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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1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르신 겁니까.”

       

       혈교를 돕는 유저문파의 장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내자 혈교주가 웃음소리를 냈다.

       

       상대의 입장이 이해가 되었기에.

       

       겉으로 본다면 지금 그가 벌인 일은 미친 짓이 맞았다. 여태까지 힘들게 모은 여러 신도와 강시들을 그 어떤 이득도 보지 못한 채 길바닥에 내던진 거니까.

       

       이번 일로 인하여 혈교의 세력이 상당히 줄어든 만큼 혈교가 이전과 같은 위세를 지니려면 꽤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리라.

       

       현실이 이러한데 몇 년에 걸쳐 혈교의 세력을 키웠던 외부인이 이 상황을 어찌 좋게 받아들이겠는가.

       

       자신이 일궈놓은 게 타인에 의해 박살났음에도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닌 생불이라 불러야 할 터.

       

       “웃지만 말고 대답을 해주시겠습니까.”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 필요를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만.”

       “제 힘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었거든요.”

       

       혈교라는 집단이 유지되는 데에는 혈교주 개인의 능력이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당장 대륙 이곳저곳에서 전선을 유지하고 있는 강시를 조종하는 주술이 혈교주의 것이고,

       

       여러 산과 들의 생기를 집어삼켜 혈교를 키운 것도 혈교주의 지시에 의해서였고,

       

       혈교에 속한 이들이 과분한 권능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혈교주의 힘을 빌린 것이었으니.

       

       혈교는 분명 거대한 집단이었지만 혈교주가 없다면 사라져버릴 무력한 집단이기도 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 교를 유지하는 데에 혈교주가 얼마나 많은 것을 쏟고 있었겠는가.

       

       혈교주가 자신의 교인과 강시들을 던져버린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저들을 내던지는 것으로 여러 곳에 펼쳐져 있던 힘을 모으기 위해서.

       

       “확실히 제가 열심히 살아오긴 했나 봅니다. 힘을 집약시키고 보니 강시의 몸으로는 도저히 견디기가 버거울 지경이군요.”

       

       지금 그의 몸에 집약된 것은 혈교 전체의 힘이라 해도 무방할 지경이니. 제 아무리 혈교주라 할지라도 이를 견디는 게 쉬울 수는 없었다.

       

       그가 공을 들여서 만들어낸 강시의 몸이 비명을 내지를 정도로.

       

       “어째서 힘을 모았냐는 물음이 따라 붙을 듯 하니 먼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선계로 향할 생각이거든요.”

       “…선계요?”

       “예. 당신이 생각하시는 그 선계입니다.”

       

       머나먼 과거부터 혈교주는 선계에 발을 들이고 싶단 생각을 했다.

       

       딱히 우화등선을 동경하는 바는 아니었다. 자신의 손으로 영원한 생을 얻은 인간이 그를 동경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그가 선계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곳에 생기가 넘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참 먹음직스러운 장소입니다만 등선하지 못하면 갈 수 없는 곳인지라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등선을 하지 않고도 그 곳에 올라가는 방법이 있더군요.”

       

       신선계로 향하기 위해서는 문을 지나야 한다.

       

       그 문은 자격이 있는 자에게만 열리기에 자격이 없는 자는 선계에 들릴 수 없다.

       

       모두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이 상식을 정면에서 박살 내 버렸다.

       

       선계문을 부수는 것으로 자신의 자격을 만들어낸 것이다.

       

       “자격이 없다면 만들어내면 그만이라니.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혈교주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그를 흉내내어 볼 생각이었다.

       

       “결행 직전에 외부인 분들이 돌아와 깜짝 놀랐습니다만. 재앙께서 바쁜 듯 하여 다행입니다. 도움이 될 분들만 늘었군요.”

       “저희가 할 일이 있습니까?”

       “예. 고상하고 고강하신 신선 분들을 조금만 붙잡아 주시지요.”

       

       그것만 해준다면 응당 보상을 지급하겠다는 혈교주의 말에 외부인이 웃었다.

