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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오셨습니까, 리시트 공자님.”

         

         

       내가 마차에서 내리면서 주변을 훑어보고 있던 때.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한 중년의 여성이 다소곳한 자세로 예를 취하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벨라.”

         

       “예, 리시트 공자님. 공자님께서 황궁에 머무시는 동안, 제가 공자님의 안내원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황실 수석 시녀, 벨라.

         

       예전에 라이덴이 황궁을 제 집처럼 드나들던 시절, 여러번 마주쳤던 사람이다.

         

       루시와의 일이 있고 난 뒤에는 한 번도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지.

         

         

       “그럼,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할게요.”

         

       “이쪽으로.”

         

         

       기계적인 말투로 앞장을 서는 벨라.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정원을 시작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궁의 내부.

         

       백색의 바닥과 벽들에는 붉은색과 황금색 실선들이 얽히며 거대한 황가의 문양을 그려내고 있었다.

         

       나는 천장에 달려있는 찬란한 샹들리에들을 보며 순간 넋을 놓았다.

         

         

       ‘멋지다…’

         

         

       라이덴의 기억을 이어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직접 눈으로 보는 판타지 세계의 궁은 전율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내가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자, 별안간 벨라가 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폐하를 알현하기 전, 일단 씻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네? 갑자기 씻다니, 왜… 아.”

         

         

       나는 벨라의 말에 그제서야 내 차림이 어떤 꼴인지 자각했다.

         

       마차에서 숙면을 취한 탓에 눌려있는 머리.

         

       도적들을 상대하느라 피가 튀어있는 옷.

         

       희미하게 풍기는 형향까지.

         

         

       확실히, 이 상태로 알현실에 들어가는 건 좀 무리가 있어보였다.

         

       아무리 황제가 나를 총애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할게요.”

         

       “예, 그럼 이쪽으로.”

         

         

       나는 벨라와 함께 내가 묵을 방을 향해 움직였다.

         

         

         

       ***

         

         

       한편, 라이덴이 벨라의 도움을 받아 몸을 단장하고 있는 사이.

         

       알현실에서는 은밀한 대화가 오가는 중이었다.

         

         

       “호오, 그렇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폐하.”

         

         

       밀담의 발화자는 두 명의 남자.

         

       한 명은 제국의 황제, 밀리엄 폰 리에트로였고.

         

       다른 한 명은 방금까지 라이덴이 탄 마차를 운전하던 마부였다.

         

       정중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던 마부는, 차근차근 보고를 이어나갔다.

         

       보고의 내용은, 그가 하루 동안 라이덴을 관찰하며 알아낸 점과 느낀 점들이었다.

         

         

       “그래서 그때, 리시트 공자가……”

         

       “흐음.”

         

         

       밀리엄의 마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흥미롭다는 듯이 턱을 쓸었다.

         

       평소, 자신의 자식들이나 일거리가 아니면 흥미를 표하는 일이 많지 않은 그였으나.

         

       마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그런 밀리엄조차 호기심을 돋구게 하는 것이었다.

         

         

       “스물 정도 되는 도적을… 홀로 정리했다라.”

         

       “정확히는 스물 두 명의 도적을, 5분 38초만에 도륙냈습니다.”

         

         

       황제의 혼잣말에 담백하게 첨언하는 마부.

         

       밀리엄은 그런 마부의 대답을 곱씹으며 수염을 쓸어내렸다.

         

         

       “분명 반 년 전까지만 해도, 리시트 공자에게 무력에 대한 재능은 없었던 것 같은데…”

         

       “예, 제 기억으로도 그렇습니다.”

         

       “흐음……”

         

         

       생각에 잠기는 듯, 가만히 입을 다무는 밀리엄.

         

       그는 습관처럼 손으로 팔걸이를 톡톡 두드리더니, 이내 마부를 향해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오스틴 경이 보기에는 어떠한가?”

         

       “리시트 공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밀리엄은 마부의 되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스틴 경이라고 불린, 희끗한 머리칼의 노마부는 거침없이 라이덴에 대한 평가를 읊었다.

