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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2

        

         

       정훈상은 살의와 복수심이 뒤섞여 뒤틀린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취기 때문인지 말투가 조금 어눌하기는 했으나, 거기에 담긴 감정은 틀림없는 진짜배기였다.

         

       [ 훈상아. 하…. 이건 어쩔 수가 없다. 이게 뭐 큰 논란은 아니기는 한데…. 이게 상황이 조금 복잡해졌다. 하필 군 문제가 얽혀있단 말이야. ]

         

       [ 미국이 군 문제 되게 중요하게 여기는 거 알지? 하필 영화가 할리우드를 노리고 있어서 일이 복잡해졌어. 아마 한국에서 일어난 논란이 거기까지 전해지면 좋은 결과가 나오진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을 거야. ]

         

       [ 일단 자진해서 나가는 거로 이야기가 됐고…. 너무 걱정하지 마라. 시끌시끌한 것에 비해 그리 큰 논란거리는 아니니까, 잠깐 자숙했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 될 거야. 이런 이슈는 금방 식는 거 알잖아? ]

         

       정훈상은 논란이 터진 직후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입매를 비틀었다.

         

       “씨발놈들이.”

         

       떠올리기만 해도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것 같다.

         

       미국이 군 문제를 중요시한다?

       논란이 전해지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거다?

         

       개소리다.

         

       회사에서는 포장해서 어떻게든 그를 달래보려 한 모양이지만, 정훈상은 도저히 거기에 맞장구를 쳐줄 수가 없었다.

         

       감독이 전화로 그에게 한 소리가 아직 귀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봐 정. 아무래도 이번 영화에서 우리는 함께할 수 없을 것 같군. ]

         

       [ 내가 자네를 주목한 것은 귀족 같은 분위기와 잘생긴 외모, 그리고 거기에 걸맞지 않은 야성과 카리스마 때문이었네. 양립할 수 없는 그 둘 사이의 갭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분위기였거든. ]

         

       [ 그렇기에 나는 자네와 함께 영화를 찍고 싶었어. 투자자들이 동양인의 흥행 능력에 대해 의문을 표하더라도, 백인 배우 후보를 면전에 들이대도, 흑인 배우를 넣어야 한다고 온갖 곳에서 난리를 쳐도 나는 오직 자네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단 말이야. ]

         

       [ 그런데. ]

         

       [ 흠…. 아무래도 나는 자네에 대해서 착각을 한 모양이야. 나는 자네가 조금 더 남자답고, 야성적이고, 마초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진 않았나 보군. ]

         

       [ 게다가 말이네. 영적 능력이 있다고? ]

         

       [ 내가 편견이 있지는 않지만 말이야. 보통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은 좀…. 여성스러운 경우가 많더군. 아, 그게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야. 예술 쪽에 게이가 얼마나 많은지 알지 않은가? 나는 그 사람들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 ]

         

       [ 하지만 말이야. 여성스럽다는 느낌…. 흠. 여성스러운 이미지는 말이야. 안타깝게도 이번 영화에는 어울리지 않아. 특히나 그것이 외적 조건으로 인해 심어진 이미지라면 더더욱 영화에 좋을 일이 없겠지. ]

         

       [ 그러니 부탁하겠네. 나가주겠나? ]

         

       군 문제니, 논란이니 떠들어댔지만…. 실상은 저랬다.

         

       계집애 같아서.

       마초적이지 않아서.

       남자답지 못해서.

         

       저 논란으로 인해 생긴 ‘이미지’가 영화에 어울리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흐흐흐, 이제순. 이 새–애끼….”

         

       아마 다른 사고였다면 감독의 말은 달랐을 수 있으리라.

         

       마약을 했어도 품고 갔을지도 모른다.

       왜냐? 부랑자, 무법자 같은 이미지가 더해졌을 테니까.

         

       폭행 때문에 끌려갔어도 품고 갔을 수도 있다.

       일단 범법행위인 건 맞지만, 그래도 난폭하고 마초적인 느낌이 들지 않은가.

         

       그런데 하필이면 터진 게 군 문제에, 영적 능력 관련 문제다.

