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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4

        

         1억 크레딧, 누군가에겐 무사히 모으기만 할 수 있다면 은퇴 목표액이나 다름없는 거금을 정착 지원금으로 날름한 이의 출발선이 남다르다는 건 구태여 언급할 필요조차 없는 당연한 사실이 아닐까.

         

         비록 무슨 부잣집 도련님처럼 킴이 타고난 환경이 풍족했다든가, 시작부터 많은 수혜를 본 덕에 네오 헤이븐을 우습게 여겼다든가. 그리 쉽게 말하기엔 장기마저 팔아서 초기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결단까지 했던 남자에게 정말 큰 실례가 되겠지만은.

         

         어쨌거나 하려던 말은 그거다.

         

         그건 보수적으로 소모하면 안전하고 유유자적한 도시 생활을 만끽하고도 남을 액수의 돈이라는 것. 반면 공격적으로 장비에 재투자하고 본인의 의지와 임플란트 적합성도 꽤나 충만하다면… 생각보다 엄청 잘 적응하고도 남을 혜택이라는 것.

         

         더군다나 원래 킴은 네오 헤이븐 프라임을 비롯해 숫한 게임을 즐기던 한국인이었고, 사이버웨어 UI도 모니터나 무게감 없는 VR기기가 눈에 따라붙는다 생각하면 그렇게 완전 상식에서 동 떨어진 신문물도 아니었으니.

         

         타고난 센스도 어느 정도 받혀주겠다. 비록 게임 상의 수치와 티어 리스트를 토대로 구매했다고는 해도, 객관적으로 품질과 가성비 모두 좋은 장비를 골라잡은 터라 퍼포먼스가 나쁠래야 나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사소한 경험 부족만 가끔 두드러질 뿐, 돌려주는 결과값이 용병 평균 이상이었으면 이상이었지.

         

         “씨바, 아무도 이쪽 쳐다보지 말아라. 제발 신경 쓰지 말아다오…!”

         

         …물론 거듭 말하지만, 당사자는 군필자답게 총 무서운 줄 아는 소시민이자 일반인.

         

         여전히 경력 상으론 패거리의 막둥이 취급이지만, 임플란트 등을 너무 기깔나게 맞춘 탓에 벌써 나름 에이스 역할을 담당하게 된 건 전혀 원치 않았던 슬픈 오산이었다.

         

         분명 한두 달만 꾹 참으며 큐볼의 비위 맞춰주다가 필요한 정보만 챙겨서 슬쩍 빠지려고 했는데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인생에 계획대로 굴러가는 법이 없는 게 진짜 거지 같네~

         

         마치 오만 욕을 퍼붓고 있으면 자신을 불쌍히 여긴 총알이 빗겨 나가기라도 한다는 듯, 끊임없이 투덜거리면서도 킴은 몸을 숙인 채 미친듯이 포화속으로 내달렸다.

         

         그동안 팔자에도 없던 전장을 오가며 목숨만큼 중요한 교훈을 배운 게 몇 가지 있다면… 그 중에서도 이런 경우에 반드시 떠올려야 하는 한가지가 있다면 다음과 같았기에.

         

         기습은 최고의 전략이며 행동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특히나 상대보다 먼저, 적이 정신차리기 전에 움직일 수 있다면 존나게 좋다!

         

         “이 에미 뒤진 꼴통 용병 새끼들…!! 폭동 진압이라더니 무슨 중기관포를 다짜고짜…… 엉??”

         

         지들이 막간의 기회를 틈타 민간 구역으로 밀고 나온 탓에 확대된 폭력 사태로 전소된 건물이 몇 채이며 약탈당한 재산 피해가 얼마인데, 얼토당토않은 불만을 터트리는 렉소스 갱의 머리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뒤집어쓴 먼지와 파편, 폭음 탓에 부스스한 정신이기에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그의 사이버웨어가 인지하고 분류하는데 성공한 물체는 전투 보호구가 덧대진 사람의 무릎 부위였…… 잠깐, 웬 무릎?