         

         

       “뛰어납니다.”

         

       “호오, 그런가?”

         

       “조금 더 무르익으면 황실 기사단을 권해볼 생각입니다.”

         

       “그 정도란 말인가?”

         

         

       밀리엄의 푸른색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오스틴의 입에서 이 정도의 호평이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스틴 경이 누구인가.

         

       제국 최고의 천재들만이 모인 황실 기사단의 기사단장으로.

         

       차갑기 그지 없는 성격 탓에 ‘칼바람’ 이라는 이명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평소 단원들에게도 좋은 소리 한 마디 해주지 않던 그가.

         

       리시트 공자에게는 전례 없는 호평을 내린 것이었다.

         

         

       “이것 참 놀랍군, 그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

         

       “뭔가 더 인상 깊었던 점은 없는가?”

         

       “예, 폐하. 확실한 것은 아니나… 리시트 공자는, 모든 상황이 폐하의 시험이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본 듯 했습니다.”

         

       “끌끌… 그 부분은 나도 예상하고 있었네. 본래 총명한 아이였으니, 눈치 정도는 챘겠지.”

         

         

       황제는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리며 눈을 빛냈다.

         

       그의 입꼬리는 어느새 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자네의 말을 들으니, 리시트 공자는 만나는 것이 더 기대되는군.”

         

       “공자는 현재 몸단장 중에 있다고 합니다.”

         

       “흠, 그럼… 이쪽도 준비를 해야겠지.”

         

         

       밀리엄은 고개를 돌려 대기하고 있던 하녀들에게 소리쳤다.

         

         

       “여봐라. 곧 공자를 맞이할테네, 황태자와 황녀들을 불러오라.”

         

       “예, 폐하.”

         

         

       명에 따라 걸음을 움직이는 하녀들.

         

       밀리엄은 그런 뒷모습들을 눈에 담으며 홀로 중얼거렸다.

         

         

       “꽤나 오랜만에 보겠군, 리시트 공자……”

         

         

       밀리엄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턱을 쓸어내렸다.

         

         

         

       ***

         

         

       “후우… 이제 좀 낫네.”

         

         

       방에서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나는.

         

       또 다시 벨라의 안내를 받으며 알현실로 향했다.

         

       몸에 진득하게 배어있던 피냄새가 가시니, 이제야 숨이 트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정장의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걸음을 옮겼다.

         

         

       “……젠장, 역시 레이첼을 데려와야 했어.”

         

         

       요놈의 넥타이는 매기가 참 어렵다.

         

       분명 레이첼이 알려준 방법 그대로 했는데.

         

       꼭 다 매고 나면 이상하게 한 두 군데가 삐뚤빼뚤하단 말이지.

         

       레이첼은 이걸 어떻게 그렇게 깔끔하게 매는 거야?

         

       이게 전속 하녀의 힘인가…?

         

         

       나는 어설프게 매인 넥타이를 여러번 풀었다 매었다 반복하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내가 넥타이와 씨름을 하고 있자.

         

       앞서 걷고 있던 벨라가 이쪽을 돌아봤다.

         

         

       “넥타이가 불편하시다면, 제가 고쳐 매드릴 수 있습니다.”

         

       “아… 음, 아닙니다. 스스로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편하신 대로.”

         

       “말씀은 감사드립니다.”

         

         

       나는 벨라의 물음에 고개를 젓고는, 넥타이와의 혈투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18살이나 쳐먹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 넥타이 좀 매달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

         

       거기에다가……

         

         

       -도, 도련님만 괜찮으시다면……

         

       -열심히 할게요… 넥타이 매기.

         

         

       내 넥타이에는, 이미 담당이 있으니까.

         

       나는 덤덤히 생각하며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르게 뺨이 달아오르는 듯 했지만, 기분 탓이겠지.

         

       그렇게 애꿏은 넥타이만을 만지작거리며 걷고 있으면.

         

       나를 이끌던 벨라의 걸음이 어떤 거대한 문 앞에서 멈췄다.

