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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3

       선계는 혈교주가 기대했던 그대로의 장소였다.

       

       먼 과거의 자연을 그대로 품고 있는 이 곳은 지상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생기를 지니고 있었다.

       

       이 곳에 존재하는 모든 생기를 품 안에 끌어 모을 수 있다면 분명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겠지요.

       

       기분 좋은 듯 웃음을 흘리던 혈교주는 여기까지 데리고 온 강시를 선계 이곳저곳으로 풀었다.

       

       자신의 혈술을 설치함으로써 기운을 집약시키기 위하여.

       

       “돌아가시게. 자네는 허락받지 못했으니.”

       “제가 말입니까?”

       

       혈교주는 뒤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태연히 대답했다. 구름 위에 올라 서 있는 신선은 저 멀리에서부터 자기의 존재감을 과시했으니 혈교주가 그것을 못 알아챌 리 없었다.

       

       “저는 신선문을 지나 이 곳에 왔습니다마는.”

       “그랬겠지. 허나 문을 열고서 온 것이 아니지 않나.”

       “열었습니다만?”

       

       문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도구에 불과하다. 밀어서 열건 박살내어서 열건 어쨌든 간에 열고서 들어왔다면 들어온 것이지 않나.

       

       혈교주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그렇게 대답했지만 상대는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일전에 왔던 한 사람을 따라하려 드는구나. 허나 네 놈은 그녀와 다르다.”

       “무엇이 다르지요? 그새 새로운 규약이 생긴 것입니까? 허어. 신선분들도 무척 성실하시군요.”

       

       과거 저 문을 부수고 들어온 사람은 탓하지 않으면서 어째서 자신은 탓하냐는 혈교주의 물음에 신선이 웃음을 짓는다.

       

       “본래라면 그대는 그 문을 부수지 못했다.”

       

       신선문이라는 것은 멀고도 먼 과거부터 존재했던 것.

       

       종선 자신조차도 신선이 되기 위해 지나왔어야 했던 것.

       

       신선이 되고자 하는 수많은 이들이 찾아왔으나 좌절하고서 돌아간 것.

       

       그를 부수고자 했던 것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허나 그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신선문은 무수한 세월 속에서도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허락 받지 못한 이들을 돌려보내고는 했다.

       

       이전의 그 신선문이 그대로 있었더라면 혈교주는 이 곳에 당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정도 녀석에게 부서질 정도로 신선문은 허약하지 않으니.

       

       허나 작금의 신선문은 과거와 같지 못했다. 한 사람의 손에 의하여 부서져 버렸기에.

       

       종선을 비롯하여 오래되고 실력 있는 신선들이 힘을 합해 그를 복원하고는 있었지만 그 과정은 지지부진했다.

       

       선별의 기능은 되돌릴 수 있었지만 이외의 이적은 그저 흉내내는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혈교주는 이 곳에 침입할 수 있었다.

       

       “결국 그건 신선분들의 사정이지 않습니까? 제가 굳이 따라야 할 이유는 없는 듯 하군요.”

       “그래. 우리의 과실이지. 그래서 당장에 쳐죽여도 모자랄 마당에 곱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으냐.”

       

       혈교주는 대화를 나누면서 신선의 수준을 살피고는 쓴웃음을 흘렸다.

       

       이야. 바깥에 계시던 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군요. 고기방패 역할을 해 준 외부인 분들이 그립네요. 그 분들이 있었다면 일을 할 시간을 벌 수 있었을 텐데.

       

       뭐어. 이 자리에 없는 분들을 그리워 해봐야 돌아오는 건 없으니 할 수 있는 데까지 몸을 움직여 보도록 할까요.

       

       혈교주는 품 안을 뒤져 몇 개의 구슬을 꺼낸 순간 종선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도술에 있어 심대한 깨우침을 지닌 그이기에 저를 보자마자 그 정체를 깨달은 것이다.

       

       “그것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물을 죽인 것이냐.”

       

       생기 혹은 진기라 불리는 기운.

       

       살아서 이 세상을 구성하는 이들이 당연하게 지니고 있는 것.

       

       바꾸어 이야기를 하자면 오롯이 살아있는 것들에게서 밖에 구하지 못하는 기운.

       

       대체 저 기운 안에 넘실거리는 기운을 만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죽였을 터인가.

       

       종선은 그를 짐작하지 못했다. 짐작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분명 수많은 이들의 핏줄기 위에 세워진 것일테니까.

       

       “글쎄요. 계산이 잘 안 되네요. 없앤 산의 개수라면 대충 대답할 수 있습니다만 그걸로는 안 될까요?”

       “헛소리를 정성스럽게 하는구나.”

       “역시 안 되나요.”

       

       어깨를 으쓱이며 장난스레 대답을 한 혈교주는 자신이 꺼낸 구슬을 손 안에서 부수는 것으로 그 안에 품어진 생기를 몸에 새겼다.

       

       “이야. 여러모로 소모가 크네요. 이런 수고를 들일 가치가 이 곳에 있으면 좋으련만.”

       “걱정말거라. 곧 소모니 뭐니 하는 것을 고민하지도 못하게 될 테니까.”

       

       *

       

       왕국 최강의 전력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왕국군에게 거대한 절망을 내려 주었다.

       

       결코 패하지 않던 왕국의 수호자가 여자아이 하나에게 패해 바닥에 내리 앉은 것이다.

       

       그것도 비겁한 술수가 아니라 정당한 결투의 끝에.

       

       왕국의 입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싶겠지.

       

       듣자하니 신께서 반란군에 자신의 천사를 보내셨다는 소문이 돌았다던가.

       

       – 화령조아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천사랑 천마. 발음도 비슷하니 딱 좋네요.]

       

       – 그건가? 종말의 대천사?

