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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1

        

         

       이제순은 도통 제대로 기회가 오질 않자 분통이 터졌는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짙은 아쉬움과 짜증이 가득 묻어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에서 솟구쳐오르려는 조바심과 조급함을 곧바로 억눌렀다.

       어렵지는 않았다.

         

       마음을 다스리는 법은 몰랐지만, 적어도 더 큰 먹이를 위해 눈앞의 작은 먹이를 포기할 정도의 지혜는 갖추고 있었으니까.

         

       그게 바로 지성인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쓰-읍. 초고는 작성해놨는데.’

         

       그는 침음성을 흘리며 노트북을 노려보았다.

         

       노트북에는 아주 멋들어진 초고가 적혀있었다.

         

       천황의 이름이 적혀있는 유물의 발견과 그것을 필사적으로 은폐하는 정부에 대한 의혹이 적힌 내용이었다.

         

       게다가 하나뿐이 아니라 여러 개였다.

         

       첫 번째는 그냥 간단하게 의혹을 불러일으켜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용도, 그다음의 것들은 의혹을 점차 심화시키는 내용, 그리고 마지막은 그 의혹들을 단정을 짓듯 사람들의 머릿속에 때려 넣으면서 ‘사실’처럼 여기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이제순은 장담할 수 있었다.

       이 기사들을 전부 보게 된다면, 대한민국이 들썩이게 될 것이라고.

         

       인내하는 기간 동안 벼르고 또 벼르며 잘 다듬어서 만든 칼이었다.

         

       정부?

         

       배때기에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이 기사를 푸-욱 꽂아주면 정신을 못 차릴 거다.

         

       그런데.

       그 기회가 쉽게 오질 않았다.

         

       ‘뭐, 언젠간 오겠지….’

         

       이제순은 아쉽다는 듯 한숨을 살짝 쉬고는 쭉 팔을 위로 올렸다. 기지개를 켜기 위함이었다.

         

       끄으으윽-

         

       환자가 앓는듯한 소리를 내며 기지개를 켠 이제순은 허리를 돌려서 몸을 좌우로 뒤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닥.

         

       그는 노트북을 잠금 화면 상태로 만들어 놓고 밖으로 나갔다.

       커피라도 마시고 정신을 좀 차릴 생각으로 말이다.

         

       ‘노트북까지는 안 들고 가도 되겠지.’

         

       본래라면 노트북을 들고 갔을 테지만, 오늘은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부터 몸이 개운해서 느낌이 좋은 것도 있었고, 어디 낯선 곳도 아니고 이제는 자신의 영역이나 다름없이 여겨질 정도로 익숙해진 곳이었는데 무슨 일이 있을까 싶었다.

         

       그렇기에 이제순은 화면에 잠금을 걸어놓기만 하고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참으로 안일하게도 말이다.

         

       무릇 일이라는 것은 방심했을 때 터지는 법.

         

       이제순이 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 하나가 구석진 곳에서 스윽 일어나 이제순의 자리로 걸어왔다.

         

       연예부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이제순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사회부에서 경력을 쌓은 이제순의 동기였다. 그의 멀끔해 보이는 외모에는 조바심과 긴장감이 묻어있었고, 그 때문인지 한 손에 들고 있는 USB가 달달 떨리고 있었다.

         

       ‘후우. 5천만 원, 5천만 원이랬지….’

         

       이제순의 동기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함인지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한 단어만을 떠올리고 있었다.

         

       5천만 원.

         

       숫자로는 50,000,000.

         

       소위 목돈이라고 불릴 수 있는 금액이었다.

         

       ‘어려운 것도 아니잖아? 그냥 프로그램 하나만 설치하면 되는데.’

         

       게다가 그 목돈을 얻기 위해서 위험에 몸을 던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제순의 노트북에 프로그램 하나만 설치하면 되는 일이었다.

         

       사람을 해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쓰는 기사로 누군가를 옹호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기사로 위험한 사람 저격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한 사람의 노트북에 프로그램 하나만 심으면 되면 끝이었다.

         

       심지어 프로그램 설치하는 방법도 쉬웠다.

       USB를 꽂기만 하면 바로 설치가 된다.

         

       손가락질 한 번에 5천만 원이라.

       이걸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는가?

         

       거부할 수 없다.

       돈에 쪼들리는 그의 최근 상황으로는 절대로 말이다.

         

       더더욱이, 선배나 그와 친한 사람이었다면 조금은 망설였을지도 모르나….

       그 대상이 이제순이다.

         

       이제순.

       싸가지를 밥 말아 처먹은 것 같은 개자식.

       좀 잘 나간다고 동기를 벌레 보듯 하는 것은 기본이고, 선배도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만하기 짝이 없는 자식.

         

       잘나가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다른 언론사도 아니고, 같은 언론사에서 지내는 사이인데 태도가 개판이었다.

       그냥 ‘동기가 잘 나가면 좋지 뭐. 나중에 덕 좀 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던 그조차도 원한을 품게 할 정도로 말이다.

         

       ‘이게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이제순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원한을 사 왔다.

       거침없는 언행과 거만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말이다.

         

       ‘회식에서 나한테 그딴 소리만 하지 않았어도…. 이 개자식.’

         

       그는 회식에서 이제순 때문에 겪었던 창피를 생각하며 이를 뿌득 갈았다.

         

       회식 자리.

       그는 은근히 마음을 두고 있던 예쁜 여기자와 친분을 쌓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눈에 밟혔던 것일까?

       이제순은 거침없이 그를 깎아내렸다.

