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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1

       ‘뭐지?’

       

       메리가는 의문을 품으며 물건이 있는 곳까지 뛰어갔다.

       

       나무열매는 아니다.

       

       마수도 아니다.

       

       “책이네?”

       

       메리가가 주운 것은 두께가 꽤 있는 하드커버 양장본이었다.

       

       책을 본 적은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의 부모님이 살아 계셨을 적에 말이다. 그 이후로는 거의 보지 못했다.

       

       ‘무슨 책이지?’

       

       이름을 적은 사람을 심장마비로 죽이는 책이라든지, 자연을 부리게 해 주는 요술서 같은 건 아닐 것이다.

       

       메리가는 양장본에 윗부분에 적힌 글씨를 살펴보았다.

       

       [기초지계마도이론]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메리가는 글을 읽을 줄 몰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부모님께 배우긴 했는데 2년 사이에 대부분 까먹고 말았다.

       

       ‘기, 기…. 이 다음이 무슨 글자야?’

       

       종이를 뚫을 기세로 쳐다봐도 모르는 건 모른다.

       

       메리가는 고개를 갸웃하며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은 대학교 1학년생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이론은 물론 실습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이… 대… 실…….’

       

       인쇄된 글자 외에도 사람이 손수 덧쓴 글귀가 몇 개 보인다. 역시나 몇몇 글자를 제외하면 뭐라 적혀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문자를 배우든가 해야지.’

       

       그래도 이것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분명 엄청 심오한 내용을 메모해 놓은 거겠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만큼 창건한 필체였다. 적어도 귀족과 같은 지식인 계층이 남긴 글이리라.

       

       그래봤자 당장 글을 읽을 수 없는 메리가에겐 무용한 물건이었다.

       

       ‘이거, 팔면 도움이 되려나?’

       

       메리가는 책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상품 가치를 가늠했다.

       

       비록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모서리가 뜯긴데다가, 찢어진 페이지도 있었지만, 이 정도면 양호한 상태였다.

       

       팔 수 있을 것 같다.

       

       ‘안 팔리면 베개로 쓰고 말지 뭐.’

       

       메리가는 헤실헤실 웃으며 책을 옆구리에 꼈다.

       

       그 순간.

       

       “후읍?”

       

       투박한 손이 메리가의 입 주변을 감쌌다.

       

       찰나의 기습.

       

       “이 년이…. 가만히 있어!”

       

       메리가는 버둥거리다가 그 소리를 듣고는 축 늘어졌다. 여기서 저항해 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럴 땐 가만히, 순종적으로 있는 것이 살길. 메리가는 정신을 다잡으며 최대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뒤로, 거구의 남자가 둘 있다.

       

       한 명은 얼굴에 흉터가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까까머리였다.

       

       어쨌거나 좋은 인상은 아니다.

       

       “이 녀석, 생각보다 예쁘게 생겼잖아?”

       “그 양반한테 내다 팔면 쏠쏠하겠어.”

       

       두 남자는 메리가를 묶은 다음 포댓자루에 담았다.

       

       메리가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하고 말았다.

       

       유괴.

       

       외진 곳을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빈번하게 당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뭐냐?”

       “낸들 아냐? 같이 팔게 거기 포대에 넣어 둬.”

       

       툭. 꼼짝없이 묶인 메리가의 머리 위로 예의 양장본이 떨어졌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에, 전신이 덜덜 떨려왔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납치당한 아이들의 말로는 결코 좋지 못하다. 메리가는 그 사실을 수많은 간접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이윽고 자루가 들어올려졌다. 메리가는 운송용 골렘 같은 것에 포대째로 싸여 실려갔다.

       

       덜컹, 덜컹.

       

       30분에 걸친 운송 끝에, 납치범들은 메리가를 어딘가로 내려놓고는 포대를 풀었다.

       

       “아저씨, 반반한 년 하나 잡아왔수. 대금 주십쇼.”

       “얼굴부터 보고 주겠소.”

       “어떻습니까?”

       “호오.”

       

       새로 만난 남자는 예의 두 남자보다는 키가 작았으나 전신에 문신이 있었다. 무서운 건 이쪽이 더 무서웠다.

