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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5

       참으로 개 같은 기분이군.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검선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혈교주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여태까지 수백 번의 죽음을 맞이했을 이는 여전히 대지에 서서 초연히 웃고 있었다.

       

       “이야. 정말 힘든 전투였습니다. 몇 번이나 죽었는지 세지도 못하겠네요.”

       

       그에 반해 인간의 육신에서 벗어나 하늘에 오른 이들은 어떤가.

       

       먼 과거부터 신선이라 불려왔던 이들은 하나 같이 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

       

       지금 검선과 같이 서 있는 것은 종선 뿐.

       

       상황은 명확했다.

       

       신선은 저 혈교주라는 작자에게 패했다.

       

       주제를 모르는 자에게 주제를 알려주려 했으나 오히려 당하고 말았다.

       

       죽음을 모른다는 것이 이토록 위협적인 일이었단 말인가.

       

       검선은 이전에 죽음을 모르는 이들을 수도 없이 상대해 보았다. 외부인이란 녀석들은 그런 존재였으니까.

       

       허나 그들은 귀찮은 날벌레일 뿐 검선에게 위협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민가. 그 한 사람을 제하고는 말이다.

       

       심지어 그 민가도 무한한 목숨으로 위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무인으로써의 실력으로 검선을 압도했으니.

       

       힘 있는 자가 무한한 목숨을 손에 넣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에 관해 검선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과거 종선이 민가와 협의를 한 까닭을 알겠군.

       

       이 따위 놈을 상대하는 것조차 이토록 곤욕스러운데 민가가 이런 방식으로 선계를 습격했더라면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야.

       

       “그래도 덕분에 많은 배움을 얻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승리를 확신한 듯 감사인사를 전하는 모습에 검선이 이를 아득하고 갈았다.

       

       지금도 저 놈을 죽이고자 한다면 죽이는 것이야 어렵지 않다.

       

       허나 그래봐야 저 놈은 또 다시 살아날 것이고 결국 꺾이는 것은 검선 쪽이겠지. 다른 이들이 쓰러졌던 것처럼.

       

       “종선. 저기에도 끝이 있을 거라 하지 않았느냐?”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을 때에 종선은 말했다. 저 놈이 지닌 생기에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그것을 모두 사용하면 목숨에 끝이 있을 것이라고.

       

       허나 싸움이 끝나가는 지금도 혈교주는 여전히 여유로워 보였다. 한계라는 단어는 너희들이 제멋대로 정해둔 것 뿐이지 않냐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종선은 검선의 타박에 쇳소리마냥 거센 목소리를 냈다.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아뇨. 아직 많이 남았답니다.”

       “헛소리! 지상에 존재하는 생기에도 한계가 있다. 그대가 아무리 많은 것을 집어 삼켰다 하더라도.”

       “보세요. 많잖습니까.”

       

       혈교주는 자랑하듯 품 안에서 여러 개의 구슬을 꺼내었다. 그 안에는 하나 같이 앞전의 구슬과 비슷한 수준의 생기가 담겨 있었다.

       

       종선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저만한 수준의 생기를 품기 위해서는 학살을 벌여야 한다.

       

       대륙의 모든 생명을 집어 삼켜야 한다. 저 놈이 그만한 일을 벌였더라면 진즉에 신선들이 저 놈을 처리하기 위해 움직였을 터.

       

       허나 신선들은 혈교라는 집단을 잔챙이 취급하고 있었다. 저를 아는 자보다 모르는 자가 더 많았단 말이다.

       

       알음알음 일을 진행하면서 저만한 생기를 모으는 게 가능할 리가…

       

       외부인. 죽어도 죽어도 부활할 수 있는 이들. 바란다면 무한한 생기를 제공할 수 있는 존재. 그들을 이용한다면 저만한 생기를 모으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그 뿐일까. 지금 저기에 보여준 것 또한 일각일지도 모른다. 단순히 우리를 가지고 놀기 위해 장난을 치는 것일 가능성도.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종선은 눈을 휘둥그레 뜬 채 혈교주를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냈다.

       

       “검선.”

       “무어냐.”

       “물러선다.”

       “…허? 갑자기 그게 무슨.”

