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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5

       흠.

        

       실비아가 말하는 실수가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내가 저쪽 세상에 있을 때 앨리스가 나한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낸 것이 한두 번이라야지.

        

       물론 아카데미에 들어간 뒤에는 거의 그런 적이 없기는 하지만.

        

       혹시 내가 아카데미에 가서도 모르핀을 포기하지 못한 걸까?

        

       만약 저 게임에서의 실비아가 미래에 대해 미리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 미래를 어떻게든 대비하려고 하고 있다면 ‘모든 방법’을 동원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기 혼자 뒤집어쓰려고 했겠지.

        

       그런 캐릭터 클리셰잖아?

        

       왠지 게임 안에서의 실비아의 미래가 조금 예상되었다.

        

       모든 것을 혼자 뒤집어쓰고, 스스로 악당을 자처하거나 뭐 그러다가 주인공인 레오한테 구원받는 스토리겠지, 뭐.

        

       “언니. 소스 흐르는데.”

        

       클레어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망상에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햄버거였다.

        

       어제 방송에서는 그래도 돈을 꽤 벌었다. 대단히 많이 벌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잠깐 외출해서 밖에서 먹는 것으로 통장에 구멍이 날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시청자 늘어나는 것만 보면 한동안은 방송만 해서 버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편집해서 스트리밍 사이트에 올리면 추가로 돈을 더 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고민해봤지만, 아무래도 그건 나중에 생각해야 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내가 편집을 배우건, 편집자를 따로 구하건, 돈도 들고 시간도 드는 일일 테니까.

        

       나는 입안 한가득 햄버거를 베어 물었다.

        

       ‘몸에 나쁜 음식’을 먹는 기분이 든다.

        

       사실 햄버거 자체가 몸에 나쁘다기에는 안에 들어간 재료 하나하나를 따졌을 때 그렇게까지 나쁜 음식은 아닐 것 같은데.

        

       이 기름진 맛이 꼭 몸에 지방을 직접 쌓아 올리는 것 같아 먹으면서도 죄책감이 들었다.

        

       그만큼 맛있었지만.

        

       “그렇게 비싼 음식도 아닌데, 이렇게 맛있는 이유를 모르겠어.”

        

       앨리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자기가 들고 있는 치즈버거를 보면서 말했다.

        

       물론 그냥 치즈버거는 아니다. 그래도 이쪽 세상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자매들에게 가장 싼 햄버거를 사줄 정도로 나는 야박하지 않다.

        

       “소고기 패티 두 장에 치즈가 듬뿍 들어갔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 두툼한 소고기 패티 두 장에, 그 사이에 치즈, 그리고 빵과 고기 패티 사이에도 치즈가 들어간 버거다.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의 음식이니 맛있을 수밖에.

        

       ……생각해보면, 어째서 아제르나 제국의 식당에는 이런 단순한 음식조차 없는지 모르겠다. 제작사가 만들어 둔 설정을 너무 고스란히 받아버린 걸까.

        

       솔직히 피쉬 앤 칩스 위아래로 빵 하나씩만 두어도 맛있을 거 아니야. 온갖 것을 빵 사이에 끼워 먹으면서도 왜 그럴 생각은 못 하는 건데?

        

       “나, 이거 그리울 것 같아…….”

        

       똑같이 맛없는 길거리 음식을 먹어온 클레어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게.

        

       나도 이거 엄청나게 그리웠던 것 같아.

        

       하도 오랫동안 제국에 살다 보니 그쪽 음식에 적응을 해버려서 그렇지, 종종 생각이 나곤 했다.

        

       ……그쪽 세상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없어서 그런 걸까.

        

       나는 행복한 표정으로 햄버거를 먹고 있는 두 자매를 바라보았다.

        

       둘 다 이 세상에 맞는 현대 패션이 반영된 복장을 하고 있었다. 클레어는 짧은 청바지에 긴팔 티셔츠라는, 조금은 대학생 같은 차림이었고, 앨리스는 면바지에 셔츠 차림이라 직장인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나이 차가 나 보이지는 않는 것이 신기했다.

        

       참고로 나는 그냥 청바지에 후드티를 입으려다가, 거의 클레어만큼 짧은 청바지에 민소매 상의, 그리고 그 위에 셔츠를 걸친 복장이 되어버렸다.

        

       웬만하면 조금 얌전한 옷을 입고 싶었는데, 저 둘의 성화가 엄청나서 결국 내가 뜻을 굽힌 것이다.

        

       “그나저나, 어제 하던 그 게임 말이야.”

        

       클레어는 손에 쥐고 있던, 새우 패티와 소고기 패티가 각각 한 장 씩 두 장이나 들어가 있던 버거를 전부 해치우고, 세트 메뉴 외에 추가로 구매한 치킨버거 단품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우리가 알던 언니랑은 조금 달랐지?”

        

       “확실히, 우리가 겪었던 일이랑은 조금 달라 보였지.”

        

       클레어의 말에 앨리스는 그렇게 대답했다. 앨리스도 자기가 먹던 햄버거를 이미 다 해치우고, 쟁반에 쏟아놓은 세 사람분의 감자튀김을 하나 집어 입에 넣고 있었다. 물론 앨리스 앞에도 아직 포장을 풀지 않은 햄버거가 있었다.

        

       “두 사람 다 그렇게 먹으면 살찔 겁니다.”

        

       “괜찮아. 그만큼 움직일 예정이니까.”

