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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2

       

       『사, 상이라뇨……?』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뒷걸음질쳤다. 

       

       뭔가 이상했다. 

       

       전등이 꺼진 어두운 교장실에서, 눈을 가리는 반가면을 쓰고 채찍을 든 채로 다가오는 노년의 교장.

       

       교장의 태도가 몹시 수상했지만 섣불리 선공을 할 수는 없었다. 당황한 것은 둘째치고, 교장이 무슨 목적인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그저 칼자루에 손을 가져다 얹은 채 뒷걸음질을 칠 수밖에 없었다. 

       

       따귀라도 때려서 제압할까? 하지만 스턴 장갑은 교복 안주머니에 있었다. 나는 오른손을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교장은……!

       

       『받게.』

       

       쓰고 있던 반가면과 채찍을 나에게 불쑥 내밀었다.

       

       『……예?』

       

       내가 멍하니 있자, 교장은 반가면과 채찍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아메리카와 이기리스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당시에는, 승마 역시 학생들의 기본 소양이었지. 그 채찍은 그때 쓰던 물건일세.』

       

       그러고보니 교장실 안에 걸려있던 사진중에는, 젊은 시절의 교장이 승마복을 입고 서양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이 가면은요?』

       『그건 수영용 물안경일세. 역시 젊었을 때 썼던 것이지.』 

       

       물안경? 눈에 쓰는 마스크인줄로만 알았더니, 고글이었다. 다만 디자인이 워낙 예전의 앤티크한 것인지라, 얼핏 봤을 때 고글같지 않고 마치 쾌걸조로 마스크처럼 보였던 것이다. 

       

       나는 얼떨결에 고글과 채찍을 받아들고는 교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걸 어째서 저에게……?』

       『말했잖나. 상을 주겠다고.』 

       『……?』 

       

       나는 내 손에 쥐어진 고글과 승마 채찍을 다시금 바라보았다. 이게 상이라고? 지금 보니, 미약하게 마력이 느껴지는 것이 일종의 아티팩트였다. 평범한 물건이 아닌 건가.

       

       『그 물건들에 대한 설명은 차차 해줄테니, 일단 다시 자리에 앉게.』 

       『예…….』 

       

       교장은 전등을 켜지 않은 그대로 자신의 자리에 돌아가 앉았고, 나도 다시 자리에 앉았다. 평소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온 교장이 나에게 물었다.

       

       『내가 자네에게 상을 준 이유를 짐작하겠나?』 

       

       ‘음…….’

       

       교장으로부터 상으로 받은 고글과 채찍. 자세한 내력은 모르겠지만, 이것은 교장이 오랫동안 소장하고 있던 물건이리라.  

       

       그런 물건을 그냥 줬을 리 없었다.

       

       방학식 중 튀어나온 요로미미즈를 잡아서 학생들을 구한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려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교장은 방학식이 시작되기 전의 아침부터 나를 불렀다고 했으니까. 

       

       뭐,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런 물건을 준 이유야 뻔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나는 다소 퉁명스러운 어조로 대꾸했다.

       

       『……상을 미리 주고 일을 시키는 법도 있답니까.』 

       『그렇게 되었네.』 

       『그래서, 저한테 뭔가 일을 시키고 싶은거죠? 무엇입니까?』 

       『그 전에……』 

       

       교장은 나에게 동의를 구하듯이 물었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텐데, 괜찮겠나?』

       『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까처럼 대동아공영회가 감청할까봐 빙빙 돌리며 쓸데없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았으니까.

       

       교장은 책상 위에 세워둔 사진 액자를 바라보며 운을 띄웠다.

       

       『내가 이 학교에 처음 온 것은…… 조선에서 만세가 일어나기 3년 전이었으니 다이쇼 5년이었지.』 

       

       1916년에 이 학교에 처음 왔다라. 그러니까 교장은, 지금으로부터 23년 전에 이 학교에 온 것이다.

       

       『젊었을 때의 나는 희망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네. 일본이라는 나라가, 금후 아메리카나 이기리스처럼 국민 하나하나가 정치적 자유를 가지는 국가가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어.』 

       

       교장은 오랜 과거를 회상하듯 말을 이었다. 

       

       『그래서 이 학교에 들어와서 처음 일반과 교수로 교편을 잡았을 때에도, 세월이 흘러 교장으로 취임했을 때에도 생도들이 민본적인 가치를 배우기를 기대했네.』 

       

       ‘아. 이 사람, 민본주의자였구나.’ 

       

       송병오 녀석이 틈만 나면 사상이 어떻고 이념이 어떻고 주절거린 탓에, 나도 조금 주워들은 것이 있었다. 

       

       ‘한국으로 치면 민주투사같은 거랬던가……’

       

       다만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본주의’인 이유는, 국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본의 주인은 천황이니 국민이 주인일 수는 없어서 민본주의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이 교장이라는 사람은, 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기 전 젊었을 때에는 나름대로 민주투사 비슷한 활동을 했던 사람인 듯 했다.

