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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 * *

       

       

       두마

       

       

       아나스타샤가 백군을 끌고 모스크바에서 출정할 무렵.

       

       신생 러시아 함대 제독 겸, 두마의 임시 의장 알렉산드르 콜차크는 임시 두마를 소집했다.

       

       두마에는 예카테린부르크 시민 대표들, 예카테린부르크에 합류했던 귀족 및, 녹군 대표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본래 다양한 이념과 사상으로 나뉘었던 존재로, 내전 후, 두마에서 신생 러시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할 예정이었다.

       

       즉, 사회주의 국가인지 민주주의 국가인지, 또는 군주제인지.

       

       콜차크는 황녀가 모스크바를 떠난 시점에서 그것을 미리 정하기 위해서 두마를 소집했다.

       

       

       “후일 황녀님께서 페트로그라드로 돌아오시면 다시 소집해서 정하겠지만, 그때 혼란하지 않게 지금 중론을 모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두마를 소집했소.”

       “의장께서는 의제를 알려주시지요.”

       “앞으로 우리 러시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오.”

       “으으음.”

       

       

       의원들의 반응은 너무 갑작스러운 의제라 그런지 당황스러워했다.

       

       예상한 이들도 더러 있었지만, 최근 전쟁만 하면서 개혁에 집중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아마 이 자리에 볼셰비키와는 다르지만 온건한 성향의 사회주의 국가를 바라는 자나, 공화주의자도 있을 것이오. 군주주의자도 있겠지. 허나 의원들도 알고 있을 것이오. 이미 이 러시아는 황녀님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당장 아직은 내전이라 파견되지 않았지만, 몽골이나 북만주 등도 황녀가 계셔서 인정받은 땅이고.”

       “음. 그럼 의장의 뜻은 다시 이전으로 회귀하자는 것입니까.”

       

       

       콜차크가 군주주의자라는 것은 두마의 의원들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최근 아나스타샤가 열심히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으니, 그걸 노려서 다시 구시대의 전제정으로 회귀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아니오. 애초에 황녀님께서도 구시대의 전제정은 바라지 않고 계시니.”

       “그럼.”

       “대러시아 연방. 합중국. 이것이 황녀님이 계획하신 것이오.”

       “합중국이라.”

       

       

       러시아 내의 소수민족들을, 군벌들과 지도자들을 배려하여 합중국으로 돌리자는 것.

       

       적백내전이라는 힘든 시련을 함께 겪은 몸으로 합중국 아래에 새롭게 하나가 되자는 그것.

       

       러시아 합중국 아래에 다양한 민족의 나라가 버무러져 함께 하는 것.

       

       실제로 두마에는 소수민족의 대표까지 진출하여 있으며, 소수민족들이 백군을 지지하게 된 계획이기도 했다.

       

       합중국, 연방.

       

       여기에 콜차크는 한술 더 뜰 생각이었다. 

       

       

       “여기에 우리가 입헌군주제에 따라 황녀님을 차리나로 옹립하는 것은 어떻소?”

       

       

       아나스타샤 황녀의 차리나 옹립.

       

       사실 콜차크가 이 의제를 밀어붙인 이유는 하나였다.

       

       말은 물러나겠다. 뒤로 빠지겠다 했지만, 내전 중에 개혁까지 한 것을 보면 역시 스스로 물러나기에는 좀 미련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망명할 거였으면 진작 해야 했으니까.

       

       황녀는 한편으론 몽골 대칸의 자리까지 겸하게 되었다.

       

       여기서 콜차크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아나스타샤는 누군가 자신을 차리나로 옹립해 주길 바란다고. 부친이 저지른 일이 있으니 스스로 차리나가 되겠다고는 못하고. 누군가가 올려주길 바란다.

       

       콜차크는 아나스타샤의 속을 꿰뚫어 보고 이 의제를 꺼낸 것이다.

       

       물론 개인의 사심이 없다고 볼 수도 없다.

       

       처음부터 아나스타샤의 줄을 잡고 있었고, 황녀가 차리나가 되지 못하고 혹여 다른 나라로 망명하거나 뒤로 물러난다면 자신 역시 똑같이 물러나야 하니까.