        

       “……어디서 말입니까?”

        

       클레어의 자신감 넘치는 대답에 나는 물었다.

        

       내 방은 운동을 할 만큼 넓지도 않고, 방음도 잘 안되어서 조금만 격하게 움직여도 아래층에서 항의하기 위해 올라올 텐데.

        

       “거리라도 뛰어다니면 되지 않을까?”

        

       “방은 좁아도 근처에 공원도 있으니, 거기서 검술 수련이라도 하지 뭐.”

        

       “……이 나라에서 검이라는 것은 함부로 들고 다녀도 되는 물건이 아닙니다. 따로 구할 곳도 많지 않고요.”

        

       “그래? 그럼 호신은 뭐로 하는데?”

        

       “굳이 호신할 필요가…… 있을지 몰라도, 일상생활을 하며 장검을 들고 돌아다니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 겁니다.”

        

       치안 자체는 세계 기준으로도 최상위급이지만, 그렇다고 범죄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나라라는 소리는 아니니까.

        

       사실 이쪽 사람들의 평균적인 체력이나 싸움 실력을 생각하면 앨리스나 클레어가 성인 남성을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지 않을까?

        

       식칼을 들어도 검기를 날리는 게 가능할까?

        

       “차라리 제가 운동할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헬스장이라도 끊어줄까 고민은 해봤는데, 거기 가서도 이 둘이 하는 운동과 사람들이 하는 운동이 다를 것 같다.

        

       무엇보다 내가 싫어.

        

       이 둘이 헬스장 가면 나도 따라가야 할 거 아냐.

        

       안 그래도 드디어 검성 아래에서 벗어나 좀 편하게 지내고 있는데 헬스장까지 가서 빡센 운동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쪽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좀 편하게 있자고.

        

       *

        

       어떻게든 편하게 지내고 싶어 내가 선택한 운동은 자전거였다.

        

       집 근처에 자전거를 마음 놓고 탈 만한 곳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동네가 전체적으로 인도와 차도 구분 없는 곳이 많아서, 타려고 하면 못 탈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조금 불안했다.

        

       두 사람이 위험한 것도 위험한 거지만…… 혹시라도 신나게 자전거를 타다가 자동차라도 긁으면 서로 피곤해지니까.

        

       게다가 이 두 사람에게 내가 사는 도시의 멋진 곳을 보여주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았고.

        

       그래서 내가 선택한 곳은 여의도였다.

        

       집에서부터의 거리는 조금 있었지만, 지하철을 타면 그래도 그럭저럭 갈만한 곳이었고, 한강이 멀지도 않았고, 앨리스가 좋아할 만한 정치적인 곳도 있는 데다 무엇보다 넓은 공원이 있었다.

        

       나는 클레어와 앨리스가 자전거를 끌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클레어가 집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앨리스는 배운 적이 없다.

        

       게다가 나도 자전거를 마지막으로 타본 게 중학생 때였고.

        

       자전거 타는 법이야 절대로 잊는 법이 없다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와……!”

        

       탁 트인 공원을 보고 앨리스가 탄성을 질렀다.

        

       사실 아카데미에도 넓은 잔디밭이 있기는 했다. 그레이스 영지 안에도 넓은 잔디밭이 있었고.

        

       하지만 건물이 빽빽하게 보이던 도시에서 갑자기 탁 트인 곳으로 나오면 그런 탄성이 나올 만도 했다. 내가 사는 곳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파트 단지가 있는 곳이었고, 우리가 옷을 사려고 다녀온 곳도 건물이 빽빽한 곳이었으니까.

        

       자전거는 굳이 사지 않아도 빌릴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서울시에서 직접 빌려주는 것을 빌리면 싸게 빌릴 수 있으니까. 헬멧은…… 어차피 오늘은 여기서 빙글빙글 돌며 배우기부터 할 거니까 필요 없지 않을까?

        

       사실 이 둘이면 달리는 자전거에서 넘어져도 펄쩍 뛰어서 자세를 잡으며 멈출 수 있을 것 같고.

        

       일단 오늘 어떻게 될지 본 뒤에 결정하기로 하자.

        

       “좋습니다, 그럼—”

        

       내가 그렇게 말하며 뒤를 도는데, 자전거 특유의 체인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클레어는 이미 자전거를 타고 우리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본 적이 있습니까?”

        

       “응? 아니?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본 적은 있지만 직접 타보는 건 처음이야.”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능숙하게 탈 수 있는 겁니까?”

        

       “그야 이런 건 중심 잡기만 잘하면 되는 거잖아? 넘어지려는 방향으로 돌면 오히려 안 넘어지는 거지?”

        

       “…….”

        

       나는 자전거 처음 배울 때 어땠더라.

        

       뒤에서 아버지가 잡아주시는 걸로 시작해서 보조 바퀴를 한참 달고 다니다가 겨우겨우 떼었던 것 같은데.

        

       “너무 상심하지 마. 클레어 쪽이 이상한 거니까.”

        

       내 표정을 보고 앨리스가 위로했다.

        

       아니, 나는 표정 바꾼 적 없는데.

        

       대체 어디를 보고 어떻게 알아보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니까.

        

       “그러면…… 나 타는 법 좀 알려주지 않을래?”

        

       앨리스는 조금 민망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눈은 클레어를 부럽게 따라다녔다.

        

       뭐, 그래도 적어도 한 쪽은 가르칠 맛이 나겠네.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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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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