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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와! <현상거절>이다!”

        “사인 좀 해주세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나가던 행인들의 관심을 뒤로한 나는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혜성이는 이상형이 어떻게 돼?’

       

        <공간왜곡> 김인만이 커다란 난파선을 결투장으로 떨어뜨리던 때. 갑작스레 날아든 질문이었다.

       

        “이상형이라.”

       

        늦은 오후의 석양을 바라보며 나는 나지막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사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비록 <히사있>이라는 원작이 글자 그대로 ‘청춘러브코미디’ 장르긴 하지만, 애당초 스스로가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신경조차 쓰지 않은 것이다.

       

        “됐다.”

       

        괜스레 낯간지러운 생각이 마구 떠올라 헛웃음을 터뜨리고 걸음을 옮겼다.

       

        내 주제에 이상형은 무슨 이상형. 일단 당장 급한 생활수준이나 끌어올리고 생각하자.

       

        한참을 운동삼아 걸으니 중앙 지구에서 벗어난 나는 D등급 주거지구로 진입했다.

       

        한순간에 바뀌는 풍경이 퍽 웃기다. 

       

        번쩍이는 고급 건물들이 가득한 히어로 아카데미의 심연, D등급 주거지구가 내가 사는 동네다. 물론 상대적으로 생활수준이 낮다 뿐이지, 섬 바깥의 도시와 비교하면 별 다를 게 없긴 하지만.

       

        삐비빅!

        삐비빅!

        삐비빅!

       

        “……?”

       

        낡은 빌딩 사이를 걷고 있는데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이어서 핸드폰을 꺼내들자 제법 놀라운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 히어로 아카데미 안전부 긴급 알림 서비스 ]

       

        히어로 아카데미 안전부?

       

        고개를 갸웃거린 나는 도착한 문자메세지를 천천히 읽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이런 문자가 도착하는 이유는 하나다.

       

        아카데미 내의 히어로가 ‘빌런’으로 흑화해서 파괴 활동을 일삼거나.

       

        “구어어어어!”

        “꺄아아아악!”

        “괴수다! 괴수가 나타났다!”

       

        아카데미 내에 게이트가 열려, 괴수가 출현하는 경우다.

       

        [ 경보 레벨 : 5. 즉시 야외 활동을 중단하고 인근의 대피소, 혹은 지역 밖으로 대피하십시오. ]

       

        나와 같은 D등급 능력자들의 비명과 도망이 이어진다.

       

        스윽.

       

        문자를 확인하고 핸드폰을 주머니 안에 넣은 나는 눈 앞에 나타난 괴수를 바라보았다.

       

        사자의 머리에 황소의 몸통, 말의 다리를 가진 괴물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허공에서 나타났다.

       

        “살다가 이런 일도 있네?”

       

        황당한 일이었다. 

       

        타차원의 행성에서 살아가던 괴수들이 차원균열에 휘말려 지구로 오게 된다는 것이 이 괴수들의 설정.

       

        거기까진 특별할 것이 없다. 어차피 소설 속 세계이고, 설정이야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헌데…… 한가하게 길을 걷다 게이트를 마주칠 확률은 도대체 얼마나 낮을까?

       

        “구어억!”

       

        훙!

       

        커다란 덩치의 괴수가 주먹을 뻗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주먹이 아니라 앞발을 내게 휘둘렀다.

       

        “이런 예의 없는 놈을 봤나.”

       

        갑작스러운 등장과 함께 날아든 기습이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공포에 질려 얼어붙을 수도 있겠다만, 나는 경우가 달랐다.

       

        “현상거절.”

       

        능력을 개방한 나는 놈을 바라보았다.

       

        성체 키메라. 그러니까 괴수의 덩치는 5층 빌딩에 육박할 정도다. 그런 놈을 직접 볼 줄은 몰랐기에 제법 신기한 기분이 들 수밖에.

       

        그런데.

       

        촤아아아아악!

       

        진언을 채 내뱉기 전에 놈의 커다란 앞발이 깔끔하게 토막났다.

       

        후두둑!

       

        엄청난 양의 붉은 피가 거리에 쏟아졌다.

       

        그리고.

       

        촤아악!

       

        다시 한번, 괴수의 팔을 갈라버린 칼날이 놈의 목을 잘라버렸다.

       

        쿠우웅!

       

        괴수, 키메라의 거체가 힘 없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등장과 마찬가지로 허무할 정도로 빠른 퇴장이었다.

       

        “괜찮으신가요?!”

        “……뭐야?”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다가오는 한 사람의 등장에 나는 황당한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뇌전검> 양하나. 그녀가 나타났다. 등장과 함께 시원스레 괴수의 멱을 따버린 것은 덤이었고.

       

        “어라? 당신은……?”

       

        헌데 그녀의 반응이 제법 우스웠다.

       

        갑작스러운 양하나의 등장에 놀란 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그녀도 나를 보고 놀란 건지 토끼눈을 뜨고 있던 것이다.

       

        “…….”

        “…….”

       

        나와 양하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사실 웃긴 일이지 않나. 바로 며칠 전 서로를 죽일 기세로 능력을 써대던 상대를 다시 만난다는 일이.

       

        뭐, 나와 양하나는 나름 젠틀하고 깔끔하게 경기가 끝나서 양반이었다.

       

        듣기로는 승천전의 패배에 앙심을 품고 상대방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놈들도 있다고 들었으니까.

       

        “무슨 일이야? 괴수를 처리하기 위해서 온 건가?”

        “네. 불안정한 에너지 흐름이 확인됐어요. 오 분 전에 상황을 접수했죠.”

