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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1

   과거 어렸을 때의 베네딕은 타협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내였다.

   

   어렸을 적부터 자신의 무위를 떨치던 그는 아카데미에 입학을 하기도 전에 알른 가문의 기사단 전원을 깨부수었으니.

   

   당시 철없이 강하기만 하던 베네딕은 자신이 바란다면 무엇이라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카데미에 입학한 후에도 그의 생각은 더 확고해지기만 했다.

   

   처음에는 평생 해보지 않은 공부에 머리를 싸매던 그였지만 다른 이에게 패하고 싶지 않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한 결과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했으니까.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에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는 영지민들의 사랑을 받았고 왕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서 승전만을 거듭했으며 오만방자하고 거만한 태도를 고칠 이유를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실패를 경험한 것은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을 때였다.

   

   여자 따위에게 관심을 줄 시간이 없다 외치던 그는 한 여자를 보고서 사랑에 빠졌고.

   

   ‘죄송합니다.’

   

   생에 최초로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 허나 베네딕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좌절하여 발을 멈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이었으니. 베네딕은 가문의 어른들과 방계들이 건네는 여러 혼담을 무시하고서 순애보를 이어나갔다.

   

   ‘정말 바보 같은 분이시군요.’

   

   가까스로 성공한 결혼 생활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베네딕은 지금도 딸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힘을 조금이라도 주면 잘못될 것 같아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옆에서는 바보 같은 그의 모습에 아내가 웃음을 흘리고.

   

   가만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여자아이가 베에하고 웃으며 그의 손가락을 잡던 순간을.

   

   육아란 결코 쉽지 아니했다.

   

   말을 떼기 전에는 아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라 전전긍긍했고 아이가 말을 떼고 나서는 그 유별남에 고생을 했지.

   

   대체 어디서 나쁜 말들을 배워온 것인지. 허접이니 바보니 같은 말을 꺼낼 때엔 베네딕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에 대해 고민을 하곤 했다.

   

   ‘미라. 우리가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그런 걸까? 다른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엄하게.’

   ‘베네딕. 당신이 루시한테 엄하게 할 수 있겠어요?’

   ‘…어. 어어어.’

   ‘거봐요. 못 하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 말 신경 쓰지 마요. 저희에겐 저희의 방식이 있는 거에요.’

   

   아이의 유별남은 병약했던 아내가 죽어버린 후로 한층 더 심해졌지만 베네딕은 딸을 신경 쓰지 못했다.

   

   아내의 빈자리가 너무도 컸기에 주변을 둘러볼 틈이 없었다.

   

   ‘베네딕. 부디 루시를 잘 부탁해요.’

   

   사랑했던 이가 남긴 유언을 떠올리고서 베네딕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너무도 많은 것들이 어긋나 있었다.

   

   베네딕 알른이라는 영웅의 이름으로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그래서 그는 타협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최악 속에서 딸을 위한 최선을 찾아내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법을 터득했다.

   

   분노를 억누르고 바보 같은 웃음을 짓는 것에 능숙해졌다.

   

   지금 세나르 솔라딘이 멀쩡히 서 있을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저 얼굴을 짓뭉개버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알른 가문에 수많은 사슬이 걸릴 것이고 그 사슬은 딸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끼칠 터.

   

   베네딕은 딸아이가 전란이 아닌 평화 속에서 살길 바랐다.

   

   그랬기에 눈에 실핏줄을 세우면서도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다.

   

   “베…네딕 경. 그러니까 이건.”

   “우선 그 발부터 치우시지요.”

   

   용조차도 질리게 만들던 위압이 새어나오자 다급히 뒤로 물러나던 세나르가 비틀거리다 바닥에 넘어졌다.

   

   허나 베네딕은 거기에 시선조차 주지 않고 딸아이의 곁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고통에 비명을 지르던 루시였지만 베네딕이 옆에 도달했을 때엔 이미 여느 때와 같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바보 아버님. 파티가 끝나기엔 이른 시간인 것 같은데요. 사람들 사이에서 도망쳐 나오신 건가요?”

   

   베네딕은 천사 같은 웃음을 마주하고는 같이 웃어주려 했지만 실패했다.

   

   대체. 대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아픔을 겪었으면 이렇게 웃을 수 있는 걸까.

   

   자신의 상처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일까.

   

   자그마한 상처에도 아프다며 눈물을 터트리던 그 아이가 어찌.

   

   “저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요!”

   

   세나르의 외침을 들은 베네딕은 루시의 머리를 느릿하게 쓰다듬어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건!”

