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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2

       “자아, 둘이 싸우지 말고.”

       

       메리가는 두 소녀의 어깨를 붙잡아 천천히 떼어냈다.

       

       “뭐야. 이거 안 놔?”

       “자아, 자아. 그러지 말고 얌전히 있어야지. 싸우면 아저씨한테 혼날 거야.”

       

       메리가는 갈색 머리 여자아이와 노랑 머리 여자아이를 동시에 타일렀다.

       

       갈색 머리 소녀는 메리가의 말에 눈치를 살피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으나, 노랑 머리 소녀는 싸움을 중재하려는 메리가를 도리어 밀쳐냈다.

       

       “야, 이건 우리 둘이 해결할 문제야. 너는 빠져있어.”

       

       쉽지 않다.

       

       “아니, 그게 아니라…….”

       

       메리가는 방문이 있는 쪽을 살폈다. 시간이 갈수록 인기척도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휴.’

       

       될 대로 되라지.

       

       “이것들이, 무슨 소란이야?”

       

       예상했던 대로 포주… 는 아니고, 업소를 관리하는 알바(?)가 들이닥쳤다. 다부진 체형의 남자였는데,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로 젊어 보였다.

       

       상대적으로 나이가 있는 포주와는 달리, 알바는 혈기왕성했다. 자고로 이런 뒷골목에서 혈기가 왕성하다는 건 성격이 더럽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천한 것들이, 조용히 못 해?”

       

       남자의 노호성에 소녀들은 입을 다물었다.

       

       뒤이어 포주가 들어왔다.

       

       “뭐냐. 무슨 일이냐?”

       “여기 꼬맹이 둘이 싸운 모양입니다.”

       

       포주는 메리가와 나머지 두 소녀를 살폈다.

       

       “누구랑 누구?”

       “저기, 갈색 머리 여자애랑 노란 머리 여자애 말이죠.”

       “회색 꼬맹이는 안 싸웠던?”

       “말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 알았어. 들어가서 할 일 해.”

       

       고함을 질렀던 청년은 포주에게 꾸벅 인사한 뒤 현장을 빠져나갔다.

       

       포주가 메리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너, 회색. 이름이 메리가라고 했나?”

       “네.”

       “거기 그 두 녀석은 원래부터 사이가 안 좋아. 그냥 내버려 둬.”

       

       내버려 둔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소란이 벌어진 날은 배급이 적어지곤 했다. 들어온 지 겨우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메리가는 그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밥을 제대로 못 먹으면 머리를 굴릴 수 없다. 머리를 굴리지 못하면 탈출할 방법도 생각할 수 없고.

       

       메리가는 물 흐르듯 생각을 이어갔다.

       

       잡혀 온 이상 자력으로 탈출할 방법은 요원해 보인다. 이곳 대기실은 창관 입구로부터 가장 깊숙한 곳에 있었고. 외부에서 도움을 줄 가능성이야 당연히 없는 것으로 쳐야 한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은….

       

       “이봐, 꼬맹이.”

       

       뜸을 들인 포주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그 책이 좋더냐?”

       “…네?”

       

       아.

       

       생각해 보니 자신은 항상 손에 양장본을 들고 다녔다. 그날 숲에서 주운 이후로 지금까지 쭉 말이다.

       

       읽을 줄도 몰랐고, 주운 것에 불과하지만, 당장 사유재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이 책밖에 없지 않은가.

       

       메리가는 책을 꼭 품에 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글은 얼마나 읽을 줄 알지?”

       “조금은 읽을 줄 알아요.”

       

       제국의 알파벳은 30개 남짓이다. 메리가는 그중 열 개 정도를 읽을 줄 알았다. 과거 부모님께 배운 것 중에서 일부를 책을 보며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이다.

       

       “계산은?”

       “그것도, 조금 정도는 할 줄 알아요.”

       

       사칙연산 또한 부모님으로부터 배웠다. 비록 아주 복잡한 곱셈이나 나눗셈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림을 통해 연산하는 방법을 배웠기에 지금까지 까먹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걸 왜 물어보는 거지?

       

       “조금은 할 줄 안다 이거지?”

       

       포주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렇다면 너는 내일부터 잡일에서 빠져라. 카운터 업무를 보게 해 주마.”

       “카운터요?”

       “요컨대 손님을 맞으라는 소리다.”

       

       그런 포주의 제안에, 메리가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카운터… 업무? 손님을 보라고?’

       

       설마, ‘접대’하라는 소리인가?

