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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1

     

     군마, 마차, 마도자동선, 비행선.

     

     무엇이든 일단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건 마찬가지지만, 만들어내는데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은 곧 단기간 사용하지 않을, 최소 10년 정도는 사용할 생각으로 만든다는 것과 같다.

     

     10년이 뭐냐.

     말처럼 수명이 정해져있는 생물체도 아닌 마차나 배와 같은 이동수단은 30년도 넘게 사용하려고 처음부터 작정한 물건이다.

     짧게 한 순간 사용하려고 만든 게 아니다.

     

     고작 1회용으로 사용하려고 만든 게 아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그렇게 사용할 수 있는 게 나다.

     ‘얼마 들었더라.’

     재료비나 인건비나 그런 걸 전부 다 합쳤을 때, 대략 2억 탈러 정도는 들어가지 않았을까.

     연구비, 혹은 그 재료에 들어가는 황금과 마석 등을 투자 자산으로 불려서 어딘가 다른 곳에 사용한다면, 2억 탈러의 수 배는 더 많이 벌어들였을 자본이 생길 수 있다.

     그런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들어간 황금의 배는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

     “변경백 각하. 이거, 이래도 되는 겁니까?”

     “역사에 길이 남겠지.”

     내 옆으로 사뿐히 착지한 로버트 경이 뒤를 슬쩍 바라본다.

     

     “제2 관문을 뚫고 제국 비행선 일곱 대를 관성과 무게로 박살낸 걸로도 모자라, 협곡의 제1 관문 앞까지 미끄러진 이 황금의 비행선을 말이야.”

     “…….”

     

     결과만 놓고 한 줄로 요약하자면, 나는 황금의 비행선을 그대로 협곡에 때려박았다.

     물소가 승냥이 무리를 향해 뿔을 들이밀고 돌진하듯.

     와이번이 까마귀 떼를 날개로 후려치며 하강하듯.

     그렇게 50m에 이르는 전열함은 협곡에 주둔 중이던 제국 수비대의 중앙을 그대로 들이받았다.

     우리는 갑판에서 뛰어내렸고, 그 뒤는 뭐.

     “커, 커헉!”

     제2 관문의 무너진 성벽의 잔해에서 기어나오던 제국군 장교 하나가 근처를 확인하고 있던 우리 기사에 의해 목이 잘린다.

     

     가만히 무너진 바위 틈에 숨어 있었다면 살 확률이 높았겠지만, 그런 냉철한 생각을 하기에는 무너진 성벽 속이라는 환경이 여간 쉽지 않다.

     “으, 으아아아!!”

     제1 관문을 지키고 있던 제국군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일부가 도주한다.

     정예병이지만 그들을 통솔할 장교와 간부들이 먼저 깔려 사망했거나-

     “노스트럼이나 제국이나, 사람 사는 곳은 똑같군.”

     그 당사자들이 황급히 비행선에 올라타서 그대로 제국 방향으로 도망치는 걸 아래에서 보았기에, 황급히 제국으로 다급하게 도망치려고 한다.

     “쫓겠습니다.”

     “아니. 지상에 있는 자들은 독 안에 든 쥐다.”

     나는 검을 뽑아 손등을 가볍게 그었다.

     “제2 관문은 무너졌지만, 아직 양 끝의 관문은 지브롤터에 반응하고 있는 것 같으니.”

      

     위이잉.

     지브롤터의 피에 반응하는 마법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우리가 스스로 부순 제2 관문도 일부나마 붉은 빛을 반짝이며 뭔가 반응하려고 하지만, 관문 자체의 가운데가 무너졌기에 빛만 반짝일 뿐이었다.

     “닫아라.”

     구구구.

     협곡의 관문이 굳게 닫힌다.

     3관문을 통해 지브롤터 방향으로라도 일단 빠져나가려던 제국군 병사들도, 1관문을 통해 제국으로 도망치려던 제국군 병사들도 모두 서서히 닫히는 협곡 문에 다급하게 발걸음을 재촉한다.

     “로버트 경. 관문도 마찬가지지만, 제국 방향으로는 마법결계가 펼쳐져있어서 강하거든?”

     “3관문은 몰라도, 1관문으로 도망치는 이들이 성문을 부수고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거군요.”

     “바로 그거지.”

     

     구구궁.

     성문이 닫힌다.

     “으아아아악!!”

     중간에 한 명 정도 다급하게 빠져나가려고 하다가 팔이 성문 사이에 끼었으나, 성문은 그저 지브롤터의 명령에 따라 ‘닫힌다’라는 명령을 수행할 뿐이었다.

     “지브롤터. 지금부터 협곡에 남은 잔존 제국군을 소탕한다.”

     “몰살입니까?”

     “우리는 노스트럼도 아니지만, 제국도 아니야.”

     “알겠습니다.”

     로버트 경이 앞으로 목을 가다듬는다.

