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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2

       어제저녁, 짧았던 테스트 방송을 종료하고 클레어와 앨리스에게 내가 생각해낸 계획을 설명하고 잠이 들었다.

        

       사실 방송이 처음부터 잘될 거라는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아무리 예쁘고 캐릭터와 비슷한 사람이 방송하더라도, 그 방송을 보고 소문이 퍼지지 않는 이상 시청자 수가 느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어제 방송을 할 때는 조명이고 뭐고 없이 그냥 스마트폰 카메라로 대충 튼 방송이었으니 사람들이 모이려야 모일 수가 없었다. 예쁜 사람이라도 아무런 조명 없이 그냥 카메라 앞에 서면 예뻐 보이기 쉽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어제 우리 방에 들어온 사람의 수는 무려 두 자리 숫자. 그것도 앞의 자리가 1은 아니었다.

        

       방송 끝나고 검색해보니 우리 세 사람의 사진이 캡처되어 있었다.

        

       내가 이쪽 세상에서 자주 들어가던 그 갤러리였다. 아무래도 아제르나 전기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었으니 그럴 만 하다고 생각했다. 어제 방송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렇게 올라온 글을 보고 들어온 사람들이었던 모양이다.

        

       한순간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내 계정으로 로그인해 ‘내가 그 방송하는 사람이다’하고 밝혀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건 여러모로 위험할 것 같았다.

        

       갤러리에서는 친목질이 금지다. 내가 유명한 고닉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걸 빌미로 방송 홍보까지 했다가는 곧장 고로시 들어가는 놈들이 있을 게 뻔하다. 게다가 나는 이미 그 닉네임으로 분탕 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기껏 신분이 저절로 세탁되었는데, 굳이 아주 조금의 홍보 효과를 얻자고 내 흑역사를 굳이 들춰내고 내 것이라고 인정할 필요는 없었다.

        

       둘째로, 나는 가능성을 보았다.

        

       딱 한 번이기는 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후원이 들어오긴 했다.

        

       원래 인터넷 방송 후원이라는 것은 해당 방송의 스트리머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니, 우리가 코스프레— 사실 엄밀히 따지면 코스프레가 아니라 본인 그 자체이긴 했지만, 아무튼 그 코스프레를 열심히 하다 보면 가계 사정에 꽤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뭐, 안되면 준비했던 물건들은 중고로 팔아버리고 아르바이트라도 구해봐야지.

        

       아무튼, 그래서 내가 두 사람에게 설명한 계획은 우리가 한동안 꾸준히, 성실하게 방송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앨리스와 클레어는 일단 동의하는 듯했다. 클레어는 그 상황이 마냥 즐거운 듯했고, 앨리스는 우리 생활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조금 안심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가 대화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이 우리한테 돈을 주는 이유가 뭐지?”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 앞에 놓인 모자에 동전을 던져넣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거기에 더해 돈을 넣으며 한마디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기도 하고요.”

        

       “그런 거였어?”

        

       앨리스의 질문에 그렇게 설명해주었더니, 앨리스는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우리가 하려는 일에 딱히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다음날, 게임 방송을 위해 필요한 것을 사려고 조금 멀리 나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맞닥뜨렸다.

        

       “……이건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지갑에 들어있던데.”

        

       앨리스가 보여준 그것은 무려 주민등록증이었다.

        

       그렇다. 내가 이쪽 세상으로 건너오는 과정에서 저절로 생겼던, ‘팬그리폰 실비아’라는, 성과 이름만 한국식 순서로 바꾼 이름이 적혀있던 그 주민등록증과 같은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이름에는 ‘팬그리폰 앨리스’라고 쓰여있었다.

        

       “나도 있어.”

        

       클레어가 그렇게 말하며 건넨 주민등록증에는 ‘그레이스 클레어’라고 쓰여있었다.

        

       두 사람의 지갑은 우리가 옷을 살 때 같이 산 것이다. 안에는 당연히 교통카드밖에 들어있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성인 나이의 민증이 들어있었다.

        

       “우리가 넘어오면서 어떤 조정이 있었던 걸까?”

        

       앨리스의 그 말을 듣고 잠깐 고민해보았다.

        

       “……어쩌면, 여신이 ‘질서’를 관장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 여신이 이쪽 세상까지 관장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이 세상에 내가 등장하는 것이나 클레어, 앨리스가 등장하는 것은 이 세상의 질서를 깨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냥 들어온 뒤에 비어있는 곳을 그대로 두면 여러모로 큰 구멍이 생긴다. 두 사람이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 알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유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상황에서 그냥 한국인으로 처리해버리는 것과 ‘불법체류자’로 처리하는 것 중, 구멍이 덜 생기는 쪽은 당연히 전자다. 불법체류자라고 해서 국적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를 통해 어떻게 들어왔고, 어떻게 여기에 정착하게 되었고…… 같은 것을 만들 바에는 그냥 한국인으로 처리하는 쪽이 간단하지. 어차피 우리 셋은 다른 세계의 사람이니 어느 국적을 가지더라도 구멍이 생기니까.