       

       종선은 검선에게 대답할 틈을 주지 않았다.

       

       검선이 무어라 말을 하기도 전에 종선이 도술을 펼치더니 이 근방에 존재하던 모든 신선들이 자취를 감춘다.

       

       혈교주는 그 모습을 가만 구경하다가 웃음을 흘렸다.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는데요.”

       

       서서히 갉아 먹어가면서 저들 또한 양분으로 삼을 생각이었는데 판단이 빠르시네요.

       

       이래서야 먹을 것이 줄어들지 않습니까.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신선들이 물러섰다는 것은 이 선계가 완벽하게 혈교주의 손아귀에 들어왔다는 이야기이니까.

       

       “자비로운 신선들께서 양보를 해주셨으니 맛있게 먹어보도록 할까요.”

       

       *

       

       [화령 방송 안 킨지 2일째]

       

       방송 초창기 슈퍼랜덤방송시절이 떠오른다.

       

       방송 끄고 재밌는 거 했다고 자랑할 때 머리가 띵했었는데.

       

       – ㅋㅋㅋ

       

       – 엔리한테 만날 화령 어디 있냐고 따졌었는데.

       └ 너두? 야나두!

       

       [정신나갈것같아]

       

       정신나갈것같아.정신나갈것같아.정신나갈것같아…

       

       [겨우 이틀 가지고 왜 이렇게 발작하는 거임?]

       

       진짜 복에 겨웠네. 우리 수정씨는 한 달에 이틀 방송해 준다고!

       

       수정씨! 구독 유지하고 있으니까 제발 돌아와!

       

       – 이새낀 진짜 대가리 깨졌네.

       

       – 그 방송 구독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고?!

       

       – 기부천사다.

       

       – 돈 많으신가봐.

       

       – 실례가 아니라면 메론 아이스크림 하나만 사주세요.

       └ 실례니까 안 사주겠습니다.

       

       [야! 너희들 화령씨 게시판 가서 놀아!]

       

       여기는 엔리 게시판이야! 나랑 관련된 이야기만 하라고!

       

       왜 화령 씨가 방송을 안 키는데 여기와서 난리를 치는 건데! 자꾸 이러면 다 차단한다?!

       

       – 엔리님. 엔리님. 우리 방장 어디가써요.

       – 킹치만 여기가 더 재밌는 걸.

       – 소식 없는 방장한테 따지는 것보다 여기가 피드백이 빠르잖아.

       – 방장 찾아와아아아아.

       – 뭐 이야기 없음?

       

       <나도 모른다고! 아무 연락이 안 되는 데 나보고 어쩌라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시청자들에게 화가 나 채팅을 치려던 엔리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그 내용을 지웠다.

       

       엔리라고 해서 아라에게 연락을 해보지 않은 게 아니다.

       

       아라가 급방종을 했을 무렵 그를 보고 있었던 엔리는 무슨 다급한 일이 있느냐고 문자를 보냈고 그대로 씹혔다.

       

       그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인가 문자를 보내보고 전화도 걸어보고 게임 속 메시지도 보내 보았지만 아라는 한 번도 그녀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라 해서 다를 것은 없었다.

       

       지금 그녀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아라와 연락이 되지 않아 곤란해한다는 듯 했으니. 아라는 완벽하게 잠적을 해버린 셈이었다.

       

       하루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긴급한 무언가가 생겨 주변을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라 볼 수도 있으니.

       

       허나 이틀은 아니었다.

       

       이틀이나 자취를 감춘다는 것은 절대로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엔리는 무작정 아라가 사는 곳으로 찾아왔다. 아무 일도 없다면 그것으로 족하고, 만약 무슨 일이 있다면 자신이 직접 대처하기 위해서.

       

       엔리는 기억했다. 과거 사이비와 관련이 되어 있는 듯한 이야기를 하던 그녀를. 혹시 종교와 관계된 문제가 생겼다면 나라도 도움이 되겠지. 이래뵈도 신학과 출신이니까.

       

       과거 자신을 구해주었던 아라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자신이 아라를 구할 차례였다.

       

       굳은 결심을 하고서 아라가 사는 빌딩 앞에 엔리가 도착한 순간 그 곳의 경비가 그녀를 불렀다.