         

         “좆 까 이 새꺄!! 갱단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면 니들이 문신돼지 가오충이라는 사실이 없어지냐?! 안 그래도 충분히 골치 아프니까, 이딴 이상한 돌발 이벤트 만들지 말고 그냥 너네 구역으로 꺼져!”

         

         “!!?”

         

         빠각!!

         

         코뼈가 완전히 내려앉음과 동시에, 강렬한 뇌진탕으로 방금 후려갈긴 갱단원의 눈이 뒤로 넘어가는 게 킴의 강화된 동체시력에 보였다.

         

         때려눕힌 건 일반적인 동네 양아치는커녕 네오 헤이븐 외곽 지역의 일부를 꽉 잡고 불법 사업을 확장하는 도중인 렉소스 갱단.

         

         그들 사이에 분포한 범죄 이력만 해도 강도, 상해부터 납치, 경관 살인 등등 폭넓게. 문신이라 폄훼한 트라이벌 타투 또한 단순 위압이 아닌 영원한 복종과 소속감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오, 그나마 살집이 있는 녀석도 튀어나온 힘줄과 압축 근육이 선명한 진짜배기 싸움꾼임이 분명했으나.

         

         뭐, 어쩌겠나? 그렇게 입으로나마 매도하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는데 전투에 앞선 개인의 마인드 컨트롤은 존중해줘야지.

         

         “킴 이 새꺄! 오늘도 발동 걸리는데 오래 걸리냐! 기세로 밀어붙일 때 한번에 확 가라 좀!!”

         

         “사람을 무슨 귀찮게 예열이 필요한 공업용 기계처럼 부르지 마십쇼! 나라고 좋아서 이런 선봉 노릇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면서!”

         

         큐볼의 개조 슈트가 단일로 쏟아내던 총알 폭풍은 과열된 포신을 식히기 위해 멈춘 지 오래.

         

         머릿수는 폭도들이 훨씬 많지만 주력이자 구심점인 렉소스 갱단이 용병들에 발이 묶여 뒤엉키자, 약탈로 재미 볼 시간이 끝날 수도 있겠다는 예감에 대다수는 우물쭈물하는 상황이다.

         

         아직 엄호 사격이 이어지고 있을 때 이 주범들을 체포하던, 힘의 논리로 몰아내던 해야 한다는 건 지당한 말씀이지만. 왜 하필 갱단의 행동 대장을 찍어 누르는 게 자기 담당이 되었을까? 다른 숙련된 용병이 많지 않나?

         

         얼마나 아부를 열심히 했는데 설마 쓸만한 소모품 취급을 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믿는 만큼 중요한 역할을 맡긴 거겠지. 에이.

         

         …만약이란 게 있으니까, 혹시 나중에 만난 주인공도 이런 식으로 사람 험하게 다루는 꼴통이면 그 옆에서 기웃거릴 게 아니라 얌전히 우리 아나스타샤느님 밑으로 기어들어가야겠다고 킴은 굳게 맹세했다.

         

         아무리 아나스타샤가 뭐든지 다 아는 듯이 의뭉스럽게 구는 유능한 서포팅 캐릭터라 해도 온갖 미래 지식을 자랑하는 전 플레이어인 자기를 홀대하진 않겠지…까지는 농담이고, 흔한 엑스트라 대접만 해줘도 좋으니 부디 그녀의 전용 시나리오에 편입시켜주기만을 바랄 뿐.

         

         팅! 티딩, 팅팅!! 터엉—!!

         

         “뭐여, 씨발? 경찰 방패?? 짭새 출신 개새끼냐!?”

         

         “여벌 목숨이 되어줄 끝내주는 상품이 지천에 널렸는데, 총에만 몇십만 몇백만씩 퍼붓는 너희들이 미친놈들이지! 보는 놈마다 왜 날 경찰 끄나풀 취급을 하냐고!”

         

         갱단 무리의 무수한 총구가 자신을 향해 곧추세워지는 걸 보자마자, 망설임없이 거추장스러운 걸 감수하고 왼팔에 달고 다니던 접이식 탄도 방패(Ballistic shield)를 펼쳐서 응수한 킴이 악을 썼다.