        “그래? 완전 대가 없는 봉사나 마찬가지잖아?”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갑작스러운 괴수의 등장과 때마침 등장한 S급 히어로. 아무리 봐도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학생회 소속 학생이라면 당연히 해야할 일이죠.”

        “…….”

       

        아, 잊고있었다.

       

        <뇌전검>양하나는 학생회 소속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한유리나 송수아와 한솥밥을 먹는 사이라는 뜻이다.

       

        “그래그래. 몸이 아프진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네. 그럼 난 이만 가본다.”

       

        손을 대충 흔들며 걸음을 옮겼다. 우연히 만난 과거의 경기 상대만큼 대하기 껄끄러운 게 없으니까.

       

        그런데.

       

        “자, 잠깐만요!”

       

        점점 멀어지는 내 등을 향해 양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스윽.

       

        몸을 돌린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하고싶은 말이 있는 건지, 양하나가 입술을 우물거리고 있었다.

       

        “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 근성열혈녀와 딱히 친분을 나눈 기억은 없었다. 자연히 저 녀석도 나한테 말을 걸 만큼 친근한 사이가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을 테고.

       

        “조, 조심하세요.”

        “……?”

       

        헌데 그녀가 하는 말이 제법 우스웠다.

       

        조심하라고? 이제 막 아늑한 집에서 뒹굴거릴 생각에 잔뜩 신이 난 사람이 난데.

       

        “아까 경기 결과가 나왔어요. <공간왜곡>김인만이 승리했죠.”

        “그래? 예상대로네.”

        “아,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요?! 당신의 상대가 그 ‘랭커’ 라고요!”

       

        내 즉답에 양하나가 황담함을 가득 담아 소리쳤다.

       

        알고있다. 내 다음 상대가 <공간왜곡>이라는 건. 헌데 그렇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었다.

       

        결국 그와 결판을 내야한다는 뜻이다.

       

        “아주 조금 긴장은 된다.”

        “…….”

       

        나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공간왜곡>과의 경기는 제법 빠르게 흐를 걸 알았기에 할 수 있는 태도였다.

       

        그의 공간을 비트는 힘이 상위 개념일까, 아니면 내가 가진 현상을 거절하는 힘이 더 상위 개념일까.

       

        “당신이 D등급의 실력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랭커는 정말 차원이 달라요.”

        “그건 알고 있어. 내가 봤던 랭커들은 모두다 나사 하나 빠진 능력을 쓰더라고.”

       

        당장 친해진 송수아나 한유리를 보자. 그녀들은 상식과 세계의 법칙을 간단히 초월한 힘을 다룬다.

       

        거기에 더해 <성녀>나 <신속>은 어떻고? 그 둘도 랭커였고, 정신 나간 수준의 능력을 보유했다.

       

        하지만.

       

        그들과 대립도, 붙어본 적도 없었다. 허나 확실한 사실은 쉽사리 질 것 같지가 않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아. 최영웅은 제외.’

       

        그놈은 자신의 능력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는 허접 랭커니까.

       

        “……다치지마세요.”

       

        안색이 어두워진 양하나가 내게 짧은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몸을 돌려 멀어진다.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건가?’

       

        ‘랭커’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을 때. 그녀의 얼굴에 맴돌던 것은 ‘공포’라는 감정이었다.

       

        아니, 공포가 맞나? 일종의 열등감 비스무리한 것 같기도 하고.

       

        “쯧쯧.”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나는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품고 살아간다. 내가 보기에 양하나의 사연은 제법 가슴 아린 편에 속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 * *

       

        승천전의 64강이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양하나가 나타나 괴수를 도륙내고 이틀이 지난 후, 집 안을 뒹굴던 나는 32강 경기를 보기 위해서 컴퓨터를 켰다.

       

        “하암.”

       

        [ 드디어 왔습니다! 쟁쟁한 실력자로 가득한 올해 승천전을 빛낼 본선 2차전의 첫 경기! ]

       

       모니터 화면을 보던 나는 늘어지는 하품을 내뱉었다.

       

        평소 승천전에 관심조차 없던 내가 이런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랭커와 랭커의 대결이 오늘 경기의 개막을 장식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랭커가…… 랭커 중에서도 괴물들이다.

       

        [ 모두 뜨겁게 맞아주십시오! 소개하겠습니다! <성녀> 안젤리카 ‘더 글로리’ 플리머스! ]

       

        “와아아아아아!”

        “누나! 성녀 누나!”

        “어쩜 저렇게 고우실까? 아마 태어나서 욕 한마디도 안 해보셨을 거야!”

       

        컴퓨터 스피커 너머로 어마어마한 함성이 튀어나왔다.

       

        마이크 가까이에 있던 놈의 욕이 어쩌고, 하는 것이 방송에 그대로 송출됐다.

       

        “욕 한마디도 안 하기는. 심해 트롤인데.”

       

        기지개를 키던 와중에 피식 웃음이 터져나왔다.

       

        <성녀>의 진면목을 아는 사람이 이 아카데미 내에 다섯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 그러나 고귀한 <성녀>도, 이번엔 쉽지 않은 32강이 될 것 같습니다. ]

       

        “오.”

       

        시작한다.

       

        나는 기대 가득한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가 등장한다. 히어로 아카데미의 전설, 모든 히어로가 저 하늘의 별처럼 바라보는 ‘정점’.

       

        [ 굳이 설명은 필요하지 않겠죠. <원소술사>…… 이성혁! ]

       

        <원소술사> 이성혁.

       

        그가 안젤리카의 32강 상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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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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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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