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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5

    <355 – 성실한 일상>

     

    절그럭 절그럭.

    오늘도 무거운 갑옷소리를 내며 걷는 모브의 모습에 동급생들이 시시덕거렸다.

     

    “와, 저 독종 봐봐. 쉬어도 되는 주간에 강의는 왜 들으러 가는 거야?”

    “생긴 것부터 봐봐. 하루 종일 전신갑옷 입고 체력훈련 하는 녀석이 우리처럼 쉬게 생겼어? 저건 관에 들어갈 때도 갑옷 입고 들어갈 녀석이야.”

    “애초에 지금 하는 건 보충강의라며? 쉴 때 쉴 줄도 모르는 열등생이라서 그런 거 아니야?”

    “하하. 너무해. 그러다 울어버린다고.”

    ‘진짜 울고 싶다, 이 나쁜 놈들아.’

     

    모브는 울적했다.

    즐거운 퇴마이벤트를 즐기겠다며 남들은 교단에서 포인트 주고 산 퇴마장비 들고 교내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는데 자신은 강의나 들으러 다니고 있다.

    솔직히 그도 평소에 공부 열심히 했으니까 이럴 때 교장선생님의 배려를 받고 푹 쉬고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

    ☆전 조직원 필독☆

    저희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 일동은 평소에 많이 놀고 있는 관계로 이번 주간이벤트에 놀지 않고 면학에 집중하길 바라요!

    만일 놀다가 걸린 사람은 주말에 저와 같이 특별한 놀이를 하게 될지도 몰라요!!

    퇴마놀이 하더라도 절대로 저한테 걸리지 마세요!!!

    ━━━

     

    작은 손으로 열심히 필기를 했음이 느껴지는 아기자기한 글씨체와 달리 은근한 공포심이 느껴지는 오크노디의 경고장.

    이걸 보고 감히 퇴마놀이를 하러 돌아다닐 용기가 난다면 그건 그것대로 존경해야 마땅했다.

    물론 모브는 남들의 존경이 그렇게까지 탐나지는 않았고 지금까지 쌓아온 수련광 이미지에 한 페이지를 더하는 신세가 되었다.

     

    ‘남들처럼 놀지 못해서 분한 건가?’

     

    처음엔 그런 마음이었다.

    그런데 달랐다.

    모브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눈치 챘다.

    조금씩 피어오르는 다른 생각을.

     

    “모브. 오늘 같은 날에도 강의에 나오는 건가?”

    “의외로군. 모브 학생이라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교수님들조차 기대하지 않았다는 표정.

    진즉에 낙오될 거라고 여겼던 녀석이 어째서 강의실에 기어 나왔지? 라며 반문하는 얼굴이다.

    사실 저런 얼굴을 보는 것도 처음이 아니었다.

     

    “모브 1년생. 어째서 학생은 전신갑옷을 입고 강의실에 나오는 겁니까…?”

    “…여러 가지 사정이 있습니다.”

    “마갑착용이라면 막대한 장비포인트를 지불하지 않으면 교내에서의 사용은 허가 되지 않을 텐데요.”

    “마갑이 아닙니다.”

    “어디 보자, 등록된 장비신청에 따르면 그 갑옷은… 허어, 훈련도구?”

     

    놀고 있네.

    유난 떠는군.

    얼마나 버티나 두고 보자.

    동급생들과 다를 바 없는 시선이 쏟아진다.

    가르침을 베푸는 교수조차 그렇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다.

    오기로 버티는 것도 정도가 있다.

    이젠 지쳤어.

    그만 벗고 싶어.

    울고 매달리고 싶을 정도로 지치는 날도 있다.

    그런데 오크노디는 말한다.

     

    “역시 모브는 ‘되는 사람’이네요! 중량코스를 가르치는 보람이 있어요. 조나도 절 보고 이런 기분이 들었을까요?”

     

    너는 되는 사람이라고.

    버틸 수 있다고.

    세상 그 누구도 믿지 않는 그를 학년수석 오크노디가 믿어준다.

    이 학교에서 가장 뛰어난 1학년이 믿어준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분하기까지 했다.

    교수가 아니다.

    내게 진정으로 가르침을 주는 것은.

    나를 믿고 손을 내밀며 보다 높은 경치로 잡아 올려주는 사람은.