     “지브롤터의 기사들은 들으라! 저항하는 자는 죽여라! 제국의 병사들이여! 살고 싶다면 총을 내려놓고 항복하라!”

     협곡 안에 로버트 경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마나까지 싣고 내지르는 소리는 협곡의 위로 솟구쳐, 우리의 돌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하늘을 날아 도망가려는 비행선을 향한다.

     “쟤들은 듣지 않겠…이런.”

     투두두두.

     하늘에서 머스킷의 탄환세례가 떨어진다.

     “……!”

     그냥 탄환도 아니고, 중간중간 보이는 거대한 무언가.

     사람 머리만한 크기의 무언가에 순간적으로 나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서걱.

     하늘을 향해 칼을 크게 뻗는다.

     오러의 참격이 반달을 그리듯 하늘로 날아가, 로버트 경을 향해 날아오던 거대한 구체를 반으로 갈라버렸다.

     쿠ㅡ웅!

     로버트 경의 좌우로 떨어지는 덩어리 두 개.

     그저 무식하게 무게만 높이는데 집중한 것 같기도 한 구체의 꽁무니에는 초소형 간이 풍석을 달아놓은 것처럼 마력이 헛돌고 있었다.

     “……죽이려고 작정을 했군요.”

     “마스터급이라면 잠깐 뇌진탕 걸리고 끝나겠지만, 상급 기사도 위험한 건 분명하지.”

     쿵, 쿵, 쿠ㅡ웅.

     납탄이, 그리고 납탄을 수십 개는 뭉쳐놓은 것 같은 무쇠 덩어리가 떨어진다.

     그것은 아마도-‘포탄’일 터.

     “저, 저 미친…!”

     로버트 경이 방패로 포탄을 튕겨낸다.

     이제 거의 100m 높이까지 올라간 비행선에서 떨어지는 포탄을 방패로 튕겨내는 건 큰 무리가 없지만, 그 바람에 로버트 경 같은 기사도 순간적으로 발이 멈췄다.

     “으, 으아아…!”

     아래에 있던 제국군 병사가 겁에 질린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공포와 분노가 담긴 그의 시선은 자신의 앞에 있는 지브롤터의 소드 마스터가 아닌, 자신들을 버리고 관문을 넘어 도망치는 제국의 비행선.

     “노스트럼이나 제국이나, 인간은 어딜 가든 다 똑같지. 단지 누가 더 인간 사이의 악의를 잘 대응하고 발전시켰냐, 그 뿐.”

     “벼, 변경백 각하! 지금 그렇게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잖습니까!”

     “잠깐만 기다려봐. 파악 한 번만 더 해보고.”

     기감을 퍼뜨린다.

     후각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백은의 향기를 좇는다.

     머스킷의 폭연과 무너진 협곡의 흙먼지, 그리고 죽어나가는 제국 병사들의 피냄새 사이에서 느껴져야 할 주적의 냄새.

     이 대륙의 모든 백은을 응집한 것 같은 특유의 퇴폐적인 냄새의 주인이 지금 이 협곡에 있는가?

     지금, 당장?

     “…없네.”

     

     황제는 이곳에 없다.

     “아무래도 황제의 행방은 저기 비행선 위에 있나본데.”

     “황제가 비행선을 타고 도망친다는 이야기입니까?”

     “아니. 있었다면 진작 나왔겠지.”

     협곡은 전략적 요충지다.

     비행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협곡은 지켜야 한다.

     “나라면 병상에 누워있었어도 뛰쳐나왔을 거야. 그러니, 저기 도망가는 놈들에게 가서 따져봐야겠어.”

     “어떻게-”

     “이렇게.”

     발에 힘을 모아, 협곡의 벽을 향해 뛴다.

     경사진 협곡을 사선으로 밟아나가며 뛰어오른다.

     협곡을 밟고 뛴다기보다는, 협곡에 오러가 깃든 발을 발자국이 남을 정도로 발을 찍어가며 솟구친다.

     “뭐, 뭐야?!”

     도망치는 비행선 갑판 위에 있던 병사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서서히 나와의 고도 차이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사람이, 벽을 타고 달려…?”

     제국 방향으로 흘러들어가는 바람 덕분에 제국 병사의 혼잣말이 귀에 들린다.

     평범한 사람은 못하는 일이다.

     오직 마스터 급 체력과 마나를 가지고 있는 사람, 그리고 이런 걸 한 번 해본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저, 저 괴물!!”

     50m.

     성벽의 높이까지 사선으로 뛰어올라.

     “쏴, 쏴! 쫓아오지 못하게 막아!!”

     80m.

     내가 달려나갈 위치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뛰어.

     “어, 어…?”

     

     100m.

     비행선이 날고 있는 높이-

     ‘부족해.’

     보다 30m, 아니 50m 정도는 더 높게 달려 기어이 협곡의 중간 위치에 발이 닿는 순간.