       

       권력욕이라든가. 그런 것보다는 그 고생을 했는데, 뒷방으로 물러나는 건 좀 그랬다.

       

       이미 군주주의자로 찍혀 있는 이상 공화국이나 사회주의 국가로 가 버리면 자신이 물러나는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합중국으로 차리나를 옹립한다.

       

       두마의 의원들은 차리나 옹립을 가지고 서로 수군거렸다.

       

       

       ‘뭐 이미 기울어진 거지.’

       ‘이 와중에 황녀가 빠지면 러시아는 다시 분열되고 만다.’

       ‘입헌군주제라 해도 황녀의 명성을 생각하면 한동안 전제정이나 다름없겠구만.’

       ‘이미 황녀가 군부고 민심이고 다 잡았는데. 반발해봤자지.’

       ‘……살리카법은 의미가 없겠지.’

       

       

       남러시아가 합류하지 않은 시점이라면 녹군도 큰소리라도 쳐보겠지만, 남러시아도 합류했고, 군대와 민심을 황녀가 꽉 잡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황녀가 싫다고 들고 일어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렇게 의원자리를 꿰차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저는 찬성합니다.”

       

       

       가이다 장군과 함께 모스크바 수비를 돈 공화국의 크라스노프를 시작으로 캅카스 백군 지도자 바실리 하를라모프 및 백군 지도자, 사회주의 성향의 녹군지도자 까지 찬성했다.

       

       

       “살리카법은 괜찮습니까?”

       

       

       한 의원이 살리카법을 꺼내와 모두의 눈총을 받는 일도 있었지만, 그건 가볍게 넘어갔다.

       

       결국 만장일치로 전후에 신생 러시아는 입헌군주제, 합중국으로 자림하게 되었다.

       

       물론 말이 합중국이지. 사실상 러시아 제국 시즌2였다.

       

       

       * * *

       

       

       페트로그라드

       

       

       “차리나께서 친히 모스크바를 점령하셨다! 이제 우리가! 대러시아제국군이 페트로그라드를 점령해 차리나께 바치자!”

       

       

       유데니치의 군대는 핀란드의 지원에 힘입어 페트로그라드 함락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트로츠키와 함께 증원되기 시작한 볼셰비키가 만만치 않은 세를 과시하면서 페트로그라드의 방어선이 단단해졌다.

       

       

       “반동들을 끝까지 막아라! 혁명의 도시 페트로그라드를 반드시 사수하라!”

       

       

       거의 함락 직전까지 갔었으나, 페트로그라드는 트로츠키가 다시 구심점이 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무려 혁명의 도시다.

       

       혁명이 일어나나 도시가 저런 반동에게 점령당할 수 없었다.

       

       트로츠키는 결사적으로 페트로그라드를 방어했다.

       

       당장 모스크바에서도 백군들에게 어이없이 무너져 레닌 동지를 두고 와야만 했는데. 여기서도 밀릴 수 없었다.

       

       트로츠키의 결사적인 방어로 유데니치의 공세는 실패했다.

       

       휘하에 있는 파벨 베르몬트의 서러시아군도 피해를 수습하느라 유데니치를 도울 수 없었다.

       

       

       “젠장. 핀란드 군사령관께서는 뭔가 방법이 없으시오?”

       “음, 아무래도 어렵겠지요. 핀란드에서 내전이 일어나지 않아 진작 페트로그라드를 압박할 수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진작 유데니치를 도왔으면 모르겠는데, 만네르헤임 혼자 돕고 싶다고 해도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이번에도 차리나가 제안한 덕에 잘 풀린 거지. 

       

       와아아아아아!

       

       

       “무슨 일인가?”

       “아나스타샤 차리나께서 대군을 끌고 오셨습니다!”

       “차리나께서?”

       

       

       모스크바에서 빨갱이들을 도륙 낸 차리나가 직접 대군을 끌고 왔다.

       

       20세기에 군주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온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포성이 빗발치고 피바다가 될 장소로 차리나가 직접 군을 끌고 온다.

