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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

        

       돌덩어리는 자신의 정체가 탄로가 난 것을 깨달았는지 평범한 돌덩이인 척하는 것을 그만두고 신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양이 너무 많아 유형화(有形化)되어버린 신력은 밝은 빛을 연상케 하며 점차 본전을 밝히기 시작했고, 그 빛은 점차 밝아지며 한군데로 모여 형상을 이루었다.

         

       그리고 마침내 빛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개의 형상을 이루었으니.

         

       그 이름이 바로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むくりこくりの犬神).

         

       사이고 가문이 대대로 모셔오던 신체(神體)이며, 진성의 존재를 느끼자 제 한 몸 구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몸을 숨겼던 비겁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 무쿠리코쿠리노이누가미.”

         

       진성은 그것을 보며 그 신체의 이름을 세 번 중얼거렸다.

         

       “참으로 길기도 하구나. 다만 그 이름으로 어찌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몸을 숨겼는지, 어찌 네가 나를 두려워하고 차마 목을 물어뜯지 못하는지 알았다.”

         

       [ 크르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처음부터 이렇게나 운이 좋을 줄이야!”

         

       진성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무쿠리코쿠리의 견신. 무쿠리코쿠리가 가져온 번견(番犬). 오랜 시간 동안 신앙을 받아 처먹으며 사냥개로서의 본분조차 잊어버린 가련한 짐승아. 그런 주제에 본능에 따라 주인의 핏줄에 차마 해를 끼칠 수 없는 사냥개야.”

         

       과거.

       

       수십 년이 아닌, 수백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과거.

         

       몽골과 고려가 있었다.

         

       몽골은 해안을 주기적으로 침범해서 약탈하는 왜구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결국 참다못해 원정군을 꾸렸다. 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친 몽골은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었고, 왜국 역시 손쉽게 정벌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친 만큼 그 힘이 분산된 바, 그들은 자신에게 속하게 된 고려에 압력을 주어 원정에 참여하게 했으니 그것이 바로 여몽 연합군이었다.

         

       그들은 치열한 전투 속에서 갈고닦은 전투 기술과 여러 나라에서 흡수해서 발전시킨 전투 병기를 통해 손쉽게 일본군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거기다가 몽골은 각국에서 수집한 주술을 총망라해 정리하면서 온갖 부산물을 획득할 수 있었고, 부마국인 고려와 그것을 나누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그들은 일본을 말 그대로 쑥대밭으로 만들고 다녔다.

         

       수레바퀴보다 큰 사람은 모조리 죽였다.

       성에 틀어박히면 우회해서 주변을 싹 정리하고 안에 역병을 퍼뜨렸다.

       곡창지대에는 불을 지르고 소금을 뿌렸으며, 물이 보이면 오물을 퍼붓고 부패의 주술을 건 시체를 던졌다.

         

       몽골과 고려의 조합은 끔찍했다.

       전사들의 손발도 상당히 잘 맞았지만, 특히 그들이 데려온 몽골의 주술사와 고려 주술사의 힘은 항거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전력 차를 만들어냈다.

         

       몽골의 주술사는 사슴의 머리와 맹금류의 날개를 뜯어 옷으로 만들고 다녔는데, 그들은 그것으로 전사들에게 주술을 걸어주었다. 그들의 주술을 받은 전사는 사슴처럼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독수리처럼 강한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며, 올빼미처럼 밤에도 대낮같이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뿐이랴? 그들의 주술을 받은 말은 늑대처럼 다른 동물을 물어뜯고 피를 마시기를 주저하지 않게 되었고, 무리 지어 움직이며 사람들을 사냥하는 맹수가 되었다.

         

       고려의 주술사는 방술(方術)과 무고(巫蠱)에 일가견이 있었다. 고려의 주술사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주술재료를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며 주술을 걸고 다녔다. 그들은 전사와 주술사가 주술에 해를 입지 않도록 방어 주술을 걸어주었고, 적의 지휘관이 있으면 무고를 이용해 저주를 걸어 암살하고 다녔다.

       거기다 초토화한 지역에 다시 군사가 뭉치지 못하도록 주물(呪物)을 만들어놓았는데, 그 형상이 머리에 못이 박힌 나무인형의 모습이었다.

       그 인형이 자리한 곳에서는 반드시 죽는 사람이 생겨났고, 그 죽음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형태였던 바 왜국의 사람들은 그 끔찍한 저주를 두려워하며 그 땅에 감히 머무르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의 파죽지세도 얼마 가지 못했으니, 이는 자연의 뜻이라.