     콰ㅡ앙!

     두 발을 모아 아래를 향해 뛴다.

     허리에 찬 검을 뽑아 오러를 담고, 그대로 사선으로 떨어지는 방향을 향해 크게 검을 휘두른다.

     배를 가른다.

     검을 휘두르는 건 짧은 순간이지만, 그 일검에 베이는 건 하나가 아니다.

     검신에 깃든 오러가 칼날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고, 닿는 모든 것을 가른다.

     배도, 내부에 있는 마도엔진도, 운 없게 나의 궤적에 손을 들이밀고 있던 제국군 장교의 손목도.

     “후.”

     갈라진 배의 아래로 몸이 떨어진다.

     궤적이 조금만 틀어졌다면 그대로 허공에서 땅에 추락하겠지만-

     쿠ㅡ웅!

     미리 눈으로 확인해둔 또다른 비행선에 착지한다.

     갑판에 그대로 떨어지는 바람에 갑판이 부서지며 안으로 던져지지만, 나는 검에 오러를 풀고 비행선의 벽에 검을 박아넣었다.

     키기기긱.

     비행선 내부의 기둥을 긁으며, 나는 내 몸의 관성을 억눌렀다.

     “후ㅡ우.”

     전신에 충만했던 오러를 풀어내며, 자신의 목 옆에 멈춘 칼날에 입을 떡 벌리는 제국군 장교를 향해 미소로 인사했다.

     “황제는 어디에 있지?”

     “아, 아으, 이, 미친….”

     “황제 어딨냐고. 대답하면 살려준다.”

     “대, 대답할 것 같으냐! 나는 자랑스러운 제국의-.”

     푸ㅡ욱.

     검을 당겨, 목을 베었다.

     검날의 끝에 오러를 살짝 담아 그대로 목을 날려버리고, 제복에 박힌 휘장을 통해 상대의 직위를 가늠한다.

     “장관급 인사가 여기까지 와서 지휘하고 있으면, 황제는 여기 없겠네.”

     구구구.

     창 옆으로 반으로 갈라진 비행선이 추락한다.

     비행선에 타고 있던 장교들이 다급하게 몸을 가누려고 하지만, 추락하는 자들에게는 날개가 없다.

     “발판만 있으면, 협곡 높이 정도는 닿을 수 있거늘. 후우.”

     

     나는 품에서 유리병을 꺼낸 다음, 안에 있던 캐롤라인을 그대로 전부 들이켰다.

     “…황제 없으면, 마나 써도 되니까.”

     황제를 전담하기 위해 마나를 온전하려고 했었다.

     황제가 없다면, 그 마나는 조금이나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덜커덩.

     “장군! 지금 무슨-”

     “기장이야?”

     문을 열고 들어온 장교를 향해, 나는 목만 남은 채 벽에 기대고 쓰러진 장군을 눈으로 가리켰다.

     “나 태우고 제국까지 갈래, 아니면 얌전히 착지할래?”

     “어, 어으, 으어어….”

     “죽거나, 혹은 항복하거나.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주마. 나는 황제랑은 달라서 말이야.”

     “…저, 정말로 살려주시는 겁니까?”

     “물론.”

     나는 황제와 다르다.

     “그대도, 누군가의 아버지일테니. 아, 물론 죽고 싶다면 죽여줄테지만. 기회는 한 번 뿐이야.”

     “……투항, 하겠습니다.”

     “좋은 선택이야.”

     나는 검을 내렸다.

     

     “살아만 있다면 일단 다음을 생각할 수 있거든. 진짜로 투항하든, 아니면 몰래 배신해서 나를 죽이려고 하든. 이미 말했으니, 알지?”

     “…….”

     “자, 그러면….”

     비행선이 하나둘 서서히 고도를 낮추는 모습을 보며, 나는 품에서 마석 하나를 꺼냈다.

     “아아. 보고 있습니까, 아스타시아?”

     그리고는 그 마석을 향해 나의 피를 묻힌 뒤, 가볍게 목을 가다듬었다.

     “여기는 그레이 지브롤터.”

     지브롤터 협곡의 관문들이 붉게 반짝였다.

     이전보다 더 선명하게 이 협곡의 상황이 보이고 있을 터.

     “협곡을 되찾았습니다.”

     물리적으로 잃은 것은 많다고 할 수 있어도.

     “노스트럼에 전해주십시오.”

     우리는 탈환했다.

     지브롤터의 자존심을.

     뚝.

     마석을 내린다.

     협곡의 붉은 빛이 사라지고, 나는 검을 뽑아 기장에게로 몸을 돌렸다.

     “황제. 지금 제도에 있지?”

     기장은 답하지 않았으나.

     “제도까지 비행선으로 날아가려면 남은 연료로는-”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비행선에 연결된 통신장치를 통해, 평소와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그곳으로 직접 갈테니.]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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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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