       – 세상에 멸망이 찾아왔구나.

       – 이런 천사님이라면 나쁘지 않을 지도.

       – 생긴 건 천사인데 하는 행동은 악마라니.

       – 완전 루시퍼!

       

       “헛소리를 하는 구나.”

       

       어쨌건 간에 성벽 위에서 공성을 하던 왕국군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중세의 세상에서 신이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더 크고 위험하게 받아들여지는지라.

       

       저들의 승리를 신이 점지했다! 라는 외침은 생각한 것보다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렇게 왕성 안으로 진입한 후부터는 따로 할 일이 없었다. 언젠가 보았던 컷신이라는 형식으로 진행이 되었으니까.

       

       나는 여전히 르네라는 아이의 몸 안에 머무르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 뿐. 내게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의 몸 안에서 게임이 보여주고자 하는 장면을 지켜봐야 하는 것이다.

       

       왕궁 점령. 왕의 처형. 승전 행진.

       

       전쟁이 승리로 끝났을 때에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 짧게짧게 지나간다.

       

       시청자들은 그를 보면서 이런 엔딩도 있었구나. 하며 신기해했지만 본인은 그러지 않았다.

       

       시대와 나라가 다를 뽄 과거에 보았던 것과 비슷한 풍경이다. 신기해 할 구석은 어디에도 존재치 아니했다.

       

       그 모든 시시한 절차를 거치며 시청자들이 해주는 이야기에 대수롭지 않게 답해주고 있으려니 어느 순간 마지막이 찾아왔다.

       

       그는 식사의 자리였다.

       

       모든 것이 끝난 뒤에 왕의 핏줄을 전면에 세우고 자신이 그를 조종하는, 그야말로 흑막이라 불러 마땅할 자리에 오른 주인공 아비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다.

       

       중간에 지나가기로 밤잠을 줄여가면서까지 일에 매진하고 있다 했으니 몸에 피로가 쌓이는 게 정상이겠지.

       

       오래 살지는 못하겠구나. 애초에 오래 살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만서도.

       

       “요즘 생활을 어떠하더냐. 잘 지내고 있느냐?”

       “전장을 돌아다닐 때보다는 훨씬 나아요.”

       

       내 입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존댓말이 소름끼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은 강제되는 사안인지라.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주인공의 아비가 어색하게 웃는다.

       

       아무리 보아도 이 상황이 불편한 게 느껴지는구나. 왜 굳이 이런 자리를 만든 것인지 모르겠군.

       

       아비의 물음에 주인공은 답하지 않는다. 침묵이 길게 이어지고 본인은 아피스 제작사가 얼마나 게임을 잘 만드는 지를 다시금 느껴야만 했다.

       

       빌어먹을. 이게 무슨 음식이더냐. 이건 종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고무다. 최소한 음식의 분류에 끼워 넣어서는 안 될 잡것임이 분명하다.

       

       또 다시 옛날 생각을 하게 해주는군. 과거 무림의 음식 때문에 차라리 단으로 식사를 떼우겠노라 마음먹었을 적의 일을 말이야.

       

       다음은 무어냐. 빌어먹을 광신도들이라도 등장시킬 생각이더냐? 진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갑자기 내 입이 열렸다.

       

       “이제 뭘 하실 건가요?”

       

       물음을 들은 주인공의 아비는 잘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는 가만 내 쪽을 바라보았다.

       

       “뭘 할 거냐고?”

       “예. 아버님. 지금 아버님께서는 왕국을 손아귀에 넣으셨습니다. 바라시던 대로요.”

       

       이 게임이 시작되기 전부터 주인공 아비의 목적은 하나였다.

       

       왕국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그를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것이 게임의 시작부를 만들어냈으니 이는 부정할 것이 없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목적은 이루어졌다. 왕국이라는 하늘은 그의 손아귀에 떨어졌으니. 주인공 아비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이 나라의 하늘이 되었다.

       

       “그래서 여쭤보고자 합니다. 이제는 어찌하실 겁니까?”

       

       물음을 들은 주인공 아비는. 꿈을 지닌 한 사람의 남자였으며 뜻 있는 귀족이었고 이제는 권력자가 된 그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이내 결정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얼 할 거냐고? 정해져 있지 않으냐. 하늘 위에 올라섰으니 이제 내가 바라는 하늘을 만들어야지.”

       

       그 대답은 한 사람의 권력자다운 발언이었다.

       

       그래. 가장 높은 곳에 서면 다들 저런 생각을 하지.

       

       원대한 뜻을 지녀야지만 오를 수 있는 자리이니 말이다. 저 뜻이 어디까지 갈지는 알 수 없…

       

       잠깐.

       

       잠깐만.

       

       무엇인가가 머리를 스쳤다.

       

       본인은 이 감각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깨달음.

       

       먼 과거에 느끼고서 그 후부터는 한 번도 도달한 적 없던 것.

       

       허나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것.

       

       속으로 환호성을 내지른 나는 기꺼이 이 기시감을 환영했다.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이야기하는 남자를 무시하고서 사고의 안에 빠져든다.

       

       무언가를 부수었다면 어찌 해야 하는가. 새로운 것을 손에 쥐어야지.

       

       농기구가 부서졌다면 새로운 농기구를 손에 쥐어야 한다.

       

       가축이 죽었다면 새로운 가축을 들여야 한다.

       

       집이 무너졌다면 다른 집을 찾아야 한다.

       

       나라가 멸망했다면 다른 나라로 향해야 한다.

       

       빈 것은 빈 것으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빈 곳은 또 다른 것으로 채워져야만 한다.

       

       그 곳이 원래 채워져 있었던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니까.

       

       그렇다면 말이다.

       

       하늘이 부서졌다면 그것 또한 채워야 하는 것이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아이젠이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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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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