나?’

   

    슬쩍 사내의 표정을 살피니 그런 것 같진 않았다.

   

    잔뜩 분노한 사내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고 달려들었다.

   

    “이 천인공노할 놈이…!”

   

    누가 봐도 무공 한 번 배운 적 없는 솜씨로 주먹을 휘두르는데, 솔직히 맞아주는 게 더 힘들었다.

   

    “으. 아. 악.”

   

    뒤로 부웅 날아간 서준이 땅을 뒹굴었다.

   

    “허억…! 허억…!”

   

    숨을 몰아쉬던 사내가 허겁지겁 성이향에게 달려가 그녀를 붙잡고 물었다.

   

    “괘, 괜찮으냐 향아!”

    “네….”

    “저 놈이 이상한 짓은 안 했고!?”

    “네에….”

   

    서준은 찔끔 실눈을 뜨고 두 남녀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판을 깔아줬는데 받아먹지 않는 것도 실례라 생각한 걸까?

   

    잘근잘근 입술을 짓씹던 성이향이 사내에게 와락 안겨들었다.

   

    “햐, 향아?”

    “아저씨….”

    “…그래.”

    “제가 더럽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녀의 말에 사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향아! 그런 생각 따위 해본 적도 없다!”

    “그럼 저랑 결혼도 하실 수 있겠어요?”

    “무, 뭐…?”

   

    그 반응에 픽-, 성이향이 기운 없이 눈을 옆으로 내리깔며 냉소했다.

   

    “거봐요. 저 같은 더러운 여자를 원할 사내 따위 없을 게 분명해요.”

    “그런 게 아니다! 그저…, 우리는 나이 차이가….”

    “핑계예요. 판 씨네 아주머니만 해도 남편분과 나이 차이가 그렇게 나는데.”

    “그건….”

    “됐어요. 아버지 말이 옳았어요. 그냥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어야 됐는데.”

    “향아…!”

   

    버럭 소리친 사내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고개를 내밀어 입술을 부딪혔다.

   

    “흡…!?”

   

    놀란 성이향의 두 눈이 부릅 떠졌다.

   

    거기까지 확인한 서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효! 브라보! 봤죠!? 이렇다니까? 내가 또 연애는 박사예요!”

   

    놀란 두 남녀가 화들짝 놀라 후다닥 떨어졌다.

   

    사내가 어버버거리며 손가락으로 서준을 가리켰다.

   

    “이, 이, 이게 무슨…?”

    “네. 결혼 축하드리고요. 행복한 결혼 생활 되길 바라겠습니다.”

    “예, 예에…?”

   

    짝짓기 대작전! 대성공-!

   

    …이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세상사가 다 그렇듯 훼방이 들어왔다.

   

    “잠시만! 이럴 수는 없는 법입니다!”

   

    옆집에서 성 씨가 튀어나와 소리쳤다.

   

    “혼인 같은 인륜지대사를 부모의 허락도 없이 결정한다니요! 아무리 당신이 힘이 세다지만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이 새끼 옆집이었나? 마침 잘됐다.

   

    서준이 활짝 웃으며 검을 뽑아들었다.

   

    “자자! 그러면 결혼도 했겠다! 이제 커팅식이 있겠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짝짓기 고수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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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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