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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3

       이사벨은 몰락한 귀족 가문의 아가씨였다.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점. 기존의 삶을 더는 영위할 수 없다는 점. 이런 사창가에 팔려 여생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 그런 온갖 점에 절망하며 몸부림치다가, 다른 아이를 깔보게 될 정도로 성격이 뒤틀렸다.

       

       메리가는 비록 처세술을 배우지 않았지만, 이사벨의 이런 심리를 직감으로써 알고 있었다.

       

       “카운터를 둘이서 보게 해 달라고?”

       “네.”

       

       그랬기에 포주에게 이런 부탁을 건넸다.

       

       “제가 아직 어리잖아요. 보조 역할만 하고, 카운터는 이사벨 언니가 같이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잡혀 온 애새끼가 무언가를 제안한다는 것은 간담이 어지간히 크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메리가는 했다.

       

       어제의 일을 포주가 보고 있었으리라 확신했으니까.

       

       “흐음.”

       

       포주가 침음을 흘렸다.

       

       일주일 동안 관찰한 결과, 포주는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사람이었다.

       

       창관을 운영하면서 수입을 내긴 내야 하는데, 모든 사업이 그렇듯 그 과정에서 회계와 문서 작업은 필수다.

       

       그런데 그런 걸 하려면 아무리 못해도 간단한 쓰기와 산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했다.

       

       포주 또한 이를 할 수는 있었으나, 지배인도 겸하고 있는 바쁜 사람이었기에 데스크를 항시 맡을 순 없었다.

       

       그랬기에 메리가의 제안은 더욱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으리라.

       

       “이사벨 언니와 같이하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꼬맹아, 어제 얘기했잖아. 걔는 그 특유의 성격 때문에 손님을 맞이할 수가 없어.”

       

       이사벨은 귀족 출신답게 읽기와 쓰기, 산수를 잘했으나 동시에 다루기가 까다로웠다.

       

       “손님 중엔 성질머리 더러운 것들도 더러 있다. 이사벨이 그 손님과 싸우기라도 하면 안 돼.”

       

       포주의 염려에도 메리가는 어깨를 으쓱였다.

       

       “만약 저 혼자 업무를 맡다가 그런 손님을 만나면 어떻게 해요?”

       “그땐 어제 본 알바를 부르면 된다. 그 녀석이 힘 하나는…….”

       

       포주는 거기까지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메리가의 오른쪽 뺨에 난 붉은 손자국.

       

       포주가 말한 어제 ‘그 녀석’이 때린 흔적이다.

       

       “…….”

       “…….”

       

       메리가는 포주와 눈빛을 교환했다. 도의적인 눈맞춤이었다.

       

       “알겠다, 알겠어.”

       

       결국 백기를 든 건 포주였다.

       

       “이사벨이랑 둘이 붙여주마. 이상한 일 벌이지 말고, 잘만 하면 배식으로 맛있는 걸 주마.”

       

       메리가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

       

       

       자신의 가치를 보인다.

       

       그리고, 그 가치를 타인에게 인정받아 출세한다.

       

       이는 성매매나 고리대금업 같이 불법적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먹히는 법칙이다.

       

       메리가는 열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 점을 정확히 꿰뚫었고, 포주의 니즈를 맞춰주기까지 했다.

       

       평범한 사람이 볼 땐 정신 나간 짓이었다. 도무지 유괴당해 온 아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물론 메리가도 실제로는 이런 짓을 싫어했다.

       

       ‘어쩔 수 없잖아.’

       

       그런데도 이런 식으로 창관 주인의 비위를 맞추는 이유는 하나.

       

       ‘성공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어.’

       

       와신상담 절치부심.

       

       메리가에게는 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선 배워야 했다.

       

       문자를, 수학을.

       

       “누구로 하시겠어요?”

       “데이지, 이 아이가 좋겠군.”

       “숏은 금화 열 장, 하프는 서른 장, 풀은 오십 장이에요.”

       “풀로 하지. 바니걸 코스튬 서비스 추가해서.”

       “보너스 소프나 SM은 어떠신가요? 풀코스라면 금화 다섯 장씩 해 드리고 있습니다.”

       “크으, 좋지.”

       “풀코스 하나에 코스튬 플레이 추가, 그 외 두 가지 추가해서 총 금화 80장 되겠습니다.”

       

       슥삭슥삭.

       

       이사벨은 문서에 지금까지의 대화를 요약하여 적었다. 계산도 폭포수 떨어지듯 시원하게 해 나갔다.

       

       한편, 메리가는 이사벨과 똑같은 계산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맞고 틀리고의 여부를 스스로 피드백했다.

       

       어디 이뿐일까? 

       

       ‘데이지는 이렇게 쓰는구나.’

       

       메리가는 17번 앨범에 적힌 여성의 이름을 보며 한 음절 한 음절 철저하게 분석했다.

       

       이러면서 제국 공용 알파벳을 틈틈이 외웠다. 자음과 모음을 분해했다. 문자 하나하나의 개념을 통달할 때까지 보고 또 보았다. 