       선배에게 불려가서 혼났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동기 좋다는 게 뭐냐.’라면서 몇몇만 알고 쉬쉬하고 넘어간 실수마저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입에 담았다. 그 덕분에 선배들은 그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아졌으며, 그 선배 중에는 그가 마음에 두고 있던 여기자도 있었다.

         

       그때 이후로 그는 이를 갈고 있었다.

       이제순, 이 개자식에게 언제고 한 방을 먹여주겠노라고 말이다.

         

       이러한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기회가 왔다.

         

       자신을 정훈상의 매니저라고 밝힌 남자가 그와 접촉한 것이다.

         

       『 이제순. 이제순 기자의 노트북에 프로그램 하나만 깔아주십시오. 』

         

       『 거창한 프로그램은 아닙니다. 그냥 가벼운 바이러스 비슷한 겁니다. 』

         

       『 5천. 5천을 드리겠습니다. 』

         

       정훈상의 매니저는 별것 아니라는 태도로 그를 속이려고 했다.

         

       물론, 그는 그 개소리를 믿지 않았다.

         

       프로그램 하나 설치해주는데 5천을 주겠다고?

       그런데 그게 거창한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말이 되는 소리인가?

         

       5천 원도 아니고 5천만 원이다.

         

       그런데 그게 별거 아닌 프로그램일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는 매니저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 이유?

       별것 아니었다.

         

       이제순 이 개자식에게 엿을 먹여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프로그램 때문에 파일 전부가 복호화가 되든, 정훈상에게 컴퓨터의 내용물이 모조리 들여봐지든.

       어떻게든 이제순이 엿을 먹었으면 싶었다.

         

       ‘지금 사무실 CCTV도 고장이 난 상태고, 죄다 취재 나가서 건물 안에 사람도 별로 없고.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

         

       그는 결심을 굳히고 노트북의 앞에 섰다.

       이제순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서.

         

       ‘비밀번호….’

         

       노트북의 잠금 화면에는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문구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그가 오가는 척을 하면서 몰래 보았던, 이제순이 입력했던 비밀번호대로.

         

       『 비밀번호가 올바르지 않습니다. 다시 시도하십시오. 』

         

       하지만 안타깝게도 비밀번호가 틀렸다.

         

       ‘그새 바꿨나?’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제순이 눌렀던 것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여러 조합을 시도해보았다.

         

       『 비밀번호가 올바르지 않습니다. 다시 시도하십시오. 』

         

       『 비밀번호가 올바르지 않습니다. 다시 시도하십시오. 』

         

       『 비밀번호가 올바르지 않습니다. 다시 시도하십시오. 』

         

       하지만 나오는 것은 비밀번호가 틀렸다는 문구뿐.

         

       그쯤 되자 그는 이제순이 비밀번호를 바꿨다고 확신했다.

       그는 기존에 봤던 비밀번호를 포기하고 이제순의 생년월일을 입력해보았다.

         

       『 비밀번호가 올바르지 않습니다. 다시 시도하십시오. 』

         

       이번에도 실패.

         

       ‘뭐지? 뭐가 있지?’

         

       그는 머리를 쥐어짜 냈다.

       이제순이 돌아오기 전에, 혹은 다른 누군가가 지나가다가 그를 목격하기 전에 어떻게든 비밀번호를 짜내야만 했다.

         

       USB 한 번만 꽂으면 되는데.

       비밀번호만 뚫으면, 그냥 초 단위만 사용하면 5천만 원이 손에 들어오는 데다가 복수까지 할 수 있는데.

         

       도무지 비밀번호를 알 수가 없다.

         

       그는 뇌를 쥐어짜는 것처럼 혹사했음에도 비밀번호로 추정될만한 것을 쉽게 떠올리지 못했고, 결국 그는 마음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이번만 기회가 아니니까….’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기는 했다.

         

       지금만 한 기회가 없는데.

       지금처럼 완벽한 기회가 없는데….

         

       그가 그렇게 아쉬움을 품고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문득 그의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문자와 숫자가 있었다.

         

       ‘어?’

         

       문자와 숫자, 특수문자의 조합.

         

       그에게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조합이었다.

         

       갑자기 왜 이런 것이 떠오른 것일까?

         

       그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재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문자를 그대로 노트북에 입력해보았다.

         

       ‘어?’

         

       성공.

         

       성공했다.

         

       갑자기 머릿속에 스치고 지나간 글자들이 바로 비밀번호였다.

         

       ‘대체 이게 무슨.’

         

       그는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을 느꼈다.

       진짜 귀신이 옆에서 속삭인 게 아니고서야,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었나 싶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손을 움직여 USB를 꽂았다.

         

       ‘됐다.’

         

       USB가 꽂히자마자 프로그램은 성공적으로 이제순의 컴퓨터에 깔렸다.

         

       그는 프로그램이 깔린 것을 확인하자마자 재빠르게 다시 노트북을 잠금 화면으로 바꿔놓았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구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이어폰을 귀에다가 꽂은 뒤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보는 것처럼 가장했다.

         

         

         

         

        * * *

         

         

         

       “이제순, 이제순, 이-제-순. 이름도 재수 없는 개-새-끼같으니.”

         

       배우 정훈상은 곱상한 외모에 걸맞지 않은 걸쭉한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주변에는 내용물이 싹 비워진 와인병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 쓰레기 같은 개새끼가 감히 나를 물을 먹여? 그러고도 승승장구하고 지만 행복하시겠다고? 그렇겐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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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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