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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1

       “그러니까 그게, 물론 하려면 못 할 이유도 없기는 합니다만…….”

        

       클레어의 반짝이는 눈을 보며 나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엄청나게 망설였다.

        

       그 왜, 그렇지 않은가. ‘나는 커서 연예인이 될 거야!’하고 외치는 아이더러 연예인이 되는 것이 얼마나 더럽게 힘든 것인지 알려주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물론 그 애가 정말로 어린아이라면 ‘그렇구나’하고 넘길 수 있다. 어차피 어린아이의 관심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는 법이고, 그 애가 크면서 연예인이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스스로 알게 되니까. 그래도 본인이 하고 싶다면 그만큼 각오하고 있다는 소리겠고.

        

       하지만 클레어는…… 엄밀히 따지면 애가 아니다.

        

       본인이 뭔가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실행력도 있고, 실제로도 당당하게 그렇게 행동하기도 한다.

        

       다만 이쪽 세상의 상식이 다소 모자랄 뿐.

        

       그리고 옆에 있는 앨리스도—

        

       …….

        

       하긴, 이쪽이나 저쪽이나, 가수나 배우라는 직업은 여러모로 선망의 대상이 된다. 20세기의 무대 뒤편이 어마어마하게 더러웠다고는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큼은 화려하니까.

        

       인터넷 방송은 그 결이 다른 것 같기도 하지만.

        

       “못 할 것도 없긴 하지만?”

        

       클레어가 내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했다. 옆에서 앨리스도 묘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저쪽 세상에서 배우나 가수를 하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개인이 가진 능력이나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들이 실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위치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좋은 집안의 사람들이 배우나 가수를 하는 일이 자주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아예 황족이나 그 주변 사람들쯤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법이고.

        

       앨리스는 차기 황제이니 당연히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많고, 클레어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지금 당장은 남작 영애였지만 자기 혈통을 알게 되었으니 어떤 일에 휘말릴지 모르지.

        

       그것도 전부 다 다른 세계에서의 이야기이긴 했지만.

        

       ……그러게. 하면 안 될 이유가 있나?

        

       막상 생각해보니 그럴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인터넷 방송을 하지 않은 이유는 내 얼굴이 인터넷에 팔리는 것은 둘째 치고, 애초에 성공할 수 있을 만큼 외모가 빼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모가 빼어나지 못하면 말주변이 있어야 했고, 말주변도 안 되면 게임이라도 잘 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거나, 상황극을 잘 만들거나…… 아무튼 남들이 ‘볼만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뭐 지금도 게임을 잘 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거나 말주변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예쁘잖아?

        

       그냥 외국인이라서 예뻐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예쁘잖아? 나도 그렇고, 클레어도, 앨리스도.

        

       세 사람 나란히 있으면 그냥 그것만으로 사람들이 들어올 만큼 예쁘지 않나?

        

       게다가 개성도 어마어마했다. 우리는 무려 ‘한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 외국에서 온 미녀들’이었으니까—

        

       아.

        

       그런데 그 ‘한국어’를 진짜로 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실제로 방송에 목소리가 들어갔을 때 그 방송을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한국어로 들릴지 아닐지는 잘 모른다.

        

       잘 모르긴 하지만.

        

       “한번 해 볼까요?”

        

       그런데 그러면 그건 그거대로 실험해보면 되는 거 아닌가?

        

       어차피 우리 세 사람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이 나라에 없잖아? 방송에서 좀 쪽팔린 짓 한다고 뭐 큰일 나는 것도 아니고, 우리 과거를 들춰낼 사람도 없다. 들춘다고 해서 뭐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진짜 그냥 아무것도 없으니까.

        

       언어 문제는 방송부터 해 보고 해결하면 될 일이다. 정 안 되면 내가 통역이라는 식으로 같이 딸려있으면 될 일이고.

        

       내 말에 클레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궁금하긴 해. 이런 것들은 우리 세상에서는 어떻게 재현하기 힘든 거니까.”

        

       앨리스도 조금은 두근거리는 표정이었다.

        

       그렇지. 저쪽에서 동영상은 필름에 찍어서 돌리는 거니까.

        

       “오늘은 늦었으니 일단 내일 아침부터 준비해서 저녁쯤 시도해보도록 하죠.”

        

       “준비가 많이 필요해? 우리가 언니를 귀찮게 하는 걸까?”

        

       “그건 아닙니다.”

        

       클레어가 조금 걱정된다는 듯 물어서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웹캠은 스마트폰으로 대신 할 수 있다고 알고 있고, 마이크는…… 당장은 테스트일 뿐이니 노트북에 달린 것으로 적당히 해보면 알겠지. 게임이니 뭐니 하는 건 나중이다.

        

       어차피 직장 구하기 전까지는 남는 게 시간이니, 이것저것 해보면서 깨달으면 되겠지.

        

       *

        

       이쪽 세상에서 우리 얼굴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엄밀히 따지면 그건 틀린 말이었다.

        

       아제르나 전기가 모든 게이머가 알 정도로 유명한 게임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팬덤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여러모로 매니악하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피규어도 나오고 굿즈도 나오고 동인지도 나오는 게임 시리즈고, 역사도 꽤 길었다.