         

         실상은 그나마 한번 괜찮은 걸 구입하면 두고두고 잘 관리하는 걸로 써먹을 수 있는 총기와 달리, 매 싸움마다 소모되는 휴대용 엄폐물에 투자할 크레딧도, 엄두도 없는 이가 대부분이었지만… 뭐 지금은 그걸 따질 겨를이 아니었으니까.

         

         “씨발…!!”

         

         쾅! 하고, 휘두른 방패 모서리에 턱을 가격당한 갱의 초점이 흐리멍덩하게 풀리더니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거칠게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전신 수술 후유증은 물론이고, 방금 간신히 빗겨낸 탄환의 충격까지 합쳐져 두 배로 얼얼한 팔을 움직이다 보니 힘조절이 잘 안 된 감이 강했지만. 이 시대 사람들은 워낙 내구성이 터프하니 저것만으론 안심할 수 없다.

         

         가까이서 적을 제압했다고 안심하다가 어깨에 원한 적 없는 통풍구가 뚫렸던 건, 워낙 별로 유쾌하지 못한 경험이기도 했고.

         

         재생 시술 자체는 화끈거리고 간질간질한 게 전부이지만. 가장 중요한 마취를 받기 전까지는 무한한 고통의 연속이자 정신과 시간의 나선을 헤매게 된대도?

         

         사람이 도넛도 아닐진대 기업이 부르지 않는 한 구급차도 가끔 출동을 미루는 세상에서 구멍이 난 채로 울먹이며 약국과 야전 병원, 에나마 헬스 케어 서비스 센터를 전전하는 경험은 일회성으로 족하다. 과장없이 진심으로.

         

         “커헉!”

         “이 씹, 존나게 잽싼… 끄아악!!”

         

         “아아아아! 씨바, 그렇게 자꾸 싸우면서 뭐라뭐라 말 걸어도 난 일일이 대답 못해드립니다!? 한창 배우는 중이라 댁들처럼 그딴 미친 여유가 없다고요!!”

         

         얻어맞아 쓰러지면서도 겁나 드라마틱한 서구권 인간들에게 새삼 감탄하는 건 뒤로.

         

         되도록 깔끔하게 팔다리를 부러트리는 법, 끝내주는 통증을 느끼되 과다 출혈로 죽기는 어려운 신체 부위를 정확하게 쏘는 법 등등. 정말 알고 싶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다 배우게 된 전문 지식을 최대로 활용.

         

         흔들리는 조준선을 똑바로 정렬하는 것보다 빠르게, 쉽사리 발포하지 못하도록 어중간하게 퍼져 있던 렉소스 갱단 그룹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본인은 눈먼 공격에 휘말리는 걸 극도로 사양하고 있을 뿐이었으나. 어느새 놈들의 옆구리를 찌른 크리스나 카밀라의 동선, 그리고 뒤에서 따라오는 가비의 사선에 서지 않도록 유념하며 바람처럼 질주하는 복면 괴한을 두고 누가 감히 생초짜 용병이라 단언할까?

         

         이렇게 알아서 눈치껏 부드러운 팀플레이를 지향한다는 점 때문에 특히나 더 여기저기 시답잖은 의뢰에도 써먹기 좋게 불려 다니는 신세라는 걸 슬슬 눈치채야 할 텐데…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 건방진 꼬맹이가, 일단 무작정 달려서 돌파하는 게 네 잘난 특기냐? 그럼 다리 한 쪽을 뽑아버리는 걸로, 예의와 확신없이 남의 파티를 함부로 훼방 놓는 게 아니라는 것도 이 참에 배우면 되겠군.”

         

         “!!”

         

         어, 아무래도 가까이서 보니까 멀리서 힐끗 체크한 것보다 훨씬 크다는 아찔한 감상과 함께. 렉소스 행동 대장의 모습을 제대로 시야에 담은 킴이 헛숨을 들이켰다.