       

       물론 차리나의 부친인 니콜라이 2세도 최전선으로 나아가 전투를 지휘했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달랐다.

       

       한참 드레스를 입고 하하 호호 웃으며 남편과 혼인하고 아내가 되어야 할 황녀가 군복을 입고 몸소 군대를 이끌고 오는 것.

       

       라스푸틴이 있던 그 시절과는 달랐다.

       

       혁명파에 가담하며 황실을 배신한 자들이 혁명을 일으키던 시기와 달리 많은 이들이 차리나를 따른다.

       

       페트로그라드를 포위한 백군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이 끌어 올랐다.

       

       

       * * *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볼셰비키는 서방공세를 펼치던 적군까지 대부분 끌어와 모스크바 방어전에 투입했다.

       

       물론 대다수는 죽거나 또 항복했고, 서방공세에 남은 적군은 끽해야 소수에 불과했다.

       

       이들은 공격하는 족족 항복하거나 무너져 내렸다.

       

       물론 골수볼셰비키들도 꽤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어차피 그들은 나만이 아니라 서방공세를 하는 브루실로프가 알아서 쥐어패고 있으니까.

       

       

       “하나님, 전러시아의 복된 성녀를 보우하소서!”

       “하나님. 차리나를 보우하소서!”

       

       

       참으로 아쉽다.

       

       나는 입맛을 다셨다.

       

       차라리 레닌도 스탈린도, 붉은 군대 지휘부, 소련 그 자체가 그냥 페트로그라드에 있었으면 혁명의 도시를 박살 내는데, 더 상징성이 있었을 텐데.

       

       이게 좀 아쉽긴 해.

       

       혁명의 도시가 이제 그냥 일개 적군에게 점령된 도시에 불과하니까.

       

       

       “적군은 얼마나 있습니까?”

       “정확한 병력은 모르지만, 수만 명은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수만 명이라. 모스크바 전투보다는 쉽겠지.

       

       탈환한 영토에 치안 유지를 이유로 남겨둔 백군을 제외하고 내가 끌고 온 군대만 해도 페트로그라드를 뒤엎을 만큼은 된다.

       

       물론 결사적으로 저항하면 이쪽도 피해를 좀 보겠지만, 그래 봤자 패잔병일 뿐이다.

       

       이쪽에 저항할 수록 백군은 볼셰비키에 대한 증오와 분노심만 더 끌어 오를 뿐.

       

       과연 항복 제안하면 트로츠키가 받아들일까?

       

       그 골수 빨갱이는 받지 않겠지.

       

       

       “수만 명이라.”

       “이대로 공세를 펼치시지요.”

       

       

       유데니치는 이를 갈고 있었는지. 공격을 재촉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바로 공격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페트로그라드는 고립되어 있다.

       

       트로츠키 혼자 이를 악물고 버틴다고 해도 부족한 무기가 보급되고 단점투성이인 모신나강이 표도로프 소총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전차와 비행기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먹을 건 당연하지.

       

       안 그래도 볼셰비키에 대한 불신만 차오르던 시민이 과연 트로츠키를 버릴 수 있을까.

       

       아니면 혁명의 도시답게 트로츠키를 붙들고 늘어질까.

       

       이건 또 궁금하다.

       

       

       “적어도 한때는 내 아버지의 신민들이었던 자들입니다. 포위하고 며칠은 시간을 줍시다. 그래야 조금은 자비롭게 보이겠죠.”

       

       

       며칠 시간은 줬다.

       

       당연하게도, 정말 놀랍게도 트로츠키는 항복제안에 철저히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여기에 다시 페트로그라드 시민들에게 트로츠키와 그 일당들을 가져다 바치면 전투는 없을 거라는 삐라까지 뿌렸다.

       

       그 결과는? 철저한 무시였다. 

       

       기어이 피를 보자는 것이다.

       

       아니면 죽을 땐 죽더라도 나한테 러시아제국의 수도는 멀쩡히 넘기지 않겠다 그런 의미일 수도 있고.

       

       나는 분명히 기회를 줬다.

       

       그 기회를 저버린 것이 페트로그라드의 빨갱이들이다.

