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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4

    <354 – 교장의 속임수>

     

    “교관 루소는 지난 새벽의 일로 본래라면 조교직 박탈처분에 육 개월 이상의 대감옥행을 선고받아 마땅할 1학년 상해죄를 저질렀으나 상대가 1학년이라 보기 어려운 실력을 지닌 오크노디이며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은 점을 정상참작 하여 무죄를 선고한다.”

     

    드래곤교장의 마지막 자비라고도 불리는 마하바라타 지도교수는 오늘도 한 사람의 교관을 구하는 선고와 함께 재판을 폐정했다.

     

    “해냈네요. 오크노디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줄은 몰랐어요.”

    “동감이다. 일이야 생각했던 것과 반대로 되었지만 1학년에게 손찌검도 아니고 발길질을 휘두르고도 감옥에 갇히지 않다니.”

    “앞으로는 어쩔 거예요?”

     

    카멜라의 뜻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루소 본인도 떠올린 생각이었으니까.

     

    ‘지금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3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학기 중인 지금 당장은 무리지만 내년이라면 틀림없이 가능하겠지.’

     

    펫 계약서로 수많은 학생들의 마음을 이용해 그들의 인력을 확보한 카멜라의 영민한 지성이 그 사실에 도달하지 못했을 리 만무했다.

    별 관심 없는 척, 아무래도 상관없는 척 시치미 떼는 얼굴과 달리, 뒤로 돌린 손이 스커트자락을 꾹 움켜쥐는 모습을 루소는 이미 보았으니까.

     

    “빈곤했던 시절과 달리, 3학년으로 출세할 능력을 갖춘 지금은 거리낌없이 자신을 배신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놀리지 마요. 갈 거면 빨리 가버리던가. 마음 떠난 사람 붙잡고 앓는 소리 할 생각 없으니.”

    “당연히 떠날 생각은 없다. 위약금을 정말 꽁돈이라고 생각하고 먹튀라도 할 줄 알았나? 그렇다면 오히려 실망이군.”

     

    루소는 카멜라의 팔을 가볍게 붙잡았다.

     

    “그 오크노디를 상대로도 꺾이지 않았던 신뢰가 하룻밤 사이에 꺾일 리가 없잖느냐.”

    “루소 교관님…”

    “오히려 나야말로 묻고 싶군. 이만한 대 사건이 있었는데 카멜라 사단을 향한 주목도를 모르지는 않겠지? 지금까지처럼 계약서를 악용하려 들다가는 학생회가 찾아올 거다. 앞으로는 조직을 어떻게 운영할 작정이지?”

    “조금 더 자비롭고 조금 더 엄격하게. 계약자들에게는 자비를 베풀고, 계약의 효과를 누리는 저 자신에게는 제약을 둘 생각이에요.”

     

    계약서를 운용하는 것은 똑같다.

    그러나 목적이 달라졌다.

     

    “앞으로는 커플메이킹을 주업으로 삼는 마담 카멜라가 될 작정이에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안목만큼은 자신이 있고 이어진 사람들도 만족하고 있죠.”

     

    커플의 연심을 이용해서 그들을 착취하는 방식에서 순수하게 커플을 이어주고 그들의 협력을 받는 방식으로 건전하게 뒤바뀐 카멜라 사단!

    아카데미에 난데없이 결혼정보회사의 시초가 되는 조직이 탄생했지만 루소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말하는데 한 번만 봐주시죠.’

     

    법정 방청석에서 이쪽을 주시하던 학생회의 눈이 떨어져나갔다.

    이걸로 카멜라도 자신처럼 무사히 살아남았다.

     

    “그럼 난 뭘 도와주면 되지? 예전이랑은 다르게 교관들의 감시의 눈을 피해 안전지대를 만들어줄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무슨 섭섭한 소리예요? 믿을 사람 없는 세상에서 제가 안심할 수 있는 안전지대가 되어주셔야죠.”

     

    용기 내어 루소의 팔에 몸을 기대는 카멜라.

    흠칫하던 루소도 이내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닿게 끌어당겼다.

     

    -카멜라 관리 똑바로 안 하면 아시죠? 다음엔 저랑 12시간 노는 거예요!

     

    그 협박이 지금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런 달콤한 시간이라면 누군가의 부탁이나 협박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누리고 싶다.

    25년 간 진급 하나만 바라보며 기다림 속에 삶을 축내는 것에 비하면 이게 진짜 인생이 아닐까.