       

       *

       

       흑기사라는 녀석은 군대를 이끌고서 언덕 위에 서 있었다.

       

       여러 영지를 지나오면서 세를 불린 우리와 비교하자면 민병대에 가까운 규모였지만 흑기사의 군대는 기세등등했다.

       

       그것은 잘 훈련되었기에 나오는 당당함이었고, 두터운 무장을 지녔기에 드러나는 자신감이었으며, 맨 앞에 서 있는 자신들의 주군이 패하지 않을 것을 믿기에 지을 수 있는 웃음이었다.

       

       “흑기사.”

       “진짜군.”

       “저 괴물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참으로 재미난 것은 우리 군대의 반응이었다.

       

       여지까지 우리가 거두었던 압도적인 승리는 기억에서 지워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겁을 먹은 이들의 모습을 보라.

       

       대체 저 흑기사라는 작자가 얼마나 많은 공을 세웠기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인지.

       

       딱히 거슬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반응이 반가웠다.

       

       저 흑기사 하나를 만나기 위해 여태까지 길고도 긴 여정을 걸어온 것 아닌가.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공포스러워한다는 것은 저 자가 그만한 위세를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니. 본인으로써는 반가워해야 할 일이지.

       

       전선에 모습을 드러낸 지휘관들을 확인한 것일까. 깃발의 옆에 서 있던 흑기사가 앞으로 나서더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네르! 왕국 최강의 기사가 그대에게 일기토를 신청하겠다!”

       

       전선 전체에 울리는 쩌렁쩌렁한 외침. 그에 따라 전선을 유지하는 병사들 사이에서 웅성임이 울려퍼진다.

       

       경악. 공포. 두려움. 대충 부정적인 말을 끼워 넣으면 맞아떨어질 듯한 모습을 확인한 난 지휘관들을 내버려 둔 채 발을 움직였다.

       

       “네르! 어딜 가느냐!”

       

       그러자 뒤에서 주인공의 아비가 손목을 붙잡았다.

       

       “저 자의 장난질에 놀아줄 이유가 없다. 흑기사가 아무리 괴물 같은 녀석이라지만 어디까지나 인간. 수의 폭력으로 짓누르면 버티지 못한다. 충분히 소모된 후에 네가 목을 치면 그만이야.”

       

       그는 말했다. 전장에는 비겁함도 뭣도 없다고.

       

       나도 그리 생각한다. 서로가 죽고 죽이는 곳에 명예가 어디 있겠느냐. 있는 것이라고는 잔혹한 실리일 뿐이지.

       

       이를 알고 있기는 하다마는 그대의 말을 들어줄 생각은 없다.

       

       “되었다. 이기고 돌아오면 그만이잖으냐.”

       

       내가 미쳤다고 여기서 멈추겠느냐.

       

       저 하나를 만나기 위해 여기까지 걸어왔다.

       

       오롯이 저 흑기사란 놈을 잡아 죽이기 위해 이 곳까지 왔단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멈추어버리면 본인이 여태까지 들인 공은 어찌 되느냐.

       

       들을 가치도 없는 말을 흘려들으며 아비의 손에서 손목을 빼낸 후 황망히 날 바라보는 시선에 등을 돌리고는 앞으로 걸어간다.

       

       신음하는 부상병들을 지나치고, 알아서 길을 만들어내는 병사들을 지나치고, 전선에서 무어라 떠들다 내 얼굴을 보곤 당혹에 빠진 이를 지나치고.

       

       앞으로.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흑기사의 앞에 설 수 있었다.

       

       골격이 좋군. 무재를 타고 났어. 어지간한 녀석은 이 놈이 힘으로 밀어 붙이기만 해도 박살이 날 테지.

       

       손이라던가 단련된 근육, 그리고 검에 묻어난 손때를 보면 단련을 게을리하는 녀석도 아닌 듯 하고.

       

       상대하는 맛은 있겠군.

