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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0

    “나, 다시 돌아왔어.”

    “수고했구나.”

    “내가 수고는 무슨. 그걸 찾은 네가 수고했지!”

     

    케일라는 루크의 어깨를 두드리며 씨익 웃었다.

     

    “아, 그리고 범인은 이미 잡혔대. 금방 또 다른 탈의실에 설치하려다가 들켰다더라고.”

    “뭐, 그건 다행이로구나. 아카데미 학생은 아니었겠지?”

    “응. 아카데미 학생은 아니고, 외부인이라고 하더라. 축제라서 외부인에게 널널해진 타이밍에 그랬대.”

    “그럼 되었다.”

     

    아무래도 같은 아카데미에 그런 변태가 있다고 하는 이야기 보다는 차라리 외부인의 소행이라고 하는 편이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루크는 그나마 사건이 금방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대체 이런 짓을 왜 하는 걸까.”

     

    나 참,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아이들의 옷 갈아입는 모습을 몰래 찍고 싶어하다니…….

    만일 아카데미의 학생이 그런 변태같은 짓을 했다고 한다면 꽤 실망스러울 수도 있는 일이었다.

    헌데 다른 아카데미도 아니고 티그 아카데미에서 그런 짓을 벌이다니, 그는 간이 부어도 한참 부은 것이 아닌가 싶다.

     

    티그 아카데미는 명문가의 자제들이 많이 재학중인 대형 아카데미.

    따라서 이곳에 재학중인 아이들의 부모는 사회적으로 거물일 확률이 타 아카데미에 비해서 굉장히 높은 수준이었다.

    당장 시루드만 하더라도 대형 백화점을 운영하는 휴트리 그룹 총수의 아들이었고, 메리 역시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대형 장난감 회사를 운영하는 부모를 두고 있었으며, 헬레나는 현재 에이레스 내 최고 기업을 꼽으며 다섯 손가락 안에 반드시 언급이 될 수 있을 법한 수준의 기업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있다.

    심지어 지금 눈 앞에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이 소녀의 부모조차, 유명 카페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소유하고 운영하지 않던가.

     

    아무리 현대에 귀족이나 평민을 나누는 신분이라는 것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사회적인 위치가 동일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누구도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교류하는 사회가 있는 한 ‘계층’이라는 것은 반드시 존재할 수 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그 계층이라는 것의 꼭대기에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이 티그 아카데미에서 벌어진 그런 사건은 결코 간단하게 넘어갈 일이 아닐터다.

     

    그런 걸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런 짓을 해서 좋을 건 전혀 없다는 걸 알았을 텐데…….

     

    “글쎄에……. 우리 아카데미의 학생들중에 예쁜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다만은…….”

     

    아무래도 귀한 집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아카데미인만큼, 그 아이들이 외모를 가꾸는 데에 들이는 재화도 다른 평범한 가정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그들은 단순히 손을 씻는 데 사용하는 비누조차 연금술에 마법이 추가로 인챈트된 고급품을 사용하니까.

    그런 탓에 평균적으로 외모적인 수준이 뛰어나다는 것은 특별히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단순히 티그의 학생들 외모가 다른 아카데미의 아이들보다 뛰어나서 그렇다고 보기엔 좀 동기가 부족하지 않나, 싶다.

     

    “아.”

     

    ‘아. 혹시, 이것은 나의 ‘불행’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행운’이라는 것이 인과를 따지면 거의 필연적으로 타인의 불행을 담보로 이뤄지는 것처럼, ‘불행’이라는 것도 타인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있다.

     

    제비뽑기의 꽝은 자신 혼자만의 불행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은 어땠는가?

     

    오늘 아침에 겪은 그 폭풍같던 소나기는 다른 날에 있었다면 그저 한날의 날씨에 불과할 것이었지만, 오늘은 축제 당일.

    그 비가 그대로 내렸다면 축제가 취소되었을 테니 불행은 자신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길을 걷다가 머리 위로 떨어진 화분도, 분명 누군가 소중하게 키우던 식물이 담긴 화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루크의 머리 위로 떨어짐으로써 그 주인에게도 동일한 불행이 되고 만다.

    그 뿐 아니라 차도에서 튀긴 물과, 교통체증으로 늦어버린 버스.

    오늘의 불행은 루크 뿐 아니라 주변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형태의 불행이었다.

     

    “…….”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 ‘불행’이라는 것은 이제 서서히 자신의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가설은 루크에게 꽤나 설득력이 있게 다가왔다.

     

    원래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한 일만 떠오르기 마련이라지만, 요즘은 도대체가 불행하지 않은 일을 떠올리기가 어려울 정도가 아닌가?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돌부리에 걸려서 넘어질 뻔 하고, 뒤늦게 발견한 재킷 속주머니의 구멍으로 지갑을 잃어버릴 뻔 했으며, 잼 바른 토스트를 놓쳐서 잼 바른 쪽부터 바닥에 떨어질 뻔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루크에게는 어떤 불행이 닥치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상적인 수준의 불행은 그냥 자세를 바로잡으면 되는 문제고, 재킷의 구멍으로 지갑이 떨어져 잃어버릴 뻔 한 것은 그저 주머니 속 지갑의 무게가 변하는 것을 예민하게 알아차리면 되는 것이었다.

