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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하나씩 처리할게. 우선 비무대회부터.”

     

    아셀라는 내가 가져온 보고서를 찬찬히 훑었다.

     

    “언제 이 기사단을….”

     

    내용을 물어보려던 아셀라가 말을 멈추었다.

     

    카밀라 황비가 지켜보고 있다. 이쪽의 패를 보여줘서 좋을 일은 없다고 직감했겠지.

     

    탁, 보고서를 덮은 아셀라가 여유롭게 홍차를 들이켰다.

     

    “명령대로 잘 해왔어. 추가된 기사 백이십 명, 비무대회에서 사용하겠어.”

     

    “백이십이라니, 황실 어디에서 그만한 병력을 데려왔단 말이야!”

     

    카밀라가 화들짝 놀라 소리를 빽 질렀다.

     

    백이십이면 한 개 중대다. 중대 네 개가 하나의 연대고 네 개의 연대가 각각 황궁 부지 동서남북 방벽을 방위한다.

    황제와 각 궁의 직속 기사단은 별개다.

     

    비무대회에는 파벌 소속의 궁 직속 기사단과 황실 기사단 일부가 참가한다.

     

    황제가 움직이니 대군이 움직이긴 하지만 황궁을 비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한 승계권자 파벌이 가용할 기사는 많아야 이백으로 생각된다.

     

    월광궁의 기사 이십까지 합치면 백사십. 다른 승계권자와 충분히 대적할 숫자가 됐다.

     

    “어마마마.”

     

    아셀라가 카밀라를 향해 선언했다.

     

    “이번 비무대회에서 제가 어떤 지원 없이도 우승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이…!”

     

    카밀라는 아셀라의 말에 화를 참지 못하고 씩씩댔다.

     

    너는 이제 필요없다 선언을 들은 참이니 열 받을 수밖에.

     

    문밖에서 두 사람의 대화는 대충 듣고 있었다. 아셀라의 불안을 부추기고자 2황자도 꼬시고 별짓을 다 한 모양인데, 전부 수포로 돌아갔다.

     

    “하, 어디 그 망나니랑 언제까지 붙어먹나 보자꾸나! 아무리 고트베르크여도 그렇지, 하필 이런 협잡꾼과 엮이다니!”

     

    카밀라는 드레스 밑단을 양손으로 살짝 들고는 빠른 걸음으로 방에서 떠나갔다.

     

    그녀가 자리를 비우고서야 아셀라는 긴장이 풀렸는지 자그만 한숨을 내쉬었다.

     

    “허락도 없이 잘도 계략을 꾸몄구나.”

     

    “칭찬 감사합니다.”

     

    “칭찬으로 보여? 왜 내게 말도 안 하고 맘대로 기사단의 규모를 늘렸어?”

     

    나를 재릿 노려보는 아셀라.

     

    이 건은 별로 마음에 안 드셨나.

     

    “저희 파벌이 좀 더 강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그건 내 일이야. 공자는 주치의잖아.”

     

    “그리고 혼약자죠.”

     

    어째서인지 아셀라가 혼약자라는 단어에 입술을 오물거렸다.

     

    생각을 마친 아셀라가 말했다.

     

    “이 기사들은 써먹을 수 있겠어. 계약으로 묶어놨으니 비무대회 한 번이라면 배신하지도 않을 거고, 이런 기사들은 원래 다루기 쉬우니까.”

     

    아셀라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공자, 뭘 원해?”

     

    “대가라면 그 뒤의 계약서를 승인해주시는 일로 어떠신지요.”

     

    “흐음.”

     

    마스크의 특허권이다.

    일반적인 마스크는 제작해도 상관없다. 내가 제작했던 현대 디자인에 대한 특허만을 신청했다.

     

    “디자인 사용의 개런티를 7대 3으로 제게 분배하는 계약입니다. 3은 월광궁의 예산으로 사용하면 어떻습니까?”

     

    “마스크 말이지.”

     

    아셀라는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는지 뚱한 반응이었다.

     

    “공자, 라우가에게 마스크를 만들어줬다며.”

     

    아셀라가 눈을 부릅떴다.

    꽤 오랜만에 보는 위협적인 눈빛이었다.

     

    최근엔 그렇게 눈에 거슬릴 일도 안 했는데 또 왜 그래.

     

    “들으셨어요?”

     

    “다른 승계권자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건 기본이야. 그런데.”

     

    한층 낮아진 톤의 목소리.

     

    “내 마스크랑 똑같이 생겼더라.”

     

    “사이즈는 달라요.”

     

    마스크 생긴 게 거기서 거기지.

     

    여기서야 내가 만든 게 정품이지만.

     

    …뭐지. 상태창의 확률이 정신없이 바뀌고 있다.

     

     

    [No. 077 : 질투의 화신 14% → 62%]

     

     

    버그라도 났나?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급격하게 바뀌는데.

     

    어느새 가슴팍이 식은땀으로 축축해졌다.

