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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이 소설은 대체… 뭡니까?”

       “로맨스 소설입니다. 여러 갈등과 오해를 겪지만, 결국 이겨내고 행복해지는 로맨스죠. ‘헤로도토스’ 작가님께 미리 이야기를 전해듣고 한번 써봤습니다.”

       

       

       몸을 움찔 떤 리오넬이 조심스럽게 원고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조용히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

       

       

       리오넬이 원고를 읽는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왔던 인물들─, 편집자들이나 시온, 롤스 카멜같은 독자들이랑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느렸다. 같은 장면을 몇 번이고 다시 읽기도 했다.

       

       저런 식으로 읽는다면 다 읽기까지 반나절은 기다려야겠지만, 그 정도야 충분히 기다려줄 수 있었다.

       

       나 역시 옆에 앉아 다른 책들을 읽으며 기다렸다. 읽을 책들은 많았고, 언제나 부족한 건 시간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 정도가 지나고.

       

       리오넬 발자크가 입을 열었다.

       

       

       “…다 읽었습니다.”

       “어떻던가요?”

       

       “재미있네요…. 굉장히…. 제가 꿈에서만 그리던 이상적인 소설이었습니다.”

       “그런가요?”

       

       “예….”

       

       

       오만과 편견은 모든 ‘로맨틱 코미디’의 바이블이었다.

       

       이 작품에서 만들어진 신분상승 로맨스의 구조는 현대에 와서도 조금도 달라진 적이 없다. 당차고 똑똑하면서도 선입견으로 가득 찬 여주인공은 현대에서도 모든 로코 여주의 전형이며, 로맨스물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클리셰는 오만과 편견의 구조를 흉내낸 것에 불과하다.

       

       그만큼, 완성도있고 구조적으로 탄탄한 소설이 바로 오만과 편견이라는 소설이었다.

       

       

       “저에게 이 소설을 보여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말했잖습니까? 읽고 배우라고요. 저는 이런 식으로밖에 가르칠줄 몰라서 말입니다.”

       

       “‥‥‥.”

       “못하겠어요?”

       

       “아뇨.”

       

       

       멍하니 원고를 바라보던 리오넬이.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중얼거렸다.

       

       

       “읽으면서, 저도 이런 소설을 쓰고싶다고 생각해버렸습니다. 그러니 쓰겠습니다.”

       “좋습니다.”

       

       

       [괴도 학센VS셜록 홈즈]라는 괴작을 읽으면서 느낀 건데.

       

       그에게는 소설의 구조를 배우는 재능이 있었다.

       

       ‘셜록 홈즈’가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추리소설의 구조를 흉내내고, 단순히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는 걸 넘어서 ‘괴도물’이라는 어레인지까지 한 리오넬 발자크라면 ‘오만과 편견’ 속 로맨스물의 구조를 해체하는 게 가능할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나름의 방향성을 잡아줄 수도 있었다.

       

       

       “…이 원고를 다시 한번 읽어봐도 괜찮겠습니까? 그리고, 메모도 하고싶습니다.”

       “얼마든지요.”

       

       “아, 이 소설을 표절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단지 그, 이 소설에서 배우고 싶은 것이 있어서….”

       “무슨 이야기인지 알고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그에게 펜과 종이를 선물로 주었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집으로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그가 ‘오만과 편견’의 원고를 훔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야, [괴도 학센VS셜록 홈즈]라는 괴작에서도.

       

       그는 ‘셜록 홈즈’라는 인물의 캐릭터성을 죄다 뜯어고쳐, 아예 다른 인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마치 이름만 같은 완전히 다른 등장인물이니, 부디 용서해달라는듯이. 그리고 그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어떠한 표절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저작권법’이 존재한다고 한들, 사소한 사건같은 것들은 살짝 비틀어서 그대로 쓰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말이다.

       

       

       “저는 당신의 이야기가 읽고싶으니까, 기다리겠습니다.”

       

       .

       .

       .

       

       “흐음…. 재미있네요.”

       “감사합니다…!”

       

       

       리오넬 발자크가 써온 ‘로맨스’ 소설은 재미있었다.