       

       확실하게, 빈틈없이, 아카데미 입학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공부한다.

       

       이렇게 데스크에서 몇 시간을 있었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양장본을 보며 글자 연습을 했다.

       

       그 결과, 데스크에 취임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모든 알파벳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제국 알파벳이 표음문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표의문자였다면… 이렇게 익히는 것에 어마어마한 시간이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저, 그, 있잖아.”

       “응?”

       “……괜찮아?”

       

       한적한 시간대. 이사벨이 조심스레 자신의 안부를 묻는다.

       

       “어디?”

       “뺘, 뺨 맞은 데 말이야.”

       “이거? 아직 얼얼하긴 한데 괜찮아.”

       

       아무렴. 조금 세게 맞긴 했지만 점점 낫고 있다.

       

       “……그래.”

       

       홱.

       

       고개를 돌려버리는 이사벨.

       

       탁, 탁, 탁!

       

       “이것들아, 밥이나 먹어라!”

       

       동틀 녘이 되었다. 메리가와 이사벨은 데스크에서 나와 가볍게 아침을 먹고 잠자리에 누웠다.

       

       본래 다른 아이들은 이맘때 일어나 빨래와 청소 업무를 하지만, 두 사람은 철야를 했기 때문에 생활패턴이 이렇게 바뀌었다.

       

       ‘첫날에는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

       

       당장이라도 자고 싶어서 안달이다.

       

       허름한 이부자리에 누운 두 소녀. 구석에 자리를 잡은 이사벨이 하품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메리가가 양장본을 펼쳐서 읽고 있었다.

       

       “야. 안 자?”

       “여기까지만 보고.”

       

       탁탁. 메리가가 페이지를 손으로 가리켰다.

       

       64페이지.

       

       일주일 새에 이만큼이나 읽었다.

       

       “그 어려운 게 이해가 돼?”

       “어려운 단어가 많지만 어떻게든 읽어볼 수는 있어.”

       

       메리가가 들고 있는 책은 ‘기초지계마도이론’.

       

       아카데미 1학년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전공서적이다.

       

       “그거 엄청 어려운 책이야. 너 같은 어린애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글쎄.”

       

       메리가는 문자와 친숙해지기 위해 글을 읽는 것뿐이지, 책 내용을 이해하고자 읽는 게 아니다.

       

       이사벨은 입술을 비죽이며 메리가가 엎드려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곧 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입꼬리를 씰룩였다.

       

       “흐, 흥. 다 알고 있는 내용이네.”

       “정말?”

       “그래. 이건 변성 마법진이고, 이건 개화부의 개념. 와, 얘는 골렘이잖아? 오랜만에 보네. 그리워.”

       

       이사벨은 기껏해야 메리가보다 서너살 더 많은 소녀였지만, 일단은 귀족 출신.

       

       이 나이대의 귀족 자제라면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해 미친 듯이 선행학습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어쨌든 다 아는 내용이라 이거야.”

       “이사벨 언니는 똑똑하구나.”

       “크흠, 큼! 그래. 모르는 내용 있으면 언제든지 질문하라고.”

       

       이번에는 메리가가 입술을 씰룩였다.

       

       “그으래애?”

       “아, 아니! 잠깐만. 오늘은 일단 자고 나중에 하자. 나중에. 응?”

       “이사벨 언니. 여기 이거, ‘연성’이 무슨 뜻이야?”

       “바보야? 너 연성이 뭔지도 몰라?”

       

       걸렸다.

       

       “어휴, 이래서 평민들이란…. 자, 들어봐. 연성이라는 건 말이지…….”

       

       이사벨은 9시가 될 때까지 메리가를 가르쳤다. 분명히, 오전 7시에 누웠는데 말이다.

       

       “두 시간이 날아갔어.”

       “미안해, 언니.”

       “이게 다 네가 멍청해서 그런 거야. 조금만 똑똑했으면 금방 끝났을 거 아니야?”

       “헤헤.”

       

       메리가는 언제나와 같은 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

       

       

       한 달, 두 달, 석 달.

       

       여러 달이 지났다.

       

       메리가와 이사벨은 별 탈 없이 데스크 업무를 수행했다.

       

       가끔 이상한 손님이 나타나 행패를 부리는 일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메리가가 잘 중재했다.

       

       “내가 웬만하면 이런 말은 잘 안 하는데, 너희 덕분에 매출이 오른 것 같다.”

       

       크면 성매매를 시키려고 데려왔건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얻어걸린 포주였다.

       

       물론 메리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성인이 되면, 포주는 자신에게도 가차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단지 어릴 때부터 큰 쓸모가 있으니 해 주는 말이다.

       

       ‘사탕발림이야.’

       

       메리가는 그런 생각은 속으로 삼키며 이사벨을 보았다.

       

       “저도 할 수 있으면 한다고요. 그동안 왜 안 시키셨어요?”

       

       이사벨은….

