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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아침 여섯 시의 헬스장.

       출근 전, 아침 운동을 위해 직장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시간.

       

       그곳에 오늘 처음 방문한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이름은 정현우. 

       이제 스물다섯의 신인 배우였다.

       

       ‘역시 운동은 아침 운동이지.’

       

       이제 겨우 케이블 드라마의 조연을 한번 맡았을 뿐인 신인.

       하지만, 누가 자신을 알아볼지 모른다는 생각을 늘 품고 살아가는 그런 배우.

       그것이 바로 정현우였다.

       

       아무튼 배우 일을 위해선 몸을 가꾸는 것도 필수다.

       남자 배우들에게 ‘근육질 몸매’는 이제 거의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소양이었으니까.

       

       “이야~, 여긴 헬스 기구가 아주 깨끗하네.”

       

       생긴 지 꽤 된 걸로 아는데 관리가 아주 잘 되어있었다.

       집에서 가까워 선택한 헬스장이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깔끔하고 마음에 들었다.

       

       “응?”

       

       그렇게 하나하나 살피고 걸어가던 남자의 눈에 띈 것이 있었다.

       그것은, 긴 검은 머리칼을 하나로 높이 묶은 여성이었다.

       아니, 소녀라고 해야 할까.

       

       십 대 후반? 그쯤으로 보이는 외모였다.

       

       ‘와.’

       

       남자는 그 소녀를 보고 두 번 놀랐다.

       한 번은 소녀의 입이 떡 벌어지는 외모에.

       그리고, 또 한번은 그 소녀의 앞에 놓인, 바벨과 플레이트의 무게에.

       

       ‘어어, 뭐야.’

       

       수려한 눈매에 담담한 표정의 아름다운 얼굴, 늘씬하고 가냘픈 몸매.

       정현우도 어찌 됐든 배우다.

       케이블 드라마를 찍으며, 나름 예쁘다는 배우나 아이돌도 몇이나 만났다.

       그런데, 지금 이 소녀는 그런 이들은 가볍게 압살할 만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 앞에 놓인 바벨이 더더욱 눈에 띄었다.

       도무지 저런 소녀가 들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얼추, 200kg인데?’

       

       인터넷에서야 반쯤 허세를 부리며 ‘나 데드 이백 치는데?’라고 떠들 수 있지만, 이게 절대 만만한 무게가 아니다.

       운동 좀 해본 사람들도 쉽게 못 하는 게 이백이다.

       운동이 일상이 되고, 무게 올리는 것에 맛 들인 인간들쯤 되어야, 들어볼 수 있는 게 데드 이백.

       

       ‘설마 아니겠지.’

       

       남자는 그냥 지나가려했다.

       설마 소녀의 발치에 놓인 게, 그녀의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소녀의 손이 바벨의 봉을 잡자 남자는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위험하니까 그만두라고, 말하기 위해.

       

       “혹시 이번에 오셨어요?”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은, 누군가 그의 어깨를 잡은 탓에 무산되었다.

       

       “네?”

       “아니, 놀라서 말리시려는 것 같아서요.”

       

       처음에는 혹시 나를 알아본 사람인가?

       싶었던 정현우는 사내의 말에 기가 죽었다.

       

       우선 족히 190cm는 넘어보이는 거구였던데다가, 전신이 근육으로 무장된 네츄럴 본 헬창이었기 때문이다.

       

       “아, 그, 그야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뭐 그렇긴 하죠. 보통은. 저도 그랬습니다.”

       

       사내는 그렇게 말하며 소녀를 향해 눈짓했다.

       그러자, 바벨을 잡은 소녀가 천천히 호흡을 내쉬며 데드리프트를 시작했다.

       

       “……!”

       

       조금 힘을 준다고 생각한 순간, 번쩍.

       덜컹.

       

       그리고 부드럽게 내려놓는 바벨.

       보통 저런 식으로 내려놓으면 다치니까 가볍게 손에서 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소녀는 살포시 바벨을 내려놓았다.

       

       “쟤 근력이 말도 안 되거든요.”

       “……예? 어떻게…….”

       “어떻게냐고 해도 저도 모르죠. 그냥 저런 애인데.”

       

       사내는 처음 서연이 이곳에 왔을 때부터 쭉 지켜본 사내였다.

       서연의 운동을 봐주는, 이 헬스장의 트레이너 방용식.

       그는 말없이 계속 서연을 바라보는 정현우의 모습에 눈을 찌푸렸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보시는 것 아닙니까?”

       “예? 아, 아아아뇨! 그게 이상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니고요.”

       

       분명 처음에는 데드리프트를 하는 모습에 놀랐던 건 맞다.

       아름다운 외모에 놀란 것도 당연했고.

       하지만 정현우가 소녀를 계속 본 건 다른 이유였다.

       

       “그, 제가 예전에 어디서 봤던 듯한 느낌이라…….”

       

       정현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재차 소녀를 보았다.

       검은 긴 머리칼, 묘하게 날카로운 인상의 외모.