       

       확실히 그의 소설에서는 구성과 구조에 대한 이해도가 엿보였다. 감각적인 부분─, 흔히 ‘순수재미’라고 부르는 자극적인 재미는 부족했지만, 그의 소설은 로맨스물의 구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분위기를 은은하게 휘어잡았다.

       

       내가 평론가는 아니니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확실히 재미있게 읽었다.

       

       

       “재미있는 소설을 썼으니, 이제 출판을 해야겠죠.”

       “네!”

       

       “제가 쓴 ‘오만과 편견’이랑 같이 합시다.”

       “네…?”

       

       “아, 단순히 같은 시기에 내자는 건 아닙니다. 그랬다가는 제가 낸 소설에 리오넬 씨가 쓴 소설이 묻힐 테니까요.”

       “‥‥‥.”

       

       

       호메로스는 제국에서 가장 명성 높은 작가다.

       

       이 리오넬이라는 작가가 쓴 글이 아무리 재미있어도, 함께 출판하게되면 아무래도 존재감이 묻힐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니, 오히려 나의 존재감을 이 리오넬이라는 작가와 나눠야만 했다.

       

       

       “로맨스 소설 연작. 호메로스와 아카데미 학생들이 쓴 사랑의 이야기. 어떻습니까?”

       “네?”

       

       “주제를 하나 잡고, 그 주제를 기준으로 두 소설을 함께 홍보하는 것이죠.”

       

       

       즉, 기획출판이었다.

       

       이 세상에 ‘로맨스 소설’의 구조를 빠르게 이식하기 위한 기획출판.

       

       

       “어, 그게….”

       “아. 작품 숫자에 대한 것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제 작품도 몇 가지 더 함께 출판할 예정이고, 다른 학생들의 작품도 이미 받아뒀거든요.”

       

       

       이안 플러머.

       

       햄릿을 함께 쓴 바 있던 극작가는 로맨스 소설에도 재주가 있었다. 특히 극작가인만큼 대사와 장면 연출에 능했다.

       

       이미 그에게도 ‘오만과 편견’을 가르치고 작품을 받아둔 상태였다.

       

       이 소설들이 출판되면, 이제 사람들은 ‘로맨스 소설’이라는 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작가들은 그러한 구조를 따라 쓰며 더 많은 작품을 생산해주겠지.

       

       

       “…왜 저한테 그렇게까지 해주시는 겁니까?”

       “왜냐고요?”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싶어서─, 라고 설명해봤자 이해하기 힘들겠지.

       

       구조 자체를 훔치고 편집하는 그의 재능은 독자보다도 ‘작가’들이 작품을 공부함에 있어서 더 유용할 것이다─, 라는 설명도 별로 납득이 가지는 않을 것이다.

       

       

       “헤로도토스 작가님이 추천하신 작가니까요.”

       “‥‥‥.”

       

       “셜록 홈즈의 안목을 믿습니다. 리오넬 작가님은 분명 작가로 성공하실 겁니다.”

       

       

       리오넬 발자크의 표정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어째서인지 알 수 없어 당황해하는데,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리오넬이 끅끅 울며 겨우 말을 내뱉었다.

       

       

       “끅…. 저, 저는, 그런 제대로 된 사람이 아닙니다….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오히려 헤로도토스 작가님의 캐릭터를 훔쳐서, 작가로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했습니다…. 헤로도토스 작가님이 저를 작가님께 보낸 이유도, 부, 분명 그냥─.”

       “리오넬 씨.”

       

       “‥‥‥.”

       “아무리 치명적인 실수라도 죄악과는 달라서, 하나의 실수가 인생을 망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헤로도토스 작가님은 이미 당신의 실수를 용서했습니다.”

       

       

       이 대사는 추리소설 시리즈 ‘브라운 신부’의 표절이지만….

       

       리오넬 발자크는 이 말에서 나름의 감명을 받은듯보였다. 그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조용히 울었다.

       

       나 역시 그런 그의 어깨를 조용히 두드려주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품에서 카드 한 장을 꺼내 그에게 돌려주었다. 그가 가져온 ‘헤로도토스’의 추천서였다.

       

       

       “이거, 이제 저한테는 필요없는 것이니 계속 가지고 있으세요. 괴도가 찾아왔을 때 예고장이 없으면 머쓱하지 않겠습니까.”