       

       아니, 아무래도 그건 아니지. ‘카운터’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봐서 잘 모르겠지만, 접수처 업무를 하라는 것 같았다.

       

       손님을 맞이하고, 지명하면 불러주고, 대금을 치르면 잘 계산해서 계산대에 넣는 일 말이다.

       

       ‘그 정도라면 괜찮겠는데?’

       

       접수처라면 현관에서 가깝다. 기회를 봐서 도망칠 수도 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메리가가 모든 글자를 읽을 수는 없다는 점.

       

       거짓말이 탄로 나면 더 큰 문제로 번질지도 모른다. 그 점을 우려한 메리가가 입을 우물거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잠깐만요. 왜 제가 아니라 이 애가 데스크 업무를 맡는 건데요?”

       

       예의 금발 여자애가 나서며 포주에게 불만을 늘어놓았다.

       

       “저는 문자도 다 읽을 줄 알고 계산도 잘해요. 그런데 왜 저는 제쳐 두고 이런 꾀죄죄한 꼬맹이를…!”

       “이사벨.”

       

       포주의 담담한 한 마디에, 소녀는 몸을 움찔 떨었다.

       

       “네 그 태도가 문제다.”

       “네?”

       “여길 관리하는 나한테도 그렇게 사납게 구는데, 손님한테 안 그러리라는 보장 있어? 응? 있냐고.”

       

       금발의 소녀, 이사벨이 눈살을 찌푸렸다.

       

       “안 그럴 거거든요?”

       “안 그러긴. 조금 전에도 거기 옆에 있는 애랑 싸웠으면서.”

       “싸운 거 아니에요. 훈육한 거죠. 얘가 자꾸 억지를 부리니까 바로잡아준 것뿐…….”

       

       성큼.

       

       포주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거 봐라. 또 기어오르려고 하는 거.”

       

       그의 시선이 이사벨의 푸른 눈동자를 매섭게 꿰뚫었다.

       

       남자는 금방이라도 이사벨을 때릴 것 같았다. 메리가는 눈치를 보다가 두 사람 사이로 자연스레 끼어들었다.

       

       “아저씨,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너도 뭐해? 빨리 아저씨한테 사과해야지.”

       

       메리가가 이사벨의 어깨를 살며시 건드리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쯧.”

       

       이사벨은 일단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포주도 별다른 말 없이 일을 보러 떠났다.

       

       “이거 놔.”

       

       포주가 돌아가자마자 이사벨은 불쾌하다는 듯 메리가의 손을 털어냈다.

       

       “넌 뭔데 친한 척이야?”

       “친한 척이 아니라, 어른한테 잘못을 했으니까 사과를 해야지.”

       “너 바보야? 잘못을 우리가 했어? 범죄자는 저 사람이야.”

       

       이사벨의 눈동자에서 핏기가 돌았다.

       

       “그건 그렇지.”

       “그걸 알면서도 꼬리를 쳐?”

       

       이사벨이 메리가의 멱살을 붙잡았다.

       

       “저런 악덕 포주한테 붙잡혀서 꼬리 치니까 좋냐? 자존심도 없어? 네 부모가 그런 것만 가르쳐 줬냐고!”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잖아.”

       

       실제로 그렇다. 여기서 싸우면 빵 배급량이 현저히 적어진다고.

       

       이자벨은 코웃음을 치며 멱살 잡은 손을 끌어당겼다. 검은 눈동자와 짙푸른 눈동자가 허공에서 맞닿았다.

       

       “이제 보니 평민만도 못한 천민이네. 아주 노예 마인드야. 그렇지?”

       “히히.”

       

       메리가는 여느 때와 같이 헤실거렸다.

       

       “너는 너만 편하면 그만이겠지. 나는 저런 제안 받아본 적도 없어. 귀족으로 태어났는데… 하다 못해 노동을 시킬 거면 정신노동을 시키란 말이야! 어? 왜 사람을 적재적소에 쓰지 못하는 건데!”

       

       이사벨은 격분한 나머지 메리가를 그대로 밀쳤다.

       

       “붙잡혀 온 것도 억울한데, 이런 교양도 없는 것들이랑 계속 붙어 다녀야 해? 어? 그래야 하냐고!”

       

       이사벨이 넘어진 메리가의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어? 웃어? 웃기냐고!”

       

       그런데도 메리가는 신음 한 번 지르는 일 없이 웃을 뿐이었다.

       

       오히려 정신은 차분했다.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이사벨에게 시선을 고정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며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나오나 확인했다.

       

       ‘아무도 안 나서네.’