       

       그런 남자가 메리가를 내려다보며 입매를 뒤틀었다.

       

       “이 정도 외모라면… 잘만 하면 떼돈을 벌겠군.”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괴범들에게 돈꾸러미를 주었다. 유괴범들은 만족하며 돌아갔다.

       

       그러는 사이, 메리가는 주변을 살폈다. 정육점에서나 쓰일 법한 붉은 등이 로비 전체를 음산하게 밝히고 있다.

       

       ‘홍등가.’

       

       보다 세련되게 말하자면, 성매매 업소.

       

       메리가는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꼈다.

       

       ‘하필이면 이런 곳에….’

       

       망했다.

       

       제일 오기 싫은 곳에 잡혀와 버렸다.

       

       ‘아니, 아니지.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엄마가 그랬어.’

       

       메리가는 옛 교훈을 되새기며 심호흡을 했다.

       

       “뭘 멀뚱거리고 서 있어? 따라와.”

       

       메리가를 사들인 이 남자는 포주인 것 같았다. 뒷골목의 포주 중에는 성격 더러운 사람이 많다. 해당 사실을 떠올린 메리가는 반항하지 않고 포주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따랐다.

       

       “어이쿠. 이번 애는 말을 잘 듣는군.”

       

       포주는 흡족히 웃었다. 그 모습이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이 새끼들이… 쓰레기는 도로 가져가야 할 거 아니야?”

       

       유괴범들이 포댓자루를 그대로 놓고 간 모양이다. 포주는 구시렁거리며 포대를 주워 정리하려 했다.

       

       툭, 하고 무언가가 떨어졌다.

       

       “응? 이건 뭐야.”

       

       예의 양장본이었다.

       

       그 유괴범들이 가져가서 판다고 했는데, 포주가 준 돈에 정신이 팔려 그만 깜빡한 모양이다.

       

       “꼬맹아. 이거 네 거냐?”

       “네.”

       

       메리가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거짓말 마라. 이건 마도서야. 아카데미 학생들이 쓰던 것일 텐데, 너 같은 어린애가 이런 걸 왜 들고 있어?”

       

       그래, 아카데미 학생들이 보는 마도서였다 이 말이지?

       

       메리가는 입을 비죽이며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돌아가신 엄마가 사준 거예요. 나중에 열심히 공부해서 아카데미에 들어가라고 말이에요.”

       “정말이냐?”

       “네. 정말이에요.”

       

       이럴 때는 뻔뻔하게 대답하는 것이 좋다. 거짓말을 해 봤자 포주가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포주는 메리가를 조용히 응시했다. 마치,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녀 자신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메리가는 부랑아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곱상하다.

       

       우윳빛을 띠는 피부에, 날렵하고 가는 눈동자. 좋은 옷을 입혀 놓는다면 귀족 아가씨로 착각할 만한 외모였다.

       

       홍채는 짙은 갈색에서 검은색 사이였는데, 이는 지계마도의 자질을 타고났음을 의미한다.

       

       “하아, 이것들. 높으신 분 딸내미 납치해 온 거 아니야?”

       

       포주는 그리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야, 꼬맹이. 일단 이쪽으로 와. 해야 할 일을 알려줄 테니까.”

       

       메리가는 어깨에 잔뜩 힘을 주었다.

       

       아무리 봐도 도망칠 각이 안 보였다. 역시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연분홍빛을 띠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양쪽으로 방이 십수 개는 있는 듯했다. 몇몇 방에선 산드러지는 교음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포주는 그런 방으로는 메리가를 들여보내지 않았다.

       

       “여기가 앞으로 네가 살 곳이다.”

       

       포주가 가리킨 곳에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아이가 수두룩하게 있었다.

       

       메리가는 문득 고개를 올려다봤다.

       

       하얀색 간판 위로 작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전부 읽을 수 있는 글자였다.

       

       “…대기실?”

       

       메리가가 멀뚱거리며 해당 글자를 읽었다. 그러자 포주가 오호,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까딱였다.

       

       “들어가 있거라.”

       

       뭔가, 포주의 목소리가 아까보단 유순해졌다.

       

       메리가는 그것이 단순한 착각 내지는 자신을 잘 부려먹기 위한 유화책이라고 생각했으나.