     

    ‘약속은 반드시 지키마. 카멜라의 것도, 그리고 오크노디 너의 것도.’

     

    훈훈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또 한 사람, 방청석을 떠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이 모든 사태의 시초였던 남자, 자쿠가 그 주인공이었다.

     

     

    * * *

     

     

    “그러니까…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카멜라 사단이 너희 조직에 개박살이 나고 체질개선을 이루어서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말인가?”

    “그렇게 되었다.”

     

    벨로카시오의 계약서에 강제로 상환이 완료되었음을 알리는 표식이 떠올랐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겠지.

    저런 터무니없이 커다란 정보를 건네주는데.

    벨로카시오는 기가 막혔다.

    보통 이런 정보는 캐오고 싶다고 캐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조직의 흥망성쇠와 관련된 중대한 사건의 전후사정을 빠삭하게 물어올 정도면 유능한 첩보원으로서의 자질이 충분하니 진지하게 전직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자쿠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자기가 직접 오크노디 조직의 힘을 빌려 카멜라의 조직을 한 번 개박살 냈다가 숨통만 붙여서 살려놓는 방식으로.

     

    “1학년은 다 괴물 아니면 또라이밖에 없나…?”

    “이걸로 계약으로 진 빚은 사라졌겠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당연히 다 변제됐지. 계약은 종료다.”

    “누구 멋대로? 그건 공정하지 않은데. 계약의 신에게 정식으로 이의를 제기하겠다.”

    “뭐?”

    “내가 상납한 정보의 가치는 계약에 의해 갚아야 할 빚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 차액에 상응하는 대가를 거스름돈으로 받지 않으면 이 계약의 불공정함을 계약의 신에게 평가하여 벨로카시오 선배가 처벌을 받기를 요구한다.”

     

    졸지에 계약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었다.

    심지어 계약의 신도 ‘틀린 말은 아닌 듯’이라고 생각하는지 덥썩 제안을 받아들였다.

    시퍼렇게 빛나는 계약서에 신언으로 새겨진 특약조항이 등장하자 벨로카시오는 한숨만 나왔다.

     

    ‘협박은 이것만이 전부가 아니겠지.’

     

    자기네 학생 하나 건드렸다고 계약의 영향에서 해방시켜줄 겸 카멜라 사단도 개박살을 냈다.

    벨로카시오도 이 이상 찍혔다가는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의 다음 장난감으로 전락할지 모른다.

    자쿠를 보내서 꼽을 줄 때 곱게 받아들이라는 오크노디의 무언의 협박이 느껴졌다.

     

    “두 번 다시 너희 981기는 건드리질 말아야지. 무슨 놈의 모략이 거는 족족 다 실패하는지 모르겠네.”

     

    범죄자문가로서의 자부심마저 사라진 한 남자의 씁쓸한 뒷모습을 보며 자쿠가 재촉했다.

     

    “그래서 거스름돈은 언제 상환할 작정이냐.”

    “떼먹기라도 할까 봐? 됐다. 계약의 신도 지켜보시는데 미쳤다고 그러겠냐. 당장 하나 건네주지.”

     

    더러운 놈,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그런 심보로 벨로카시오는 퀘스트보상마냥 정보를 하나 풀었다.

     

    “드래곤교장. 요즘 잠잠하다 싶지?”

    “확실히 그렇군.”

    “고학년들 괴롭히고 있느라 그렇다. 그것도 조만간 끝이지.”

     

    자쿠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조금 전까지 떫은 감이라도 씹은 것처럼 구겨졌던 벨로카시오의 얼굴에 쌤통이라는 감정이 묻어났다.

    절대로 좋은 징조는 아니다.

    무언가가 다가온다.

    981기 1학년들에게 좋지 않은 미래가.

     

    “뭐가 일어나는 거지?”

    “모른다. 교장은 변덕스러우니까. 하지만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는 알지.”

     

    벨로카시오는 마법시계를 가리켰다.

     

    “듣고 있는 강의들의 강의게시판에 접속해서 등록된 과제를 확인해라. 그리고 이번 주말에 모든 과제를 미리 제출해라.”

     

    뭐지. 평범하게 친절한 충고인데.

    이 사람, 실은 츤데레라서 솔직하게 도와주질 못하는 건가?

     

    스으윽.

     

    계약서에서 빛나던 특약조항도 효력을 다했는지 빛이 사그라졌다.