       

       모두가 겁을 집어먹은 채 쩔쩔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메리가는 이곳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이들 중 메리가를 선심으로 도와줄 소녀는 한 명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말리려 했다가 도리어 자신까지 휘말리느니 포주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 저 아이들의 선택일 것이다.

       

       예상대로 방 바깥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오는 건 포주가 아니었다.

       

       “이 싹바가지 없는 년들이 진짜!”

       

       혈기왕성한 알바가 걸레처럼 더러운 말을 찍찍 내뱉으며 대기실로 들어왔다. 

       

       “아가리 좀 닥치고 있으라니까 꽤액꽤액 시끄럽네 그냥!!”

       

       남자가 손을 치켜들었다.

       

       “너, 이 썅년은 또 시작이지. 엉?”

       

       손찌검의 궤적에는 이사벨이 있었다. 

       

       짜악─!!

       

       뺨을 후리는 소리. 소녀들은 입을 틀어막고 뒤로 물러났다.

       

       가녀린 체구의 아이가 멀리 날아가 땅바닥을 뒹굴었다. 때린 남자도 그것을 보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남자의 손에 얻어맞은 건 메리가였다.

       

       이사벨이 아니라.

       

       “너, 너 이 새끼…!”

       “헤헤, 죄송합니다. 헤헤.”

       

       메리가는 뺨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꾸벅꾸벅 숙였다. 메리가를 때린 청년도, 이사벨도 입을 다물었다.

       

       뺨이 시큰거렸다. 끔찍한 치통에 시달리는 것만 같았다.

       

       울고 싶었지만.

       

       참아야 한다.

       

       “소란 피워서 죄송, 합니다. 히히.”

       

       메리가가 몇 번이고 사과하자, 청년도 손을 내려놓고는 욕을 지껄이는 선에서 그쳤다.

       

       “다시 한번 떠들기만 해 봐. 여기 있는 년들 전부 다 당구대로 처맞을 줄 알아. 알겠어?”

       

       청년이 씩씩거리며 나갔다.

       

       메리가는 비틀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프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귀 한쪽에서 삐이, 하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이 몇 도 정도 뒤틀려서 보이기도 했다.

       

       “…야, 너.”

       

       이사벨이 입을 달싹이며 다가왔다.

       

       “왜, 왜 날 감싸고 돈 거야.”

       “히히.”

       

       메리가의 오른쪽 뺨 위로 붉은 손자국이 올라왔다. 명백한 학대의 흔적. 평범한 열 살 짜리 아이라면 당장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야 할 정도의 폭력이었다.

       

       그만한 폭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메리가는.

       

       “그냥.”

       

       덧없이 웃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이랑 함부로 싸우지 말라고, 엄마 아빠가 가르쳐 줬어. 그냥 그것뿐이야.”

       

       세상은 모나게 살지 말아라. 세상에 이상하고 나쁜 사람이 많다지만, 그런 사람하고도 유순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 봐라.

       

       비록 메리가가 많은 것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 말 하나만큼은 새겨 들었다.

       

       그야 유언이었으니까.

       

       그랬기에 뒷골목에서 2년 넘게 버틸 수 있었다. 상황을 봐 가면서 제몫을 틈틈이 챙겨왔다.

       

       “고작 그것 때문에?”

       

       메리가의 말을 들은 이사벨이 눈을 떨었다.

       

       “진짜 멍청이가 따로 없네. 아주 뼛속까지…….”

       

       이사벨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뼛속까지…… 노예잖아.”

       

       이사벨이 머리를 긁적이며 뒤를 돌았다. 그러더니 다른 소녀들을 지나쳐 대기실의 구석으로 돌아갔다.

       

       메리가는 이사벨의 말을 되새기며 큭큭 웃었다. 여전히 맞은 곳이 아파서 찔끔 눈물이 나왔지만, 그래도 웃었다.

       

       ‘노예라.’

       

       노예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조만간 벗어날 거야.’

       

       메리가는 양장본을 주워 탁탁 털어냈다. 방문에서 포주의 인기척이 다시 느껴졌다.

       

       이건, 입꼬리를 씰룩일 수밖에 없었다.

       

       포주나 다른 이는 알 수 없겠지만, 메리가는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나이에 맞지 않게 되바라진 아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독자 여러분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외전 올리는 시간대를 랜덤으로 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쓰는 족족 올릴 계획이니까…!)

    단, 하루에 쓰는 양만큼 올리는지라 연참 가능성이 아주 높을 거예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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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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