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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똑똑똑.

     

     

    집무실을 울리는 노크소리.

     

    ‘국왕폐하. 겐드리입니다.’

     

    “들어와라.”

     

    렉스 드레이고는 서기관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렉스는 용인족 특유의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겐드리에게 묻는다.

     

    서기관 겐드리는 양손에 수북이 들려있는 서류들을 들어보이며 말했다.

     

     

    “…원조 요청입니다. 전서구가 하루가 멀다하고 들이닥치는 군요.”

     

    렉스는 이마를 짚으며 질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새치가 늘어나는 머리카락도 동시에 쓸어넘긴다.

     

    “…이번에는 또 어디서.”

     

     

    겐드리는 렉스의 책상으로 다가와 천천히 서류들을 내려놓았다.

     

    그러며 원조를 요청한 귀족가문들을 하나씩 나열했다.

     

    “…이번에는 타스 가문, 오토아 가문, 셀레브리엔 가문입니다.”

     

    “타스 가문은 저번에 군사를 파견하지 않았었나?”

     

    “또 마물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우두머리는 몇 마리지.”

     

    “한 마리라는-”

     

    -쾅!

     

    렉스는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외쳤다.

     

    “-한 마리면 스스로 토벌할 수 있잖아!”

     

    “…”

     

    침묵이 집무실에 흘렀다.

    렉스는 분노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이 리자드맨 새끼들이 왕가를 얼마나 무시하는 건지… 타스 가문에 경고해. 겨우 이딴 걸로 원조 요청을 하지 말라고.”

     

    “…그러죠.”

     

     

    렉스는 타스 가문의 편지를 들어올린 뒤, 입으로 불길을 뿜어 그것을 완전히 태워버렸다.

     

    그의 답답한 심정이 조금이나마 가라앉는 듯 했다.

     

     

    “…다음은?”

     

    “오토아는 꽤나 급박합니다. 그들도 여기저기 있는대로 용병단에게 의뢰를 수주하고 있지만…받아들이는 곳은 없는 듯 보이구요. 충분한 보상을 지급할 여건이 안되는 듯 합니다.”

     

    “오토아라. 어느 가문이었는지 가물가물한데…”

     

    “남부 스라드 강 옆에 사는 노움 가문입니다.”

     

    “아, 거기군. 그래서, 마물의 규모는.”

     

    “우두머리 2마리가 영지 근처에 돌아다니고 있다 합니다. 그마저도 제대로 확인하기가 힘들어 확실치 않구요.”

     

    렉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마리면 도와줄법도 했다. 그리 명망 높은 귀족가문이 아닌만큼 렉스도 고민이 깊어지긴 했어도.

     

    렉스는 마지막 가문에 대해 묻는다.

     

    “마지막, 셀레브리엔은?”

     

    셀레브리엔은 꽤나 놀랄법한 이름이었다. 오늘 원조를 요청한 가문들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기도 했다.

     

    “가장 심각합니다. 영지 전체가 마물들로 둘러싸였습니다. 인근 교역로도 다 마물의 서식지가 되어서…죽음을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렉스는 긴 한숨을 내뱉는다. 애초에 그는 엘프들에게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특히나 셀레브리엔 가문은 더더욱.

     

    장생종인만큼 고집이 질기고, 수명 짧은 타종족을 무시한다. 동시에 오랜 관습은 또 보물처럼 간직한다.

     

    그러니 렉스는 그런 엘프를 언제나 무시했다.

     

    스스로가 현명한 줄 아는 것들만큼 미련한 선택을 내리는 집단도 없으니까.

     

    “…미련한 엘프새끼들. 그러니까 그곳을 떠나라고 몇 번이나 조언했건만.”

     

    “…세계수를 버릴 수 없는 거겠죠.”

     

    국왕은 콧방귀를 뀌며 의자에 몸을 눕혔다.

     

    “세계수는 무슨. 그냥 의미부여한 큰 나무지. 자기 생명에 목을 매는 애들이 세계수만큼은 챙기는게 우습단 말이야. 그곳만 버렸어도 지금 우리에게 원조 요청도 안했을거 아니야.”

     

    서기관은 국왕의 날선 비아냥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가 화가 풀리도록 내버려두는게 훨씬 나은 선택이라는 걸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쩌실 생각이죠?”

     

    한숨 쉬는 국왕에게 겐드리가 묻자 국왕은 머리를 긁적이다 답했다.