       

       눈으로 살피며 저를 평론하고 있으려니 흑기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진짜 꼬맹이잖아? 다른 놈들은 이런 애한테 처발린 거야?”

       

       허. 거 참.

       

       – 엌ㅋㅋㅋ

       – 응애에요!

       – 여기 아바타가 작긴 한데.

       – 화령님 개무시 당하는 거 처음 봐.

       

       “갑옷도 안 입었고, 마력도 안에 거의 없고, 검은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지만 그 뿐이고. 얘 맞나?”

       

       전장에서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상대의 감정을 뒤흔드는데 성공한다면 많은 이점이 뒤따르기 마련이니까. 물론 단순히 상대를 화나게 만드는 게 즐거워서 이러는 작자들도 존재하고.

       

       본인이 살아오며 얼마나 많은 도발을 들어보았겠느냐.

       

       이런 것에는 익숙하다. 그러니 어찌 대처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지.

       

       방법은 여럿 있다마는 그 중에서 본인이 선호하는 것은 깨부수는 것이다.

       

       이빨을 다 깨부수고 혀를 뽑아 버리면 도발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되니까.

       

       “이봐. 꼬마야. 네가 르네 맞냐? 혹시 길을 잃은 거라면 돌아가.”

       

       나는 저 물음에 대답을 하는 대신 허리춤에 차고 있는 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는 자세를 취했다.

       

       “하?”

       

       갑옷 위로 향하는 정권.

       

       흑기사는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볼 뿐 피할 생각 따위 하지 않는다.

       

       이 권이 갑옷을 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대의 생각이 옳다. 본인이 아는 세상의 규율이 어디에도 존재치 아니하는 이 곳에서 본인은 무공을 펼치지 못한다.

       

       허나 의가 없다 하여 형이 존재하지 않더냐?

       

       무의 근간은 평범한 인간이 자신을 호신하고자 함이라.

       

       내기가 없고. 도가 없고. 의가 없다 하여도.

       

       그 근간은 여전히 이 자리에 도사리고 있지.

       

       본인이 내지른 주먹이 갑옷에 닿으며 가벼운 소리가 난다.

       

       퉁. 하는 자그마한 소리.

       

       그를 듣고서 코웃음을 치려던 흑기사였으나 놈의 웃음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갑옷을 타고 넘어간 충격이 그의 복부를 뒤흔들었으니까.

       

       배를 붙잡으면서 뒤로 물러난 녀석이 입술을 꽉 깨무는 게 보인다.

       

       “잘 피했구나. 안을 진탕으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충격이 복부에 닿은 순간에 바로 반응했다. 분명 예상 외의 일격이었을 텐데.

       

       그래. 저 정도는 해 줘야지.

       

       “무슨 짓을 한 거냐.”

       “보고 당했으니 알지 않으냐? 때렸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을 하면서 몸의 상태를 점검했다.

       

       여러 전장을 지나오며 많은 전투를 거친 까닭에 최초 게임을 시작했을 무렵과 비교하면 주인공의 몸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허나 어디까지나 최초와 비교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여전히 이 육신은 지닌 것보다 모자란 것이 많다.

       

       방금 전까지 휴식을 취하고 있었기에 상태 자체는 만전이다만 소모가 빨라.

       

       방금 전 주먹을 내지른 것만으로 뼈가 시큰거리는 것을 보라.

       

       이 흑기사를 쓰러트리는 것 자체가 목적이니만큼 후일을 신경 쓸 필요는 없으나 길게 가면 몸의 한계가 찾아오겠군.

       

       “…이유 없는 실적은 없다는 건가.”

       

       흑기사는 입술을 곱씹더니 자신의 허리 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주먹 자체가 충분한 흉기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 파 어쩌구하는 기사보다는 훨씬 낫구나. 그 멍청이는 추함의 극치를 달렸는데 말이다.

       

       “가겠다.”

       “그래. 한 수 가르쳐 주마.”

       

       이 게임의 결말을 볼 시간이 가까웠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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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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