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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0

       # 외전 01 : 헤를라인의 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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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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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때 먹어야 할 끼니를 거르는 것? 집이나 골렘이 없는 것? 하루 번 돈으로 입에 겨우 풀칠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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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것으로도 정의하기 쉽지 않다. 가난이란 상대적인 것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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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 개념이 상대적으로 명료하게 잡힌 곳이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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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필리우트 제국의 슬럼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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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헉, 허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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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이라는 단어조차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궁핍한 거리. 그런 이들이 모인 장소를, 수도 사람들은 ‘뒷골목’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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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낙후된 만큼 공권력의 영향도 제한적이다. 제국은 마수와 싸우느라 내정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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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병! 뭐하고 있어? 저 도둑년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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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문에 이런 식으로 누군가가 신고하지 않는 한 경비대는 움직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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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재수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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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따라 경찰의 움직임이 날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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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가는 달리고 또 달렸다. 멈출 수는 없었다. 그녀의 바로 뒤에 스태프를 든 위병 둘과 대로(大怒)한 아저씨 한 명이 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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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급하게 뛰었는지 목이 칼칼했다. 식도에 생채기가 난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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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의 법은 약자를 제대로 보호해 주지 못한다. 메리가는 기껏해야 열 살 난 어린애였지만 알 수 있었다. 만에 하나 잡히기라도 했다간, 그대로 인생이 종칠 거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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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랬기에 죽을 것 같아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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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도둑고양이 년! 대체 어디로 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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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잡한 골목길을 따라 위병 둘이 들어왔다. 이곳 지형을 잘 알고 있었던 메리가는 위병이 당황하는 사이에 재빨리 도망쳤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손에 든 소금빵은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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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당한 벽 뒤에 몸을 숨긴 메리가는 숨을 고르며 잠시 휴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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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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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 있겠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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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가는 빵 윗부분에 붙은 먼지를 적당히 털어냈다. 그러고는 충동적으로 한 입 크게 베어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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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었지만 맛있었다. 탄수화물이 들어오자 뇌가 활발히 움직인다. 메리가는 눈시울을 붉히며 킬킬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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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가. 1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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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없이 홀로 떠돌아 다니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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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지품이라고는 구멍이 숭숭 뚫린 누더기 하나에, 방금 빵집 주인에게서 훔쳐 온 소금빵 하나가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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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껴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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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가는 양손으로 소금빵을 꽉 쥐었다. 보드라운 버터 냄새가 코끝을 찡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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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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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참아야겠지. 남은 두 입은 점심, 저녁으로 나누어야 배가 덜 고플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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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메리가는 알고 있었다. 인생이란 항상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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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이년 빵 들고 있는데?”

       “우리 좀 나눠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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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거리 하나가 히히 웃던 메리가를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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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보다 서너살 정도 나이가 있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다섯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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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들 또한 꾀죄죄한 몰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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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쳐맞기 싫으면 그거 내놓고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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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애 중 하나가 손을 까딱하며 메리가를 쏘아보았다. 매처럼 날카로운 시선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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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가는 패거리와 자신의 빵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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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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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는 빵을 전부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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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저 썅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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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썅년. 썅년이라. 오늘만 해도 저 소리를 열 번 가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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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가는 히죽 웃으며 다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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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씨발년!”

       “죽여! 씨발! 죽이라고! 개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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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성기가 막 찾아온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남자아이들. 어째 내뱉는 말마다 욕설이 걸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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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가는 방금 먹은 빵을 원동력으로 다릿심을 발휘했다. 아무것도 못 먹은 사내아이들이 달려봤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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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쪽으로 갔나?”

