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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35 – 재단의 대리인>

     

    조나는 대견함을 느꼈다.

     

    ‘예상보다 훨씬 더 잘해주었군요. 아가씨.’

     

    솔직히 이 정도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기대를 넘어서 실망까지 했다.

    처음에는 보스의 사람 보는 눈도 언제나 성공하는 건 아니구나, 하는 불경한 마음을 품었다.

    다양한 정신병에 허리춤에나 겨우 닿는 작은 키. 얼굴은 나름 미래가 기대되지만 이런 여자애가 뭘 할 수 있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시킬 작정이신가.

    그런 비정한 상상마저 떠올렸는데.

     

    -훈련이요? 좋아요!

     

    그녀에게 품은 불만과 걱정을 오크노디는 자신의 실력으로 모두 극복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거리의 부랑자 생활로 생긴 좋지 못한 습관들을 떨쳐내지도 못했으면서.

    그런데도 꿋꿋이 노력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의 소중함을 알았다.

    그리고 감사해하였다.

    기회를 준 보스와 그에게.

    보스를 파파라 부르며 의지하고, 자신을 보호자로 의지하며 종종 다리를 안으려 들었다.

     

    ‘아가씨를 보면 자꾸만 날다람쥐가 떠오릅니다.’

     

    툭하면 숨고 어딘가에서 사람을 관찰하지만,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와다다 달려와서 안겨든다.

    내밀어진 손도 뿌리치고 스스로를 내팽개치는 수많은 멍청한 예비 장학생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하급반에서도 간신히 합격한 말단 장학생들과도 급이 달랐다.

     

    ‘그래서 더 걱정이 들죠.’

     

    어미처럼 따르는 주인에게는 귀여운 날다람쥐.

    험악한 야생에 나가는 순간, 날다람쥐는 자유를 잃는다.

    범호나 다름없는 고양이부터 온갖 새들까지.

    날다람쥐를 잡아먹을 천적은 많다.

    오크노디도 다르지 않다.

    재단에 속한 보통의 장학생들보다는 강해도 결국 그녀에게는 꼬리표가 따라붙을 것이다.

    세상은 와이히엠하이 재단을 경계한다.

    재단이 세상을 증오하는 만큼.

    어린 아이에게는 무거운 짐이 될 것이다.

     

    “잠시 아가씨와 대화를 나누어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죠.”

     

    미네르바의 허락으로 그룹배정을 유예 받았다.

    천금과도 같은 귀중한 시간.

    조나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잘 들으십시오, 아가씨. 저는 와이히엠하이 재단에 거두어진 장학생 출신입니다.”

    “와 정말요?”

    “뭘 안다고 그런 반응을 보이시는 겁니까.”

    “놀라길 바라는 것 같아서요.”

    “진지하게 들어주십시오. 아가씨는 지금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지을 중대한 기로에 서계십니다.”

    “??”

    “재단은 아가씨에게 집사와 메이드, 훈련시설과 넉넉한 자금까지 지원해드렸습니다. 이는 아가씨를 향한 순수한 호의가 아닙니다.”

    “그럼요?”

    “대가를 요구할 겁니다. 언젠가 아가씨가 더 이상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다고 생각될 때. 재단이 정한 자리에서 아가씨의 헌신을 요구할 겁니다.”

    “헤에. 그렇구나.”

     

    티 없이 해맑은 표정.

    역시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재단의 신원보증을 거절한다면 아가씨는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습니다.”

    “제가요? 보증을 서주는 호구를 거절해요?”

    “그래도 진지하게 고민해주십시오. 큰 비용을 갚아야 하지만 아카데미에 좋은 성적으로 입학한 아가씨에게 아카데미에서 호의를 보였습니다.”

     

    미네르바 시험관.

    그가 자신이 신원보증인으로 찾아왔을 때, 자신에게 건네주었던 문서였다.