    마치 계약의 신이 벨로카시오의 말이 충분한 <거스름돈>이 되었다고 인정한 것처럼.

     

     

    * * *

     

     

    “축제네요!”

    “축제?”

     

    경과보고를 하러 온 자쿠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떠올랐다.

    아카데미 2학기의 억까이벤트.

    평범한 주간이벤트 사이에 섞여서 운 좋은 착한 학생들을 위해 베푸는 휴식주간인줄 알았던 이벤트가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함정으로 돌변한다.

    정확히는 처음부터 그런 함정이었지.

    뉴비들은 나오는 족족 다 걸리는 가짜축제 이벤트가 그렇다.

     

    -교수님! 정말로 쉬어도 됩니까?

    -그럼.

    -출석 안 했다고 점수 까이는 거 아니죠?

    -괜한 기우란다.

    -그런데 강의는 왜 여나요?

    -쉬고 싶은 사람 쉬라고 만든 시간이니 안 쉬고 싶으면 들으러 나오게 교수님은 강의실을 지켜야지.

    -하하. 그럼 많이 심심하시겠네요. 아무도 안 나올 테니까.

     

    철없는 뉴비시절의 말에 교수님은 훈훈하게 웃었다.

    그리고 철없는 뉴비는 뒤통수를 맞았다.

    교수님의 강의에는 선배들의 충고를 들은 학생들이 꼬박꼬박 나왔고, 그동안에 쌓인 과제는 모두 다음주에 제출해야 했다.

    물론 그사이에 가르친 내용도 시험범위에 나오니 필기노트의 가치가 미친 듯이 떡상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공부 잘해서 안 들어도 되는 학생들 쉬라고 했지, 누가 열등생도 같이 쉬라고 했니? 스스로를 과신한 대가란다.

     

    철없던 뉴비는 이 이벤트를 기점으로 비로소 깨달았다. 기프트 아카데미는 사회에서 겪는 다양한 불의와 부조리 또한 가르쳐준다는 사실을!

     

    “작년에도 이맘때에 시작되었대요. 교장선생님의 악랄한 가짜축제가!”

    “축제가… 진짜가 아니라고?”

    “아. 축제는 진짜예요. 근데 괜찮다는 말만 믿고 다 내려놓고 축제 즐기고 있으면 본인만 손해일 뿐!”

     

    모든 강의에서 해방되며 자유를 만끽하는 일주일간의 축제의 날을 즐겨라.

    번듯한 슬로건이 ‘(모범생 한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자쿠는 소름이 돋은 팔뚝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근데 좀 재밌긴 할 듯! 매년 다른 기수의 선배들도 축제는 겪는데 테마에 차이가 있거든요!”

     

    세상에는 입이 즐거워지는 한우축제도 있고 모기 많이 죽이기 축제도 있다.

    이번에는 어떤 테마의 축제가 뉴비들을 깜빡 속아 넘어가게 만들까?

     

    “이번 주간이벤트는 <퇴마축제>랍니다. 비물질적 존재를 퇴마할 수 없는 학생들은 얌전히 면학에 몰두하길 바랍니다.”

    “…”

     

    버그 난 것처럼 속이는 의미가 없는 축제가 나타나버렸다.

    농땡이 피우라고 진짜 축제판을 벌여도 모자랄 마당에 저렇게 대놓고 함정을 설치해놓고 저딴 소리를 해버리면 잘도 퇴마를 즐기러 돌아다니겠다.

     

    “열심히 퇴마를 하면 실적에 따라 상품으로 무려 보물급 아이템을 얻을 수도 있답니다. 덤으로 각 교단에서의 퇴마 도전과제를 달성하면 교단공적치까지 얻을 수 있으니 한번쯤은 도전해보시길 권합니다.”

     

    뱃놀이를 다녀온 멤버들이 어색한 얼굴로 나와 눈을 마주치거나 서로를 돌아보았다. 우린 이미 가진 것도 있어서 딱히 더 필요 없는데?

    아까부터 웅웅 울어대는 반지의 상태도 신경 쓰인다.

    자기 퇴마하지 말라고 가짜 린이 보내는 애달픈 구조요청이다.

    하긴, 가짜 린도 야생의 유령과 같이 취급 당할까 봐 신경 쓰이기도 하네.

    뭣 모르고 돌아다니다가 덜컥 퇴마라도 당하면 싱과의 관계도 파탄이라고?

    좋아, 결정이다.

    남들 놀 때 우리는 열심히 공부만 해야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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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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