       “뒤로 돌아서 포위하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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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애 둘이 샛길로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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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저들은 자신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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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냐하면 이곳 뒷골목의 길이란 길은 전부 꿰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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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들이 움직일 경로를 모조리 고려하여 가장 잡히지 않을 만한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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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탁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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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애들의 발걸음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이쯤에서 메리가는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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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사히 도망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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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에너지는 조금 썼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두들겨 맞지 않은 것만으로도 운이 따랐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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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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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이란 어디까지나 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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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생쥐 같은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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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뻐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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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도하던 순간, 메리가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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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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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홑소리를 내뱉을 땐 눈앞이 아찔해진 뒤였다. 메리가는 토막 난 신음과 함께 벽돌 담장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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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히 도둑질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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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을 차려보니 누구인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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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빵을 훔친 빵집 주인 아저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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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집 주인은 손목을 걷어붙이고 메리가에게 다가왔다. 쿵, 쿵. 마수가 다가오는 것처럼 지축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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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가는 이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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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천한! 거지년이! 감히! 남의 집! 상품을! 돈도 안 내고 가져가!”

       

       퍽! 퍽!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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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발길질이 메리가의 등줄기를 사정없이 쪼아댄다. 메리가는 공벌레처럼 몸을 말고 최대한 웅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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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퍽! 퍽! 퍼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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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짝, 옆구리, 다리, 머리. 안 때리는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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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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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봐, 아저씨. 우리 그 애한테 볼 일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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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리가를 쫓아오던 남자애 다섯까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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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냐. 너희들, 이 도둑년하고 한 패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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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집 주인은 콧김을 훅훅 뿜으며 눈을 부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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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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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거리 중 대장으로 보이는 애가 낄낄 웃으며 뒷짐을 졌던 손을 자연스레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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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돈 좀 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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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제야 보복에 눈이 돌아갔던 빵집 주인도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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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뒷골목’. 치안 유지가 거의 되지 않는, 제국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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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있으면 우리한테 나눠 줘야지.”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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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거리가 하나둘씩 무기를 꺼낸다. 각목, 쇠꼬챙이, 빠루, 단도, 사창가에서 쓰고 버린 실리콘 스틱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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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덮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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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바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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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애 패거리가 빵집 주인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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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 이 녀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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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메리가를 짓밟다 말고 재빠르게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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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봐요, 아저씨! 여긴 깊게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돌아갑시다.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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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중에 위병까지 나타나 패거리의 길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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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랴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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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먼저 튀어나가던 녀석이 위병에게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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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병은 스태프를 쥐고 휘둘렀다. 스태프의 궤적에는 남자애의 오른쪽 다리가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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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으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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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뿌걱, 하는 소리와 함께 예의 남자애가 넘어졌다. 아프다고 사정없이 비명을 질러대며 쌍욕을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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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병이라도 일단은 군인. 훈련 받은 마도사를 상대로 슬럼의 미성년은 무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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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실을 저 사내아이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덤볐던 이유는, 그만큼 배가 고파서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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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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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가는 작게 웃으며 난장판이 된 몸을 겨우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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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망치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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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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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빵집 주인 아저씨가 어리다고 봐준 건지는 몰라도, 몸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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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저곳 쑤시는 곳은 있어도, 뼈가 아작나거나 탈골된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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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증거로 메리가는 헤헤 웃으며 임시 거처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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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거처라 할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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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가는 슬럼가의 뒷쪽 길 끝을 따라 시작되는 야산으로 올라온 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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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도심 속 야생이었다. 개울이 있고, 잡초가 있고, 소동물이 있었다.

       ​

       심지어 산줄기를 따라 조금 이동하면 웅장한 건물 한 채가 나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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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히, 흑, 아,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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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가는 절뚝거리며 얕은 개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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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 물을 마시고 벌레 따위를 주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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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슬럼에 내려간 건 정말로 빵이 먹고 싶어서였다. 평소에는 산등성이에 살며 안빈낙도를 즐기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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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가난. 즐거운 가난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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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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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멍투성이가 된 몸을 씻던 메리가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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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어를 봤다거나, 풀숲에서 먹을만한 열매를 발견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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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어이가 없었다.