         

         건물 사이 골목을 가득 메우는 다부진 근육질 체격, 거기에 딱 달라붙는 옷맵시, 탄도 방패로 흘리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은 규격의 큼지막한 더블 배럴 샷건, 뾰족한 너클과 그 위에 덧대듯 칭칭 휘감긴 사슬까지.

         

         특유의 유전자와 상용화된 호르몬제의 약효 덕분에 장신이 즐비한 생활권이라지만 2m가 넘는 거한은 보통 개조 수술의 산물이거늘, 그의 자연스러운 신체 비율과 육중한 성량은 그냥 인간 자체가 강하게 태어난 게 아닐까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그나마 킴에게 위안이 되는 점이라면… 위압적인 외형을 가져다 당장 기억나는 렉소스 갱단 인물 목록과 대조해봐도 해당되는 네임드 캐릭터가 없다는 게 아닐까.

         

         겉으로 보이는 외형만큼 무식하게 강한 뉴비 절단기는 아닐지 모른다. …아마도. 아니, 제발.

         

         “스틸볼은 허세가 심한 멍청이지만, 또 처세를 아는 인간이지. 물론 그쪽이 먼저 선을 넘겠다면 말리진 않겠다만. 내부 스트레스 발산과 물자 조달도 얼추 끝났으니 우리도 적당히……이!?!”

         

         ‘후우… 후우. 흐읍!’

         

         문장이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속으로 호흡과 박자를 맞춘 킴이 미친놈처럼 달려들었다.

         

         왜? 어차피 싸울 건데 굳이 일찍부터 말을 섞을 필요가 있나, 나눌 얘기가 있다면 우위를 점한 다음 느긋하게 떠들어도 괜찮겠지~ 하는. 분위기를 지극히 못 읽음과 ‘빨리빨리’ 및 ‘최적화 효율’만을 따지는 한국인 게이머적인 사고 방식을 토대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기습은 정말 최고의 전략이다. 그게 양심과 양식 따위를 모조리 내다버린 예측불허의 수라면 더더욱 최강이고.

         

         또 그가 아는 한 네오 헤이븐 프라임의 여러 이벤트 신을 비롯해, 헬레나 발렌타인이라는 좋은 예시를 참고하여 내린 결론이 있다면 간단히 선언할 수 있다.

         

         신체 적합도가 약간 낮아서 손해보더라도 임플란트 무조건 좋은 걸로.

         

         단판 싸움, 단기 결전은 실력보단 의외성의 영향이 더 크다. 그리고 눈에 극단적으로 의존하는 인간의 특성상, 예상 못한 무력은 대부분 숨겨진 임플란트와 개조 부품을 토대로 나오는 법이니까.

         

         “웬 분수를 모르는 애새끼가 겁도 없이!!”

         

         주변에 손이 비는 다른 단원들이 달려들어볼 틈이 나기도 전에, 몸을 더더욱 지면에 가깝게 낮추고 방패를 머리 위로 치켜든 킴이 그의 다리를 노리고 미끄러져 들어갔다.

         

         말 그대로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기면 그만이라는 도박수? 하찮기 그지없지 않나?

         

         숫제 포구砲口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사이즈의 샷건 총구를 아예 방패에 수직으로 대고 당겨버리려던 렉소스 대장이었지만, 만약 펠릿들이 전부 방패를 깔끔하게 관통하지 못할 경우… 주변에 가득한 갱 멤버들에게 무슨 개지랄이 벌어질지에 생각이 미쳐 막판에 마음을 바꿔먹었다.

         

         속도도 그렇고 과감한 결단력도 그렇고. 아무래도 괜찮은 임플란트를 박아 넣은 모양이지만 그런다 한들 중량 자체에 극단적인 변화를 가져올 순 없는 게 자연의 이치.

         

         믿는 구석이 겨우 비싼 방탄 장비라면, 그것 째로 차 날려버리고 천천히 요리하면 된다는 판단 하에. 그는 뒤로 살짝 물렸던 다리를 있는 힘껏 내질렀으나.

         

         터엉——!!

         

         돌아온 건 사람을 걷어찬 짜릿한 감각이 아닌, 붙잡을 손이 빈 탓에 더럽게 맥없이 날아가는 탄소 방어구의 모자람뿐.