       

       “저기. 아. 영어로 해야 하나. 그러니까.”

       “저 부르신 거죠? 괜찮아요. 저 한국말 잘하거든요.”

       “…어. 그렇네요.”

       

       아무리 보아도 전형적인 외국인처럼 생긴 엔리의 입에서 자연스러운 한국말이 튀어나오자 경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 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니라 엔리는 거기에 별 반응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신가요?”

       “아. 그게. 아가씨 X동 XXX호에 사는 아가씨 친구죠? 지난 번에 같이 이야기하던 거 봤어요.”

       

       XXX호라면 아라 씨가 사는 데잖아? 엔리가 고개를 끄덕였더니 경비가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그 동이라면 안 가는 게 나을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입구에 들어가면 알 겁니다. 이상하다 싶으면 그냥 나와요. 아 그리고 거기 엘리베이터는 고장났으니까 타지 마시고.”

       

       엔리는 의아함을 느끼며 아저씨에게 자세한 것을 물었지만 그는 대답해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일단 아라씨가 집 안에 있기는 한 모양이네. 아예 사라지신 게 아니니까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근데 도대체 그 층에 무슨 일이 있길래 경비 아저씨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꼭 공포 영화에 나오는 이야기 같…

       

       에이 설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저 경비 아저씨가 날 어리숙한 외국인인줄 알고 놀리려 그런 거겠지. 분명해.

       

       이제와 돌아갈 수도 없다면서 애써 불안감을 떨친 그녀는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빌라 안으로 발을 들였다.

       

       허나 그 안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뭐야. 무언가 이상한 게 느껴질 거라더니. 하여튼 심술궂은 사람들이 많다니까.

       

       그리 투덜거리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은 엔리는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걸 느끼고는 눈을 끔뻑거렸다.

       

       …아니. 아니. 아니?!

       

       허공으로 떠오른 발. 대지에서 쫓겨나듯 위로 향하는 옷자락과 머리카락.

       

       당황해서 마구잡이로 팔을 휘젓던 그녀는 이내 허공에서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철퍼덕 바닥에 널부러진 그녀는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폴터가이스트?”

       

       유령이 이 건물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 건가?

       

       엔리는 눈을 끔뻑거리며 그런 생각을 했지만 엔리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그는 너무 터무니없는 농담이었다. 유령 같은 게 현실에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기이할 정도로 쉽게 진정한… 진정했다고? 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엔리는 누구나 아는 겁쟁이 중의 겁쟁이다. 공포 게임을 하다 심장마비로 죽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런 상황을 겪고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다니.

       

       경비가 건넨 말이 옳았다. 이 건물은 무엇인가가 이상했다. 말로 표현하지는 못 하겠지만 분명 무엇인가가 잘못된 곳이었다.

       

       그래도 그 이상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었다.

       

       본래라면 겁에 질려 아무것도 하지 못해야 할 엔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선사했으니까.

       

       심호흡을 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난 엔리는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처음 건물에 들어왔을 때 그녀를 맞이해 주었던 폴터가이스트는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다.

       

       중력은 계속해서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엔리의 몸 이곳저곳에는 많은 상처가 새겨졌다.

       

       그럼에도 엔리는 멈추지 않았다.

       

       힘들고 지치고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딱히 그녀가 근성이 넘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파서 멈추고 싶은데. 자리에 주저 앉아서 울고 싶은데. 아라를 향해 원망 어린 말을 내뱉고 픈데.

       

       엔리의 몸이 그녀에게 포기하는 걸 허락하지 않은 것 뿐.

       

       그런 터무니없는 이유로 아라가 사는 집의 앞까지 도착한 엔리는 여태까지 쌓아온 모든 울분을 아라에게 풀겠다는 생각을 하며 가방에서 열쇠를 꺼냈다.

       

       혹시나 또 무서워서 잠을 못 자게 될 때가 온다면 그냥 찾아오라는 말과 함께 전해주었던 열쇠를 말이다.

       

       “아라 씨! 안에 계시죠! 대체 여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그리고 엔리는 보았다.

       

       좌선을 한 채 허공에 떠올라 있는 아라의 모습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것도 나름대로 영향을 조절한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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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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