    잼 바른 토스트가 옛날과는 달리 잼이 발라진 부분부터 떨어지는 것도 그냥 바닥에 닿기 전에 낚아채면 되는 문제고, 신호위반으로 달려드는 차량도 조금 빨리 반응해서 회피하면 그만인 이야기다.

     

    불행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저 본신의 능력으로 커버하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그 능력이 루크쯤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막말로, 루크는 현재 아무런 개연성 없이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더라도 대처할 수가 있는 상태였으니까.

     

    온전한 5서클, 10서클까지 이룩했던 대마법사의 지식과 지능, 게다가 초 고성능 컴퓨터의 계산능력.

    심지어, 일이 잘못될 경우엔 죽은 자조차 살릴 수 있는 막대한 신성력까지!

     

    여기서 루크 자신의 불사성은 말해봤자 입이 아프다.

     

    이는 즉, 어떤 형태로 불행이 닥치더라도 루크는 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당장 오늘 전 대륙이 멸망하더라도 남겨진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언젠가는 루크 자신이 기억하는 멸망 이전의 모든 것을 재건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뭐어,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은 상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하지만 아무리 자신이 있다고 한들, 그런 끔찍한 수고를 들이고 싶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저기, 루크야? 너 표정이 많이 굳었는데. 갑자기 왜 그렇게 심각해졌어?”

     

    혼자서 심각한 표정이 되어버린 루크에게 케일라가 걱정스러운 듯이 묻자, 루크는 반사적으로 ‘별 일 아니다’라고 대답하려다가 입을 멈추었다.

    자신의 불행으로부터 비롯된 전 대륙의 멸망을 걱정하는 것이 ‘별 일’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 ‘별 일’이라는 이야기인가?

    실제로 자신의 불행이 이처럼 꾸준히 우상향하는 방향으로 지속된다면 꽤 가능성이 있는 형태의 대륙 멸망 시나리오인만큼, 그냥 별 거 아닌 우려로 치부하기에는 루크도 무언가 찔리는 곳이 있었다.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오늘 운이 너무 나빠서, 이러다가 대륙이 멸망하면 어떡하나 고민을 좀 했다네.”

    “…….”

     

    그에, 케일라는 미묘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생각이 꼬리를 물고 확대하면 ‘탈의실을 엿본 범죄자를 잡았다’는 이야기에서 ‘대륙의 멸망’이야기가 나오는 걸까?

    아니면, 그 정도로 기분이 나빴다는 얘기일까?

     

    “루크, 너 혹시 오늘 컨디션 안 좋아? 집 갈래?”

    “아니, 그래도 그건 안될 일이지.”

     

    만일 이 불행이 자신 때문에 닥쳐오는 거라면, 루크가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카페에는 이미 루크의 손길이 많이 닿은 만큼, 루크가 자리를 비우면 카페가 어떻게 될 지는 꽤 자명한 일이니까.

    최악의 경우, 자신이 만든 레시피가 문제를 일으킬 경우도 있다.

    만일 그렇다고 하면 닥쳐올 불행을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카페를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 때,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음.

     

    그것은 마치 두 남성이 싸우는 듯 한 목소리였다.

     

    “뭐야, 이제 곧 카페 시작해야하는데 왜 재수없게 우리 카페 앞에서 싸우는거래? 손님 안오게 말야.”

     

    케일라가 투덜거렸다.

    루크는 이 또한 자신의 불행 탓에 일어난 일인가 싶어 몸을 일으켰다.

     

    “나가봐야겠군. 다른 곳에서 싸우라고 해야지.”

    “그래, 나도 도와줄게.”

     

    그렇게 나가기 위해 카페의 문고리를 잡으니 싸우는 소리가 이제는 대화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그러니까.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 학부모라니까요! 여기 도시락 안 보여요?”

    “도시락이랑 당신이 교내에 무단으로 침입하려고 하는 거랑 대체 무슨 상관인데?”

    ‘어라, 이 목소리는 익숙한데.’

     

    뭔가 전체적으로 다이튼과 닮은 것 같은…….

     

    “그리고! 당신같이 젊은 학부모가 어디에 있어? 게다가, 딸아이 이름이 ‘루크 이루시’라고? 나 참! 가명을 지어낼 거면 최소한 여자애 다운 예쁜 이름을 생각하는 성의는 보이는 게 어때?”

    “아니! 정말이라니까! 애 이름이 그런 걸 어떡해!”

     

    놀랍게도, 카페의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인물은 목소리가 닮은 사람이 아니라 바로 다이튼 본인이었다.

     

    “다이튼? 거기서 왜 그러고 있나?”

    “아, 루크! 나의 사랑스러운 딸내미!”

     

    루크가 아는 체를 해 오자, 눈에 띄게 과장된 몸짓으로 손을 크게 흔들며 몸짓만큼이나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네오는 다이튼.

    그리고 이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경비에게 따졌다.

     

    “봐요! 진짜라니까!”

     

    하지만 경비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모습이었다.

    젊고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성이, 대체 어떻게하면 저 나이대의 귀여운 고양이수인 딸을 가질 수가 있다는 말인가!

    차라리 양오빠라고 하면 납득은 된다만…….

     

    “학생, 정말로 그 남자가 아빠니?”

    루크는 자신을 향항 경비의 시선에 부끄러움에 얼굴을 돌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 아빠가 맞아요…….”

    “어? 진짜??”

    그 말을 듣자, 경비보다 놀란 표정을 짓는 케일라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는 아빠가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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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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