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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4

       

       이게 과연 영웅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게 제대로 먹혀서 필요할 때 학생들을 선동할 수 있다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좋습니다. 저도 노력해 보겠습니다.』

       『좋네. 나의 부탁은 이 두가지로 끝일세.』 

       

       사보타주와 학생 선동이라는 두 가지 숙제를 받아버렸다. 하지만, 사실 원래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이었거나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될 일이었으니, 나로서는 부담도 아니고 아니고 손해도 아닌 일이었다.

       

       ‘오히려 좋아.’

       

       그냥 원래부터 해야 할 일을 할 뿐인데, 유용한 아이템도 받고 거기다가 교장이라는 뒷배까지 생겼다?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속으로 정리하고 있자니 교장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자네도 나에게 전할 말이 있는 듯한 분위기였는데, 자네도 부탁할 것이 있나?』 

       『물론이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것저것 받기는 했지만, 어쨌든 원래 받아내려고 했던 것은 받아내야지. 가능하면, 좀 더 받아내고 말이다.

       

       

       

       ***

       

       

       

       『오래 기다렸지.』 

       

       한참 뒤, 교장실에서 나온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분대원들에게 말했다. 내가 나오자마자 송병오 녀석이 투덜거렸다.

       

       “무슨 수작을 그리 오래 벌였나? 원…… 그래, 자네가 말하던 그 ‘방학 자유이용권’인지 뭔지는 받아온 겐가?”

       “후후. 물론이지. 자, 하나씩 받아.”

       

       나는 녀석들에게 종이를 나누어 주었다. 교장의 도장이 찍힌 서류 여섯 장—합숙수업을 알리는, 학부모에게의 통지서였다. 

       

       ‘다음와 같은 우수 생도들을 대상으로 합숙 수업을 진행하오니 학부모 귀하의 협조를 바라오며 어쩌구저쩌구……’ 

       

       하는 내용이 들어 있고, 마지막에는 교장의 도장이 또렷하게 찍혀 있음은 물론 교장실의 전화번호까지 기재되어 있었다. 

       

       물론 내용만 그럴 뿐, 실제로 합숙수업을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야말로 페이퍼 플랜이었다. 하지만 교장의 친필 글씨와 도장, 그리고 전화번호까지 기재되어 있었기에 신뢰성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무라사끼 녀석이 내뱉었다. 

       

       『흥! 잘도 꾸며댔군…… 나에게는 이런 것 필요 없다만!』

       『너 말고, 고향 내려가야 하는 애들을 위한 거야.』

       

       이거라면 다들 고향에 내려갔다가, 교장이 합숙수업을 시켰다는 핑계로 바로 다시 경성으로 복귀할 수 있으리라.  

       

       혹시 녀석들의 부모들 중 누군가가 전화로 확인해본다고 해도, 교장과는 이미 이야기를 맞춰두었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것 없었다. 

       

       통지서를 쭉 읽어내려간 이유하가 지긋이 눈을 감고 고개를 작게 저으며 말했다.

       

       “결국 그대의 세 치 혀가 모두를 속여 넘기는구려. 이쯤되니 그대의 가장 뛰어난 재주란 혹여 사기와 협잡이 아닐지……”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섭하게 하니.”

       “이러나 나도 그대에게 홀랑 속아넘어가는 것이 아닐까 모르겠소.”

       

       이유하는 살짝 웃고있는 것이 농담으로 한 얘기라는 것을 알 수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 마음 아팠어. 사람을 사기꾼 취급하다니. 나는 이 일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유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에…… 시라바야시 군, 이거 조금 나쁜 짓 아닐까……?』

       

       이번엔 아이까와가 볏짚같은 양갈래 머리를 배배 꼬며 말했다.

       

       『조금, 양심에 걸려……』

       『뭐? 양심에 걸린다니?』

       『우리집의 부모님은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이런 거짓말은 조금 미안해지는 것 같아……』

       

       아이까와마저 나를 거짓말쟁이 취급이라니……! 

