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5

       

       

       “···?”

       

       

       이곳의 모두가 두 눈을 의심했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엄청난 속도였으니까.

       

       섬광처럼 내달린 아멜리아가, 화려하게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을 휘날리며 쇄도했다.

       

       하지만 빌런들과 시우가 놀란 점은 그게 아니었다.

       

       아니, 물론 그 엄청난 속도에도 놀라긴 했지만···.

       

       분명히 아멜리아는 자신의 무기로 빌런을 찔렀다.

       

       ···찔렀는데?

       

       왜 상처가 없지?

       

       

       “아, 너 생각보다 튼튼하네. 왜 이렇게 두꺼워?”

       

       “죽어라아아아아아!”

       

       “꺄아악?!”

       

       -콰아앙!

       

       

       그 육중한 몸을 십분 활용해 아멜리아를 향해 손을 내려찍는 빌런.

       

       그러나 이미 아멜리아는 비명을 지르며 자리를 벗어났고, 애꿎은 땅만 파이며 흙먼지가 일어났다.

       

       분명히 빠르다.

       

       ···빠르긴 한데. 왜 공격이 안 먹혔지?

       

       

       “진짜 짜증 나네! 왜 저렇게 튼튼해?!”

       

       “···알겠다. 너, 속도에 대가가 필요하군.”

       

       “그, 그거 한 번으로 눈치채? 너 좀 똑똑하구나?”

       

       

       대가가 필요하다고?

       

       도대체 무슨···?

       

       

       “속도가 빠르면 공격이 강해져야 하건만, 충격이 가해지지 않았어. 능력을 쓰면 쓸수록 빨라지지만, 힘도 약해지는군. 네 아비가 잡을 수 없었다는 것도 이제 이해가 간다. 대가가 너무 커.”

       

       “하아. 그래, 맞아.”

       

       

       약해진다고?

       

       그 말에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자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손에 쥐고 있던 창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무거운 걸까?

       

       분명 힘들어도 창은 곧게 세우던 그녀였는데.

       

       창의 끝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해. 왜 도망치지 않지? 네 말과는 다르게 장기전에 유리한 능력은 절대로 아니다. 허세였어.”

       

       “아, 아하하. 허세까지 들켰어? 나 연기 못하나? ···으음, 잘 모르겠네.”

       

       “너를 잡지는 못할지언정, 너도 상대를 잡을 수 없을 텐데? 네가 도망치면 잡을 방법이 없는 우리는 끝이다. 왜 도망가지 않는 거지?”

       

       “아니, 취소. 생각보다 멍청한 빌런이었네.”

       

       “무슨 뜻이지? 나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의문을 표하는 간부의 말에, 아멜리아가 나를 향해 웃으며 소리쳤다.

       

       

       “친구를 버려두고 도망가는 녀석이 영웅을 목표로 할 수 있겠냐, 멍청한 놈!”

       

       “···.”

       

       “그랬다가는 정말 아빠한테 맞아도 할 말 없을 거야!”

       

       

       당당하게 웃는 모습에 시우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영웅이다. 시우가 목표로 하던 영웅.

       

       그 영웅의 편린이 아멜리아에게서 보이고 있었다.

       

       분명히 그녀는 과격한 방식을 선호한다.

       

       그녀의 어처구니없는 계획에 휘말리면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그녀도 영웅 지망생.

       

       영웅이 되기 위해 아카데미에 입학한 아멜리아는 그녀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를 도와야 해.

       

       아멜리아의 말대로, 영웅은 친구를 버리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떻게? 아니, 생각하지 말자.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따질 시간은 없다. 해야 할 뿐.

       

       선배를 지키느라 피할 수 있던 공격을 여러 번 맞아 온몸이 저렸다.

       

       여태껏 피할 수 있는 공격은 전부 피했기 때문일까? 고통에 익숙하지 않아 신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상관없어.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협회와 경찰을 기다리며, 또 선배를 지켜야 한다. 심지어 강함을 알 수 없는 간부와 아까보다 강해 보이는 졸개들이 상대다.

       

       상관없어.

       

       아멜리아가 능력을 너무 많이 사용한 나머지 상대방에게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없는 수준까지 약해졌다. 어쩌면 아멜리아도 지켜야 할 수도 있겠지.

       

       상관없어.

       

       그런 건 모두 상관없었다.

       

       위험에 처한 동료를 버리는 건 영웅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니까.

       

       내가, 어떻게든 해야만···!

       

       

       “···하. 학생들 주제에 정의심은 투철하군. 좋은 걸 알려주지. 너희들의 그건 만용이야. 죽으면 친구고 뭐고 없다.”

