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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3

       당장에라도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이 솟은 재능.

         

       그것은 독고천에게 단편적인 시각만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높은 곳에서 제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들을 내려다보는 것.

         

       남들은 가로막혀 허우적거릴 때, 그는 깨부수고 나아가 성큼성큼 올라섰다.

         

       그렇기에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고, 세상의 중심은 자신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백우진이라는 이질적인 존재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존재가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부터 독고천 주변에도 변화가 생겼다.

         

       유일무이했던 자신의 가치가 아주 약간 바랬다.

         

       제 눈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매달려야만 하는 것들이 자신이 아닌 백우진에게 향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처음으로 누군가와 대등하게 싸웠던 날.

         

       그리고 마침내 첫 패배의 쓰라린 경험을 겪는 순간.

         

       그는 무너져내렸다.

         

       ‘내가…, 최고가 아니란 말인가?’

         

       같은 세대에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인 천재.

         

       자신감의 근원과도 같았던 인식을 백우진에게 송두리째 빼앗긴 뒤, 그는 방황했다.

         

       평생을 최고로 살아왔기에 그 아래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이 죽을 만큼 싫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제게서 최고의 자리를 빼앗아 간 이가 죽어버리면, 자신이 다시 최고가 된다는 것.

         

       증오가 불타오르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백우진을 죽여야 하지?’

         

       그다음 떠오르는 생각.

         

       그러던 도중 혈교가 전쟁을 일으켰다.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

         

       ‘전쟁 중에 죽어 나가는 이는 수도 없이 많을 터.’

         

       제아무리 백우진이라고 한들, 눈 먼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하면 누가 이를 의심할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던 그는 최악의 수를 두고 말았다.

         

       이해관계가 일치한 전쟁 상대인 혈교의 주구들과 손을 잡은 것.

         

       악수(惡手)라는 것은 안다.

         

       이것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들과 손을 잡은 사실이 밝혀진다면 자신은 밑도 끝도 없이 추락하고 말 거라는 것도.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래봤자 죽기밖에 더 할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최고로 살 수 없다면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 따위는 없었으니.

         

       그렇기에 미련 없이 놈들의 손을 맞잡을 수 있었다.

         

       그때의 그는 간과하고 있었다.

         

       혈교와 내통한 배신자로 낙인찍혀 죽는 순간, 자신이 잃는 것은 목숨뿐이 아님을.

         

       “내놔, 내놓으란 말이다!”

         

       퍼억! 퍼억!

         

       “크흑…, 이것은 제 겁니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서 장정에게 짓밟히는 소년.

         

       이를 본 독고천은 제 눈을 의심했다.

         

       “성아…?”

         

       독고성.

         

       언제나 자신을 최고라고 추켜세우며, 꼭 형과 같은 정파의 기재로 우뚝 서겠다며 새로이 올린 가문의 넓은 지붕 아래서 구슬땀을 흘리던 제 사촌 동생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기에.

         

       ‘자, 잘못 본 것이겠지.’

         

       그럴 리가 없다.

         

       고작해야 동네 건달에게 제 사촌 동생이 무력하게 짓밟힐 리가.

         

       아니, 애초에 독고세가의 구성원인 그가 이딴 허름한 객잔에서 점소이 일 따위를 하고 있을 리가….

         

       “……!”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둔 최악의 한 수는 고작 제 목숨만을 앗아간 것이 아님을.

         

       죽어서 보지 말았어야 할, 제 선택의 결과를 두 눈으로 보게 된 순간.

         

       이제는 느낄 수 없어야 마땅한 극심한 고통이 뒤따랐다.

         

       ‘어찌…, 어찌…!’

         

       어린 시절부터 제 재능을 아득바득 갈고닦은 것은 가문을 재건하기 위해서였다.

         

       몰락한 가문의 낡은 지붕 아래 희망없이 근근이 살아가는 가족들이 다시금 어깨를 활짝 펴고 이 중원 땅덩어리를 호령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찬란하게 빛나고자 하였다.

         

       실제로 찬란한 재능 덕분에 독고세가를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졌고, 가문의 위세는 제 어린 시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성해졌다.

         

       그걸 잊었다.

         

       제게 향하는 권력에 취해 원래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복수심에 사로잡혀 제게 잃을 것을 냉정하게 따져 보지 못했다.

