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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0

       그래도 내 자매들이 똘똘해서 다행이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클리셰는 다른 세상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원래 이 세상에서 살던 사람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서 사건사고가 터지는 것인데, 적어도 앨리스와 클레어는 그러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이용한다면 당연히 이 둘뿐만이 아니라 나도 함께 타겠지만, 평일 아침의 대중교통은 보통 사람이 많다. 괜히 타다가 모두 다 타지도 않았는데 문이 닫혀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나면 큰일이다.

        

       그렇다고 내가 원래 입던 옷을 계속 입힐 수도 없다. 나고 그렇고, 남자였던 내가 입던 옷은 우리 세 사람에게는 너무 컸다. 앨리스와 클레어도 그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굳이 나한테 이유를 물어보지는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아무튼 우리에게는 새로운 옷이 필요했다.

        

       그리고 정말 만약을 대비해서, 내가 사는 집 주변의 지리 정도는 알려줘야 했다. 나갔다가 길이라도 잃으면 안 되니까.

        

       ……그 이외에도 따져야 할 일이 여러모로 있었지만, 일단 오늘은 옷부터 장만하기로 했다.

        

       앨리스나 클레어 모두 귀족 출신이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앨리스는 황족 출신이고 클레어는 남작가 출신이라 두 사람이 속한 카테고리가 다르고, 그 격차도 꽤 크기는 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눈치는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은 같았다.

        

       두 사람은 내 조언대로 불필요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클레어는 물론이고 앨리스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은 모양이었지만 아무 데서나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을 물어서 이상한 의심을 받는 짓은 하지 않았다.

        

       물론 방으로 돌아온 뒤에는 그 참아왔던 질문들이 죄다 터져 나왔지만.

        

       “이 바지는 왜 이렇게 짧아? 이러면 긴 상의를 입으면 바지가 안 보여서 마치 안 입은 것처럼 보이잖아. 여기 사람들은 전부 이렇게 입고 다녀?”

        

       “전부 그렇게 입고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상황을 노리고 입는 사람이 있기는 합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 눈에는 그게 예뻐 보이는 거겠죠.”

        

       그리고 내 눈에도 예뻐 보이고.

        

       사실 바지는 몰라도 짧은 치마라면 우리가 지내던 세상에도 있었을 텐데. 당장 아카데미 교복만 해도 치마 길이가 꽤 짧았다. 원한다면 다소 조정할 수는 있었지만, 거기도 한계는 있었다.

        

       치마와 바지의 차이일까? 생각해보면 그쪽에서는 여자가 치마를 입는 쪽이 당연하긴 했지.

        

       “이건 대체 무슨 천으로 만든 거지? 고무를 얇게……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마 석유에서 뽑아낸 걸 겁니다. ……자세한 것은 저도 모르니 대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전문적인 이야기니까요.”

        

       바람막이를 만지작거리며 물어보는 앨리스에게 대답해주었다.

        

       좋아, 일단 옷과 신발은 해결되었다. 그나마 속옷은 그쪽 세상의 것과 큰 차이가 없어서 다행이다. 평민들이 입는 속옷은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속옷보다는 훨씬 펑퍼짐한 것이었지만, 귀족이나 돈 많은 평민 계층이 입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속옷과 거의 비슷했다.

        

       아무래도 만드는 데 손이 더 많이 들어가느냐 아니냐, 버리는 천이 많으냐 아니냐로 그 가격이 정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그런 사실 덕분에, 내가 이 아이들에게 속옷 입는 법까지 가르쳐줄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속옷의 종류가 달랐다면 나도 입는 법을 몰랐겠지. 나도 이쪽 세상에서는 여자로 살아본 적은 없으니까.

        

       “그럼 이제 우리 뭐할까, 언니?”

        

       클레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제 처음 이곳에서 만났을 때부터 쉬지 않고 반짝이는 저 눈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앨리스의 눈도 빛나긴 했지만, 그래도 클레어만큼은 아니었다.

        

       “일단, 며칠 동안은 이 세계에 대해서 학습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세계 상식 전반을 배우기에는 다소 부족한 수준이지만, 적어도 급할 때 혼자서 바깥을 돌아다닐 수는 있어야 할 테니까요.”

        

       “언니가 설명해주려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이것저것 많이 숨겨온 이유도 ‘설명하기 어렵고 애매해서’라서 그랬고.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쪽 세계에는 문자를 알지 못해도 학습할 수 있는 수단이 널리고 널렸다.

        

       앨리스와 클레어는 이쪽 세상의 문자를 읽을 줄은 모르지만, 내가 저쪽 세상으로 넘어갔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은 알아들으니까.

        

       그게 컴퓨터로 보는 영상에서도 먹힐지 먹히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다행히 앨리스도 클레어도 동영상에서 나오는 말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한 가지 더 얻은 것이 있다면, 앨리스와 클레어,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 모두 ‘영상에 포함된 모든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저쪽 세상에서 기본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쓰이는 것은 제국어였다. 그 외에 벨부르어나 다른 국가의 언어도 있기는 했지만, 나와 대화할 정도로 높은 신분의 사람이라면 제국어를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소양’인 듯했고.