        

       지구의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적이다 못해 현실 그 자체인 세상으로 셋이 함께 넘어와서 지내고 있어 순간 잊어버리긴 했지만, 우리 세 사람은 무려 게임과 똑같은 세상에서 지내다 넘어온 참이다.

        

       당연히 생긴 것도 그 게임 속의 디자인과 똑같다.

        

       굳이 따지자면 2D와 현실의 차이였으니 완전히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완벽한 코스프레다’라고 할 정도로 똑같았다.

        

       심지어 옷이 굳이 게임 속의 옷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뭐, 뭔가가 많이 올라오는데, 언니?”

        

       “저게 전부 사람들이 치는 말이라는 거야?”

        

       “…….”

        

       [오 한국어 잘한다]

       [혹시 팬그리폰 세 자매인가요?]

       [와 개쩌네]

       [웬 걸레가 하나 껴있네]

        

       넌 나가라.

        

       나는 걸레 발언을 한 놈을 그대로 밴 해버렸다.

        

       분명 저건 클레어를 두고 하는 말일 거다.

        

       지금 내 옆에 있는 클레어는 그런 과거를 겪은 적이 없는 애라고. 애초에 나 때문에 미래 자체가 바뀌어버렸으니까.

        

       “여러분, 험한 말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여기 있는 건 실제 사람입니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목소리 개똑같네 더빙이었어도 목소리 이랬을듯]

        

       ……잠깐만. 목소리?

        

       [완전히 실비아 팬그리폰 아니냐?]

       [목소리도 바꿔내시는 건가요?]

        

       다시 채팅창을 봤더니, 위에 발언 중에 ‘팬그리폰 세 자매’를 언급한 것이 있었다.

        

       잠깐만. 나는 분명 원작에는 나온 적이 없는 캐릭터였는데?

        

       “언니, 언니.”

        

       옆에서 클레어가 나를 콕콕 찌르며 물었다.

        

       “코스프레가 뭐야?”

        

       [ㅋㅋㅋㅋㅋㅋㅋ코스프레가 뭔지도 몰라]

       [저거 그냥 모르는척 하는 거 아님?]

        

       클레어의 발언을 듣고 그런 채팅들이 올라오는 가운데,

        

       [혹시 자기가 코스프레인줄도 모르고 염색한거 아님? 실비아 님 무서운 사람인듯ㅋㅋㅋㅋㅋㅋ]

        

       하고, 1000원짜리 후원이 들어왔다.

        

       [아 컨셉 맞추려고 나머지 두 명 낚은거?ㅋ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그럴만하넼ㅋㅋㅋㅋ 이렇게 개똑같은뎈ㅋㅋㅋㅋㅋ]

        

       “실비아? 지금 저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 거야?”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앨리스가 작게 물었다.

        

       아니, 잠깐만 가만 있어 봐.

        

       [그런데 실비아라고 계속 부르는 거 보면 컨셉인거 알고 있는 거 아님?]

       [주작이네]

       [해명해]

        

       해명은 뭔 해명이야.

        

       애초에 어투를 보면 장난으로 하는 소리인 것 같은데.

        

       완전히 혼돈에 빠진 채팅창과 상황을 모르는 클레어와 앨리스를 사이에 두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잠깐 고민한 나는 이내 결심했다.

        

       “일단…… 네, 그렇습니다. 이 두 사람 코스프레 시킨 건 접니다. 어떤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인지 모르는 두 사람입니다만, 제가 같이 방송하자고 부탁해서 이렇게 했습니다.”

        

       “언니?”

        

       나는 화면 밖에서 클레어의 팔을 살짝 잡았다. 클레어는 곧장 무슨 뜻인 줄 알아듣고 입을 다물었다.

        

       앨리스도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다.

        

       “사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다짜고짜 방송을 켜서, 오늘은 이만 끄도록 하겠습니다. 내일 제대로 준비해서 여러분과 소통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어 어 왜 사라짐?]

       [기껏 코스프레까지 했는데 조금 더 있으면 안돼요?]

        

       “그게 아니라, 정말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저희가 여러모로 아직 적응이 끝나지 않아서…… 예. 내일 오겠습니다. 그럼.”

        

       나는 그렇게 말하고 방송종료 버튼을 클릭했다.

        

       “…….”

        

       그리고 잠깐 침묵.

        

       “언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코스프레라는 말은 또 뭐고.”

        

       “코스프레라는 말은, 자신이 좋아하거나 재미있게 읽은 작품 속의 캐릭터를 따라 헤어스타일과 옷을 입는 것을 말합니다. 일상적으로 입는 것은 아니고, 그 캐릭터를 따라 하며 즐기는 거죠.”

        

       “아하, 그러니까 축제 때 사람들이 유령 분장 같은 걸 하는 거랑 비슷한 거네. 그중에는 옛날이야기 기사 같은 것도 있으니까.”

        

       앨리스는 내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우리가 누구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던 거야?”

        

       나는 어제 꺼냈다가 아직도 탁자 위에 방치되어있는 게임 패키지를 집어 들었다.

        

       “저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니까요. 제 이야기는 왜 또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내일은 오전 일찍 나가서 아제르나 전기 최신작을 사야겠다.

        

       그리고 캡쳐보드도.

        

       방송을 어떻게 할지 대충 가닥이 잡힌 것 같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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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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