       ​

       계속 이렇게 살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

       부모님이 돌아가신 건 일곱, 여덟 살 때였나?

       ​

       그 뒤로 부랑아가 됐다. 본래 평민이었으나 지금은 불가촉천민으로 추락한 것이다.

       ​

       저기 어디, 금안족이라는 종족은 모든 이들이 자신과 같이 산다는데. 실제로 그들을 본 적이 없으니 모른다.

       ​

       ‘이렇게 살기 싫어.’

       ​

       당연하다. 누가 가난하게 살고 싶겠는가.

       ​

       메리가는 여자애로 태어나서 더하다.

       ​

       자기보다 딱 두세 살 많은 언니들이 슬럼으로 내려가 좋게좋게 사는 꼴을 자주 봤었다. 그 언니들은 붉은 빛이 새어 나오는 술집에 남자를 데리고 들어갔다가, 두세 시간 후에 은화를 매만지며 나오곤 했다.

       ​

       메리가는 총명한 소녀였다. 순수함이라고는 쥐뿔도 없이, 세상을 일찍 알아버린 아이.

       ​

       ‘그렇게도 살기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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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지로 살기도 싫다.

       ​

       탕녀로 살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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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가는 나무열매 따위를 몇 개 찾아가며 산등성이를 따라 어슬렁어슬렁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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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산의 끝에 다다르자 보이는 것은 어느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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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커다란 건물이었는데, 그 건물의 외벽에는 사대원소를 상징하는 클로버와 스태프로 이루어진 장식이 박혀있었다.

       ​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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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웅장한 외벽에서 귀족가 건물 이상의 고매함이 묻어 나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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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저기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엄청 고귀하고 돈도 많겠지.

       ​

       “가고 싶다.”

       ​

       메리가는 저도 모르게 그리 중얼거렸다.

       ​

       사실 호기심에 못 이겨 내려가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코 저 건물 근처로는 접근할 수 없었다.

       ​

       들어가려고 하면 경비병이 내쫓았으니까.

       ​

       하지만 메리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런 곳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그만큼 크게 성공하고 싶었다.

       ​

       배를 곯고 싶지 않았다. 몸을 팔아 연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

       정정당하게,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

       그것이 일생일대의 소원이었다.

       ​

       요원한 일이었다.

       ​

       “후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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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가는 한숨을 쉬며 산길을 따라 움직였다.

       ​

       이 앞부터는 마수가 서식한다고 들었지만, 지금은 낮이었다. 시야 확보는 문제없다.

       ​

       서식하는 마수도 느린 놈뿐이었기에 나무 뒤로 잘 숨어 다니기만 한다면 다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다.

       ​

       움직이는 데 목적은 없었다. 그러니까 부랑아라고 부르는 것이다.

       ​

       단지, 먹을 만한 열매가 없나 살펴볼 뿐이었다.

       ​

       “…어라?”

       ​

       그렇게 십수 분을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던 메리가의 시야에, 이상한 물건이 들어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 연재분부터 외전 시작입니다.

    외전은 주조연 캐릭터의 과거 스토리와 미래 스토리로 나뉠 것입니다. 해당 에피소드에선 에테르가 아니라 다른 캐릭터가 주인공이 되겠죠?

    그 첫 타자는 헤를라인 선생님입니다.

    사실 헤를라인의 서사와 과거를 옛날에 1만 자 정도 써 놓았는데, 외전으로 언제 올릴까 고민하다가 결국 지금 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써놓은 파일을 찾아보려 하니까 없더라구요…

    어쩔 수 없이 기억나는 대로 다시 적어볼까 합니다.

    **

    sorka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후원해주신 금액은 금안족 친구들 장학금으로 활용할 예정이랍니다 ㅎVㅎ

    백정상추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이제 곧 완결 마크를 달아야 한다니 많이 아쉬움이 남습니다. 완결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고마워요!

    알수없는익명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후일담 완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알수없는익명님처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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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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