         

       당시 왜국에서는 신푸, 그리고 훗날에는 가미카제라고 불릴 거대한 태풍이 여몽 연합군에게 커다란 피해를 줬다. 이 태풍은 여몽 연합군이 더 이상의 진격을 그만두고 돌아오게 했으며, 이후 다시 왜국에 쳐들어갔을 때도 다시 찾아오며 그들의 원정을 포기하게 했다.

         

       하지만 그들이 준 공포는 그대로 자리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게 되었다.

         

       몽골 고구려.

       모쿠리 코쿠리.

       무쿠리 코쿠리.

         

       여몽 연합군이 준 공포는 무쿠리코쿠리라는 이름의 요괴이자 귀신으로 변했고, 말 안 듣는 아이에게 ‘말 안 들으면 무쿠리코쿠리가 와서 잡아간다!’라며 겁을 줄 정도로 왜국 사람들 모두에게 퍼진 근원적인 공포가 되었다.

       혼과 백으로 인해 일본 곳곳에 귀신이 출몰하고, 나중에는 백귀야행(百鬼夜行) 현상까지 일어나며 온갖 귀신들의 땅이 되는 와중에도 무쿠리코쿠리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무쿠리코쿠리를 두려워했다.

         

       왜국이 일본으로 이름이 바뀌고, 일본이 조선을 먹고, 세계대전에서 패망하고 다시 부를 쌓아 지금의 현대 일본이 되기까지.

         

       그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실체가 없기에 벗어날 수 없는 공포가 되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으냐.”

         

       그것은 어쩌면 실체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일본 사람들은 에너지 열돔이 만들어낸 부작용으로 인해 두려운 존재, 악령과 악귀와 더불어 사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길을 걷다 보면 족제비의 형상을 한 악귀가 보이지 않는 칼날로 사람의 몸에 상처를 내고 다녔고, 뿔이 난 거대한 악귀가 사람을 몽둥이로 곤죽을 만들고 다녔다. 기녀의 몸에 깃들어 육체를 변이시키는 악령들이 판을 쳤으며, 물건에 깃들며 사람을 홀리고 저주를 내리는 것들이 사방에 속출하고 다녔다.

         

       악귀는 흉포했고, 악령들은 기괴했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으며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그것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인들은 그들에게 이름을 붙이며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조롱하고 우습게 여기며 그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으며,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주술을 이용해 그들을 퇴치해가며 한낱 이야깃거리로 전락시켰다.

         

       그 방법은 꽤나 효과가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것들은 현대에는 창작물에서나 소비되는 존재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무쿠리코쿠리는 아예 실체가 없기에 그들은 함부로 이름을 붙이고 전락시킬 수 없었고, 오직 형언할 수 없는 공포만이 감도는 존재이기에 퇴치조차 할 수가 없었다.

       잊고 싶어도 그들의 유전자와 무의식에 각인된 그것들은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으니….

         

       그리하여 일본인은 또 다른 해결책을 만들어냈으니, 그것이 바로 숭배였다.

         

       이해할 수 없는 공포를, 이해할 수 없는 초상의 존재. 즉, 초월종과 같은 위치로 만들어 그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해할 수 없다면 숭배로 공포에서 벗어나겠다는 그들의 의지는 대단했다.

         

       그리하여 일본 곳곳에 무쿠리코쿠리 신앙이 만들어졌다.

         

       어떤 곳에서는 무쿠리코쿠리를 기리는 노래를 만들어 찬양했다.

       그것은 못코 자장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사람들이 공포를 이겨내고 잠을 잘 수 있게 해주었다.

         

       어떤 곳에서는 사람 대신에 자신을 잡아갈 인형을 만들고, 인형을 가져가는 대신 풍어(豊漁)를 주기를 기도했다.

       이것은 현대에 이르러선 무쿠리코쿠리 인형이라 불리며 축제에 쓰이는 물건이 되었다.

         

       어떤 곳에서는 그 공포에 비례하는 전능함에 기대기 위해 점을 치는 주술로 만들었다.

       그것은 이름하여 콧쿠리상.

       과거에는 고구려를 뜻하는 한자를 넣어 콧쿠리상(高句麗さん)이라고 불렸으며, 일제강점기 이후 내선일체의 일환으로 동물의 이름으로 대체해 콧쿠리상(狐狗狸さん)이라 부르는 주술이 되었다.

