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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3

        

       일본의 화족 가문은 기본적으로 보수의 끝판왕을 달린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다.

       당연하게도 화족 가문 사람들은 정치 성향이 우익에 가까운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우익이 아니라고 해서 좌익 쪽인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런 거 상관없이 이득만을 좇거나, 제자리에 안주하고 있는 경우였다.

         

       즉, 한국에 대해 호의적인 감정이 있는 이들은 거의 드물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이런 이들조차도 당황하게 하는 의견이 모임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한 의원의 입에서 나온 의견이었다.

         

       “우리가 뭐가 무섭다고 한국에 굽신거려야 합니까? 그냥 간단하게 해결합시다. 어린아이가 물건을 쥐고 떼를 쓰면 그것을 달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어른이라면 그냥 어린아이에게서 그 물건을 빼앗으면 그만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의원은 한국에 무슨 원한이라도 산 것처럼 극단적인 발언을 토해냈다.

         

       문제는 그 극단적인 발언이…너무 극단적이어서 다른 사람들마저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에 있었다.

         

       “아니, 크흠. 무력이라니요. 지금 그게….”

         

       “전쟁을 하자는 겁니까?”

         

       “아니 거 그럴 필요까지는 있나….”

         

       무릇 작은 불꽃은 큰불에 집어삼켜지고, 가짜 광기는 진짜 광기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되는 법.

         

       모임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무슨 전쟁을…?’

         

       ‘저 사람 2선 아니에요?’

         

       ‘예. 2선입니다.’

         

       ‘아니 고작 2선 주제에 무슨 전쟁을 입에 담아…? 전쟁광이에요?’

         

       ‘아니, 그렇진 않은 것 같은데….’

         

       어찌나 당황했는지 주변 사람들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상황 파악부터 하고 있을 정도였다.

         

       “여러분. 잘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남의 것을 빼앗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우리 것 들고 몰래 입 싹 닫고 있는 어린아이를 조금 혼내주자는 것뿐입니다. 그것도 뭐, 좀 과하게 때리거나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냥 꿀밤 한 대 놓고, 손에 쥔 내 물건을 다시 찾자는 겁니다. 그게 뭐가 어렵습니까?”

         

       “아니, 잠깐. 잠깐 진정합시다.”

         

       의원은 핏발이 선 눈으로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원을 말리기 위해 나이가 지긋한 노인 한 명이 나서서 그를 만류했다.

         

       백작위를 받은 화족 가문 출신이자, 세계에서 유명한 기업의 명예회장이었다.

         

       그리고 이 화족 모임에서 가장 큰 어른이기도 했다.

         

       “그렇게 극단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것도 지금 상황에서 말이에요.”

         

       그는 과열된 의원을 진정시키려 입을 열었다.

         

       “지금은 상황을 지켜봐야 하는 시점이에요. 알게 된 거라곤 한국에서 천황폐하의 이름이 새겨진 주물을 발견했다, 그것을 정부가 보관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조용하다…뭐 이 정도 아닙니까?”

         

       “예.”

         

       “다르게 말하면, 아무것도 제대로 정해진 게 없는 상황이라 이 말이에요. 진짜로 천황폐하의 이름이 있는 게 맞는지, 그걸 정부가 알고 있는 것은 맞는지…. 그 모든 것을 의심해봐야 하는 시점이란 이야기입니다.”

         

       “….”

         

       “게다가 말이에요. 공교롭게도 말입니다. 지금 한국 상황이 그리 좋지 않지요? 어쩌면 그 주물이 진짜 있는지조차 의심해봐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요?”

         

       노인은 날카롭게 의원을 꼬집었다.

         

       주물의 존재 여부조차 의심해야 한다고.

         

       “본래 나라의 안이 혼란하면 밖에 칼날을 겨눠야 하는 법이지요. 잘 알고 계실 테지요.”

         

       “그렇지요.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상식이니까….”

         

       “센코쿠 시대의 영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께서도 그 방법으로 내부의 불만을 잠재우고, 혹시 다시 타오를 수도 있는 내전의 불길을 잠재우는 데 성공하셨지요.”

         

       노인의 말을 들은 다른 사람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르신, 한국이 같은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말씀이신지요?”

         

       “확언할 수는 없어요.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한국의 정세가 어지럽잖아요?”

         

       노인은 부드럽게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천벌을 받았다 싶기는 합니다만…. 그쪽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겠지요. 천벌이라는 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지도자의 부덕 때문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조선인들 성격을 보세요. 우리 일본인처럼 충성심이 가득하기는커녕, 반항심이 가득한 사람들 아닙니까? 아마 그쪽 지도자들은 불안하지 않을까요?”

         

       노인은 그렇게 논점을 흐려버렸다.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빼앗아 와야 한다.’ vs ‘무력은 과하다. 다른 방법으로 가져와야 한다.’라는 구도를 아예 엎어버리고, ‘존재 자체가 불분명하니, 좀 더 관망하는 것이 좋다.’라는 의견을 심은 것이다.

         

       판 자체를 엎어서 진화시키는 모습.

       노회한 여우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는 실력이었다.

         

       “….”

         

       의원은 판이 엎어지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노인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것도 있고, 노인의 권위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좋아요. 그럼 다른 이야기로 가볼까요? 요새 세계의 정세가 요동치고 있어서 그런지,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금값이 올라가고, 외국 사람들이 엔화에 투자하는 것을 늘리고 있는데….”

         

       그렇게 모임은 노인의 주도로 이어졌다.