     

    “…셀레브리엔은 버려. 오토아를 돕는다.”

     

    “셀레브리엔을 내버려둔다면 멸문할지도 모릅니다.”

     

    “구해줘봤자야. 어차피 세계수를 지킨다고 그 격전지를 떠나지도 않을텐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 똑같은 문제로 똑같이 힘겨워하겠지. 낭비하고 싶지 않다. 오토아를 돕는다.”

     

    “알겠습니다.”

     

    어느 가문이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셀레브리엔이지만… 렉스는 엘프를 위해 제 용인족 병사들을 희생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 엘프들은 도와줘봤자 고마움도 못느낄거야. 그렇게 현명하니 스스로 해결해보라지.”

     

    “…”

     

    “셀레브리엔 가문에게는 변명을 잘 포장해. 우리도 여건이 안된다는 말은 꼭 끼워넣어. 이미 돕기로 한 가문이 있다고.”

     

    “당연하죠.”

     

     

    선택이 끝나자 렉스는 다시금 힘겨운 한숨을 내뱉었다.

     

    렉스는 이 모든 선택이 옳은걸까, 최근 들어 다시 생각해보고 있었다.

     

    마왕, 또 마족과의 전쟁이 금방 끝날거라 시작한 원조였지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드레이고 가문에 가해지는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어쪄면 처음부터 선을 그어, 동맹가문만을 구하는게 옳았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태 걸어왔던 길이 너무도 멀어 돌아갈 순 없었다.

     

    이렇게 전쟁이 끝날때까지 원조는 이어나가야만 했다.

     

    애초에 마족과의 싸움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내키지는 않아도 이렇게 원조를 해야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왕가의 힘이 보다 강대할 것이다.

     

    …자신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런 지원은 어쩌면 필수적인 것이었다.

     

    마족이 이긴다면 달아나는건 국왕인 렉스 목이었으니.

     

     

    “…좀 쉬고 싶다. 나가봐.”

     

    렉스의 말에 겐드리가 몸을 돌렸다.

     

     

    문득 렉스의 머리를 한 가문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 겐드리?”

     

    “네, 폐하?”

     

    “…그래서 그 가문은 어떻게 됐지?”

     

    “어떤 가문을 말씀하시는지…”

     

    “이전에 돕지 못했던…블랙우드 말이다.”

     

     

    블랙우드가 한때 도움을 요청해왔지만, 렉스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3마리 이상의 우두머리를 상대하게 될거라 예상이 되었는데, 그건 렉스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것이었으니.

     

    토벌은 가능했지만, 그 힘을 다른 가문에게 나눠주는게 더 커다란 이득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심 마음에 걸리고는 있었다. 블랙우드는 건국때부터 존재했던 가문이었다.

     

     

    “무사하답니다.”

     

    겐드리가 답했다.

     

    “…그래?”

     

    렉스는 귀를 의심했다. 무사할 리가 없는 상황이었으니. 애초에 늑인족이 원조를 요청한 것부터가 그 사태의 심각성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떻게 무사하지?”

     

    “한 용병단이 끝내 의뢰를 받았다는군요. 해결도 했고요.”

     

    “허…보수는? 블랙우드가 용병단에게 제안할 수 있는게 뭐가 있다고…”

     

    “블랙우드의 막내딸이 인족 용병에게 팔려나갔답니다.”

     

    렉스는 턱을 쓸었다.

     

    “…그게 또 그렇게 됐구만.”

     

    “네.”

     

    “가만보자, 블랙우드 가문의 막내딸이라고 한다면…출생과 함께 실린 블랙우드의 목숨을 앗아간 그 아이겠군.”

     

    “네르 블랙우드입니다.”

     

    “블랙우드 입장에서도 남는 장사였구만. 미워하던 막내딸을 멸문할 운명과 교환하여 팔아버렸으니 말이야. 그나저나… 불쌍하긴 하네. 이종간 혼인에 인족에게 팔려갔다라…영애가 받아들이기 쉬운 현실은 아니겠어.”

     

    잠시 그 사실을 곱씹던 렉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근데 꽤나 눈치 빠른 녀석이 그 용병단을 운영하고 있구만.”

     

    “그러게나 말입니다.”

     

     

    렉스로서는 전쟁이 끝나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버린 용병단들을 처리할 계획을 짜고 있었다.