         

       혈교와 내통한 최악의 배신자로 낙인찍힐 제 가문이 다시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될 것임을, 당연히 깨달았어야만 하건만.

         

       “으, 으으…, 으아…!”

         

       이미 뛰지 않는 심장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듯하다.

         

       제 어리석은 선택으로 인해 낡고 허름했던 그때로…, 아니, 그때보다 못하게 되어버린 가문의 모습을 생각하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뼈에 사무치는 회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백우진이 주먹으로 보자기 속에서 벌벌 떨고 있는 그의 머리통을 가볍게 내리쳤다.

         

       “조용히 해. 그러다가 들키면 너나 나나 곤란해져.”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전혀 곤란함을 느끼지 않는 말투.

         

       비로소 깨달았다.

         

       백우진이 제 머리를 들고서 이곳까지 온 이유를.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느냐?”

       “응, 맞아.”

         

       직설적으로 대답하는 백우진.

         

       “다시 살아난 김에 너도 알아야지. 네놈의 잘못된 선택 한 번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속 편하게 그대로 쭉 영면에 들었다면 모를까.

         

       애석하게도 이리 살아나 제 목숨을 다시 한번 노리러 왔으니 알려줘야지 않겠나.

         

       제멋대로 한 행동으로 인해 가문이 어떤 수모를 겪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독고세가의 무공을 땀 흘려 수련한 녀석이 왜 시정잡배들에게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얻어맞고만 있는지.”

       “…….”

         

       굳게 입술을 닫고 있는 독고천.

         

       그러거나, 말거나.

         

       백우진은 참혹한 진실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단전을 봉인했거든. 독고세가에 속한 무인들 전부.”

       “뭣…!”

         

       독고천이 혈교의 내통자로 밝혀져 그 자리에서 즉결 처형됐다는 소식이 널리 알려진 뒤.

         

       주변에서 독고세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독고천과 함께 힘차게 비상하는 가문에서, 중원의 배신자 가문으로.

         

       곳곳에서 독고세가 또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쳤다.

         

       독고세가의 대표나 다름없는 독고천이 배신자면 가문 내에 얼마나 더 많은 배신자가 숨어 있겠냐면서.

         

       하루아침 사이에 풍비박산이 나게 된 상황.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 오명을 씻어내기 위해서 그들은 직접 무림맹으로 향했다.

         

       어떤 조사든 달게 받을 것을 선언했고, 동시에 자신들의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긴 시간 단전을 봉인하겠다는 초강수까지 내던졌다.

         

       단전은 무인의 근원.

         

       이를 봉인한다는 것은 그 시간 동안 무인으로서의 능력을 온전히 상실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해서 살아남았어, 독고세가는.”

         

       충격적인 사실에 독고천이 낮은 소리로 울부짖었다.

         

       “어째서냐….”

       “뭐가.”

       “그렇게까지 했는데 어째서…, 어째서 저 아이가 점소이 따위를 하고 있냔 말이다…!”

       “그야…, 살아남기만 했으니까.”

         

       말 그대로다.

         

       그들은 살아남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한 번 돌아선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을 향해 있던 지원은 끊어졌고, 누구도 그들과 함께하려 하지 않았다.

         

       철저한 고립.

         

       먹고 살기 위해 집과 땅을 팔았고, 조금이나마 숨을 쉬기 위해 터전을 옮겼다.

         

       연고라곤 전혀 없는 이곳 귀주 땅으로.

         

       당장 무너져도 할 말이 없는 허름한 지붕 아래서 먹고 살기 위해 독고성은 객잔의 문을 두드렸다.

         

       점소이라도 좋으니 제발 일을 하게 해달라며 객잔주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했다.

         

       “그런…, 그럴 수가….”

         

       저 어린 녀석이 점소이로 일하는 것을 미루어 보면 알 수 있다.

         

       독고세가의 상황이 얼마나 최악인지를.

         

       의심 속에서 살아남고는 있으나, 언제 꺼질지 모르는 위태롭게 흔들리는 미약한 촛불.

         

       그것이 현 독고세가이리라.

         

       빠드득!

         

       강하게 이를 갈아댄 탓에 이빨 몇 개가 부러져 입속을 나뒹군다.

