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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5

     

    한참 루크와 서드가 아카데미를 뒤집고다니고 있을 그 시각, 유미르는 정처없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하아…….”

     

    왜 생각을 하지 못 했을까.

    서드에게 여자친구가 있을 거라는 간단한 사실을, 그녀는 서드가 말을 하기 전까지 미처 떠올리지도 못 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어째서 자신은 서드에게서 도망치고 만 것일까?

     

    자신이 서드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이미 머리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말이다.

     

    아마도,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리라.

    스스로 멋대로 착각하고, 혼자서 좋아했던 자신의 마음이, 그리고 그런 마음이 모두에게 들켜버렸을 때에 생겨날 그 극도로 어색한 분위기가, 유미르에게는 숨을 옥죄는 올가미만큼 답답한 것이었다.

     

    그러니, 도망칠 수 밖에.

     

    하지만 그럼에도 집으로 바로 돌아가는 것만은 할 수 없었다.

    ‘지금 집에 돌아가면 엄마가 왜 이렇게 빨리 왔냐고 할텐데…….’

     

    오기 전에 분명 ‘친구랑 티그 아카데미 축제에 놀러가요!’라고 하면서 나왔는데, 몇 시간도 채 안되어서 들어가면 엄마가 대체 뭐라고 생각하실까?

     

    아마 친구랑 싸워서 일찍 들어왔느냐, 아니면 축제가 재미없었냐며 걱정을 하시겠지.

    유미르는 표정관리가 어려운 지금 집에 들어가서 부모님께 그런 걱정을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사람들 속을 떠돌던 중.

     

    “여어ㅡ, 왔냐? 왔으면 빨리 가자. 저쪽에 예쁜 애들 많던데.”

     

    “……!”

     

    하필이면 익숙하지만 반갑지는 않은 목소리를 듣고 만 것이다.

     

    “뭐야, 작업걸러 왔냐?”

    “잠깐의 일탈이라고 할까.”

    “너 여친 있다고 했잖아? 괜찮냐?”

    “여친한테는 뭐, 아프다는 핑계 대고 집에 있는다고 했지. 모를 걸.”

    “이야, 이거 순 양아치새끼네! 저번에도 그러지 않았냐?”

    “남이사. 야, 불 좀.”

    “넌 손이 없냐? 아, 없네. 병신.”

    “이 새끼가.”

     

    저 목소리에, 말 끝에서 억양이 조금 낮아지는 버릇은 너무나 익숙하다.

    유미르는 제발 그 목소리의 주인이 자신이 아는 사람이 아니기를 빌며 안경을 고쳐썼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은 안타깝게도 잭이 맞았다.

    서드와의 싸움 때문인지 이곳저곳에 깁스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들을 보자마자 유미르는 곧바로 근처 인파에 제 몸을 숨겼다.

     

    ‘쟤, 쟤들이 왜 여기에 있어?’

     

    굉장히 유명한 아카데미의 축제인만큼 노는 걸 즐기는 잭이 축제에 오지 않으리라는 법은 당연히 없다.

    오히려, 잭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상황은 너무나 끔찍한 우연이 아닌가?

    하필이면 갈림길도 없는 곳에서 이렇게 마주치고 말다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람이 많은 탓에 그들이 유미르를 발견한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친구랑 대화를 하느라 이쪽으로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좋아, 이 틈에 빨리 반대로 지나가면 될 거 같아.’

     

    아마 그러면 진행방향이 다르니 다시 만날 일은 없어지겠지.

    그러니까 이번만 자연스럽게 지나가면 되는데, 그동안 잭에게 당했던 여러가지 경험이 유미르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런 부담감은 유미르의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고 딱딱해지게 만들었으며,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자세와 몸집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후우-, 어? 저기 저거 유미르아냐?”

    “응?”

     

    유미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

     

    그 시각, 루크는.

     

    “그래, 서드. 그쪽에서는 찾았나?”

    -아뇨, 스승님.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스승님은요?

    “나도 허탕이네.”

     

    어떻게 4명 전부 유미르가 아닐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리 자신이 운이 없다고 해도, 조건을 이용해 선택지를 딱 4개로 좁혀 놓은 상황에서는 기껏해야 마지막으로 찾아내는 정도가 최대한의 불행이 아닌가?

    하지만 4개의 선택지 전부가 답이 아니라니.

     

    마치, 객관식으로 나온 시험문제에 답이 되는 보기가 단 하나도 없더라, 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닌가.

     

    -혹시, 결과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요? 오류가 발생했다던가.

    “그럴리가. 오류는 없었다.”

     

    서드의 질문에 루크는 곧장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혹시 오류일지 몰라 몇 번 더 검색을 해 본 결과도 동일했으니까.

    여러 번 시도해 보았는데 계속 동일한 결과가 나오는 것을 오류라고 보기엔 문제가 있고, 그렇다고 ‘예언자’의 고장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예언자’는 국가에서 절대 이상이 없도록 정비하고 관리하는 시스템.

    숲의 마나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현대사회에서 숲의 몬스터를 탐지하는 시스템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시설이므로 그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굉장히 치명적이며,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긴다면 국가 비상사태에 버금갈 정도의 중대사안이다.