     

    *아카데미의 아이에 대한 계약서Child to Academy Agreement

    -오크노디 응시생이 와이히엠하이 재단에 진 모든 빚을 기프트 아카데미가 대납한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은 오크노디 응시생에게 어떤 종류의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다.

    -만일 기프트 아카데미의 심사관이 와이히엠하이 재단이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판단할 시, 재단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강제할 수 있다.

     

    오크노디 아가씨가 이 문서에 사인만 한다면 그녀는 재단의 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카데미 측에서 모든 비용과 수속을 해결하고 아가씨에게 새로운 신분을 만들어드릴 겁니다.”

    “조나……?”

    “이 펜을 들고 사인만 하면 됩니다.”

     

    묻지 마십시오.

    제발 아무것도 묻지 말고 펜을 받으십시오.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럼 조나는 어떻게 되는 건데요?”

     

    …역시, 신 따위는 믿을만한 것이 못됐다.

    신은 약자의 기도 따위, 들어주지 않는다.

     

    “재단의 소속원인 제가 아가씨와 접촉하는 일 또한 영향력의 행사에 포함됩니다. 그러니 아가씨와는 작별인사를 하게 될 겁니다. 영원히.”

    “그럼 싫어요! 제가 집사를 버린다니,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아가씨에게 선택받았기 때문일까?

    그도 아니면 그녀도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서?

    아가씨의 인생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향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가슴 속 깊이 충족감이 차올랐다.

     

    “누군가가 아가씨의 인생을 결정짓는 절망을 아가씨는 아직 모르십니다. 무언가를 좋아해도, 누군가를 좋아해도, 그 마음을 접어야만 합니다.”

    “그치만 계속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되는 거잖아요?”

    “…아가씨는 다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괜찮아요. 저는 플레이어니까.”

    “플레이어……?”

    “저는 파파의 딸이잖아요. 저를 돕는 재단도 결국 파파의 재단이죠?”

    “…그렇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럼 괜찮네요.”

     

    그리 깊은 고민으로 내린 결정도 아니다.

    성장기의 아이나 품을법한 치기어린 생각이다.

     

    “자식이 파파를 돕는 건 당연하잖아요? 가업을 잇는 건 진부하기는 해도 평생 그 일만 하라는 것만 아니라면 까짓것 도와줄 수도 있죠.”

     

    자신은 특별하다고. 스스로를 남보다 대단한 존재로 높여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파파와 재단이 무얼 원하는지는 몰라도 저는 강해요. 그리 간단히 제게 무언가를 요구하기는 힘들 거예요. 저는 계속 강해질 거니까!”

    “…그러십니까. 역시 아가씨는 강하시군요.”

     

    그래서 더 지켜주고 싶었다.

    지키기 위해 내보내려고 했다.

    아카데미 측의 억지를 못이기는 척 허용하였다.

    재단의 품 밖으로 나갈 기회를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날아오르지 않는다면.

    문이 열린 새장 밖으로 떠나길 거절한다면 이제는 그가 그녀를 지키는 수밖에 없다.

     

    “그럼 아가씨는 오늘부로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장학생으로 기프트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십니다. 신원보증은 재단의 대리파견인인 저, 조나 와이히엠하이가 맡게 됩니다. 이 점에 동의하십니까?”

    “물론 동의하죠! 집사는 내 편이잖아요?”

     

    오크노디 아가씨가 옷 안에 꽁꽁 감춰두었던 목걸이를 꺼냈다.

    목걸이에 달린 것은 곤란할 때에는 부르라며 건네주었던 호루라기.

    지금껏 그녀가 부른 적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런데도 소중히 간직해온 티가 묻어났다.

    몇 번을 만지작거렸던 걸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품에 지녔던 걸까.

    여관에서 주었던 호루라기를 자랑스레 들어 올리는 눈에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신뢰가 함께 했다.

