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50

     [늦은 밤, 지브롤터 협곡 제 2관문 성벽 위.]

     제국은 딱히 특정 종교가 득세하거나 그러지는 않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미신을 믿는 경향이 있다.

     

     민간주술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제국의 기원에 해당하는 블러드 엘프로부터 흘러들어온 문화라고 해야 할까.

     지맥에 흐르는 어떤 기운에다가 이국의 것을 이용하여 그 흐름을 억누른다는 설.

     누름돌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땅에 좋은 기운이 흐르는 걸 뚝 끊어내려는 행위.

     그런 미신이 바탕이 되기는 했지만, 제2관문 성문 위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비행선은 전략적인 이유로 성벽 위에 착지해있다.

     언제까지고 하늘을 날면서 마석을 소모할 수 없다는 경제적인 이유.

     곧장 떠오른다면 50m 위에서 즉시 떠오르려고 한다는 군사적인 이유.

     성벽 위에 있는 비행선 자체가 제국군을 위한 벙커이자, 적 기사들이 성벽을 쉽게 기어올라오지 못하게 만드는 지붕이라는 공성전적인 이유.

     무엇보다도, 지브롤터 협곡을 제국군이 지배하고 있다는 상징 그 자체만으로도 비행선은 협곡의 관문 위에 올라갈 이유가 충분했다.

     하나 더 이유가 있다면.

     “장군. 모든 준비가 끝났소. 해자와 지뢰, 마도포격 병단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끝났소.”

     “음. 좋군.”

     비행선에 있는 회의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한 무리의 장교들이 병사들로부터 떨어진 높은 곳에서 조용히 회의를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바르카 장군. 황제께서는 아직 다른 말씀은 없으셨소?”

     “…기어이 일주일을 다 채우실 생각이신 가보더군.”

     “쯧.”

     회의실에 모인 장군들은 가볍게 혀를 찼다.

     “진격 명령만 내리신다면 당장 지브롤터로 쳐들어가서 성부터 점령했을 것을.”

     “지금 황제 폐하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이오?”

     “…그렇지 않소?”

     “아돌프 공!”

     아돌프 장군의 말에 다른 장군들의 분위기가 험악해졌으나, 아돌프는 자신의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황제께서는 스스로 길을 여셨소. 나머지는 이제 우리 우장(愚將)들에게 위임하면 될 일. 우리가 얼마나 노스트럼을 점령하든, 이 전쟁의 가장 큰 공은 황제 폐하 당신이 아니신가.”

     “그러니까 지금 황제께서 욕심을 내시고 계신다? 자신이 마나를 회복하시고 난 뒤, 다시 복귀하시어 전장으로 나서기 위해서?”

     “욕심이라고는 하지 않았소.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했고, 실제로 나는 폐하께 투서를 올렸지.”

     아돌프 장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황제께서는 스스로 적에게 기회를 주고 계시오. 마치 적이, 지브롤터가 이 역경을 극복하고 이겨내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말이 심하군. 지금 노스트럼과 지브롤터 전역을 통틀어 사망한 제국군의 수가 무려 7만이 넘어가고 있소. 그 중 태반이 저 지브롤터에 의해 살해당했지. 우리는 유리한 고점을 잡았으나, 폐하께서 그 유리한 판을 스스로 내려놓으셨소. 왜 그럴까?”

     장군들은 책상 위 회의 자료 중 한 명의 사진을 손등으로 거칠게 두드렸다.

     “그 사랑해 마지않는 그레이 지브롤터 때문에!”

     “…….”

     “이건 황제 폐하의 자존심 싸움이오. 노스트럼 섬멸전 자체는 제국의 염원이지만, 이 협곡에서 일어나는 불가해한 판단은 전부 황제 폐하가 그레이 지브롤터의 자존심을 꺾어버리기 위함이란 말이오!”

     “그러면 안 되나?”

     “뭣?!”

     배석한 장군 중 유일하게 여성인 장군이 피식 웃으며 반박했다.

     “협곡을 뚫은 것도 폐하시다. 크림슨 지브롤터를 뚫은 게 폐하셔. 이 협곡을 점령한 분도 폐하시지.”

     “끄응…! 그러니까, 내 말은…!”

     “폐하께서 그렇게 결정하신 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폐하는 세인트 지오 같은 존재가 아니야.”

     “마리나 경!”