   “저도 압니다. 세나르. 우리 딸아이의 성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2왕비가 될 만큼 영민한 그녀다. 우리 루시가 발단이 된 게 아니라면 이런 정신 나간 짓을 저지를 리가 없지.

   

   “그. 그럼.”

   “허나 세나르. 아무리 그래도 선이라는 게 있습니다.”

   

   오늘 날의 베네딕은 타협이란 게 뭔지 안다.

   

   딸아이를 모욕하고 비난하는 자들에게도 그만한 이유가 있으며 거기에 분노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이해하고 있다.

   

   자신이 필사적으로 틀어막으려 해봐야 루시에 대한 반발을 드높일 거라는 것 또한.

   

   허나 애써 참으며 넘기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죠. 세나르. 부디 우리 딸아이가 당신의 발굽에 짓밟히며 비명을 지른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길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

   

   베네딕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기 무섭게 세나르가 뒤로 물러선다.

   

   이성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아닌 경중을 알리는 본능의 외침에 따라 베네딕에게서 도망친다.

   

   허나 그 도주는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시계탑이라는 공간은 도망자에게 호의적이지 못했으니 세나르는 돌조각이 떨어지는 소리에 자신이 낭떠러지에 몰렸음을 깨달았다.

   

   온다.

   

   괴물이 온다.

   

   죽음을 알리는 사자가 온다.

   

   인간의 형체를 한 절망이 다가온다.

   

   과거 전선에서 싸웠던 세나르는 저 절망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알았다.

   

   단신으로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재앙은 인간이 상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떨어질까?

   

   아냐. 그래봐야 저 재앙은 나를 쫓겠지.

   

   비명을 지를까?

   

   그런다고 뭐가 달라져?

   

   저 괴물을 막아설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해?

   

   공포.

   

   공포.

   

   차오르는 공포 속에서 끝없이 이어지던 절망을 끊어낸 것은 밤에 어울리지 않는 높고 명랑한 목소리였다.

   

   “파파♡”

   

   툭.

   

   여자아이의 자그마한 손이 거인의 앞을 가로 막는다.

   

   밀어내려면 얼마든 밀어낼 수 있을 터이나 거인은 그러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의 말을 기다릴 뿐.

   

   “늙어빠진 아줌마가 짜증을 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루시.”

   “그리고 나 피곤해♡ 파파는 저딴 노괴 때문에 날 내버려두는 못난 파파야?♡”

   

   루시가 두 팔을 벌려 안아주기를 청하자 딱딱하던 베네딕의 얼굴에 느슨한 웃음이 새겨진다.

   

   “미안하구나. 신경 써주지 못해서.”

   

   한 팔로 거뜬히 들어 루시를 어깨에 앉힌 베네딕은 순식간에 웃음을 지운 채 다리에 힘이 풀린 세나르를 바라봤다.

   

   “다음에 같은 일이 없길 바라겠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베네딕은 한 걸음으로 시계탑을 진동시키며 아카데미 바깥으로 떠나가 버렸다.

   

   홀로 남겨진 세나르는 공포가 잔여하는 탓에 떨리는 손을 억누르며 심호흡을 했다.

   

   왕국의 송곳니는 노쇠하여 변방에 머무르고 있다던 멍청이들한테 방금 전의 광경을 보고 주고 싶네.

   

   저게 어떻게 노쇠한 거냐고!

   

   괴물은 여전히 괴물일 뿐이잖아! 왕비다워야 한다는 생각도 잃고 돌바닥을 퉁퉁 두드리던 세나르는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나빌. 나와.”

   “예. 왕비님.”

   

   시계탑의 벽 쪽에서 나타난 그녀의 호위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상황이 급박하여 미처 도와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는.”

   “됐어. 나도 알아. 네가 튀어나오는 순간 상황이 악화될 거라는 것쯤은.”

   

   세나르가 도끼를 꺼내든 순간부터 상황은 돌이킬 수 없어졌다.

   

   그녀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무기를 꺼내선 안 됐다.

   

   루시 알른이라는 존재가 간절한 지금은 더더욱.

   

   “멍청한 년. 과거에 사로잡혀서 현재를 망쳐버리다니.”

   

   미래를 위해 살겠다 다짐해놓고 이런 꼴이냐.

   

   세나르는 자신의 우둔함을 원망하다가 문득 눈을 찌푸렸다.

   

   잠시만.

   

   나 왜 이성이 아예 날아가 버린 거야?

   

   단순히 열이 받았다는 정도가 아냐. 어느 순간부터 이성이 증발해 버렸어.