       분명 처음보는 사람일 텐데도,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어디서 봤던가, 하는.

       

       “아아, 그럴 수 있죠. 저는 잘 모르는데…… 예전에는 잠깐 아역 일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아역이요?”

       

       아역이라고 하니, 무척 반가웠다.

       나름 자신도 신인이라지만 배우이지 않은가.

       

       ‘저렇게 예쁘면 확실히 배우 일 하기에 딱 좋네.’

       

       만약 그렇게 되면, 조금 도와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저런 아이가 후배로 들어오면 하루하루가 기쁠 테니까.

       

       앞으론 헬스에 매일 나와야겠다.

       정현우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웃었다.

       

       ***

       

       “후우, 후우.”

       

       서연은 달린다.

       헬스장에서 고등학교까지의 거리는 장장 3km.

       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상당히 멀다 할 수 있는 거리였으나, 서연은 매일 이 거리를 달렸다.

       

       어차피, 달려도 10분내에 주파할 수 있었으니까.

       

       딸랑, 딸랑!

       

       “어서 오세요.”

       

       방울의 울리는 소리와 함께, 들어간 편의점.

       알바생은 안으로 들어온 소녀를 보고 딱딱하게 굳었다.

       

       ‘왔구나!’

       

       매일 이 시간이면 꼭 들리는 여학생.

       검은 긴 생 머리에, 다소 색소가 옅은 갈색 눈이 보인다.

       처음에는 차마 시선을 마주치기 어려웠다.

       

       묘한 분위기라고 할지.

       너무 예쁜 사람은 바라보면 부담스러운 그런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매일 보면 적응이 되는 법이다.

       

       어느 정도는.

       

       “3천원입니다.”

       

       비타민 음료 두 개.

       참 여고생 답지 않은 초이스다.

       

       그런 생각을 하며, 봉투에 담아 내밀자.

       여학생이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무, 뭇슨 일이신가요?”

       

       순간 놀라 혀를 씹으며 답했다.

       그러자, 소녀는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뇨, 그냥 이젠 익숙해진 것 같아서요.”

       “네, 네?”

       

       무슨 말이냐는 듯 반문하자, 소녀는 픽 웃었다.

       

       “~농담이에요.”

       

       평소에 늘 무표정한 얼굴이었기에, 단번에 화사하게 변하는 미소에 남자는 순간 얼어버렸다.

       꽃과 같이 웃었다.

       딱 그런 묘사가 생각나는 미소였다.

       

       딸랑, 딸랑.

       

       그런 소리가 들리자, 이내 아르바이트생은 스르륵. 

       자연스럽게 아르바이트생 의자에 앉았다.

       의도한 건 아니고, 다리가 풀려서.

       

       “와씨……. 미쳤네…….”

       

       얼굴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오늘도 깨닫는 하루였다.

       

       ***

       

       자고로 TS물에서 정석적인 클리셰란 편의점에 들리는 것.

       ……뭐어, 나처럼 매일 같이 들르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그 아르바이트생은 항상 이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터라 기억에 있었다.

       깜짝 놀란 모습을 늘 상 보여줬던 터라, 오늘은 조금 장난을 쳤는데.

       

       ‘상당히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었지…….’

       

       당분간 거긴 빼고 다른 편의점에 가야 하나.

       돌이켜보니 괜히 좀 부끄러워졌다.

       

       “주서연.”

       

       그런 생각을 하며 걷고 있으니, 교문 근처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같은 유치원.

       같은 초등학교.

       거기에 같은 중학교.

       

       이제와선 같은 고등학교까지 와버린.

       

       이지연 씨께서 나를 불렀다.

       얘는 10년이 넘었는데 변한 게 없었다.

       

       “너 또 편의점에서 이상한 짓 했지.”

       “안 했어.”

       “뭘 안 해. 보고 있었는데.”

       

       얘는 무슨 그런 걸 또 보고 있었대.

       아니, 보고 있었으면, 여기서 기다릴 게 아니라 진작 말을 걸지.

       

       “또또, 그러지. 남들에게 추켜 세워지는 거 좋아하면서. 아닌 척.”

       “아, 아니거든.”

       

       나는 애써 변명하며 시선을 피했다.

       물론 이지연은 짧게 혀를 차며 들은 척도 안했다.

       

       우리 엄마나 할 법한 반응을 이젠 이지연이 하고 있었다.

       

       ‘우리 서연이, 남들에게 칭찬받는 거 좋아하는구나?’

       

       예전에 엄마가 그런 말을 했었는데, 이런 기질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야 어쩔 수 없다.

       전생의 나는 ‘이런 기분’ 같은 건 알지 못했으니까.

       기쁨이나, 남들에게 추켜세워질 때 느끼는 그런 짜릿함.

       그런 감각에 매우, 아주 몹시 취약했다.

       

       반대로 슬픔이나, 절망 같은.