       

       ……뭐, 이유하나 아이까와처럼 심성이 착한 아이는 부모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 자체에 죄책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릴 때에는 거짓말따위 못 하는 착한 아이였으니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합숙수업이 완전히 거짓말인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방학중에 교장의 명령으로 학교에서 뭔가 해야한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니거든요! 

       

       교장도 나에게 해야할 일을 맡겼으니, 내가 설득할 필요도 없이 교장은 이 가짜 합숙수업 통지서에 흔쾌히 도장을 찍어주었던 것이다.

       

       송병오 녀석이 통지서를 팔랑거리며 말했다.

       

       “허어, 진짜배기같구만!”

       “그야 진짜 교장의 도장이 찍힌 진짜니까. 가짜 아니거든.”

       “헌데, 고작 이것 때문에 이리도 오래 걸렸나? 한참을 기다렸네!” 

       

       아니나다를까 이 옹졸한 불평쟁이 녀석이 불만을 제기할 줄 나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사실 송병오 녀석의 말마따나, 방학 자유이용권이라고는 해도 어차피 나를 도와서 일을 해야 하니 상이라기엔 뭐했다. 

       

       그래서 송병오나 무라사끼처럼 불평이 많은 녀석들이 불만을 터트릴 줄 나는 알고 있었고,  그럴 줄 알고 또 준비해온 것이 있었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네가 좋아할만한 것도 있어. 다들 이것도 하나씩 받아.” 

       

       내 손에는 종이뭉치가 아직도 한 뭉텅이는 들려 있었고, 나는 녀석들에게 또 뭔가를 나누어 주었다. 종이를 받은 아이까와가 중얼거렸다.

       

       『제복 수선권……? 여기도 교장 선생의 도장이 찍혀 있어……!』

       『그래. 교복값을 교장이 대신 내준다는 거야.』

       

       내가 방금 나눠준 종이조각은, 세탁소나 양장점에 교복의 수선이나 제작을 맡기면 그 비용을 교장이 부담해준다는 증서였다. 

       

       실전적인 훈련 때문에 교복이 해어질 일이 많은 엽사전문학교의 특성상, 학비나 식비와는 별도로 교복값도 어지간히 든다. 송병오나 아이까와처럼 흙집인 애들에게는 이것도 꽤나 부담이었을 터.

       

       『우와왓…… 고마워, 시라바야시 군!』

       “허어, 이건 마음에 드는군! 아주 이 기회에 멀끔하게 새로 맞춰야겠네그려!”

       

       송병오가 그렇게 말하자 양복자가 히죽거리며 끼어들었다. 

       

       “흐흥! 그렇잖아도 소오 군은 단벌신사데쇼? 그동안 빨아입지도 않는지 쿳사이한 냄새가 뿐뿐 났거든!”

       “뭐, 뭐라!” 

       

       송병오 녀석은 성을 냈지만 딱히 반박하지는 못했다. 사실이었나보다.

       

       물론 전방에서 칼질하는 나만큼 교복이 상할 일은 없었겠지만, 나와 함께 온갖 사지를 뒹굴면서 제때제때 교복을 수선하거나 새로 맞추지 못해 꾀죄죄한 모습을 종종 보여온 것은 사실이었다. 

       

       송병오 녀석 뿐 아니라, 아이까와도 의학을 배우는 전공수업 중에 옷에 밴 지독한 약품 냄새 따위가 지워지지 않을 때도 많았고……

       

       이 교복 수선권은 그런 점이 안타까워서 교장으로부터 받아낸 것이었다. 교장이 아무리 실권이 없는 허수아비 신세라고는 해도, 학생 몇 명의 교복값도 감당해주지 못할 정도로 돈을 못 받지는 않았으니까.

       

       『그리고, 자, 이것도 하나씩 받아.』

       

       나는 교장의 도장이 찍힌 ‘우수상’ 상장을 한 장씩 돌렸다. 

       

       “아니, 뭐가 계속 나오는구먼!”