   

   그래. 분명 내가 그 루시 알른의 어미를 욕한 후 그 꼬맹이의 웃음이 진득해진 순간부터.

   

   입술을 꾹 깨문 세나르는 자신의 아버지를 가로막던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길게 숨을 내뱉었다.

   

   가족…인가.

   

   귀족 사회에 그딴 건 없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따라 쓸데없이 어른스러워 보이던 세실을 떠올린 세나르는 두 눈을 꾹 누르다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나빌. 알른 가문에 전령을 보내둬. 사과의 뜻을 전하러 가겠다고.”

   “알겠습니다. 왕비님.”

   

   베네딕 알른에게 미움을 사버린 건 어쩔 수 없어.

   

   그렇지만 최소한 적대하는 수준은 아니어야 해.

   

   그 괴물은 홀로 천칭을 뒤집을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정 안 된다면 그 괴물을 조종할 수 있는 여자아이의 마음이라도 사야.

   

   “제에에엔장.”

   

   그런 짓을 저질렀는데 어떻게 마음을 돌려.

   

   괴물을 시켜서 날 죽이라고 하는 쪽이 더 현실성 있겠다.

   

   “왕비님. 한 가지 제안 드릴 것이 있습니다.”

   “뭔데.”

   “알른 영애께서는 어미라는 단어에 민감했습니다. 그와 관련된 것이라면 사과를 전하기에 적합하지 않을는지.”

   “…괜찮네.”

   

   예전에 그 아이가 내게 주었던 팔찌가 있었지. 너무 수수해서 보관만 해두고 있었는데 쓸모가 생겼어.

   

   “그거 이외에도 던전이나 방어구와 관련된 걸 준비해둬.”

   

   루시 알른을 만나 할 것은 사과뿐만이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왕비님. 이외에 명하실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아냐. 그거면 충분해.”

   

   고개를 내젓고서 자리에서 일어난 세나르는 몸가짐을 새로이 한 후 다시금 파티회장으로 향했다.

   

   *

   

   “그랬구나.”

   

   일의 전말을 들은 베네딕은 내게 무어라 하는 대신 미묘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나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 앞에서 난 괜한 소리를 하는 대신 그가 마음을 다스리길 기다렸다.

   

   이렇게 보면 평소와 다를 거 없는 베네딕인데 말야.

   

   방금 전에 정색할 때는 엄청나게 무서웠지.

   

   나를 향한 것도 아닌데 그 기백에 짓눌려서 굳어버렸을 정도니까.

   

   그 위압이 나를 향했다면 머리를 쥐어 싸매고 죄송합니다라는 말이나 중얼거리지 않았으려나.

   

   턱을 괸 채 시계탑에서의 일을 떠올리던 나는 세나르에게 놀아났던 것을 기억해내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할아버지. 경험의 부족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내가 세나르에게 참패한 이유는 명확했다. 경험의 차이.

   

   나는 격상의 무인과 진지한 전투를 한 적이 없다시피했다.

   

   포셀이나 칼을 비롯해 나보다 격상의 실력을 지닌 무인들은 날 진심으로 이기려하기보단 날 가르치는 데에 중점을 뒀고.

   

   아드리나 나크라드를 상대할 때는 실력으로 이겼다기보단 썩은물의 지식으로 파훼를 한 것에 가까웠으며.

   

   그나마 정상적이었던 버로우 공작과의 전투도 악신에 홀린 그를 상대로 꼼수로 승리한 것이니.

   

   세나르가 나를 읽고 파훼하리라는 생각자체를 못한 것은 이 경험의 부족 때문이었다.

   

   <어떡하긴. 그건 많이 싸워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겠죠.’

   

   예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강자와 진지한 전투를 해 볼 필요가 있어.

   

   지금보다 더 강해지기 위해서 반드시.

   

   이번 방학 때 할 일이 많단 생각을 하던 나는 베네딕에게 부탁해야 할 것이 있음을 떠올리고 다급히 목소리를 냈다.

   

   ‘아버님.’

   “바보 아버님.”

   

   “응? 왜 그러니. 루시?”

   

   ‘부탁드릴 게 있어요.’

   “부탁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들어주면 바보 아버님이 너~무 좋아질지도 몰라요.”

   

   “무엇이든 말만 하렴! 이 파파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해주마!”

   

   ‘그게요…’

   “허접허접인 친구들을 우리 가문의 바보 기사들과 함께 훈련시키고 싶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른 기사단의 훈련 투어!

열이 가서 열이 혼절할 정도로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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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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