        

       생각해보면 나는 저쪽 세상에서 전 세계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말을 섞으며 살았다. 심지어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을 만나도, 그게 다른 언어라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대화하곤 했다. 외국의 귀족들을 만나면 나를 상대로 자연스럽게 제국어를 써주겠지만, 그런 것을 모를 것이 분명한 가게 주인이나 길거리 사람들과도 마음만 먹으면 대화를 할 수 있었으니까.

        

       다른 세계에 넘어가면 말이 통한다는 것을 너무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고 있던 덕분에 나는 그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실은 네가 지금까지 써오던 자연스러운 외국어가 이렇게 얻은 능력이라는 말이지.”

        

       나는 앨리스가 너무 자연스럽게 외국인과 대화하길래 그쪽 세상에선 그게 일상인 줄 알았지.

        

       게다가 어순과 단어가 비슷한 경우도 많았고.

        

       하지만 한국어와 일본어가 비슷한 발음의 단어가 많고 어순이 같아도 결국 제대로 배우려면 머리가 깨지듯, 그쪽 세상에서도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덕분에 언니랑 대화할 수 있었으니 괜찮은 거 아니야?”

        

       클레어의 말에 앨리스는 입을 딱 다물었다.

        

       “언니는 고아원에 떨어졌잖아. 만약 그때 나랑 말이 통하지 않았다면— 음, 언니라면 그때도 나를 구했을 것 같긴 해.”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 웃어 보이는 클레어의 미소가 너무 환해서, 나는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정도였다.

        

       “……하긴 이런 능력이 있으니 우리가 이쪽에서도 누군가와 대화할 수 있는 거겠지.”

        

       앨리스도 결국은 그렇게 수긍하고 말았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지하철 이용 방법이나 버스 이용 방법, 서울 대중교통의 환승 방법 같은 것은 거의 다 영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한국어인 것으로 봐서는 외국인이 아니라 서울에서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을 위한 내용인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교통에 대해서, 그리고 그다음에는 한국인끼리의 대화법에 대해서. 기본적인 예절에 대한 영상 등, ●튜브에는 정말 내 상상 이상으로 일상 상식에 관해 설명해주는 영상들이 많았다.

        

       그렇게 영상을 하나하나 학습해두도록 한 채, 나는 저녁 식사 준비에 나섰다.

        

       ……요리를 한 것이 너무 오래되어서 제대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왕 이렇게 왔는데 인스턴트만 먹일 수는 없지.

        

       제대로 된 수익이 생기기 전에는 요리해서 먹으며 돈을 아껴야 했다.

        

       오래전 서점에 갔다가 충동구매를 한 자취생 요리법이 쓰인 책을 꺼내 들었다. 책장이 아니라 부엌 식탁 위에 놓여있던 책은 처음 발견했을 때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먼지를 다 털어내고도, 거기 중간중간 내가 붙여둔 부착형 메모지에는 먼지가 조금 묻어있었다.

        

       먹어보고 맛있었던 것들, 귀찮을 때 대충 만들어도, 실패해도 그럭저럭 먹을만한 맛이 나는 요리들에 해둔 표시였다. 나중에는 요리하는 것이 귀찮아지고, 1인분씩 해 먹다가 재료가 남아 버릴 바에는 그냥 시켜 먹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와 거의 안 써먹긴 했지만, 그래도 자취 시작하고 1년 정도는 요긴하게 써먹었던 것 같다.

        

       어차피 몹시 어려운 비결은 없고, 앞으로 3인분을 해야 하니 매일 시켜 먹는 것보다는 이게 차라리 나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아무 메모지나 잡아서 책을 펼쳤다.

        

       고추장찌개 레시피가 보였다. 냉장고에 사둔 재료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린 나는, 오늘 저녁은 이것으로 하기로 했다.

        

       *

        

       요리하는 동안 앨리스와 클레어를 굳이 살펴보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요리를 하는 것이라 조금 긴장했기 때문이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집중해서 레시피를 정독하고 요리를 끝낸 뒤, 두 사람을 부르기 위해 뒤로 돌아섰다가—

        

       “…….”

        

       “…….”

        

       나는 두 사람이 어떤 영상을 집중해서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영상 내용은 흔한 인방이었다.

        

       다만 플레이하는 게임은 아제르나 전기였고, 그 아제르나 전기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동료들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아니, 인방으로 저 게임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 찾아서 보고 있는 걸까?

        

       게다가, 이름은 몰라도 꽤 예쁜 여성이 하는 방송이었다.

        

       게임의 내용은 문자를 몰라서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었지만, 그 영상을 바라보는 클레어와 앨리스의 눈이 반짝였다.

        

       ……아니, 클레어는 모르겠는데 왜 앨리스 눈도 반짝이냐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한컴오피스의 오타 검사기는 어째서 ‘지리정도는’의 오타를 ‘지릴 정도로’라고 고쳐주는 걸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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