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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월요일이 시작된 지 4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황자는 평소보다 일찍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밖은 아직 캄캄해서 곳곳에 아크등이 켜진 재였다.

         

       클리온은 시종 하나 대동하지 않고 이른 시각에 몰래 황성을 빠져나왔다. 어차피 수도는 치안이 좋으니 자신이 이리 싸돌아다닌다고 해서 암살 위협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런 시각에 황자가 홀로 아카데미에 등교한 이유는 하나였다.

         

       ‘여기서 기다리면 오겠지.’

         

       이르카 엘리예프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운동하는 습관이 있다. 어째서인지 클리온은 그 정보를 알고 있었다.

         

       매일 동이 트기 전 새벽, 이 주변에서 기다리다 보면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깅하는 엘리예프의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시야가 탁 트이는 중앙광장의 벤치에 나앉은 클리온은 연신 하품을 해댔다. 간밤에 시녀 하나를 안았던 탓이다. 몸에 피로는 풀리지 않았건만, 그것이 황자의 집념까지 꺾지는 못했다.

         

       클리온은 참을성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 몸을 풀기 위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봄비가 내리려는지 땅이 눅눅하게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 땅을 몇 번 밟아보며 가볍게 발목을 돌리던 클리온은─.

         

       푹!

         

       “윽!”

         

       하복부에 무언가가 꽂히는 느낌이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맹장이 있는 곳. 그 부근에 작고 날카로운 침 하나가 박혀있었다. 쇠침의 두께는 엄지손가락만 했다.

         

       “이게… 무슨…….”

         

       머릿속이 흐릿해졌다가, 다시 맑아지기를 반복한다. 의식이 점멸했다. 마치 눈에 라이트 애로우를 맞아버린 것마냥 주변의 아크등이 흐리게 보였다.

         

       찔린 부위의 쇠침은 마소가 되어 흩어졌다. 덕분에 상처만 더 벌어졌고, 그 틈 사이로 선혈이 줄줄 새어나왔다.

         

       이거, 틀렸다.

         

       상당히 깊게 들어갔다. 창자가 짓눌려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흐려져가는 의식 속에서, 클리온은 바닥을 뚫고 나온 듯한 일자 형태의 틈이 있다는 걸 보았다.

         

       ‘이건….’

         

       생각은 거기서 끊어졌다.

         

       **

         

       개 같은 월요일이 시작됐다.

         

       사실 월요병이 있는 건 아니다. 여태까지 월화수목금금금의 일상을 보내왔기 때문에 그런 것쯤은 무리가 없었다. 중요한 건 하스펠트 교수와 제2황자의 면상을 동시에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욕지기가 치솟았다.

         

       나와 로테는 기숙사를 나와 교실로 향했다. 조례 때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야! 오늘도 안녕이야!”

         

       프레이가 들어오고.

         

       그 다음엔 버멜이나 군청색 머리칼의 인상 사나운 소녀를 포함한 반 친구들이 들이닥친다. 버멜과 눈을 마주쳐주면 위아래로 잠시 튀어오르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데, 이게 은근 재밌다.

         

       [1분 있으면 조례네요. 제2황자는 왜 안 오는 걸까요?]

         

       그러게. 일주일도 안 돼서 지각하다니, 근성이 글러먹었네.

         

       드르륵, 쾅!!

         

       “반갑다 제군들!!!!! 모두 힘세고 굳건한 아침─!!!!!!!”

       “노엘하임 선생님이 왜 지금 들어오세요…?”

       “음, 그 얘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갑작스런 등장에 나와 로테를 포함한 반 아이들의 표정이 멍청해졌다. 알렉스 선생님이 절도 있는 자세로 교탁 앞까지 오는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못하고 그를 멍하니 쳐다만 보았다.

         

       알렉스 선생님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전해들은 대로 클리온 황자가 안 보이는군!”

       “저기, 황자 전하에게 무슨 일 생기셨나요?”

       “흠,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들어라! 황자 전하께서는 오늘 아침에 중앙광장에서 쓰러져 계셨다.”

       “네?”

         

       우리의 표정이 2배로 멍청해졌다.