         

       그것을 잘근잘근 씹어 뱉은 독고천.

         

       짧은 시간에 연타로 얻어맞은 머리는 충격에 휩싸여 멈추기는커녕, 도리어 맑아졌다.

         

       기나긴 동굴 안을 헤매다 마침내 빠져나와 빛을 본 것만 같은 기분.

         

       지금 해야 할 것은 뼈저린 후회 따위가 아니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과거보다 더 처참하게 몰락해버린 가문.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없는가.

         

       ‘있다.’

         

       고작 자신을 후회하게 만들기 위해 백우진이 머나먼 귀주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것은 아닐 것이다.

         

       후회하게 만든 그다음.

         

       백우진이 말한 혹할 만한 제안이란 것이 바로 그다음에 해당하는 것일 터다.

         

       “말해라.”

       “뭘.”

       “혈교의 본거지를 일러주면 네놈…, 아니, 백우진 네가 해줄 것은 무엇인지.”

         

       이를 들은 백우진은 웃었다.

         

       이제야 상대와 대화라는 것을 나눠볼 수 있는 상태가 된 듯하여.

         

       “거래 조건을 나누기에 앞서 해야 할 것이 있을 듯한데.”

         

       정신을 차린 독고천의 눈에 보이는 처참한 광경.

         

       “…부탁이다. 성아를 구해다오.”

         

       그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백우진의 손가락을 튕겼다.

         

       빠르게 쏘아진 자그마한 기의 덩어리가 독고성을 사정없이 짓밟는 장정들의 가슴팍에 틀어박혔다.

         

       퍼억!

         

       “크허억!”

         

       힘조절을 했기에 그리 큰 충격은 아니었다.

         

       주먹으로 가슴팍을 세게 얻어맞는 정도일까.

         

       허나 그것으로 충분했다.

         

       동네 시정잡배들일수록 살아남기 위해 눈치가 발달한 편이니까.

         

       이쪽을 향한 두려움 가득한 시선을 마주하며 백우진이 손을 휘저었다.

         

       “먼지 그만 날리고 가라.”

       “…시, 실례했습니다!”

         

       부리나케 도망치는 시정잡배들.

         

       이윽고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독고성이 백우진에게 다가와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가, 감사합니다, 대협.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감사까지야.”

         

       제법 강단이 있는 녀석이다.

         

       제 몸이 힘들어 죽을 지경일 텐데도 감사 인사부터 챙기는 것을 보면 독고천과는 영 딴판인 성격인 듯하다.

         

       “자, 이거 받아.”

         

       백우진은 그런 그를 향해 품에 넣어두었던 주머니를 던져주었다.

         

       이를 받아 든 독고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대협, 이것은…?”

       “그걸로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잔뜩 사서 집으로 돌아가.”

         

       그제야 주머니를 열어본 독고성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헙…!”

         

       그 안에 들어 있는 동전이 하나 같이 금색을 띠고 있었다.

         

       은자 백 개가 모여야 하나를 이루는 금자가 조금도 아니고 한 주먹이나 담겨 있다.

         

       “이, 이것을 대체 왜….”

       “글쎄.”

         

       백우진이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원활한 거래를 위한 작은 선물이라고 하면 좋으려나.”

         

       맥락을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독고성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젯밤에 허리 통증이 또 심해서 잠깐 누워 있는다는 게 그대로 잠이 들어 연재를 하지 못했습니다.

    보통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허리가 나아져야 하는데 통 낫지를 않더군요.

    그래서 낮에 병원에도 다녀오고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네요.

    걱정스러운 마음에 MRI까지 찍으면서 검사를 받았는데, 다행히 허리디스크가 악화된 건 아니라고 하시네요.

    최근에 오래 앉아 있고, 또 운동도 하다 보니까 허리가 무리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또 무게도 많이 나가서 아무래도 무리하면 그만큼 반동이 남들보다 세기도 하고요.

    휴식 충분히 취해가면서 집중력 있게 빨리 글 쓰고, 운동도 적절하게 병행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듯합니다.

    자꾸 건강이 나쁜 모습만 보여드려 송구스럽네요.

    최대한 잘 관리해서 연재 차질 없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읍니다.

    그럼 저는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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