       

       

       그 카드에는 뤼팽의 예고가 쓰여있었다.

       

       

       [진품이 갖춰지면 다시 방문하겠습니다.]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뤼팽이 훔치지 않고는 못 배길 ‘진품’을 준비하고 기다립시다.”

       “…네.”

       

       .

       .

       .

       

       ‘호메로스 문학 아카데미 로맨스 소설 연작’─, 그리고 ‘오만과 편견’이 출판되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호메로스 작가의 ‘오만과 편견’만을 읽었지만, 함께 출판된 소설들을 전부 사서 읽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특히 호메로스 작가의 팬이라면 그 제자들의 소설까지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호메로스 작가님의 이번 작품… 정말 아름다운 소설이었어요! 그분께서는 분명 무척이나 섬세하게 사람의 감정을 살피고, 진실하게 상대방에게 다가가시는 분이시겠죠. 진실한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해, 호메로스 작가님의 작품만큼 절절하게 다가오는 글은 없었어요….”

       “호메로스 작가님께서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셨길래, 이런 사랑스러운 글을 쓸 수 있으신 걸까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도 그렇고, 분명 마음 깊은 사랑을 하셨던 것이겠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었던 날에는 슬픔에 밤을 지새웠는데, 이 오만과 편견이라는 작품을 읽으니 오늘은 굉장히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머? 저는 두근거려서 잠 못 들 것 같아요. 후후.”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오만과 편견’에 빠져들었다.

       

       이는, 오만과 편견이 굉장히 진실한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갈등, 오해, 오만, 편견… 단순히 낭만적이기만 한 이야기가 아닌, 사람의 연약한 부분마저도 진실하게 묘사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힘이 있었다.

       

       ‘진실’은 이야기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강한 설득력이다. 오만과 편견에는 그것이 있었다.

       

       

       “아, 혹시 그분의 제자분들이 쓴 소설도 읽어보셨나요?”

       “물론이죠! 출판된 그날 하루만에 전부 읽었답니다.”

       

       “역시 아이솔렛 공녀님은 대단하시네요. 저는 햄릿을 함께 쓰셨던… 이안 플러머 작가님의 소설만 읽었어요.”

       “후후, 그런가요? 그러면 아직 ‘리오넬 발자크’ 작가님의 소설은 안 읽으셨겠네요.”

       

       “그런 작가님이 계셨나요?”

       “이안 플러머 작가님의 소설도 읽으면서 즐거웠지만… 리오넬 발자크 작가님의 소설은, 구체적이면서도 은은한 즐거움이 있더라고요. 조금 더 풋풋한 느낌?”

       

       

       그리고, 함께 출판된 학생들의 소설들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리오넬 발자크의 소설이 이안 플러머 다음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감사합니다! 작가님! 이게 전부 작가님 덕분입니다…!”

       “뭘요. 리오넬 씨가 글을 잘 썼으니 사람들이 알아준 거죠.”

       

       

       리오넬은 로맨스 소설 작가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게 데뷔에 성공했다.

       

       

       “그, 그리고, 작가님!”

       “네.”

       

       “헤로도토스 작가님께도 직접 감사를 전하고 싶은데… 혹시 만남을 주선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런 부탁이 염치 없다는 건 알지만… 꼭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부탁이야 언제든 들어드릴 수 있죠.”

       

       

       그게 나거든.

       

       

       “감사합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제인 오스틴은 영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스토리텔러이자 소설가라고 불립니다.

    소설의 셰익스피어라는 별명도 있죠. 제인 오스틴은 영국의 10파운드 지폐에 그려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특히, 제인 오스틴이 쓴 ‘오만과 편견’이라는 작품은 불멸의 고전이 되어 현대까지도 모든 종류의 로맨스,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진실한 사랑’을 주제로 삼은 작품이라면 특히나요. 오만과 편견은 반지의 제왕에 이어 ‘영국에서 두 번째로 사랑받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고전문학인 동시에 대중소설로서도 그야말로 완벽하게 ‘즐거운’ 소설이니, 한번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제인 오스틴은 ‘가장 다가가기 쉬운’ 고전문학 작가거든요. 현대인의 감성으로도 부담스럽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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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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