     

    그런 중요한 걸 훔쳐 쓴 루크의 입장에서 이런 말을 하기엔 뭐하지만, 결과에 오류는 확실히 없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렇군요……. 그런데요, 스승님.

    “응?”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거 정말 괜찮은 거 맞습니까? 그런 걸 멋대로 해킹해서 사용하는 건 아무리 스승님이라고 해도…….

    “아아, 이제와서 뒷일이 걱정되나.”

    -그, 그것이……. 혹여 제가 스승님께 이런 사소한 일로 큰 폐를 끼친 게 아닌가 하여…….

     

    아까는 마냥 마음이 급해서 루크가 대단하다는 생각 말고는 별 생각을 못 하고 있었지만, 이제 설명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여간 큰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이번 일로 스승이 곤란해지는 상황에 놓이지 않을까?

    아니면, 뭔가 큰 손해를 끼치는 건 아닐까?

     

    하지만 루크는 서드의 우려섞인 목소리를 한마디로 일축했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라, 이런 걸로는 절대 추적될 일 없으니까.”

     

    서드가 본 것은 작은 휴대용 컴퓨터에 불과했지만, 루크가 실제로 사용한 컴퓨터는 일반적인 컴퓨터가 아니었다.

     

    실제로 연산작업을 한 것은 달의 그림자를 이용해 벼려낸 열쇠/ 검/ 그림자를 코어에 이식해 원격으로 연동시킨 슈퍼컴퓨터.

    그러니까 한마디로, ‘아린세이아’다.

     

    애초에 물질계에 없는 주소를 어떻게 추적한단 말인가?

     

    그들이 차원의 틈에 숨겨져 있는 지워진 역사의 잃어버린 제국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아린세이아라는 존재는 모두에게서 잊혀질 수도 없었겠지.

     

    “흐음.”

     

    그렇다면 결과에 문제가 없었다고 하면, 대체 왜 유미르를 찾을 수 없었던 걸까?

    가능성은 두가지.

     

    유미르가 아직 축제에 남아있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버린 경우와, 뭔가 조건값이 잘못된 경우다.

     

    “서드, 그 아이에 대해 말한 것 중 잊어버리고 말하지 않은 건 더 없느냐?”

    -글쎄요……. 일단 제가 생각하기엔 없는 것 같습니다만.

    “흐음.”

     

    서드는 서클마법사이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는 만큼, 저 말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집에 갔을 경우를 생각하는 편이 더 타당하리라.

     

    “휴우, 그 아이는 대체 어쩌다 도망친 거냐. 대체 뭐라고 했길래?”

    -잘 모르겠습니다. 별로 짚이는 부분은 없는데요……. 스승님 얘기를 하니까 갑자기 도망쳤습니다.

    “그 전에 무슨 대화를 했는지 기억은 하느냐?”

    -뭐, 시덥잖은 얘기였습니다. 변신골렘 얘기나, 솜사탕 얘기 같은…….

    “그게 다인가?”

    -네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정말 별 이야기가 없었다.

    아이의 섬세함을 서드가 눈치채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서드가 기억을 못해서야 물어보는 의미도 없고.

     

    “그런가. 알겠네. 없으면 집에 간 거겠지. 일단 카페에서 다시 만나자꾸나.”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그렇게 전화를 끊고 길을 걷던 루크는 문득,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렇게 큰 축제인데 왜 술을 파는 곳이 하나도 없는 거야! 내가 이래서 아카데미 축제를 싫어한다니까!”

    “바보야, 내가 볼 거 별로 없을 거라고 했지? 아까 그 변신골렘이나 더 보러 가자니까.”

    “제엔-장! 그래도, 적어도 볼 거 하나는 있구만……. 그러지.”

     

    짜리몽땅한 키에 풍성한 수염을 땋은 종족, 드워프였다.

    그나저나, 저들은 종족적으로 목소리가 큰 건지, 아니면 사람이 저렇게 시끄러운 성격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축제에 술이 없자 실망한 모양.

    축제에 술이 빠져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드워프들이 보기엔 이 화려한 축제에서도 그다지 볼 게 없는 듯 하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야 당연한 것이다.

    미성년자의 음주가 불법인 현대.

    아카데미 학생들이 주체가 되는 축제인데, 술이 있을 리가 있나.

     

    그나마 드워프가 관심을 보일만한 것은 자신이 개선점을 ‘약간’ 지적해 준 변신골렘 정도가…….

     

    ‘잠깐, 변신 골렘 이라고?’

     

    루크는 아까 전, 서드와 나누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맞물리는 느낌을 받았다.

     

    ‘뭐, 시덥잖은 얘기였습니다. 변신골렘 얘기나, 솜사탕 얘기 같은…….’

     

    보통의 여자아이들이 변신골렘을 그렇게 좋아하던가?

    보통은 인형과 같은 단순하고 귀여운 장난감을 좋아하지 않나?

    기계적인 구동방식을 좋아하는 여자아이는 일반적으로 많지 않다.

     

    그럼 만약에, 유미르가 인간이 아니라 ‘드워프’일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루크는 곧바로 팔에 끼워 둔 휴대용 컴퓨터를 펼쳐 검색값을 조정했다.

     

    그러자, 이제는 정확히 일치하는 빨간 점이 하나.

     

    루크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찾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잭은 미성년 길빵충이군요!
    빌런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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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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