       이 주술은 한국에서는 분신사바라는 이름으로 퍼져나갔고, 규칙의 소실과 변경으로 인해 점술이 아닌 강령술로 변질되었다.

         

       [ 크르르르르! ]

         

       그리고 어떤 곳에서는 여몽 연합군이 가져온 무고를 신으로 모셨으니.

       그것이 바로 진성의 앞에서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는 신체(神體)였다.

         

       “한낱 무고에 깃든 동물령으로서는 과분할 정도의 힘을 쌓았다. 다만 수백 년이 흐를 동안 요선(妖仙)의 경지에도 도달하지 못하였으니, 나에게 쓰이게 된들 원한이 없으리라.”

         

       진성은 이를 드러내면서도 자신에게 덤비지 못하는 개를 보며 웃었다.

         

       “타성에 젖은 짐승아, 초월에 도달하지 못한 반푼이야. 내 선물을 받거라.”

         

       쿠웅!

         

       그는 힘차게 발을 굴렀다. 그것은 단순한 발 구르기였음에도 방울 소리처럼 거대한 진동과 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며 본전을 뒤흔들었고,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문짝을 뒤틀고 기둥을 휘게 했다.

         

       [ 크와아아앙! ]

         

       쿠당탕탕!

         

       본전이 흔들리자 개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공중으로 던졌다. 등대의 불빛이 형상을 이루며 활공하듯 허공을 훨훨 날며 뛰어나간 개는 뒤틀린 문짝에 몸을 부딪쳐 밖으로 나섰다. 문짝은 종이라도 되는 것처럼 손쉽게 박살이 나버렸고, 개는 가뿐하게 밖으로 나와 도망을 쳤어야…했지만.

         

       [ 컹? ]

         

       개가 도망칠 곳은 없었다.

         

       개의 눈에 보이는 것은 검은 하늘.

       대낮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새까맣게 변해버린 하늘이었다.

         

       새까맣게 물든 하늘은 땅에까지 내려앉아 돔의 형태로 신사를 동그랗게 감싸며 공간을 격리했으며, 태양의 빛을 철저하게 차단하며 신사 전체를 어둠에 내려앉게 하고 있었다.

       몸을 구성하고 있는 빛으로 밝힌다 한들 어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바.

         

       콰—아아아아—

         

       검은 하늘은 굉음으로 불쌍한 신에게 말했다.

         

       네가 도망칠 곳은 없다.

       너는 사냥개가 으레 그러하듯 같은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영성을 얻었다면 외부에 관심을 보였을 것이고, 외부에 관심을 보였다면 이것을 필시 눈치챘을 터. 이 모든 것은 네 게으름으로 비롯된 일이로다.”

         

       진성은 그리 말하며 작은 방울을 손톱으로 튕겼다.

         

       애—————–앵!

         

       방울 소리.

       하지만 아까의 청명한 소리와는 다른, 가늘고 거슬리는 소리.

       칠판을 철사로 긁어버리고 매끄럽고 단단한 돌덩이가 공명하듯 사람의 솜털을 곤두서게 하고 소름이 돋게 만드는. 울려 퍼지는 사이렌을 높이고 또 높이고 높여 인간의 청력의 한계점을 넘을락 말락 하게 만들어버린 듯한 듣는 것만으로 섬찟하게 만드는 소리.

         

       귀를 자극하고 뇌를 일깨우는 소리는 아까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소리를 들은 검은 하늘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늘을 가리는 장막이 삭아가기라도 하는 듯 곳곳에 작은 구멍이 생기며 태양 빛을 내려주었고, 구멍이 송송 뚫린 치즈처럼 변해가며 물결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점차 거리를 좁혀가며 개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빛을 발하는 개의 눈에는 그것이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늘이 무너져서 자신을 덮치는 것으로 보였고, 어둠의 장막이 파도로 변해 자신을 덮치는 것처럼 보였다.

       과거 주술사의 손에 들려 넘실거리는 파도를 타고 이동해왔던 기억이 떠올랐으며, 어둠이 내려앉은 세상에서 바닷물로 만든 손이 자신을 잡기 위해 손을 뻗다가 부서지기를 반복했던 그때의 악몽이 개의 뇌리에 떠올랐다.

         

       [ 크와아아아앙! ]

         

       개는 과거의 그 기억에 울부짖으며 신력을 사방으로 퍼뜨렸으며.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검은 하늘.

       아니.

       신사를 검게 물들일 정도로 무리를 이룬 모기가 개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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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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