         

         ‘이건 지나치게 가볍…? 아니, 이런!’

         

         “쌰아앙!! 이 또라이 같이 추잡하게 노는 존만이가?! 대체 주머니에 뭘 가지고 다니는 거냐!”

         

         “뭐 어쩌라고! 거 존나 어지럽고 헷갈리니까 일일이 추임새 좀 넣지 마쇼!! 그리고 팔에 씨바 사슬 감고 다니는 인간이 할 말이야 그게!?”

         

         첫 단추를 잘못 뀄다는 걸 인지해 봤자 한참 늦었으니, 순식간에 길게 베여진 대장의 허벅지로부터 피가 확 쏟아졌다.

         

         달려오면서 신나게 쏘느라 빈 권총의 탄창을 교체할 시간 따위 킴에겐 없었다. 게다가 그의 승리 조건은 최초부터 남자를 무력화하거나 항복을 받아내는 것.

         

         다윗과 골리앗 흉내를 낼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고, 사실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어설프게 탄 관리도 똑바로 못한 총은 얼른 바지춤에 꽂아 넣고, 대신 공사 현장 와이어도 끊어버린다는 소형 절단기를 뽑아 든 건 일견 훌륭했지만.

         

         …컴뱃 나이프라는 보편적인 선택지를 두고. 그런 전문 기술이 필요한, 테크니컬한 근접 무기를 다룰 만큼 자신의 손재주를 과신하지 않는다며 전술 조끼 안쪽에 특수 절삭기를 넣고 다니는 건 과연 상식인으로서 어떨지.

         

         특히나 고가를 자랑하는 정밀 공구의 값어치를 따지자면 또라이 소리를 백 번 들어도 할 말이 없는 행태이긴 했다.

         

         뭐, 명령권자를 죽여서 남은 부하들의 고삐를 풀어봐야 이득이 될 게 전혀 없었던 만큼 이렇게 뒤엉키는데 성공한 건 의미가 컸으니. 오늘도 속으로 아나스타샤님 만만세를 잊지 않고 삼창한 킴이었고.

         

         쿵!!

         힘줄까지 깊게 베인 걸까? 체중을 지탱하지 못하고 휘청인 대장이 기어이 한쪽 무릎을 꿇자마자 그는 득달같이 등판을 타고 올라갔다.

         

         근접 박투 도중에 제대로 된 초크 상태에 돌입한 것도 아닌데 등판에 달라붙는 건 반격당하기 쉬운 상당히 어설픈 포지셔닝이지만, 마운트를 탄 쪽의 손에 조오오온나게 날카로운 칼이 쥐어져 있다면 얘기가 전혀 다르다.

         

         뻔뻔한 헛소리를 일삼는 방독면 대가리를 후려갈기고자, 여태 꽉 쥐고 있던 쇠사슬 끄트머리를 다급하게 놓고 회전시켜 몇 바퀴 풀어낸 대장이 자신의 머리 뒤로 느슨해진 체인을 넘기곤 양손으로 재차 붙들었다.

         

         흡사 넥타이를 졸라매듯, 들러붙은 물귀신 놈의 머리를 이걸로 갈아 으스러트리겠다는 일념으로.

         

         비록 자세가 우스운 꼴이 되겠지만… 이런 막싸움도 아닌 황당한 전법에 판단 미스로 연달아 의표를 찔려서, 그것도 이름난 용병도 아닌 웬 막무가내 미친 놈에게 한 번 잘못 물린 것에 얌전히 승복하기엔 차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참나, 별 씨발.”

         “후우, 흐어어…….”

         

         어떻게 힘을 써 보기도 전에, 쩔그렁! 하고 허망하게 끊어진 사슬 파편이 후두둑 떨어져 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에 렉소스 행동 대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사람 어깨를 붙잡은 채 등판에 매달려서 만능 절단기를 휘둘러야 한다는 상황 탓에, 다급하고 부주의하게 밀어붙여 날이 겁나 상한 게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확실히 광고한 대로의 성능을 보여준 것에 일단 안도한 킴은 간신히 숨을 돌리고, 눈치껏 최선의 타협안을 제시했다.