         

       아니, 나는 빼고. 지금 내 얼굴은 고상하고 차분한 금안족 소녀가 지닐 만한 것이 아니었다.

         

       [표정 관리 좀 하세요. 그 미모로 뭐 하시는 거예요?]

         

       “하복부에 날붙이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하더군. 누가 그랬는지는 이제 막 조사에 들어간 참이다!”

         

       쉽게 말해 배때지에 칼빵 맞고 정의구현 당했다는 소리다. 어딜 봐도 명백한 암살 시도였다.

         

       이 세계에도 닌자가 있나…?

         

       “그래서 담임인 하스펠트 선생님과 부담임인 헤를라인 선생님께서 황성에 가셨다. 더불어 이사장도 자리를 비우신 상태지. 그래서 오늘 조례는 내가 맡게 되었다!”

       “오.”

         

       웬 횡재냐. 소화제를 먹은 것마냥 위가 편해졌다. 지금 내 입꼬리는 귀에 걸린 상태였다.

         

       혹시라도 분위기 못 읽고 혼자 표정관리에 실패하면 안 되므로 최대한 슬픈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반 친구들은 무표정으로 응대하거나 히죽거리고 있었다.

         

       얘들도 나와 똑같구나. 와, 이게 공감대 형성인가? 나 지금 기분 업 됐어!

         

       “조례는 별다른 게 없다. 그보다도 1교시가 ‘마수의 이해’ 과목이로군. 좋다, 제군들! 곧바로 수업에 들어가도록 하지!!”

       “아.”

         

       기분 다운됐어.

         

       **

         

       황자가 아카데미에서 습격을 당했다는 건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였다.

         

       담임인 클라이스는 물론이고, 부담임이었던 메리가나 아카데미의 이사장인 로베스피에르까지 출동해야 할 정도로 이번 사항은 중대한 것이었다.

         

       궁중에서 내노라하는 어의들이 황자를 보살폈다. 황제는 제2황자의 침실까지 들어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물론 클라이스와 메리가, 이사장을 포함한 틸레트의 교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안정기에 들어가셨습니다만, 언제 깨어나실지 모릅니다.”

       “복부에 자상 하나 있는 게 전부인데 의식불명이라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진단했을 때 체내 마력의 역류를 확인했습니다. 자상이 생기셨을 때 받은 충격으로 마나 제어가 붕괴됐던 모양입니다.”

         

       황제도 난감했지만, 클라이스는 그 이상으로 난감해했다.

         

       그야 황자가 얼마 전 자신과 신경전을 벌이지 않았던가. 황자가 에테르를 자퇴시키기 위해 자신에게 상해의 책임을 자신에게 물어버린다면 뭐라 대처해야 할지 갈피가 쉬이 잡히질 않았다.

         

       물론 증거는 없다. 클라이스는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런 모함을 받는 것만으로도 하스펠트 가문의 명예는 깎인다. 괜히 클라이스가 스캔들에 휘말리는 걸 꺼려하는 게 아니다.

         

       그랬기에 이곳에 왔다. 자신은 정말, 황자에게 칼침을 놓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윽.”

       “황자님!”

         

       그리 큰 충격은 아니었는지라 클리온은 금세 눈을 떴다. 일어나자마자 못난 아들의 등짝을 후려치려고 있던 황제를 어의들이 막아섰다.

         

       “아, 아버지?”

       “이 놈아! 뭔 일이 있었기에 배때지에 구멍이 뚫렸던 것이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클리온은 황제와 주변 인물들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하스펠트 공작님에 헤를라인 백작님까지…. 무슨 일이 있어 이렇게 모이셨습니까?”

       “어, 이 녀석이 왜 이래? 너 아직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린 게냐?”

         

       주변을 둘러보던 클리온이 큭, 하는 신음을 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붕대로 덧대인 자신의 하복부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게 뭡니…. 윽!”

       “아들아, 혹시 기억이 모호한 것이냐?”

       “제가 칼이라도 맞은 겁니까?”