       

       교장의 말마따나 종이조각에 불과할 뿐이지만, 적어도 녀석들이 집에서 생색내며 효자효녀 노릇은 할 수 있게 해주리라.  

       

       기왕 교장과의 분위기가 좋았던 김에 뜯어낼 만큼 뜯어낸 것이다. 뭐, 상장같은건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자, 그러면!』

       

       짝! 

       

       나는 박수 한 번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는 말을 이었다.

       

       『두 명 빼고는, 이제 다들 경성역으로 갈 거지? 고향에 내려가야 하니까.』

       

       종로경찰서 관사에 사는 무라사끼 녀석과, 서대문 근처의 주택단지에 사는 양복자를 제외한 4명은 오늘 고향에 내려가기로 되어 있었다. 물론 나도 포함해서 말이다. 

       

       녀석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아이까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으응! 그, 그런데 이제 경성역에 가서 차표를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 자리는 남아있을지…… 대전까지 오늘 안에 갈 수 있을까……』 

       『으음……』

       

       아이까와뿐만 아니라, 이유하와 송병오 녀석도 마찬가지의 걱정을 하고 있었다. 

       

       녀석들의 말마따나, 다른 학교도 대부분 오늘 방학이었기에 기차역에는 이미 승객이 몹시도 몰려있을 것이다. 오늘 안에 빈 자리를 구할 수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녀석들의 걱정을 일축했다. 

       

       『괜찮아. 늦게 가도 열차 못 탈 걱정은 없으니까, 우선 내 하숙집에 다들 모여서 쉬다가 천천히 내려가자.』

       『에에? 그, 그래도 될까……?』

       

       열차표 구매 따위는 하등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전에도 한 번 이용했던 것 같은데, 이 세계의 열차는 아무리 승객이 많아도 급히 이동할 필요가 있는 현직 엽사를 태울 좌석을 항상 일부분 남겨놓았다. 

       

       그렇게 교통 인프라의 혜택을 받는 현직 엽사들 중에서도 영향력이 큰 엽사조합인 시마즈구미 소속의 조합원은 거의 프리패스였고……

       

       나는 교복 카라에 달린 뱃지를 톡톡 가리키며 말했다. 

       

       『다들 나랑 같이 가면 돼.』

       

       나는, 렌까로부터 직접 뱃지와 칼을 받은 명예 조합원이었으니까. 나야 굳이 열차표 예매따위 안 해도, 아무때나 기차역에 가서 이 뱃지를 들이밀면 되는 것이다. 나머지 3명 정도는 내 일행으로써 함께 탈 수 있는 것이고.

       

       ‘이런게 상부상조하는 삶이지.’

       

       교장이 나에게 유용한 물건을 주면, 나는 교장을 도와준다.

       

       내가 렌까를 도와주면, 렌까는 나에게 이런 유용한 물건들을 준다. 

       

       서로가 이득이며, 그 사이에서 신뢰가 생겨난다. 이게 우리네 민중이 살아가는 방식이며, 서로서로 돕고 사는 세상이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역시 인맥이란 넓고 봐야 하는 것이고, 서로를 진실된 마음으로 정직하게 대하면 그것이 언젠가 보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상이 별 거냐. 서로의 믿음과 신뢰야말로 상이지. 암.’

       

       이 풍진 세상에 떨어져서 결국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것은, 그동안 두텁게 쌓아온 인간관계였다. 

       

       상이라고 한다면, 어떤 금전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이 아닌, 이런 신뢰 가득한 인간관계야말로 진실된 의미의 상이 아닐까?

       

       ‘이렇게 또 깨달음과 교훈을 얻어가는구나.’ 

       

       하고, 나는 괜시리 뿌듯해진 마음으로 생각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여기까지!!!!

    공룡 에피소드 이후로, 한 학기의 마무리를 짓느라 조금 늘어진 감이 있었지요!!! 다음주부터는 또 뭔가 본격적인 에피소드가 시작될테니, 많은 기대 바랍니당!!!!!!!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즐거운 주말 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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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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