         

         응? 과정이 어쨌던 겨우 이겼는데, 왜 김 빠지게 타협을 해야 하냐고?? 그야 남자 등판에 대롱대롱 매달려 목덜미에 전기 톱을 들이대는 걸로 인질만 겨우 확보했을 뿐, 나머지 갱단이나 폭도들은 아직 꽤나 건재하니까….

         

         시민에 의한 현행범 체포? 소요 사태 진정??

         

         최소 투자 최대 효과의 특공대 역할을 여기까지 해줬으면 됐지 않아? 더 많은 걸 바라는 건 너무한 게 아닐는지.

         

         “어우, 진짜 죽겠드아…. 이봐, 그… 이름 모를 형씨? 우리 스틸볼 대장이 이쯤에서 서로 얼굴 살려주고 그만하자 했는데. 어때? 소지품 검사를 할 생각은 딱히 없으니까, 적당히 총 버리고 빠지는 척해주면 무리해서 쫓지도 않고. 다른 동네에서 2차 회식을 하던 말던 간섭 안 할게.”

         

         “……그렇게, 죽일 마음도 없었으면서 쌈박질 한 번에 연장 다 부숴먹은 용병치고는 요구하는 게 또 굉장히 신사적이군.”

         

         비꼬는 말이라도 몇 마디 덧붙이려던 남자가 면 쓴 텍사스 살인마에게 붙잡힌 자신의 모습에 주변 단원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걸 확인하고 이내 체념했다.

         

         거기에 조직에서도 용병들이 공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으니 이만 철수하라는 메시지가 각 지역 리더의 사이버웨어로 하달된 마당이지 않나.

         

         게다가 패배는 패배. 렉소스 갱단 특유의 피의 보복을 걱정했던, 그럴 기분이 아니었던지간에 목을 딸 수 있는 상황에서 순순히 보내주겠다는 제의는 고맙다. 이런 개죽음은 누구나 사양이었으니까.

         

         “…아니, 사양하지. 이만 부하들을 데리고 물러나겠다. 태도가 불량한 신입 몇 놈들을 추후에 본보기로 자수시키는 걸로 하고, 남는 떨거지들은 너희 마음대로 요리해라. 그나마 이리 체면치레를 할 기회를 준 건 잊지 않지.”

         

         “에, 어럽쇼. 진짜?”

         

         상대 쪽에서 빌미를 줬다고는 해도 독종으로 유명한 갱을 다소 험하게 건드린 만큼 나중에 꼭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이나 악에 받힌 저주쯤은 각오했거늘.

         

         예상보다 훨씬 순순한 대답에 킴이 방독면 아래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거기엔 분명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옆 구역은 지금 자칭 ‘하베스트 플래닛의 악동’이라는 놈들이 폭동 현장을 초토화시켰고. 그 건너편은 ‘늑대’가 총만 꺼내 들어도 전부 어깨를 탈구시킨 다음 수갑 채워서 유치장에 처넣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거든.”

         

         “어우, 씨.”

         

         시발, 과연 그건 어쩔 수 없지. 우리 구역 정도면 나름 선방했다고 여겼는데 다른 곳은 재앙이 닥친 상태였구나. 응.

         

         어딘가 낯익은 별명들이 연달아 튀어나오는 현실에. 새삼 네오 헤이븐은 인재 층이 두껍다며 감탄과 탄식을 동시에 한 킴이 어색하게 손을 떼고 남자로부터 떨어졌다.

         

         그러자 표독스러운 눈길을 몰래 보내면서도 동시에 상대 손에 들린 피범벅 절삭기를 의식한듯 엉거주춤한 태도로 대장을 부축한 단원들은 괴함 킴으로부터 멀어졌으니 사태는 얼추 종료.

         

         다만 서로 조심스럽게 전투 종료 의사를 내비치며 물러나던 와중, 대장의 시선이 킴이라는 나사 빠진 지독한 용병을 기억하겠다는 것처럼 집요하게 쫓던 걸 눈치챈 이가 얼마나 있을지는… 글쎄.