       

       “그런 건 상관없어. 지금 여기서 도망가면 패배자가 될 뿐이잖아?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친구를 살린다. 그렇게 정했다고.”

       

       “그런가. 그럼 죽어라. 미안하게 됐군. 이것도 살기 위한 일이라서.”

       

       

       하지만 멀었다.

       

       너무나도 멀었다.

       

       이 빌런들을 모두 쓰러트리고 아멜리아를 도와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너무 멀었다. 불가능하지는 않아.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이길 수 있다. 확신할 수 있어. 저들은 내게 상처를 입히지 못한다.

       

       지금껏 입은 상처는 모두 움직이지 못하는 선배를 대신해 방어하기 위해 생긴 상처야.

       

       하지만 빌런들을 모두 잡아도 시간이 모자랐다.

       

       시우의 능력은 직감. 회피에 치중된, 방어적인 능력.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여러 명과의 싸움은 필연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는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었다.

       

       아멜리아만큼은 아니더라도, 강화계 능력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어휴, 왜 내가 이런···. 아, 알아요. 안다구요. 제 실수인 거.”

       

       

       터벅, 터벅.

       

       싸우는 와중에도 경쾌한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여태껏 잊고 있었던 목소리.

       

       

       “아, 아르테···?”

       

       “네, 시우 군. 아르테 이시스랍니다. 힘들 때는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친구를 불러볼까요!”

       

       

       마치 집 앞 공원에 산책을 나오듯 그녀가 나타났다.

       

       온몸에 풍기는 피 냄새와 함께.

       

       

       “너, 누구지? 설마···.”

       

       “아아. 이게 이렇게 되나? ···으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아, 이게 좋겠다.”

       

       

       도대체 어디에 다녀왔다가 이제야 왔는지.

       

       설마 네가 꾸민 일인 건지.

       

       묻고싶은 게 산더미 같았지만, 지금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시우의 얼굴에 안도감이 번져 나왔다.

       

       그녀는 우리가 이런 곳에서 죽기를 원하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닌 아르테 찬스에요!”

       

       “빨리 공격해! 어서!”

       

       

       우드득.

       

       그런 소리와 함께, 빌런들의 목이 순식간에 꺾였다.

       

       

       

       ***

       

       

       

       하아, 너무 기대했다.

       

       유시우가 저번 대련 때 내 실을 전부 피했고, 이 녀석들은 피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선배가 변수였다.

       

       아니, 생존을 위한 인형들의 발버둥을 얕본 건가?

       

       완벽한 기습에 유시우는 반응했지만, 아멜리아는 반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탓에 그녀를 감싸다 선배가 순식간에 리타이어.

       

       짐짝이 생긴 유시우가 회피하지도 못한 채 위험에 몸을 들이밀다가 다치고.

       

       아멜리아는 완성형 히로인인줄 알았더니 페널티가 덕지덕지 달린 게 무슨 나를 보는 줄 알았다. 동질감 장난 아니었어.

       

       그녀의 능력은 알고 있었지만 상세한 내용은 굳이 확인하지 않았던 내 잘못이다. 아니, 가속이라길래 빨라지는 게 전부인 줄 알았지.

       

       저거 물리법칙을 무시한 거 아니냐는 질문에 작가님이 뭐라고 대답했더라.

       

       마나도 있고 능력도 있는데 무슨 상관이에요! 였나? 할 말이 없네.

       

       아니 그래도 저건 아니잖아. 싸울수록 공격력은 약해지지만, 속도가 빨라지는 건 무슨···.

       

       등가교환이냐고. 힘이 빠지는 양보다 속도가 늘어나는 양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데미지가 안 들어가면 의미 없잖아.

       

       유시우도 그렇고, 아멜리아도 그렇고. 둘 다 기초 스펙이 받쳐주면 괴물 같겠지만, 지금은 빌빌대는 게 딱 대기만성형을 보는 느낌이었다.

       

       코인이 언젠가 떡상할거라며 붙들고 있는 사람도 아니고 이게 뭐야.

       

       거참, 작가님은 페널티를 너무 좋아한다니까.

       

       그 와중에 유시우만 페널티 없는 건 주인공 버프야? 화나네.

       

       

       “네년! 처음부터 죽일···컥?!”

       

       “어라. 갑자기 말을 멈추시다니. ···무슨 문제 있으신가?”

       

       

       어허.

       

       어딜 감히 주인공 앞에서 헛소리하려고.

       

       그 냄새 나는 입으로 이상한 말을 하면 안 되는 거 알면서?

       

       목을 꺾어버리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주인공에게 양보하기로 했다.