     “나라고 가만히 있고 싶겠어? 당장 이 비행선을 여기 가만히 처박아두는 게 아니라, 협곡을 지나서 노스트럼 왕도를 향해 그대로 진격하고 싶다고!”

     장군들의 불만이 탁자 위에서 터져나온다.

     “폐하께서 진격 명령만 내리셨어도, 우리는 지금 지브롤터 성을 점령해서 바르셀로나, 렘부르 군터, 그리고 이어서 톨레도까지 진격했을 거야! 그것도 하늘길로!”

     “심지어 그 대단히 사랑해 마지않는 그레이 지브롤터가 영지에 기사단을 규합한 뒤, 이렇게 협곡 앞마당을 빼앗기지도 않았을 것이고.”

     “젠장….”

     장군들은 답답함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찌 폐하께서는 그렇게까지 그레이 지브롤터에 집착하신단 말인가.”

     “알고 있잖나.”

     “……폐하, 설마 진짜로 그건 아니겠지? 동성애자.”

     “아들이 없는 자네는 이해하지 못해.”

     “자네는 아들이 셋이나 있는데도 폐하를 이해하지 못하잖나.”

     “…….”

     장군들의 한숨은 깊어지기만 할 뿐이다.

     “됐네. 다행히 지브롤터가 지금은 물러났으니, 남은 하루 동안은 수비를 전념하기만 하면 돼. 내일이면…아마 황도로 가신 폐하께서 돌아오셔서 다시 지휘하실테니.”

     “아아. 그래. 우리는 이곳을 지키면…후.”

     “또 왜 그러는가?”

     “마스터라는 작자들 말이야.”

     아돌프 장군은 자신의 심장을 엄지로 가리켰다.

     “폐하께서 내려주신 성은 덕분에 우리도 나름 상급까지 강해지기는 했지만, 과연 막아낼 수 있을까.”

     “…….”

     “폐하께서는 일곱 마스터들이 기꺼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셨다고는 하지만….”

     “그만.”

     분위기가 점차 가라앉는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폐하께서는 협곡을 뚫었고, 크림슨 지브롤터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전면에 나설 수 있지 않은가.”

     “그렇지.”

     “그리고 마스터 좀 없으면 어떤가. 저쪽에는 무슨 마스터가 수백 수천 명 있는 것도 아니고, 과거 세이레네 해협에 거대한 해구(海溝)를 만들었던 대마법사 영웅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아. 그 전설의…메테오 마법말인가.”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억지로 끌어올린다.

     “하긴. 그런 게 있었다면 진작 날아와서 꽂혔겠지.”

     “다른 건 몰라도 노스트럼에서 마스터급 마법이 갑자기 나타날 리는 없어. 적어도 그것 만큼은…선대 황제께서 철저하게 관리하셨으니.”

     “그래. 마법사의 씨를 말리셨지. 남은 건 칼잽이들 뿐.”

     “칼든 괴물들이 아니고?”

     “괴물의 시대는 끝났지.”

     장군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앞에 놓여있는 잔을 들었다.

     “언제까지 전쟁을 한 개인에 맡길 수는 없는 법.”

     “숙달된 정예병, 뛰어난 지휘, 그리고 압도적인 마도공학과 기술력. 노스트럼의 방식을 답습해서야, 어디 진정한 제국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나.”

     “잔을 드시게. 테르시안의 승리를 위하여.”

     장군들이 잔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의 승리는 인간의 승리이며, 황제폐하의 승리이니.”

     “제국의 병사들은 결코 노스트럼에게도, 지브롤터에게도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쿵쿵쿵.

     다급한 노크 소리가 울렸다.

     “무슨 일인가?”

     “보고드립니다! 현재, 지브롤터 방향에서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포착되었다고 합니다!”

     “황금?!”

     아돌프 장군이 가장 먼저 당황한듯 소리치고, 장군들은 즉시 잔을 내려놓고 비행선의 갑판 위로 뛰쳐나왔다.

     “혹시 또 그 거지같은 황금의 좀비들인가!?”

     “하늘을 날고 있다고 했지 않나!”

     “…비룡군단일 수도 있습니다.”

     갑판 위에 있던 병사들의 망원경을 빼앗은 장군들은 협곡의 사이,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마법? 아니야. 마법발현은 일어나지 않았다.”