         

         어쨌거나 다른 선배 용병들이 잘 했다며 킴의 뒤통수와 등판, 그리고 엉덩이를 두들겨주는 훈훈한 장면.

         분배된 수갑으로 미처 못 도망가고 잡힌 좀도둑과 잡범들을 차례차례 엮어 조사하고 연행하는 지겨운 작업.

         그리고 뒤처리 문제를 비롯, 도로를 갈아버리는 광범위 기물 파손이 정말 필수적이었는지에 대해 큐볼과 감독관의 격한 말싸움까지.

         

         모든 게 지나가고 운석 맞이 기념 폭동도 대강 진정되어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대공 방어 생중계 시간이 다가왔는데.

         

         한가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킴에게 남아있었을 줄이야.

         

         

         

         “예? 하필 오늘은 단체 회식이 없다고요? 왜요 시발?? 평소엔 쉬고 싶다고 해도 얼굴은 꼭 비추라더니!”

         

         착실하게 눈도장을 찍기 위한 초창기라면 모르겠으나, 용병단 식구들 얼굴도 익숙해진 이래로는 지긋지긋했던 의례 행사가 왜 갑자기 취소된 걸까.

         

         술을 엄청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만큼은 괜한 걱정이나 복잡한 고민이 안 떠오르도록 진탕 마시려고 했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나름 고생의 주역이었으니 공짜 안주도 집어먹으면서 허리띠 풀고 편히 즐기려 했거늘!

         

         “뭐냐? 웬일로 집돌이 새끼가 회식 없다고 화를 내고? 꼴 보니까 오늘 도둑이 기승을 부릴 것 같다고, 대장이 다들 얼른 집에 들어가서 귀중품 간수나 잘 하라고 배려해준 거라 하던데.”

         

         “…에이씨. 아뇨, 뭐. 그냥 좀 심란해서 그랬죠. 각지에서 폭동이 난 것도 그렇고 분위기가 꽤 뒤숭숭하잖아요.”

         

         “크하핫!! 새끼, 이상한 부분에서 겁이 많기는! 스트레스 받으면 얼른 들어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라 인마! 이번 임시 자경단 고용은 최소 일주일이라 하지 않았냐. 컨디션 관리해야지!”

         

         막상 생각 외로 합당한 이유가 있음을 듣게 되자, 할 말이 궁해졌는지 킴이 얘기를 얼버무렸지만. 그의 사수 역할에 재미를 붙인 가비는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항상 묘한 곳에서 소극적인 후배를 놀리는데 집중했다.

         

         …뭐, 워낙 끔찍하고 뒤숭숭한 문제이기에 킴이 똑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도 어쩔 도리가 없으리라.

         

         차마 어떻게 실토할까. 기업이 막아주겠다 장담하던 운석에 싸게 구한 집이 개박살 날지, 운 좋게 멀쩡할지 도무지 확신할 방법이 없어서 안전하게 도심 언저리에서 충돌을 기다렸다 들어가려 한다는 걸.

         

         사람들이 너무 낙천적으로 기업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있으나 사실 거기엔 뻔하지만 치명적인 말장난이 있었다는 걸.

         

         오늘을 기점으로 주인공이 확실하게 결정되는 그날까지, 이 경찰 대행 짓거리가 죽어라 바빠질 예정이라 하루쯤 신나게 먹고 마시려 했다는 것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수입이 유지비를 넘지 못하는 비정상의 남자, 그 이름 킴. 과소비가 원인이다!

    지각했습니다! 시점이 와리가리하는 에피소드가 될 예정이라 오늘 꼭 여기까지 써서 다시 아나스타샤의 턴으로 장면을 넘기고 싶었습니다.
    밤을 새고도 이제 겨우 마무리가 된 상태라 내일도 크게 지각하거나 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미리 죄송하다는 사과 올리겠습니다. 면목 없습니다.

    늦어지는 만큼 좋은 글로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제나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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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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