         

       그걸 가장 잘 아는 건 클리온일 것이다. 클리온 황자여야 했다. 그러나 제2황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래, 인석아! 새벽부터 학교에 가서 광장에 드러누워 있었다고 한다! 이 책임을 누구한테 물어야 하나!!”

         

       누구 잘못인지 밝혀진 게 없으니 책임을 물을 곳이 없다. 굳이 책임전가를 한다면 아카데미 교수진이었다. 학생의 안전을 소홀히 했으니까. 얼마 전 입학식 때 벌어진 소동을 생각해보면 경비가 더 삼엄했어야 했었다.

         

       그 때문에 이사장이 온 것이다. 로베스피에르는 황제와 황자에게 번갈아가며 머리를 숙였다.

         

       “제 운영이 미숙한 탓입니다.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아니, 자네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 내 아들이 호위도 없이 새벽부터 학교에 나가 있던 탓이네. 생각해보게. 세상에 어느 황족이 이런 짓을 벌이겠는가?”

         

       문득 클라이스는 황자와 황제의 태도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무언가가 이전과 다른 느낌, 조화가 되지 않는 감각.

         

       ‘10년 전엔 두 분 모두 이러셨죠.’

         

       이제는 아득해진 기억이다. 클라이스가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직전 공작가의 후계자로 있었을 때 만났던 황태자와 황제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대조됐다.

         

       그때의 황제는 어리숙했지만 결단력이 무너질 정도로 모자란 사람은 아니었고, 클리온 제2황자 또한 여자를 밝히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최소한의 선을 지킬 줄 아는 총명한 태자였다.

         

       “하여튼 절 여기까지 데려와주신 아카데미 교직원 분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

         

       그때였다. 덜컥, 하고 침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황태자 전하, 괜찮으십니까?”

         

       블랜튼 공작이었다. 차기 황제를 둔 정파 싸움에서 제2황자 파벌을 이끌고 있는 사람. 궁내 정치에서 완전한 중립을 선포하고 있는 하스펠트 공작가와는 별 인연이 없는 인간이었다.

         

       클라이스가 블랜튼 공작과 제대로 대면하는 건 아마 오늘이 처음일 것이다. 클리온 황자의 상태를 본 블랜튼 공작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황태자 전하. 그보다도 이번 일의 배후가 누군지 알아냈습니다!”

       “배후라고…?”

       “예. 설마 기억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그게 무슨…. 윽…!”

         

       클리온의 언동에 블랜튼 공작의 표정이 복잡미묘해졌다.

         

       “당신을 찔렀던 사람은 엘리예프 가의 자작 영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엘리예프? 이르카 엘리예프 말인가?”

       “예, 생각해 보시지요. 엘리예프 가의 영애는 옛날부터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카데미에 와서도 그 버릇은 그대로였죠. 그 새벽에 당신을 찌를 사람이 엘리예프 아니면 누가 있단 말입니까?”

         

       그 말에 황자가 머리를 부여잡으며 무언가를 떠올리려고 애썼다. 불과 1분에 달하는 시간동안 그의 눈빛은 칼을 맞기 이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 생각해보니 그렇군. 엘리예프 그 년이….”

       “블랜튼 공작, 그게 정말인가? 자작가 영애가 황자를 찔렀다는 것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황제 폐하. 제가 이번 일을 두고 감찰관에게 의뢰를 넣겠습니다. 저만 믿으시지요.”

       “흠, 자네가 그런다면야.”

         

       순간 클라이스는 뭔가 조화되지 않는다는 감각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첫째는 황자의 반응이 다시 돌변했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그 아버지인 황제 또한 블랜튼 공작에게 결단을 맡기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여서였다. 어느 부분이라도 이상했다.

         

       하지만 가장 이상한 건 따로 있었다.

         

       ‘그러면 황자는 왜 이른 새벽부터 아카데미에 와 있던 거지?’

         

       그러나 그 의심은 곧바로 와해되었다. 딱히 알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뭐, 여자라도 꼬시러 나왔던 거겠죠.’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어물쩍 넘어갔다. 어차피 자신에게는 플레어의 연구가 더 중요했으니까 굳이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적어도 클라이스에게는, 어제 읽었던 논문의 저자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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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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