       언제나 그렇듯, 평범하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평범하게 흘러가는 흐름 속.

       구석진 곳에서 있을 꾹 다물고 있는 의원은 무엇을 생각하듯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 어른은 어린아이에게 진심으로 화내지 않습니다. 이는 어른이 어린아이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힘, 체격, 경험까지. 어린아이는 그 무엇도 어른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합니다. 』

         

       『 그렇기에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터뜨리는 분노는 떼에 지나지 않으며, 어른은 그 떼에 가벼이 훈계하는 것이 옳습니다. 물론 그 훈계에, 과한 진심이 담겨 있지 않기에 그 체벌의 수위는 어른에게 행하는 것보다도 훨씬 가벼워야 하며, 어른을 상대할 때처럼 후환을 걱정하지 않기 위해 철저히 밟는 행위가 배제되게 되는 것이 옳습니다. 』

         

       『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이와 같습니다. 』

         

       그는 생각했다.

       모임에서 들었던 말을.

         

       그는 얼마 전 별장에서 모임을 했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차기 신관이라는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축복’을 사용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이자, 대체할 수 없는 사람.

       그리고, 나이에 걸맞지 않은 훌륭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축복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사람 자체가 괜찮아서 그랬던 것일까?

         

       그는 그 차기 신관을 만나자마자 큰 호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호감은 점점 커졌고, 말이다.

         

       『 한국? 일본의 입장에서는 좀 거슬리지요. 대나무처럼 쑥쑥 커서 뒤를 따라오고 있으니 거슬릴 법도 하지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십시오. 일본은 거인입니다.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거인이 아니라, 기나긴 전통 속에서 만들어진 거인 말입니다. 』

         

       『 한때는 미국조차도 돈으로 살 수 있었던 게 일본입니다. 그런데 한국? 흠…. 솔직히 말하자면, 체급이 안 맞지 않습니까? 』

         

       『 뒤에서 쫓아오는 소리가 조급함을 만들 수는 있겠지요. 뒤에서 무언가가 쫓아오는 데 조급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게 정상이겠습니까? 게다가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그 그림자가 슬슬 보이기 시작할 텐데, 그럼 더 조바심을 느끼겠지요. 』

         

       『 그런데 말이에요. 거기서 이제 고개를 돌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개를 돌리고, 제대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단 말입니다. 고개를 딱 돌려서 뒤를 돌려보세요. 그러면 다 자라지도 않은 어린애가 헉헉대면서 쫓아오는 게 보일 겁니다. 』

         

       차기 신관은 참 잘 맞는 대화 상대였다.

       식견도 넓었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말투 덕분에 알아듣기도 쉬웠다.

       게다가 그의 가려운 곳이나, 어렴풋이 윤곽만 보였던 것을 또렷하게 만들어주는 재주가 있었다.

         

       말하면 말할수록.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재미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차기 신관은 단순히 ‘축복’ 때문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만으로도 인재였다.

       나이나 직위를 떠나서 친해질 가치가 충분한 인재 말이다.

         

       『 그림자는 꼭 사물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거대한 산을 한 줌으로 만들 수도 있고, 조금 큰 돌덩이를 산더미처럼 거대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실체를 본다면…. 그 그림자의 허세에 대해 알게 되지요. 』

         

       『 그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

         

       의원은 차기 신관과 대화를 나누며 깊이 공감했다.

         

       한국?

       대단하긴 하다.

       솔직히 잿더미밖에 없는 나라가 저렇게 된 건 대단한 게 맞다.

         

       하지만, 딱 그 수준이다.

       그냥 기특한 수준이라 이거다.

         

       대나무가 빨리 자란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나무의 속이 꽉 차 있던가?

       그렇지 않다.

         

       대나무의 속은 텅텅 비어있다.

       아무리 빨리 자라도, 그 속은 텅텅 비어있다.

         

       대나무가 길게 뻗어 다른 나무들과 높이가 비슷하게 되었을지언정, 그 가치는 수백 년 동안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자라온 고목에 비하지 못한다.

         

       고목을 보라.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굵고 꽉 찬 몸을 가지고 있으며, 사방에 제 영역이라는 것처럼 가지를 뻗는다.

         

       이 단단한 고목이 어찌 대나무의 가치와 비교할 수 있으랴?

         

       ‘한국은 일본보다 아래다. 이건 확실하다. 하지만 졸부들이 그렇듯이, 근본도 없는 것들이 갑자기 성공하면 자존심만 강한 것처럼 한국 역시 마찬가지겠지.’

         

       그렇기에 의원은 소리쳤다.

         

       자의적으로.

       오직 자기 생각만을 담아 소리쳤다.

         

       무력으로 해결하자고.

       어른이 어린아이의 손을 비트는 것처럼, 압도적인 무력을 체감하게 하자고.

         

       그렇게 주장했다.

         

       그래.

       그렇게 주장했는데….

         

       ‘쯧. 노인네….’

         

       하필 다른 사람이 판을 엎었다.

       그것도 이 모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이 말이다.

         

       ‘하지만 뭐…. 다음 기회가 있겠지.’

         

       하지만 의원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예감이 들었으니까.

         

       왠지 무의식에서 그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아주 기가 막힌 기회가 있을 거라고.

         

       곧 기회가 올 거라고 말이다.

         

         

         

        * * *

         

         

         

       “한국 정부에서 은밀하게 접촉을 해왔습니다. 천황폐하의 언급이 있는, 주물이라고 합니다….”

         

       기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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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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