        

       “질서의 여신이 우리가 이쪽 세상에 동화되도록 만들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쪽에서 오래 지낼수록 점점 우리가 원래 살던 세상과 멀어질 수 있다는 소리야?”

        

       “…….”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질서의 여신이 우리의 ‘비어있는 구멍’을 메꾸려고 시도할 수는 있다. 자기가 원하는 질서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아예 세상 자체를 먹으려고 했던 인물이니까.

        

       어쩌면 그 여신 시점에서 이 세상은 이미 완벽할지도 모르지.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물리법칙이라는 단 한 가지 법칙만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니까. 정작 그 여신이 나를 데리고 가면서 구멍이 크게 생겼지만.

        

       “하지만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합니다.”

        

       나는 앨리스에게 답했다.

        

       “우리가 우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그만이죠.”

        

       “그리고 다른 사람들한테 우리가 우리라는 사실을 퍼뜨리면 되는 일이야.”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클레어가 끼어들었다.

        

       “질서의 여신이 질색할 만큼 우리가 이쪽 세상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티 내며 살면 돼. 그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언니?”

        

       “그렇습니다.”

        

       “……과연.”

        

       그러니까, 내가 클리어와 함께 여신이 만들어낸 환상을 깼던 것 같은 짓을 하면 된다는 소리다.

        

       최대한 나대면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너, 여신과 대적하는 게 정말 즐거운 모양이네.”

        

       앨리스는 내 표정을 보고 말했다.

        

       *

        

       우리가 구매해온 것은 외장형 캡처 보드와 마이크, 마이크를 고정할 고정대, 모니터 하나였다.

        

       조명은 막상 사려고 했더니 비싸기도 비싸고 생각보다 세팅하는 게 까다로웠다. 일단은 없이 방송하다가, 필요할 것 같으면 조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진짜 언니가 그려져 있네.”

        

       “너는 네가 게임에서 나왔다는 것을 몰랐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제르나 전기의 최신작.

        

       사람들 말대로 놀랍게도 표지에는 내가 그려져 있었다.

        

       그것도 바로 레오 옆에.

        

       “진짜 언니랑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까?”

        

       “응. 이쪽이 조금 더 차가워 보여.”

        

       “……실제 제가 아니라요?”

        

       “응. 여기 그려진 언니 쪽이 훨씬 차가워 보이는데.”

        

       “그러게. 실제 네 이미지랑은 조금 거리가…… 아.”

        

       옆에서 맞장구치던 앨리스가 뭔가 깨달은 듯 입을 다물었다.

        

       혹시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기라도 한 걸까? 그때는 훨씬 더 감정을 숨기면서 살았으니까.

        

       [클레어가 정확하게 파악한듯]

       [허접이라는거 이미 드러난 세계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게임 패키지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우리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의 채팅이 올라왔다.

        

       ……설마 게임 속에서도 나의 성격은 컨셉이라는 말인가?

        

       대체 게임 속에서는 어떤 인물일까.

        

       “아무튼, 오늘은 아제르나 전기의 최신작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이 게임을 해본 적이 없으니, 스포일러는 자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눈에 보이면 그대로 밴 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패키지 포장을 뜯었다.

        

       *

        

       그렇게 시작한 게임의 도입부는 너무 낯이 익었다.

        

       “아, 우리 아카데미 처음 들어갔을 때 부터네.”

        

       [???]

       [뭐임? 진짜로 컨셉을 그렇게 잡은거?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다.

        

       방송 전, 나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어차피 숨기지 않기로 한 거, 그냥 게임 하면서 생각나는 대로 다 말해버리라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건 게임 속 캐릭터를 따라 하는 컨셉이라고 생각할 거다.

        

       그리고 설령 저 사람 중 단 하나라도 실제로 믿게 되었다고 한들 무슨 상관인가?

        

       우리가 진짜로 노리는 것이 그건데.

        

       다만—

        

       “[언……니, 실비아 언……니, 맞지?]”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이 게임이 언제나 그렇듯 ‘풀 보이스’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풀 보이스가 아니니 일부 대사는 글로만 나온다.

        

       한마디로, 대사가 나오지 않는 부분은 내가 직접 읽어주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걱정하는 클레어와 앨리스에게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읽어주겠다고 했는데, 이거 생각보다 훨씬 부끄러웠다.

        

       “언니, 정말 거기서 더듬는 게 맞아?”

        

       “대사에 줄임표는 없었던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

       [부끄러워한다ㅋㅋㅋㅋㅋ]

       [진짜 실비아랑 똑같넼ㅋㅋㅋㅋㅋ]

       [컨셉ㅋㅋㅋㅋㅋㅋㅋ]

        

       …….

        

       그냥 그만둘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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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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