       

       포주가 칭찬하는 이유를 전혀 모르는 듯했다.

       

       자신과는 다르게 온실 속의 화초로 자라서 그런 것일지도.

       

       “그럼, 오늘도 제대로 하고 있으렴. 수입이 금화 5백 장을 넘기면 내 오늘은 큐브 스테이크를 먹여줄 테니까.”

       “와아.”

       

       메리가는 영혼 없는 탄성을 내질렀다.

       

       큐브 스테이크라.

       

       맛있기는 한데, 그것으로 족하면 안 된다.

       

       메리가는 여전히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이사벨한테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단 말이지.’

       

       문자를 읽고 쓰는 법, 사칙연산하는 방법.

       

       메리가가 지니고 있는 양장본에서 뽑아먹을 수 있는 몇 가지 지식들.

       

       이것들은 지난 1년 동안 밥 먹듯이 반복하면서 체득했다.

       

       이제 작문은 기본이요, 어려운 수 계산도 척척 해낸다.

       

       딸랑.

       

       “손님 오셨다!”

       

       이런.

       

       메리가는 펜을 들고 늘 하던 업무에 신경을 집중했다.

       

       현관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술에 취해있었다.

       

       자꾸만 딸꾹거리며 데스크 앞으로 비척비척 걸어오는 남자. 메리가와 이사벨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안 좋아.’

       

       그동안 여러 미친놈을 봐온 메리가는 직감하고 말았다.

       

       오늘 편히 지나가기는 글렀다.

       

       “딸꾹, 아가씨들. 귀엽네. 아가씨 둘로 지명하지.”

       

       이사벨이 인상을 찌푸렸다. 메리가는 서둘러 이사벨의 팔꿈치를 툭툭 건드리고는 입을 열었다.

       

       “손님. 저희는 안내역이에요. 지명하실 수 없어요.”

       “뭐라?”

       

       남자는 목각인형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메리가를 꼬나보았다.

       

       “후우….”

       

       윽, 술 냄새.

       

       “내가 손님이고, 손님은 왕인데, 딸꾹. 너네 지명오 안 되겠다는 거야?”

       “저희는 딱 봐도 어리잖아요.”

       

       메리가는 미리 준비해 둔 멘트를 쳤다.

       

       “제국법에 따르면 16세 이하, 그러니까 성적자기결정권이 없는 아이는 성매매를 할 수 없거든요. 만약 저희를 지명해 주셨다가 들키기라도 하신다면 법에 저촉되어 최대 사형선고를 받으실 수 있어요.”

       

       실제로 제국은 그랬다. 어린애를 겁간하면 무조건 처형.

       

       특히 현(現) 블랜튼 공작이 들어서면서 그 조례는 더욱더 심해졌다.

       

       “당장 3개월 전에도 남부 사창가에서 금안족 아이를 겁탈한 남자 세 명이 전원 궁형 후 거열형을 받았어요.”

       

       신문기사로 읽었던 사실이다. 꽤 충격이 컸었지.

       

       “이, 이 배냇물도 안 마른 꼬맹이가 뭐라는 거야?”

       

       남자는 품에서 술병을 꺼내 제 목구멍에 콸콸 들이켰다.

       

       곧 남자가 몽롱한 눈빛으로 메리가를 쳐다보았다.

       

       “하는 수 없지, 끄으윽.”

       

       ‘사형’이라는 단어가 그렇게나 걸리는 모양이다.

       

       “좋아. 쓸 수 있는 년 중에서 누가 가장 어리지?”

       “여기, 번호가 크면 클수록 나이가 적습니다.”

       “그러면 끝 번호로, 딸꾹, 하겠어.”

       “숏은 금화 열 장, 하프는 삼십 장, 풀은 쉰 장입니다.”

       “푸울.”

       “특별히 바라시는 건…….”

       “하드 SM 추가하지.”

       

       메리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부에 수입을 적었다.

       

       짤랑.

       

       남자는 금화를 잔뜩 내고 방으로 들어갔다.

       

       제아무리 방음이 된다지만, 얼마 안 있어 듣기 싫은 소리가 들리겠지.

       

       메리가는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뜨고 싶은 마음이었다.

       

       “메리가. 뭘 그리 생각하고 있어?”

       “어, 응? 아니.”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 아주 귀족적이야. 나랑 같이 지내서 그런가? 기품 있다고 할 수 있어.”

       

       이사벨은 메리가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이 언니도 몇 개월 새에 바뀐 게 있네.’

       

       처음에는 아는 체도 하지 말라고 하더니.

       

       그때 알바에게 손찌검을 맞은 이후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메리가는 더는 끼니를 거르지 않아도 된다. 문자도 배우고, 산수도 익혔다. 조금이지만 ‘기초지계마도이론’ 책의 일부도 이해했다.

       

       ‘이제 이곳을 탈출하기만 하면 돼. 그때 가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적어도, 눈앞의 소녀와 함께라면 그럭저럭 헤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호기는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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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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