       

       

       “자아, 시우 군. 당신의 차례입니다.”

       

       “나, 나···?”

       

       “네에. 저는 다른 사람이 다 잡은 사냥감을 가로채는 취미는 없어서. 거의 다 잡으셨잖아요?”

       

       

       헛소리다.

       

       잡기는커녕 다가가지도 못해 아멜리아는 죽을 위기였으니까.

       

       유시우가 이긴다 한들, 주·조연 두 명이 죽어버리는 건 문제가 컸다.

       

       그래서 개입한 거고.

       

       하지만 여기서 내가 간부까지 잡아버리면 조금 그렇잖아.

       

       이런 건 주인공이 잡아줘야 폼이 살지.

       

       아르테 찬스도 한계는 존재하는 법이다.

       

       

       “···그래. 뭘 하고 왔는지는 나중에 듣겠지만, 고맙다고 해 둘게.”

       

       “별 일 아니었는데요. 뭐, 그러시죠.”

       

       

       아.

       

       혹시 까먹어줬을까 약간 기대했는데.

       

       그런 건 없는 모양이네.

       

       하여튼 머리만 좋아서는.

       

       어떻게 변명을 해야하지?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했다.

       

       

       “···후우, 간다!”

       

       [오오, 직관! 최고에요! 합법적으로 주인공의 활약을 지켜볼 수 있는 찬스!]

       

       

       생각해보니 그렇네.

       

       작가님의 기쁜 듯한 표정이 상상되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수확이 없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아멜리아의 모습을 보고 감명받았다는 표정을 짓던데.

       

       영웅으로서의 마음가짐 같은 게 조금이라도 잡혔다면 좋겠네.

       

       

       

       ***

       

       

       

       “씨발, 씨발···! 진짜 재수 옴 붙었네!”

       

       

       미끄러진다고 느껴질 정도로 빠른 속도로 산을 타고 내려갔다.

       

       전신은 이미 피투성이에, 상처 나지 않은 곳은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언제 그 미친년이 따라붙을지 모르니까!

       

       

       “후윽, 후윽···!”

       

       

       운이 좋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년이 나를 죽이지 않고 그 남자애랑 싸움을 붙였으니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었다.

       

       어쩌면 우리를 공격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오히려 그게 다행이었다.

       

       나, 모르모의 특기를 발휘할 시간이 주어졌으니까.

       

       그 여자가 학생들에게 자신이 벌인 짓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모양이었기에 잠자코 따라줬다고.

       

       그리고 방심한 틈을 타서, 학생이 휘두른 검의 끝부분에 목을 들이밀어 목걸이를 찢어버렸다.

       

       그제야 이미 뒤져버린 부하들을 뒤로한 채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런 행동을 벌일지는 몰랐는지, 당황하는 모습에 실소가 배어 나왔었지.

       

       언제나 살아남는 자가 강한 법.

       

       그리고 나는 오늘도 살아남았다.

       

       

       “죽는 줄 알았네. 도대체 뭐 하는 년이야?”

       

       

       다른 지부로 가면 저 미친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야한다.

       

       얼굴은 또 기억나지 않지만, 주변 학생들의 얼굴은 확실히 새겨놨다.

       

       그 녀석들 주변에 돌아다니는 놈이 범인이겠지.

       

       앞으로 밤길 조심해야 할 거다.

       

       

       “···? 뭐야, 살아남은 놈이 있었나? 이봐, 괜찮나?”

       

       

       산의 입구 부근에 늑대의 귀와 꼬리를 한 여자가 계단에 걸터앉아있었다.

       

       부하 중 한 명인가.

       

       다행히 살아남은 녀석이 있었나 보군.

       

       그 자식, 인정사정없던 것치고는 생각보다 허술했다.

       

       

       “괜찮아 보이는군. 명령이다. 빨리 이동수단을 구해···컥?!”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미안해. 명령이라서. 이곳에서 나오는 놈은 아무도 없어야 해.”

       

       

       마르모는 그제야 옷에 가려졌던 그녀의 목을 바라볼 수 있었다.

       

       ···허술하긴 개뿔이.

       

       애초에 아무도 살려둘 생각이 없었군.

       

       

       “하, 진짜. 오늘은 재수가, 더럽게, 없, 어.”

       

       

       땅을 기며 살아오던 쥐의 최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실 물리적으로 따지면 힘이 세고 근육이 많은 사람이 빠른건 당연한겁니다.

    게임처럼 민첩 높다고 공격력 낮추기는 커녕 공격력 높은 사람이 민첩도 높아요. 내구도 높고.

    하지만 마나와 능력이 개입한다면 어떨까?

    다음화 보기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