       

       골수 빨갱이만 있다고 봐야겠지.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참아왔지만, 나는 빨갱이들을 증오한다.

       

       그저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던 내 세상에서 핵전쟁을 일으키고 세상을 파괴한 더러운 놈들.

       

       말로만 들으면 이상론을 펼치면서 탄압과 폭압으로 이루어지는 정치.

       

       모든 이가 평등해지자면서, 정작 독재자를 섬기는 가식 그 자체 바퀴벌레 같은 놈들.

       

       이 세계에서 가족들이 총살당한 아나스타샤의 감정까지 한데 어우러져 혐오감이 극도로 끌어 올랐다.

       

       난 분명히 항복하라고 했다?

       

       항복하지 않은 것은 저놈들이다.

       

       

       “나는 분명히 저들에게 기회를 줬다. 하지만 저들은 무시했다. 그런 내가 저들을 용서해야 하는가.”

       “아닙니다.”

       “저들은 아직도 붉은 역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저들에게 나는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치료해주려고 한다. 반대하는 자가 있나?

       “저들 볼셰비키에게 죽음을!”

       “처절한 응징을!”

       

       

       백군의 지휘관들은 만장일치로 조지자는데 찬성했다.

       

       오랫동안 볼셰비키와 싸운 백군이다.

       

       혁명 때 참여하지 않고 볼세비키와 싸우겠다고 들고 일어난 이들이 볼세비키 토벌에 반대할 리 없었다.

       

       

       “모스크바는 붉은 역병의 중심지로 더러워지긴 했지만, 항복하고 한때 제3의 로마만큼은 못해도 새로운 러시아의 일원이 될 것이다. 하지만 페트로그라드는 아니다.”

       

       

       그러니까 용서할 수 없다.

       

       혁명의 도시로서 마지막까지 남겠다면 철저하게 뿌리 뽑는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백군 지휘관.

       

       안톤 데니킨과 브루실로프, 운게른은 볼셰비키에 대한 서방 공세를 벌이며 잔당을 소탕하고 있으니 이들은 제외하고.

       

       표트르 브란겔, 드로즈돕스키, 니콜라이 유데니치, 크라스노프, 페필랴예프. 등. 여기에 핀란드 육군 사령관으로 온 만네르헤임까지.

       

       나는 그들을 훑으며 분명히 선언한다.

       

       

       “오늘부로 페트로그라드는 러시아 역사에서 사라진다. 상트페테르부르크란 이름도, 러시아 제국의 몰락과 혁명을 상징하는 저 붉은 도시를 삭제한다. 모든 야포와 전차, 전투기를 동원하라. 한때 차르가 살았던 곳이라고 절대 봐주지 마라. 너희의 차리나인 내가 용인한다. 철저하게 파괴하라. 아직도 지들 세상인 줄 아는 듯 착각하는 볼셰비키를 뿌리 뽑아라.”

       

       

       혁명의 도시가 되어 그 누구보다도 차르정을 불신하고 혁명의 상징을 넘어 골수볼셰비키의 성지가 되어 버린 저곳, 페트로그라드.

       

       혁명을 뿌리 뽑기위해, 그곳을 철저하게 파괴한다.

       

       

       “““예!”””

       

       

       페트로그라드의 골수 볼셰비키들 따위에게 발이 묶일 수 없다.

       

       아직 러시아 전역에 남아 있는 빨갱이 불씨들이 들고 일어나지 못하도록.

       

        저 혁명의 상징을 철저히 파괴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마 백계 러시아의 발전은 아나스타샤의 지식이 있으니, 소련과는 많이 다를 거 같습니다.

    물론 이반 파블로프 같은 학자들은 그대로 있을 예정이지만. 실제 역사와 달리 니콜라 테슬라가 아나스타샤에 의해 러시아에서 굴려질 예정이라 과학 발전이 실제 역사와 다를 수 있습니다.

    작품내에서는 에디슨에 밀려난 니콜라 테슬라가 러시아에서 성공해서 과학 테크트리가 바뀌는 대체역사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비공개님 이번 작품 첫번째 후원 10코인…! 매우 감사합니다!

    선작, 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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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Status: Ongoing Author:
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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