     “젠장.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군. 제3 관문에 있는 이들에게 빛을 쏘아보라고 전해!”

     파ㅡ앗.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더욱더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저것은….”

     “……비행선?”

     반짝이는 황금빛 무언가는 점점 크기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망원경에 그 모양새가 보이기 시작한 순간, 장군들은 즉시 그 정체를 파악해냈다.

     “설마, 저거 지브롤터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지브롤터의 기함이다! 젠장, 비행선 띄워! 제공권을 빼앗기면 안 돼!”

     황금으로 이루어진 초거대 비행선이 날아온다.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전속력으로 협곡을 지나갈 것처럼 비행석으로 바람을 마구 뿜어내며 밤하늘을 날아온다.

     해자도, 마도지뢰도, 성벽 아래에 깔아둔 기름더미와 폭약더미도 무의미.

     “젠장, 노스트럼 주제에…!”

     장군들은 감히 지브롤터가 자신들과 같이, 아니 자신들보다 더 높은 곳으로 날아서 제국으로 향하려고 한다는 것에 치를 떨었다.

     “우리를 무시하고, 황도까지 가려는 건가! 저 어리석은 놈들!”

     “어디 한 번 보자고! 수백 미터 상공에서 격추되어서 추락해도, 그 잘난 마스터와 기사라는 것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마도포격을 준비하라ㅡㅡ!!”

     철컥, 철컥.

     성벽 위에 앉은 비행선의 옆, 덮개가 열리며 무언가가 하늘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었다.

     “마석 충전 준비! 이 협곡에 떨어드리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놈들을 격추시킨다!”

     정정.

     총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큰, 사람의 머리 하나는 들어갈 법한 포구(砲口).

     “모두, 포격을-”

     “저, 저거…?”

     망원경으로 황금의 비행선을 바라보던 장군 하나가 넋을 잃었다.

     “저기, 선수에…!”

     “……깃발?”

     펄럭.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황금빛에 대비된 그 붉은색이 은근하게 보였다.

     회색의 군복.

     그리고 그 위 어깨에 걸친 것 같은 붉은 코트.

     망토가 흩날리듯 핏빛의 붉은색이 흩날리는 가운데, 황금빛 배의 선수에 발을 올리고 나선 남자는 깃발이 두 개 걸린 창을 들고 있었다.

     지브롤터의 깃발.

     그리고 그 아래에 나부끼는 노스트럼의 깃발.

     그 깃발이 펄럭이는 각도는 하늘로 솟구치며 더 높이 나는 게 아닌-

     “저거, 왜 낮아지냐…?”

     아래를 향해 추락하듯, 서서히 고도를 낮추고 있었다.

     “자, 잠깐만. 누가 이미 저거 터뜨렸어?!”

     “제 3함대! 3함대는 보고하라! 지금 저 비행선이 무슨 짓을…!”

     [피하십시오ㅡㅡ!!]

     마도통신을 통해 전해진 다급한 목소리에는 경악과 공포가 깃들어있었다.

     [저, 저 놈들 속도 줄이지 않습니다! 추락할 것 같…!]

     

     구구구.

     제3관문에 있던 비행선들이 하나둘 다급하게 고도를 높인다.

     아래를 향해 전력으로 마나를 뿜어내며 지브롤터를 향해 날아오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장군들은 볼 수 있었다.

     다급하게 상승하는 제국의 비행선을 향해, 완만한 기울기지만 서서히 추락하는 듯 떨어지는 황금의 비행선을.

     그리고 그 비행선의 갑판 위, 몸을 낮춘 채 언제든지 뛸 준비를 마친 수백 명의 기사들을.

     “마, 말도 안 돼…! 그런 짓을 했다가는, 저 비행선은…!”

     “설마.”

     콰ㅡㅡㅡ앙!

     “비행선을, 돌격용으로…?”

     고도를 높이려던 비행선 두 대를 정면으로 들이받은 황금의 비행선이 각도를 낮추더니.

     구구구구ㅡㅡㅡ!

     

     운석이라도 떨어지듯이, 그대로 제2 관문의 성벽 위에 정확하게 처박혔다.

     

     파괴되는 성벽 위에서, 장군들은 보았다.

     “황제는.”

     너무나도 사뿐한 걸음으로, 무너지는 성벽 위에 착지하는 한 명의 남자를.

     “어디에 있나.”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