       

       『뭐, 젊었을 때의 이야기일세. 아무튼 이 학교에 온 것도 어느덧 23년…….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지. 일본의 민본주의는 좌절되고, 군부의 고삐가 풀려버렸어. 지금의 일본은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지. 그것을 가속화하는 것이 대동아공영회라는 집단이야.』 

       

       교장은 책상에 놓인 ‘교장 우에하라 에쓰지로(植原 悦二郎)’ 명패를 툭툭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나를 교장의 자리에 앉혀준 것도 대동아공영회 놈들이지만, 나 역시 내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네. 나는 이 자리에 앉아있을 뿐 제대로 된 권한조차 없지.』

       

       역시 교장은 그 사실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것일까. 한 명의 민본주의자로서, 대동아공영회 소속의 교수들이 학교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며 학생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대동아공영회의 일원은 아니지만 결코 바보는 아닐세. 이 학교에 오래 있으면서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것들이 많지. 대동아공영회 놈들은, 나를 그저 허수아비로 여기고 내 앞에서는 그다지 말을 조심하지 않거든……』 

       

       그렇게 비웃듯이 말한 교장은,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영혼으로 무기를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죄 없는 생도들을 희생시키고, 생도들을 위험한 일에 끌어들이고, 전장으로 내몬다는 것을! 이 모든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닐세.』  

       

       교장은 명백히, 대동아공영회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거 어쩌면……’ 

       

       나는 교장의 말에 경청하는 태도를 보이며 생각했다. 교장은 대동아공영회에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고, 나에게 맡기려는 일도 대동아공영회를 방해하라던가, 뭐 그런 일일 것 같았다. 어쩌면, 교장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하지만, 

       

       『좋은 말씀입니다만……』

       

       다소 신경쓰이는 것이 있어서 나는 교장에게 물었다.  

       

       『제가 지금 대동아공영회 소속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까?』 

       

       교장이 대동아공영회의 일을 주워들었다면, 내가 교수들의 시다바리 짓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내 의도는 따로 있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단 말이다. 그런데 교장은 대체 나의 뭘 믿고 일을 맡기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네. 자네 쪽에서 먼저 밝혀온 것은 조금 놀랐지만.』

       『그렇다면 저의 무엇을 믿고 저에게 그런 위험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입니까?』

       『나는 알아.』 

       

       교장은 자신의 안경을 가리키고는, 내 눈을 가리키며 말했다. 

       

       『눈을 보면 알지. 자네에게는 민본주의자의 눈이 있어. 자유를 추구하고 그 자유와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상대가 천황이라고 할지라도 끌어내릴 듯한 눈, 그러한 눈이! ……다이쇼 시대의 운동가였던 내 눈을 속일 수는 없지!』

       

       나는 조금 놀랐다. 그야 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교장의 말이 사실이긴 한데……  

       

       돌이켜보면, 렌까도 나에게서는 뭔가 조선인답지 않게 당당하고 자유로운 태도가 느껴진다고 했었다. 그게 내 눈이나 태도에서 뭔가 티가 나는 걸까.

       

       『구태여 자네의 사상적 기반을 묻지는 않겠네. 자네의 속에 품은 뜻이 민본주의일지, 조선독립일지, 사회주의일지, 그것도 아니면 아나키즘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무엇이든 관계 없네.』 

       

       둥그런 얼굴의 교장은, 안경 너머의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중요한 것은, 자네가 대동아공영회를 저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그렇지 않은가?』 

       

       교장은 생각보다 예리한 사람이었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옳게 보셨습니다.』 

       

       나는 부정하지 않고, 최대한 솔직하게 답변을 이어나갔다. 

       

       『저 역시 대동아공영회의 폭주를 바라지 않습니다. 조선을 위해서도, 일본을 위해서도요. 그래서 내부 분열과 사보타쥬를 목적으로 대동아공영회에 위장 가입한 것입니다.』 

       『좋아.』 

       

       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교장의 목적은 일본이 민본주의적인 국가가 되는 것이고, 나의 목적은 일제의 패망이지만, 어쨌든간에 대동아공영회를, 특히 교내의 대동아공영회를 저지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여기까지 이야기했으니 이제 자네에게 맡길 일을 말하지. 내가 두 가지 상을 주었으니 자네도 두 가지 일을 해주었으면 하네. 우선 첫번째.』 

       

       교장은 손가락 하나를 들며 말했다. 

       

       『자네는 모르겠지만…… 아니,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군. 이 학교에는 숨겨진 비밀이 많다네. 대동아공영회 놈들이 숨겨놓은 비밀이…… 나도 자세한 위치나 용도까지는 모르지만, 생도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이 많아.』 

       

       그랬다. 령입자흡인기인가 하는 그것도 아직 여러 개가 남아있었고, 그 밖에도 또 무엇이 숨겨져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걸 찾아낼 것을 부탁하려는 것일까. 

       

       『나는 자네가 그것들을 찾아 파괴해주었으면 하네.』

       

       ……생각보다 화끈하신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설마 전편의 마무리에서 진짜로 SM플레이같은 것을 기대하신 분은 없으셨겠죠……? 파렴치입니다! 남사스러워라!

    …….

    뒷편 바로 이어집니당.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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