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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2

     지브롤터 협곡, 탈환 완료.

     투입된 마스터는 셋.

     기사와 병사의 수는 약 천.

     사상자 자체는 50명이 채 되지 않았다.

     ‘단기결전이 이래서 좋아.’

     

     적의 수뇌부를 제거하고 지휘체계를 망가뜨려, 병사들이 사기를 잃게 만들면 불필요한 피는 흘리지 않는다.

     죽은 자도 있다.

     이 좁은 협곡이라는 전장에서 사망한 사람의 97% 이상이 제국군이지만, 나머지 3% 가량은 우리 지브롤터의 기사들이 죽거나 죽음에 준하는 상처를 입었다.

     “…….”

     이미 오래 전부터 그랬지만, 제국의 머스킷은 더 이상 10년전과 같은 매직 미사일 싸개 따위로 부를 수는 없었다.

     마탄이 기사의 눈을 파고드는 걸 넘어 뇌까지 꿰뚫어버리기도 하고, 실탄이 갑옷을 파괴하고 타격을 입히고 심장을 꿰뚫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피해를 입혔던 건 비행선들이 떠오르면서 그대로 아래로 투하한 포탄 세례.

     협곡 안에 있는 제국군 병사들이 포탄에 얻어맞든 말든, 자신들이 살아남고 지브롤터가 추격하지 못하도록 아래로 포격하는 제국군의 비행선에 제법 많은 기사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우리는 승리했다.

     다시 제작하는데 반 년 이상 걸릴지도 모르고 엄청난 예산이 들지도 모르는 황금의 비행선이 파괴되었다.

     지브롤터 제2 관문은 좌우의 성벽 잔해만 남은 채 완전히 파괴되어버리고 말았다.

     지브롤터가 지난 십수 년간 애지중지 키워온 협곡 기사단의 일원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포격에 쓰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협곡을 탈환했다.

     다시금 지브롤터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관문을 점거했다.

     지브롤터의 피에 반응하여 굳게 닫힌 협곡을 빠져나가지 못한 제국군 병사 수천 여명을 포로로 붙잡았다.

     황금의 비행선에 치이고 절벽에 부딪치며 폭발하거나 반파되기는 했지만, 그 비행선의 부품들을 노획하기도 했다.

     일부, 고작 3대.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비행선이 3대 정도이며, 나머지는 어딘가 파괴되거나 안에 죽은 사람이 있거나, 크게 베인 상처가 있어서 날다가는 바람이 들어와 비행하지 못할 수준.

     

     그 중 하나를 지금 나는 운용하여 협곡의 위까지 올라왔다.

     “후ㅡ우.”

     300m, 협곡 위.

     매국노 그레이 시절에는 생각보다 자주 올라왔고, 지금은 거의 올라온 적이 없는 곳.

     “경치는 여전히 굉장하군.”

     제국의 관광산업 전문가들이 300m 절벽에 계단을 만들어 협곡 위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이 종종 있을 정도로, 지브롤터 협곡의 위에서 바라보는 전경은 매번 감탄스러웠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스타시아?”

     “…놀래키려는 것도 못하겠네요. 정말.”

     “감각이 좀 예민해져서.”

     

     나의 뒤.

     아스타시아가 천천히 위에서 내려온다.

     “니드호그를 타고 올 정도로 그렇게 다급했습니까? 고소공포증도 있으신 분이.”

     “참아야죠. 그레이가 여기에 있는데.”

     니드호그가 날개를 펄럭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협곡의 높이가 이미 300m지만, 니드호그에게는 이 정도 높이는 일도 아니다.

     “그레이. 하나 물어볼 게 있어요.”

     “뭡니까?”

     “왜 비행선을 돌격시킨 거예요? 용기사단이 아니라.”

     “…….”

     선택지는 있었다.

     비행하기만 하면 되는지라, 비룡을 타고 강습한다면 분명 효과는 비슷했을 것이다.

     “글쎄요.”

     하지만 나는 비행선을 꺼내들었다.

     

     “아스타시아 묻고 싶은 건 그 황금의 배를 1회용 충차로 써먹은 것 때문이겠죠? 그 황금의 비행선, 나중에 지브롤터의 가족들이 함께 타고 날아가자고 그랬던 배니까.”

     “…….”

     아마도 아스타시아는 내가 여러모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황금의 비행선을 내던지듯 파괴했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괜찮습니다, 아스타시아. 이건 일종의 선포니까요.”