    아카데미 최단신의 여자아이, 바로 오크노디였다.

     

    ‘꺾이지 않아. 아니, 꺾일 수 없어!’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믿는 오크노디를 위해서라도 버틴다.

    그 하나의 오기가 흔들리고 접히고 나약해지려는 마음을, 그 마음의 가장 밑바닥에서 다시금 웅크린 다리를 펴고, 발을 딛고 올라설 수 있도록 버텨준다.

     

    “모브. 오늘도 출석했군.”

    “예.”

    “음.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

     

    어차피 얼마 못 갈 노력이라고.

    남들보다 조금 긴 유난에 불과하다고.

    그런 불신으로 바라보던 교수의 시선이 달라졌다.

    누구보다 휴식이 간절한 학생들 속.

    그 휴식을 거부하고 강의실에 나오는 그의 성실함을 마침내 교수가 인정했다.

     

    ‘투구를 써서 다행이야.’

     

    모브는 생각했다.

    솔직히 조금이지만 눈물이 핑 돌았으니까.

    이런 부끄러운 모습, 남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괴롭고 고되고 힘든 나날.

    그저 버티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갈되는 가혹한 아카데미의 일정.

    그러나 오늘만큼은 즐거웠다.

    오랜만에 초심을 되찾았음을 실감했다.

    동시에 강해진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모브 65점. 평범한 점수로군.”

    “네…”

    “하지만 꽤 올라왔군. 이 강의를 처음 들을 때에 받았던 22점에 비하면.”

     

    기억난다.

    머리만큼이나 몸도 둔한 자신이 실망스러웠던 순간이.

    방학에 그 고생을 하고 부쩍 성장한 수준으로도 아직도 하급반을 벗어나지 못하는 스스로의 한심할 정도로 둔해터진 재능이.

    그래도 절망하지 않고 버틴 결과.

    마침내 찾아온 것이다.

    그의 노력이 인정받는 순간이.

     

    ‘전하고 싶어.’

     

    학교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부모님을 찾는 아이처럼 모브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도 오크노디였다.

    지금의 그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든 사람이, 이 기쁨을 누리게 만들어준 사람이 바로 오크노디였으니까.

     

    “오. 흑기사 모브. 갑옷놀이는 꾸준히 하고 있네.”

    “저기, 오크노디는 어디에 있어?”

     

    재단의 장학생 신분으로 오크노디 조직에 들어온 학생이 시계를 흘끗 보고는 말했다.

     

    “강의장.”

    “강의가 끝난 다음에는?”

    “다음 강의장.”

    “그 다음에는?”

    “밥 먹고 또 강의장.”

    “…”

     

    아, 그랬었지.

    오크노디는 무려 38학점 이수를 하고 있었어.

    그거에 비하면 나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어딘지 모르게 맥이 빠졌다.

    개고생을 하는 아이를 찾아가서 별 것도 아닌 걸로 자랑이나 하려고 했다는 마음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감사인사는 무리다.

    그래도 그는 다짐했다.

    오늘의 이 벅참을 놓치지 말고 계속해서 하루하루를 면학에 정진하자고.

    그러다보면 언젠가 오크노디와 자연스럽게 마주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할 기회가 오리라.

     

    “긴급 상황이다! 아지트에 있는 녀석들, 다 나와!”

    “뭐야, 무슨 일인데 그래? 우왓, 너 피투성이잖아.”

     

    그런데 그 기회,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오크노디의 시간표를 알려주던 학생이 기겁하며 방금 들어온 이에게 말을 건넸다.

     

    “퇴마에 미친놈들이 일을 벌이기 시작했어.”

    “퇴마랑 멀쩡한 사람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게 무슨 상관인데?”

    “선배들이 퇴마할 유령들을 쓸어가서 축제에 참여한 1학년들이 노릴 사냥감이 부족해!”

    “그럼 진짜 더 상관이 없는 거 아닌가?”

    “멀쩡한 사람을 패서 빙의령을 쫓아냈다고 주장하면서 교단포인트를 벌려고 주작질을 하고 있으니까 문제가 생겼지!”

    “…미친 녀석들!”

     

    그건 진짜 큰일이잖아?

    모브가 수련용 강철창을 등에 짊어졌다.

     

    “안내해라.”