         

       알현실에 도착한 것이었다.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나는 꼼지락거리던 손을 그만두고는, 허리를 피며 자세에 각을 세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문지기들은 천천히 닫혀있던 벽을 밀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묵직한 소음과 함께 열리기 시작하는 문.

         

       점점 벌어지는 틈 사이로, 휘황찬란한 알현실의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금빛이 맴도는 기둥들과 바닥에 길게 깔려있는 붉은색 카펫.

         

       그 길이 끝나는 곳에는 높은 계단이 놓여져 있었고, 위로는 하나의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후우……”

         

         

       나는 숨을 한 번 깊게 내쉬고는 알현실의 내부로 발을 내딛었다.

         

       신발 너머로도 느껴지는 푹신한 카펫의 질감이, 내 긴장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나는 계단의 앞에 멈춰선 뒤, 황좌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취했다.

         

         

       “리시트 가문의 장남, 라이덴 리시트가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내 말에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인물이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라.”

         

         

       귓가에 울리는 부드러운 음색의 목소리.

         

       나는 고개를 들어 머리 위로 떠있는 태양을 바라봤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군, 리시트 공자.”

         

         

       여름의 햇살로 색을 입힌 듯한 백금색의 머리칼.

         

       바다의 푸름을 담고 있는 눈동자.

         

       단정하게 자라있는 수염과 주변을 휘어잡는 카리스마.

         

       제국의 황제, 밀리엄 폰 리에트로였다.

         

         

       “한 달 전 즈음에 돌아왔다는 소식은 들었네만… 이렇게 직접 대면하는 것은 거의 1년만이로군.”

         

       “곧바로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면목이 없습니다. 불충을 벌하여 주소서.”

         

       “끌끌… 탓하려는 것은 아니네. 그저 반가움을 표하는 것이지.”

         

         

       밀리엄은 다시 고개를 숙이려는 나를 멈춰세우고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 그대가 제국의 별을 구해주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네. 이 공을 어떻게 치하해야 할지 모르겠군.”

         

       “신하로서의 도리를 다했을 뿐입니다.”

         

       “흐음…”

         

         

       나는 그리 말하며 허리를 굽혔고.

         

       밀리엄은 그런 나의 모습이 만족스러운지 작은 비음을 흘렸다.

         

         

       “아직 아이들이 자리에 없으니… 상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지.”

         

       “태자께서는 원래 궁에 상주하신다고 해도… 황녀들께서도 이곳에 계십니까?”

         

         

       걔네들은 왜 여기 있냐.

         

       분명 그제까지만 해도 아카데미에서 마주쳤었는데.

         

         

       “당연히, 사건이 정리된 직후 데려왔다네. 두 사람 모두 어제 도착했지.”

         

         

       하긴… 아카데미가 뚫린 상황에서 황족을 가만히 놔둘리가 없나.

         

       적어도 학원의 체계가 재정비 되기 전까지는 황실에서 보호해야겠지.

         

         

       “아이들이 내려오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네만… 그 사이에 습격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겠나?”

         

       “예, 폐하.”

         

         

       나는 담담하게 그 날 있었던 일들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

         

         

       알현실의 반대편에 위치한 ‘별들의 궁’.

         

       대게 황태자를 제외한 나머지 자제들이 휴식을 취하는 장소였다.

         

         

       오랜만에 그곳으로 돌아온 루시는, 멍하니 소파에 앉은 채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밀리엄의 부름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네? 폐하께서 저희를 부르신다고요?”

         

       “예, 저하.”

         

       “무슨 일이시지…?”

         

         

       루시가 몸을 일으키며 그리 중얼거리자.

         

       그녀의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시녀가 대답했다.

         

         

       “제가 듣기로는, 리시트 공자가 궁을 방문한 것 같습니다.”

         

       “네…? 라이덴이요…?”

         

         

       루시는 그 말에 살짝 굳어들며 시녀를 돌아봤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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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d by a Bastard Aristocrat DKPBA 망나니 귀족에 빙의한 우울증 검도 선수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Mom.

This time I will be truly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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