     “선포?”

     “관문도 언젠가 무너질 수 있다.”

     “…….”

     빼앗길 수도 있는데, 무너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제2 관문은 무너졌습니다. 잔해를 치울 시간이나 체력은 없지만, 협곡이 다시 열린다고 해도 제2 관문을 복구하지는 않겠죠.”

     “그러면….”

     “지브롤터는 언제나 협곡을 지켜야 한다. 그런 주박조차 벗어던지는 겁니다.”

     휘이잉.

     바람이 분다.

     지브롤터의 조상들이 인위적으로 깎은 협곡 내부와 달리, 제멋대로 부는 바람이 머리를 스친다.

     “이렇게 하면, 자유로워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별 의미는 없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은 여러모로 생각이 깊어지겠죠.”

     “사람들은 여전히 영웅을 원할 거예요.”

     “그럴 겁니다.”

     노스트럼은 언제나처럼 위기에 빠졌고, 영웅적인 행보를 보인 이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아스타시아. 사실, 저는 영웅 만능주의가 그렇게까지 싫다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네?”

     “영웅이 나오면 좋은 거죠. 제 대신 제가 나서야 처리할 일을 해결해주니까.”

     “…….”

     “근본적으로 저는 다른 이들을 돕거나 희생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오직 저와 제 가족, 제 주변만 신경 쓰는 지극히 보수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죠.”

     제국의 기술과 문화를 받아들였던 것도, 전부 나와 내 가족이 편하자고 그랬던 것 뿐이다.

     “더 솔직해지자면, 누군가가 황제를 죽일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 자에게 모든 자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

     “저 대신 황제를 죽일 수 있는 영웅이 있다면, 그를 위해 모든 시간과 자원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못 찾았죠.”

     “네. 유감스럽게도.”

     영웅 만능주의만을 믿기에는, 황제가 너무나도 강했다.

     

     “어쩌면 황금룡이 생각한 영웅은 당신일 수도 있고요.”

     “…그럴지도 모르죠.”

     회귀 전에는 이길 수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어떻게 될까.

     “아스타시아. 바람이 참 좋지 않습니까?”

     나는 아스타시아를 향해 다가가, 그녀를 뒤에서 안았다.

     “높은 곳의 바람은 차갑습니다. 하지만 바다의 바람은 상대적으로 따뜻하죠. 특히 남쪽 바다라고 한다면 더더욱.”

     “이기고 가자는 거예요, 아니면 이대로 도망치자는 거예요?”

     “말씀드렸다시피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있다면 그 영웅에게 모든 걸 맡기고 당신과 바다로 떠나고 싶습니다만….”

     너무나도 유감스럽게도.

     “저 말고는, 지금 아무도 없을 것 같네요.”

     

     황제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이다.

     “매국노, 간신배, 쓰레기. 무엇이든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스타시아를 위하여.

     “누군가는 저를 영웅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누군가는 저를 수호자라고 떠받들겠죠. 누군가는 제국에 충성하려다 황제를 죽이려고 한 희대의 철새라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나의 공주를 위하여.

     “설령 누군가가 저를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노스트럼을 지키는 자라고 부른다고 해도, 저는 아랑곳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든 건, 당신을 위한 일이니까.”

     

     * * *

     그리고, 자정.

     황제가 약속한 날로부터, 정확히 7일이 되는 시점.

     “……?”

     성벽 위,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코트가 뒤로 흩날리고, 머리카락이 뒤로 넘어간다.

     

     “…뭐야?”

     “변경백 각하, 지금, 바람의 방향이…?”

     부ㅡㅡ웅!!

     격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제국을 향해 나부끼던 지브롤터의 깃발이 순식간에 제국이 아닌 뒤로 흩날리기 시작한다.

     “설마, 내부에서 전투가 일어나서…?”

     “그럴 리가 없잖나. 협곡은 길어. 500년 동안 바람의 방향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고.”

     비행선을 여러 대 격추시켰던 전투의 여파 때문에 협곡 내부의 바람이 바뀐다?

     그건 아니다. 

     지금 불어오는 바람에 묻어나오는 잔향에 따르면, 그 바람은 자연풍이 아니라-

     “마법…?”

     마법의 발현에 따른 바람이었으니까.

     “제국에서 이 정도의 바람을 보내고 있다?”