     

    아셀라의 눈치를 살피니 슬슬 따뜻해지던 날씨에 다시 대한파가 몰아친 느낌이다.

     

    “공자.”

     

    “예.”

     

    “라우가에게 마스크를 만들어준 일을 왜 내게 비밀로 했어?”

     

    지금 같이 보고했잖아.

     

    잘못이라면 잘못… 인가?

     

    아셀라와 상의 없이 다른 파벌에게 득이 될 수도 있는 행위로 비춰질 수는 있겠다.

     

    반역으로 받아들이기라도 했나.

    이 어찌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황녀님인지.

     

    아셀라에게 잘 얘기해 놓는다던 라우가의 말을 듣고 안심하던 내가 방심했다.

     

    결과적으로 월광궁 자금줄에도 도움이 됐으니 문제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오해십니다, 황녀님.”

     

    “뭐가? 내가 오해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이미 고집을 피우는 아셀라를 설득할 순 없겠지.

     

    이거라도 먹히면 좋겠네.

     

    나는 왕진가방에서 준비한 물건을 꺼내 아셀라에게 헌상했다.

     

    “이건 뭐야?”

     

    “황녀님의 새 마스크입니다.”

     

    “지금 날 더러 라우가와 같은 걸 쓰라고?”

     

    “다릅니다. 보시면 우측 하단에 저희 월광궁의 문양을 자수로 새겨넣었습니다.”

     

    자수라는 말에 아셀라가 마스크를 뒤집어 확인했다.

     

    “흥.”

     

    콧방귀를 뀌고는 마스크를 펼쳐 바꿔쓰는 아셀라.

     

    시녀장을 시켜 거울을 보고는 비춰진 모습을 둘러본다.

     

    “이 마스크는 몇 개나 있어?”

     

    “오늘 막 만들었습니다. 우선 황녀님이 쓰실 세 장만 준비했습니다.”

     

    “앞으로는 내 전용으로 해.”

     

    “분부대로 해야지요.”

     

    상태창을 슬쩍 확인한다.

     

     

    [No. 077 : 질투의 화신 62% → 14%]

     

     

    휴, 원래대로 돌아왔다.

     

    마스크를 쓰면 얼굴을 확인하기 힘드니 월광궁 소속을 확인하기 쉽게 문양을 박은 샘플을 만들고 있었는데, 먹혀서 다행이다.

     

    간신히 반역 누명은 벗었다.

     

    “아, 황녀님. 왼쪽 줄이 꼬였습니다.”

     

    “그러네. 잠깐, 내가 알아서 고칠게.”

     

    아셀라는 급히 나를 향해 손바닥을 내밀어 거부 의사를 내비쳤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마스크를 고쳐 쓰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홱, 다시 나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공자, 혹시 라우가에게도 마스크 쓰는 법을 직접 알려줬어?”

     

    이글거리는 금빛 마나가 불타오른다.

     

    잘은 몰라도 또 대답을 신중히 골라야겠다고 직감했다.

     

    “그럴 리가요. 이미 익숙하게 쓰시던데요.”

     

    “모르면 씌워주려고 그랬어?”

     

    “제가 설마 다른 황녀님께 그러겠습니까.”

     

    “…그래.”

     

    그제야 아셀라는 모든 의심을 거둔 듯 경계를 풀었다.

     

    화제를 돌려 첫 보고서를 확인하며 무언가 메모장에 적어나갔다.

     

    “숫자가 늘어난 만큼 이번 비무대회의 전략을 대폭 수정하겠어.”

     

    “예.”

     

    “공자, 도움이 될 만한 전략 있어?”

     

    “제게 물으시는 겁니까?”

     

    “응. 고블린 샤먼 토벌도 능숙하게 할 정도라며. 기사를 지휘한 경험은 많지 않아?”

     

    시녀장이 이야기했나.

    업무량을 늘리는 건 질색인데.

     

    “물론 황실 기사단 정도로 체계가 잡힌 기사는 느낌이 다르겠지만, 다른 시선에서 보면 참고가 될까 해서.”

     

    “단체 모의전에서 라우가 2황녀파가 게오르크 2황자파에게 재를 뿌리고 공멸할 예정입니다.”

     

    “…자세히 말해봐.”

     

    아셀라는 기분이 좋아진 듯 악마같이 싱글대며 손등을 턱에 괴었다.

     

     

     

    ***

     

     

     

    “다음으로 아셀라 황녀님, 이동을 준비해주십시오.”

     

    궁정마법사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텔레포트 게이트 위로 올라섰다.

     

    아셀라와 호위기사 둘, 시녀장, 나까지 총 다섯이다.

     

    마법사들이 술식을 그리고 텔레포트 마법을 가동하자 수증기처럼 기화한 마나가 공중에 떠올랐다.

     

    “시전에 들어가겠습니다.”

     

    목적지인 동쪽 산맥 한가운데의 분지는 말을 타고도 이틀은 걸리는 거리다.