    “오. 흑기사 모브도 같이? 이거 든든하네.”

    “바보야. 넌 말하지 말고 치료동부터 찾아가.”

     

    퇴마사기꾼들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는 연결통로를 장악한 채, 동급생들을 향해서 퇴마장비를 들이대며 협박하고 있었다.

     

    “니들 강의 들으러 간다며? 가는 길에 포인트 좀 내놔. 아니면 퇴마 당한다?”

    “이 나쁜 녀석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거야. 우린 그냥 보충수업이 절실한 수강생일 뿐인데!”

    “닥쳐! 모두가 암묵적으로 쉬는 날을 만끽하기로 한 날에 혼자만 공부를 나가는 양심 터진 녀석들을 용서할 것 같아? 제정신이 아니라면 공부벌레에게 빙의를 당한 것이고 제정신이라면 더 맞아야해!”

    “악! 아악!”

     

    모브가 보기에도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자신처럼 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성실하게 강의를 들으러 나온 학생들이 얻어터지고 있다니.

    지고쿠해적단도 저렇게까지 심한 짓은 안하는데 정말 욕이 나오는 광경이었다.

     

    “학생들 때리는 놈부터 습격해!”

    “뭐야, 너희는! 오크노디와 놀아주는 조직이잖아. 방해하는 거냐!?”

    “니들이 팬 애들 중에 우리 애들도 있었어!”

     

    난리통에 모브도 합세해서 날이 서지 않은 뭉툭한 목검을 휘둘렀다.

    성실한 단련으로 스펙이 향상된 신체에 열심히 개발한 기능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니, 전과 같은 동작에도 배수가 다른 위력에 상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놈, 좀 치는구나!”

    “너야말로 해적보다 악독한 양아치 주제에 실력이 상당하구나.”

    “하. 당연하잖아? 보충수업을 듣는 녀석들보다 안 듣는 우리가 더 강한 건.”

    “실력은 인정하지. 그래도 너흰 각오가 덜 됐어.”

    “무슨 각오?”

    “쉽고 편하게 남을 착취하는 대신, 성실하게 자신을 단련하며 성장할 각오.”

     

    모브는 상대의 위협적인 초식을 몸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한 걸음을 더 앞서나가 상대의 팔목을 힘으로 붙잡았다.

     

    “큭!?”

     

    상대가 휘두르던 목검이 비틀어진 손목을 따라 바닥에 떨어졌다.

    오크노디의 곡예를 배우면서 덩달아 터득한 체술이 숨 쉬듯이 펼쳐지며 팔을 등 뒤로 꺾고 다리를 걷어차 주저앉히며 등을 짓밟았다.

     

    “사악한 짓은 여기까지다. 선배들이 퇴마할 유령을 빼앗아갔다고 동급생을 핍박하는 불의한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어.”

    “우, 우릴 어떻게 할 작정이냐!”

    “전부 묶어서 교수님에게 데려가겠다.”

    “크윽. 우릴 대감옥에 집어넣을 작정인가!”

    “아니. 의자에 묶어서 강제로 강의를 듣게 해달라고 부탁드리겠다.”

    “크아악! 차라리 감옥에 보내. 축제날까지 강의를 듣고 싶지는 않단 말이다!”

     

    비통한 울부짖음을 지르며 제압된 채로 강의실로 끌려가는 학생들.

    교내의 정의를 바로세운 모브는 개운한 얼굴로 포로들의 강의실 운송을 도왔다.

     

    “제기랄. 지고쿠 해적단만 같이 일을 벌였다면 우리가 잡히지는 않았을 텐데…”

    “응? 우리가 뭐?”

     

    허접한 해적두건을 머리에 두른 학생들이 강의실 안쪽에서 노트에 필기를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 니들이 왜 여기에? 설마 우리보다 먼저 잡힌 건가!?”

    “아니, 그냥 강의 듣고 있었는데?”

    “미친. 그럼 우리는 진짜로 해적보다 못한 짓을 하고 있었던 거잖아.”

     

    뱃놀이에 다녀와서 퇴마축제의 보상이 딱히 필요 없던 것은 지고쿠해적단도 마찬가지였다. 배부른 육식동물은 사냥에 나서지 않는 법!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드래곤교장의 빼앗긴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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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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