       마이너스적인 감정에도 크게 영향 받지만, 그래도 그쪽은 내 완전 튼튼한 정신으로 버틸 수있다 이 말이다.

       즉, 쾌감에는 취약하나, 고통엔 강인한 인간.

       

       그것이 열일곱 살의 주서연 되시겠다.

       

       “……그럴 거면 이제 슬슬 복귀하지? 사춘기도 끝났잖아.”

       “할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습관적으로 가방에서 안경을 꺼내려다…… 집어넣었다.

       고등학교에 와서는 별로 안썼는데 이 버릇이라는 게 쉽게 사라지진 않았다.

       이 안경은 내 인상을 흐리게 하기 위해 썼던 물건이었다.

       

       ‘파란만장했는데, 내 중학 생활…….’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 초반까지.

       ‘태양을 숨긴 달’의 아역이라는 걸 최대한 숨겼음에도 알아보는 이들이 많았다.

       

       만약 내가 평범한 아이였다면.

       그리고 이지연이 없었다면 꽤 고된 학창생활이었다고 생각한다.

       

       “……흐응, 그러고 보니 이젠 안 쓰는구나.”

       “뭐어, 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까.”

       

       아니, 그냥 없다.

       라고 하는 게 맞다.

       

       벌써 10년.

       내 외모도 어린시절의 나와는 상당히 달랐다.

       더 예쁘고, 더 아름답게 자랐다 이 말이다.

       

       학교에 들어서면, 주변의 시선이 느껴졌다.

       이건 단순히 내 외모 때문만은 아니다.

       

       곁에 있는 이지연이, 최근 드라마에 출연하며 생긴 효과였다.

       케이블 드라마였지만, 최근엔 케이블 드라마도 도전적인 걸 많이 찍는 탓에 시청률이 많이 오른 상태였으니까.

       

       “흐흥.”

       

       그런 내 시선을 깨달았는지 이지연이 얄밉게 웃었다.

       의기양양한 태도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러모로.

       

       ‘얘 이러면, 계속 배우 할 텐데.’

       

       이게 분명 좋은 거긴 했지만, 나로선 참 심란했다.

       하지만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참 심란한 내 마음…….

       

       “주서연.”

       

       그런 나의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지연은 내 어깨를 토닥였다.

       

       “억울하면 복귀해.”

       “……할 거야.”

       

       고등학교 입학 후.

       이제 슬슬 활동할 시기라 생각했다.

       

       공중파, 그리고 OTT.

       각종 인터넷 방송이 뜨는 시기가 다가왔으니까.

       아, 그리고 버튜버까지.

       

       아직 내 버튜버를 향한 강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이 말이야.

       

       ‘다만.’

       

       그래서 뭘 할지가 고민이었다.

       복귀작.

       머릿속으로 수많은 작품이 스쳐 지나갔다.

       

       “크게 보면 두 개인가…….”

       

       뭐, 당장 다른 곳은 내가 들어가고 싶다고 해도, 오디션조차 보기 어려웠다.

       

       아역 때와는 다르다.

       적어도 이제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성인 배우들.

       배역을 맡기 위해선, 그에 따른 커리어도 마땅히 필요했다.

       

       태숨달 아역 정도면 좋은 커리어지만, 공백이 너무 기니까.

       오히려 이건, 복귀한 이후 써먹기 좋은 타이틀이었다.

       

       “두 개?”

       “응, 우선 오디션을 봐야겠지만.”

       

       10년 간 긴 휴식기를 가진 아역.

       그런 내가 오디션을 볼만한 건, 그렇게 많지 않다.

       

       우선 뭔가를 보여줘야, 보다 위로 갈 사다리가 생기는 법.

       

       “뭘 그냥 KMB 드라마국장님에게 부탁해.”

       “아니, 그건 좀…….”

       

       괜히 논란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요즘 사소한 걸로도 쉽게 논란이 생기는 판에 그런 짓을 했다간 선배 배우들에게 아주 제대로 밉보일 게 뻔했다.

       

       “뭐, 좋아.”

       

       이지연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네가 말한 그 두 개가 뭔데?”

       “아, 그건…….”

       

       그런 지연의 질문에, 내가 막 답하려던 순간이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리리리링!!

       

       1교시의 시작을 알리는 알림이 울렸다.

       주변에 걸어가던 학생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게 빨라졌다.

       

       “아, 오늘 끝나고 말해줄게.”

       “뭐?”

       

       이지연이 다급히 내 옷깃을 잡으려 했지만, 나는 그보다 빨랐다.

       지난번에 한번 늦은 터라, 또 늦으면 분명 잔소리를 들을 게 뻔했다.

       

       “야, 주서연!!!”

       

       시끄럽게 나를 부르는 이지연의 목소리를 뒤로 하며, 나는 재빠르게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교실의 뒷문을 열고, 나는 이지연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편의점으로 뭐라 하지 말았어야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훌쩍 자라버린 서연입니다.
    그리고 자고로 TS물이라면 편의점 정도는 한번 조져 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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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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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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