     

    하지만 블랙우드의 딸을 가져간 용병단은 아마도 그 화를 피하게 될 것이었다.

     

     

    렉스는 역시나 인족은 흥미로운 종족이라 생각했다.

     

    잔인하고, 미개하고, 문란하고, 명예를 모르지만, 가끔은 저토록 특이한 인재가 하나씩 출몰한다.

     

    진흙속의 진주가 하나씩 나타나는 거다.

     

    물론 그 용병단의 단장이 그런 인물이라 확신할 순 없어도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래. 가봐.”

     

    충분히 들은 렉스가 다시 겐드리를 물렸다.

     

    하지만 방금 전의 대화로 무언가 생각났는지 겐드리는 떠나지 않고 말했다.

     

    “…폐하?”

     

    “…?”

     

    “…방금 전 그 용병단과 관련하여 특이한 소문을 들어서 말입니다.”

     

    “말해봐.”

     

    “네르 블랙우드의 남편, 그러니까 그 용병단의 부단장 이야기입니다.”

     

    렉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머리에 달린 뿔을 살짝 긁적이며 물었다.

     

    “잠시, 부단장이 남편이라고? 단장이 아니라?”

     

    “네.”

     

    “그건 또 왜…어쨌든. 계속 이야기 해봐.”

     

    “네. 그 부단장과 관련한 이야긴데…토벌 기록이 200마리에 근접한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

     

    렉스는 잠시 굳어, 겐드리의 표정을 살폈다.

     

    그가 장난을 던진건지 의아했다.

     

    하지만 겐드리는 웃지 않으며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

     

    “…”

     

    한 동안 침묵이 집무실을 맴돈다.

     

    렉스가 끝내 말했다.

     

    “…인족의 말이지 않나. 난 믿지 않아.”

     

    “…”

     

    “누군들 다 기록을 올려 말할 수 있지. 200마리에 근접했다라, 하. 그 정도면 용사 다음으로 높은 토벌기록이 아닌가.”

     

    이것이 진실이라면, 수많은 가문들의 수많은 기사들, 수많은 귀족들, 수많은 병사들, 그리고 수많은 영웅들이 놀랄법한 말이었다.

     

    “게일님도 계시긴 합니다.”

     

    “아. 게일이 있군. 어찌됐건, 그런 기인이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다는게 말이 되질 않아.”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가봐, 그러니까.”

     

    “알겠습니다.”

     

     

    겐드리가 몸을 돌린다.

     

    렉스는 눈을 감으며 짜증을 냈다.

     

    스스로도 변화하는 감정을 통제할 수 없다.

     

    “하…”

     

    “…폐하?”

     

    “…그래서 이름은?”

     

    아무리 소문이라도, 함부로 무시하기는 힘든 토벌기록 수다.

     

    “예?”

     

    “그 인족 부단장. 이름이 뭐지. 아니, 용병단의 이름부터 말해.”

     

    겐드리는 그런 렉스 변덕에도 곧은 표정으로 답했다.

     

    “홍염단입니다. 단장은 아담이고, 그 부단장의 이름은 베르그라고 하더군요.”

     

    “…알았어. 가봐.”

     

     

    겐드리는 고개를 숙이고 마지막으로 몸을 돌렸다.

     

    그가 문을 닫으며 떠나자, 렉스는 기나긴 생각속에 잠긴다.

     

    200마리에 근접한 토벌 기록 수.

     

    렉스는 그걸 믿지 않았지만, 보이는 몇 증거들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든다.

     

    블랙우드를 우두머리에서 구해냈다. 꽤나 머리가 굴러가는 단장도 있는 용병단이다.

     

    그런 곳에서 그런 추한 거짓말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부단장이 있을까?

     

    외려 모든게 진실이라 믿는게 옳은게 아닐까?

     

    어쩌면 200마리의 토벌 기록이라는 것조차, 무언가를 노린 거짓말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예를 들면, 이렇게 왕가로 소문을 전달한다던지.

     

     

    렉스는 한숨을 내쉬며, 어찌됐든 새로 들은 정보들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며 중얼거렸다.

     

    “…힘들구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프리타타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ㅠㅠ 죄송합니다. 일이 있어 연재하지 못했습니다. 후원 감사합니다.

    긘가님! 23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ㅎㅎ 재밌게 보고 계신다니 감사드려요. 민폐가 될까 티는 못내지만, 저도 작가님 글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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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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