     

    “집사가 하자는 일이 잘못될 리가 없어요. 집사는 언제나 옳은 조언만 하는걸요. 너무 건강에 좋은 음식만 먹이고 잔소리가 심한 건 싫지만.”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그럼 지루한 일은 이걸로 끝이죠?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엄청 많아요. 지젤아저씨랑 손오천 아저씨랑 같이 입학시험에서……”

     

    이제 그녀는 재단의 것이다.

    저 웃음도 언젠가는 그녀의 것이 아닌 조직의 것이 될지도 모른다.

    보스의 뜻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렇기에 더욱 높은 확률로 오크노디의 꿈 또한 꺾일 것이다.

    알고 있는데도.

    그 모든 미래를 알고 있는데도 조나 와이히엠하이라는 인간은 그저 아가씨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조용히 곁을 지킬 뿐이다.

     

    -역시 지난 번 ‘아가씨’의 처분 관련으로 문제를 일으켰다는 소문이……

    -거기까지.

     

    지휘계통이 다른 암살자인 리프조차도 알 정도로 큰 사건을 일으켰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면 이번에야말로 그는 조직에 처분당할 것이다.

     

    ‘저는 아가씨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조직과 아가씨가 갈라서면 당신의 적이 될 인간이란 말입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이렇게까지 온 마음을 다해서 자신을 믿어준단 말인가.

     

    -그렇군요. 당신에게는 ‘다음 아가씨’가 있겠죠.

    -저는 몇 번째였나요?

    -제가 당신의 마지막 아가씨가 될 수 있을까요?

     

    떠올리지 마라.

    잡아먹히지 마라.

    재단의 대리인, 아가씨의 집사에게 흐트러짐은 허락되지 않는다.

    발치에 밟히는 끈끈한 피의 느낌.

    손끝으로 전해지는 살을 가르는 감각.

    심장이 차갑게 식는 광경을 떠올려라.

     

    “…그래서 있죠?”

    “아가씨. 이야기는 다음에 마저 듣겠습니다. 제게 주어진 면회시간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에에. 벌써 가요?”

    “곧 다시 만나 뵐 수 있을 겁니다.”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

    이야기를 끝마치고 돌아오자 미네르바가 물었다.

     

    “계약의 건은?”

    “거절하셨습니다. 아가씨는 오늘부로 재단의 장학생입니다.”

    “그런가. 피차 아쉽게 되었군요. 보호자씨.”

    “그럼 아가씨는 A그룹으로 배정되는 것으로 알아두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럼 이만.”

     

    상담실에서 나오는 길.

    오크노디가 물었다.

     

    “다음엔 또 언제 봐요?”

    “아카데미 입학생의 보증인이나 보증기관의 대리인은 한달에 한 번, 지정된 날에만 아카데미에 방문할 수 있습니다. 때가 되거든 찾아뵙겠습니다.”

    “싫다……. 집사는 매일 옆에 두고 있어야하는데. 이런 건 이상해요.”

    “아카데미의 규정이라 어쩔 수 없습니다.”

    “현실성 패치 완전 싫어.”

     

    조나는 아가씨의 구겨진 옷 주름을 바로 펴며 당부의 말을 남겼다.

     

    “다른 이들의 앞에서는 그런 영문 모를 말은 삼가십시오. 신분이 높거나 격식을 따지는 동급생들이 우습게 여기거나 괴롭힐지도 모릅니다.”

    “걱정 말아요. 벌써 친구가 잔뜩 생겼거든요. 피렌체왕국의 아카디아 언니하고도 친해졌어요.”

     

    서부귀족연합의 홍일점.

    프라이드가 높고 계산적인 성격이라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인물인데도 벌써 사적인 친분을 쌓았나.

    놀람도 잠시.

    자신조차도 홀리듯이 마음을 내어준 아가씨의 친화력이라면 당연한 일임을 깨달았다.

    그래, 이번 아가씨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럼, 다음에 뵙는 날까지 부디 건강히 지내시길.”

    “조나도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씩씩한 오크노디양

    공모전 본선에 진출한 테디베어도 씩씩해진 거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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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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