         

       미국은 스피리츄얼(spiritual)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활동하는 영능력자를 ‘여성스럽다’라는 편견으로 바라보는 나라였다. 한국 사람들이 ‘연예인과 무당 팔자는 한 끗 차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편견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귀신 보는데 여자가 무슨 상관이고, 남자가 무슨 상관이야…. 이 무식한 새끼들….”

         

       실제로는 성별과 관련해서 영능력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인식이었으니까.

         

       스피리츄얼 스탠다드(Spiritual Standard).

         

       영능력자는 기본적으로 여성이며, 남성일 경우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의 기질이 존재한다.

       이성애자 남성이 영능력자일 경우 일반적인 남성과 다르게 꾸미는 것을 좋아하고, 자기 몸을 끔찍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겁이 많고 조심성이 많으며, 매우 신경질적이다.

         

       딱 봐도 편견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인식.

         

       하지만 이 편견은 미국인들에게는 상식이었다.

       그리고 참으로 불행하게도, 미국인에게는 할리우드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거대 영화 산업 말이다.

         

       ‘빌어먹을.’

         

       그 덕분에 미국인의 편견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그 편견은 각국의 편견과 결합하면서 점차 하나의 상식으로 굳어져 갔다.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그 편견이 조금씩 깨지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꽤 오랜 시간 자리 잡았던 탓인지 나이 먹은 사람이나 머리가 굳어있는 사람들은 저 ‘상식’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래.

       저 빌어먹을 편견이 문제였다.

         

       군 문제?

       그게 뭐 문제라고.

       그냥 논란에 불과한 이야기다.

         

       한국에서만 논란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그냥 논란으로 끝날 문제였단 말이다.

         

       한국이 모병제인 것처럼 미국 역시 모병제였다.

       그리고 미국의 모병제는 한국보다도 더 빡셌다.

         

       땅도 넓고, 자원도 넘치고, 인재는 더더욱 넘치는 미국은 군인의 허들을 한껏 끌어올렸다.

       조국에 대한 충성심은 물론이고, 병이 없는 신체, 훌륭한 육체 능력, 학업 수준, 습득 능력….

         

       아주 깐깐한 조건을 들이대서 군인을 모집했다.

         

       그 덕분에 미국에서는 군인이라는 직업은, 되고 싶어도 되기 힘든 직업이었다.

       그리고 되었다고 하더라도 일정 계급 이상 올라가기는 더더욱 힘들었고.

         

       그런 만큼, 군에 대한 존중과 존경을 표하고, 입만 잘 털면 그냥 끝날 수 있었는데….

         

       거기에 영적 능력이 더해져 버렸다.

         

       “빌어먹을 새끼. 기사를 이렇게 개같이 쓰다니.”

         

       악의가 풀풀 풍긴다.

       악의가 한껏 느껴진다.

         

       사실 여부니, 뭐니 그딴 건 상관없고, 그냥 재능을 쏟아부어서 편견을 박아놓고 사람 하나 매장해서 죽여버리겠다는 의도가 잔뜩 묻어있었다.

         

       차라리 뭐 원수 사이기라도 했다면 이해라도 하련만.

       솜털이 뽀송뽀송한 기자란다.

       그와 아무런 접점도 없었던.

         

       “내가 널 가만히 놔둘 줄 알았지? 이 개새끼야….”

         

       그렇기에 정훈상은 복수를 다짐했다.

         

       이 개 같은 새끼에게 어떻게든 한 방을 먹여야겠다고.

       아무런 은원관계도 없는데 그냥 자신이 잘 나가겠다고 겁대가리 없이 자기 얼굴에 주먹을 갈겨버린 이 천둥벌거숭이 새끼를 반드시 조져야겠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돈을 5천만 원이나 소모하면서까지 그의 노트북에 프로그램을 설치시켰다.

         

       프로그램이 설치된 노트북은 업무용 노트북.

         

       개인정보나 민감한 정보 같은 것은 없겠지만…. 대신 더 좋은 것들이 있는 보물상자였다.

         

       기자의 업무와 정보가 담긴 노트북.

       그 안에는 민감한 정보도, 이제순이 써놓은 초고들도 잔뜩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정훈상은 이제순에게 엿을 먹일 생각에 실실 웃었다.

         

       엿을 먹일 방법은 많았다.

         

       얻은 정보를 이제순이 활용하기 전에 그 대상에게 전달해서 대책을 마련하게 하거나.