     

     이해할 수 없다.

     무슨 목적으로?

     용기병이나 비행선이 협곡을 통과하여 제국으로 날아가는 걸 바람으로 방해하려고 한다?

     그 황제가?

     차라리 내가 황금의 비행선을 협곡 관문에 때려박은 것처럼 자폭용 비행선을 때려박을 사람이다.

     이런 식으로는 저지르지 않을-

     “아.”

     밤하늘 너머.

     보였다.

     제국의 병사들이 우리가 타고 온 황금의 비행선을 망원경으로 봤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뭐야, 저거.”

     “변경백 각하. 뭔가 보입니까?”

     “……저기, 저게 무엇일 것 같나.”

     나는 15도 위의 정방향을 가리켰고, 로버트 경은 나의 손가락을 따라 어두운 밤하늘로 눈을 돌렸다.

     “뭔가 별 같은 게 반짝이는 것 같은데요. 은색 같기도 하고, 회색 같기도 한-”

     로버트 경이 색을 언급한 순간.

     “…저거, 설마?

     바로 눈치를 챘다.

     “황제의 전용기라도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런 것 같은데.”

     멀리 있어서 잘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소한 300m짜리 협곡보다 훨씬 높이 떠 있는 무언가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건 확실히 보인다.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무언가가 하늘을 날아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그 무언가는 은색인지 회색인지 모를 색으로 뒤덮여있는 비행-

     “…성?”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내뱉은 말을 곱씹었다.

     “예?”

     “아니, 잠깐. 저 반짝이는 별처럼 다가오는 비행물체…성이 아닌가?”

     “성이라뇨, 그게 무슨. 비행선의 위를 성처럼 만들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아니야.”

     보인다.

     겉에 치장해놓은 것 같은 군청색 마석 램프등이 반짝임과 동시에, 그 형태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저거, 합스베르크 황제가 황태자때부터 쓰던 합스베르크궁이야.”

     “…황궁이라고요?”

     테르시안 제국, 그 중에서도 합스베르크 황제가 황태자 시절부터 사용했던 자신만의 고성(古城).

     이름마저도 ‘합스베르크 궁’이라고 바꿔버린 그 성이, 지금 하늘을 날고 있다.

     “저거, 지금 고도가 몇이야…?”

     

     우리가 서 있는 50m 높이의 성벽에서도 아득히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높게 날아오는 성.

     잘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그것이 너무나도 높은 곳을 날고 있었기에.

     순간적으로, 나는 머릿속에 어떤 기억이 스쳤다.

     -황제란, 군림하는 자일세.

     매국노 그레이 시절.

     합스베르크 황제가 가끔 제국에 초대를 해줬을 때, 자신이 어린 시절 쓰던 황태자궁의 정원에서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을 때.

     -그러니 모두가 우러러 볼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하지. 테르시안의 황궁이 이렇게 높게 치솟은 것도 다 그런 이유였다네.

     -아예 산의 꼭대기 정상에다가 황성을 짓지 그러십니까.

     -그것도 생각 중이야. 마음 같아서는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온 대륙을 내려다보고 싶은 심정이라니까.

     그 때, 황제는 내게 말했다.

     -만 백성의 위에서 군림하는 것. 그것이 어리석은 백성들을 이끄는 자다.

     “저, 저거 뭐야?”

     “뭔가, 달 같은…?”

     “엄청 커보이는데. 반짝이는 것도 뭔가 이상한 것 같고….”

     나와 로버트 경이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랬던 걸까.

     우리의 좌우로 서 있던 기사들 또한 시선을 집중하더니, 곧 백은의 무언가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인간은 두 가지에 공포를 느낀다네.

     “자신보다 큰 것….”

     -그리고.

     “자신보다, 높은 것.”

     황궁이라는 건물을 어느 땅 아래에 붙여놓은 것처럼, 땅 아래로 막대한 풍석의 마력을 방출하며 유유히 하늘을 날아 다가오고 있다.

     밤하늘.

     합스베르크의 황궁이 하늘을 날고 있다.

     가늠만으로도 족히 수 km는 될 법한 높은 하늘 위에, 백은의 거성이 지브롤터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나의 적이여.]

     그곳에.

     [나는, 여기에 있다.]

     합스베르크가 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본편 완결까지 이제 8편….

    늦어도 일요일

    이르면 금/토요일

    완결이 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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