     

    때문에 대부분의 병력은 미리 대이동을 마쳐놓고 황가의 핵심 인물만 당일에 텔레포트로 다녀오는 식이다.

     

    텔레포트 마법이 워낙 비용이 많이 들고 어려우니 이 방식도 이해가 간다. 늙은 황제는 장거리 이동이 힘들기도 할 테고.

     

    이렇게까지 해서 꽃놀이를 가야 하나? 싶기도 한데 꼭 가셔야 한다니 어쩌겠어.

     

    내가 제국을 침략하려는 적국이라면 꼭 황궁 방비가 약해지는 이 시기를 노리겠다.

     

    “우웁.”

     

    텔레포트를 마치니 다시 역한 울렁거림이 몰려왔다.

     

    “선생님, 업어드릴까요?”

     

    현장에서 대기하던 타냐가 나를 부축하며 물었다.

     

    평소 표정을 숨기는 타냐지만 이제는 안다.

    지금은 나를 놀리며 즐거워하고 있다.

     

    “됐어. 내가 언제까지고 겨우 텔레포트에 혼 빼놓을 줄 알았어?”

     

    “정말 괜찮아 보이시는군요. 몸 단련을 열심히 하신 모양입니다.”

     

    “물론이지. 하루 두 시간씩 근력 운동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이다.

     

    사실 멀미약을 제조해서 미리 복용했다.

     

    체력은 진짜 키우고 있다. 언제 감소량이 늘어 객사할지 모르는 일이니, 유산소 운동은 가능한 꾸준히 하려 한다.

     

    가능한.

     

    하루는 황궁 안 언덕에서 뛰다가 미치광이풀이라 불리는 약초를 찾았다.

     

    멀미약의 원료인 스코폴라민을 추출할 수 있는 재료였다.

     

    이로서 텔레포트 마법은 극복했다.

     

    “비무대회장에 잘 오셨습니다. 여기부터는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그래. 어디 얼마나 잘 준비되어 있나 구경이나 해보자.”

     

    야외에서 주치의는 반드시 담당 황가 일족 반경 100미터 내에 위치해야만 한다.

     

    나는 아셀라를 졸졸 따라다니며 비무대회장을 둘러보았다.

     

    “산을 통째로 깎아서 무슨 콜로세움을 지어놨네.”

     

    아예 시골까지는 아니어도 제도에서 꽤 거리가 떨어진 지역이다.

     

    황제가 1년에 한 번 놀러 온다는 이유로 이만한 건축물을 지어놓고, 이만한 인원이 이동해 어마어마한 비용을 지출하다니.

     

    이게 제국의 스케일인가.

     

    적어도 내가 직접 본 돈지랄 중에는 최고급이었다.

     

    제국 황제의 삶이란… 대체 뭘까.

     

    “꽃도 엄청 이쁘네.”

     

    산 전체가 마법처럼 옅은 푸른색으로 잔뜩 뒤덮였다.

     

    바닥에서 꽃잎 하나를 주워보니 내가 아는 벚꽃잎과 질감이나 크기는 거의 비슷하다.

     

    대신 물색 베이스에 은빛 가루가 뿌려진 듯 반짝반짝 빛나서 환상적이다.

     

    “은청꽃이라고 하더군요. 기후와 토양 때문에 이 지역에서만 피는 꽃이랍니다.”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경치도 있긴 있었구나.

     

    회귀 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다.

     

    “뭐, 중요한 건 비무대회지.”

     

    아니나 다를까 아셀라는 흩날리는 꽃잎은 아무 관심이 없는지 벌써 콜로세움 안으로 들어가 경기장을 살펴보기 바빴다.

     

    비무대회에서는 몇 가지 방식으로 경기가 진행된다.

     

    마법사들도 나오긴 하지만 주로 기사들의 제전이니 내가 할 일은 그다지 없다.

     

    아셀라 옆에서 열심히 박수 보내는 정도?

     

    비무대회에 출전하는 파벌은 총 여덟이다.

     

    다른 승계권자 네 파벌은 모두 출전하고, 황제의 사촌이나 조카를 포함해 일곱.

    그리고 우리다.

     

    뭐, 이 정도니 총합 순위 3위 정도만 해도 괜찮지 싶다.

     

    여태 두각을 드러낸 적 없던 아셀라의 파벌이니 확실한 인상을 새길 수 있겠지.

     

    “공자.”

     

    “예, 황녀님.”

     

    “오늘 비무대회에서는 반드시 우승하겠어.”

     

    “우승이요. 물론 기사들도 노력하겠습니다만 3위만 해도 충분히….”

     

     

    [No. 012 : 제국의 멸망 35% → 52%]

     

     

    정정.

     

    목표는 우승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킹도현님 10코인 후원 감사해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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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The Doctor Cured The Villainess And Ran Away

주치의는 악녀를 고치고 도망쳤다
Score 3.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coming the physician of the villainess who brought about the world’s destruction, I tried to escape to survive, but the reactions wer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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