       아예 그 소스를 자신과 친한 기자들에게 줘서 친분을 돈독하게 만드는 용도로 사용하거나.

       기사에 장난질을 쳐서 오타가 나게 하거나, 이상한 단어를 끼워 넣어서 소소하게 괴롭힌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예, 자료들을 모조리 날려버리는 방법도 있었다.

         

       ‘일단 먼저….’

         

       정훈상은 컴퓨터 앞으로 앉아서 이제순의 컴퓨터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먼저 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순이 노트북에 저장해놓은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한 것.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제순이 엿을 먹여서 그에게 손해를 입혔으니, 그 손해를 메꿔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쓸만한 정보들이 좀 많았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그렇게 그의 노트북을 뒤졌고….

         

       “어…. 이건…?”

         

       이제순의 노트북에서 보물을 발견했다.

         

       그냥 쓸만한 정도가 아니라, 보물을.

         

       “허. 씨발, 이 새끼 이런 거 숨겨두고 있었네?”

         

       그리고 이 보물은 정훈상에게 있어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었다.

         

       “아키코(秋子)가 좋아하겠는데?”

         

       아키코.

       그의 애인이자, 소중한 스폰서.

       그를 지금의 이 자리까지 올려준 일등 공신.

         

       무려 일본 화족 가문의 영애이자, 일본의 유명 기업 직계와 결혼을 한 여자였다.

         

       “고맙다 이제순. 덕분에 간만에 면 좀 세울 수 있겠네. 흐흐.”

         

       정훈상은 미소를 지으며 아키코에게 메일을 보냈다.

         

       아키코의 가문이 정말로 좋아할 만한 내용을 담아서.

         

         

         

        * * *

         

         

       “어머, 훈상이 메일을….”

       

       정훈상이 보낸 메일은 순식간에 아키코의 눈에 들어갔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순식간이었다.

         

       아직 우울증을 다 극복하지 못했던 아키코는 사랑이 부족한 상태였다.

         

       결혼하자마자 ‘나는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사이에 충실히 할 생각이 없다.’라고 선언하며 대놓고 첩과 함께 살기 시작한 남편.

       남편 하나 휘어잡지 못하고 뒷방 신세가 된 그녀를 한껏 조롱하는 자매들.

         

       아키코는 부모님 외에는 정말로 의지할 데가 하나도 없는 몸이었다.

       그나마 그 부모조차도, 결혼했으면 그 집의 여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법도라면서 잘 만나주려고 하지도 않았고.

         

       이러한 우울한 삶 속에서 유일하게 그녀에게 힘이 되는 것이 바로 정훈상이었다.

         

       기분전환으로 한국 여행을 갔다가 만나게 된, 운명 같은 상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는, 그녀의 유일한 사랑.

         

       아키코는 항상 정훈상을 그리워했으며, 그의 연락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항상 스마트폰을 끼고 살았다.

       언제든 정훈상이 연락을 하면 바로 답해주기 위해서.

         

       아키코는 즐거운 마음으로 메일을 확인해보았다.

         

       정훈상이 과연 어떤 내용을 썼을까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어머…?”

         

       그런데 메일에는 그녀의 예상과 다른 내용이 적혀있었다.

         

       사랑을 속삭이는 내용도 아니고, 일본에 오겠다는 내용도 아니다.

         

       “천황…? 한국에서 발견…?”

         

       한국에서 발견되었다는 물건에 대한 정보였다.

         

       아키코는 그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서 바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고, 정훈상이 보내준 자료를 그대로 아버지에게 보냈다.

       그렇게 보내진 자료는 아버지의 손을 거쳐 가족에게로, 친척에게로 움직였다.

         

       그렇게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기 시작한 자료는 마침내 한 의원에게까지 도달했다.

         

       아키코의 가문과 친척 사이이기도 하고, 꽤 오랜 세월 연이 이어졌던 화족 가문 출신이자, 한 원로의 후원을 받아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의원이었다.

         

       “감히 천황폐하의 물건을…! 반드시 회수해야 합니다!”

         

       그 의원은 왠지 모르게 번들거리는 눈으로 화족 가문 모임에서 소리쳤다.

         

       “반드시! 무력을 써서라도 말입니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듯.

       외쳤다.

         

       “무력으로! 회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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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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