       

       “참, 이것도 가지고.”

       

       포주가 양장본을 도로 건네주면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

       

       

       메리가가 납치되어 들어온 곳은 ‘미혹의 숲’이라는 이름을 지닌 사창가였다.

       

       사창가가 뭔지는 메리가도 잘 안다. 여자들이 돈을 받고 남자에게 몸을 파는 곳이다.

       

       그러나 메리가는 아직 그렇고 그런 일에 동원된 적이 없었다.

       

       그 대신에, 빨래나 청소와 같은 잡일을 조금씩 배웠다.

       

       메리가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와 같이 이곳에 납치되어 들어온 아이들은 나이가 찰 때까지 포주가 성매매를 시키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말만 잘 들으면 밥은 꼬박꼬박 주었기에, 살집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전보다는 배부르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

       

       메리가는 포주가 왜 자신을 독하게 부리지 않는지 궁금해했다.

       

       “그게 왜 그런 거야?”

       “몰라서 묻니? 우리 몸으로는 남자를 유혹 못 하니까 그렇지.”

       

       활기찬 여자애 하나가 메리가의 질문에 그런 대답을 내놓았다.

       

       메리가는 요 며칠 사이, 다른 여자애들과 조금씩 교류하며 말문을 터놓은 상태였다.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10살 초중반의 아이인 데다가, 어쩔 수 없이 잡혀 온 것이다 보니 동료의식이 강했다.

       

       하지만 단 한 명.

       

       물과 기름처럼 잘 섞이지 못하는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헛소리를 해요, 헛소리를.”

       

       구석에서 빵을 뜯어먹던 여자아이가 코웃음을 치며 메리가 일행의 대화에 태클을 걸었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때가 묻어도 윤기를 잃지 않은 금발.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자아이였다.

       

       “너희 말대로라면 내가 왜 아직도 이런 곳에 있겠어? 진작 몸이나 팔고 있었겠지.”

       

       금발의 여자아이는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 법 때문이야. 제국이 이렇게 막장이어도, 아동성범죄는 무조건 사형으로 다스리거든.”

       

       다른 애들은 눈을 멀뚱멀뚱 뜨며 가만히 있었다. 메리가가 보기에, 이들은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또 몇몇은 콧김을 내뿜으며 고까운 기색을 보였다.

       

       “누가 궁금하댔어?”

       “너희가 논리 없이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니까 정정해준 것뿐이야.”

       “우리끼리 얘기하는데 끼어들지 마.”

       

       금발 여자아이가 큭큭 웃으며 손을 휘적거렸다.

       

       “그래, 그래. 나도 평민하곤 말 섞기 싫네요.”

       “너네 집안 쫄딱 망했다며? 망해서 아빠가 너 팔아버렸다며?”

       “뭐, 뭣…! 너 말 다했어?”

       “자기 엄마 아빠한테 팔린 년이 귀족은 무슨! 너희도 우리랑 똑같아! 예비 창녀!”

       

       금발 여자애는 화를 내며 메리가와 대화하던 소녀에게 돌진했다.

       

       “이…! 이 평민 주제에!”

       “꺄악!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그러더니 두 명이서 머리채를 잡아뜯고 싸우기 시작한다. 대기실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두 아이가 꺅꺅거리며 싸우는 사이, 메리가는 침착하게 방 너머에서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이대로라면 포주에게 한바탕 얻어맞고 벌로 하루 동안 굶어야할지 모른다.

       

       “어휴.”

       

       메리가는 하는 수 없이 두 소녀 사이로 끼어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암컷천마님, 1초인 후원 감사합니다!

    mjstn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후일담 완결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차기작은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 가능한 한 빨리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Liszt_786님, 절대영도를 상징하는 273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과거 정기후원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봐 주시고 후원도 해주신 것에 몇 번이고 고마움을 표해도 모자랄 지경입니다. 차기작에서도 주인공을 물리학자로 설정할 예정인데, 그때도 Liszt_786님을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모르퀘이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코인 후원 기념으로 저 또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Q. 에테르 자매의 허리가 활처럼 휘면 오던 비도 그친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A. 테르테르 보즈 라서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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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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