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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5

       메리가는 당돌한 아이였다.

       

       – 아저씨가 맛있는 거 사줄까?

       

       만약 누군가가 그리 묻는다면, 메리가는 거절했을 것이다. 그리 제안하는 사람에게는 필히 나쁜 의도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얘기해서 유괴를 두 번이나 당하고 싶진 않았다.

       

       “싫으면 따라오지 않아도 된단다.”

       

       그러나 남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보게, 경찰에 연락하게나. 가서 여기 어린애를 보호해 달라고 요청해.”

       

       두 하인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이상한 사람이라면 저런 말을 안 하지 않나?

       

       단순히 선의로 자신을 도와주려는 것 같았다.

       

       “아, 아니에요. 따라갈게요.”

       

       메리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남자가 건넨 우산도 들고, 품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양장본도 꼭 안았다.

       

       “하루만, 딱 하루만 묵게 해 주세요.”

       

       허리를 예각으로 깍듯이 숙인다. 부랑아, 고아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번듯한 인사였다.

       

       메리가의 예절에 남자가 도리어 놀라고 말았다.

       

       곧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어린 친구. 이름이 어떻게 되니?”

       “메리가에요.”

       “메리가…. 좋은 이름이구나.”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로베스피에르라고 한다. 틸레트 아카데미에서 교수 일을 하고 있지.”

       

       잘 부탁한다.

       

       남자는 그런 말을 하며 인자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메리가는 남자가 왜 자신에게 신분까지 밝혀가며 친절하게 대해주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의 빈 사유지에 무덤을 만들었다. 그곳에 이사벨을 묻고 사흘간 약식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동안 메리가도 로베스피에르의 저택에서 머물렀다. 처음에는 하루만 묵고 가려 했는데, 사용인들이 불쌍하다며 체류 기간을 크게 늘려준 것이다.

       

       “그, 고맙습니다. 아저씨.”

       “고맙기는 무슨.”

       

       로베스피에르는 후작 작위를 받은 마도사였다. 어린애 무덤 하나 만들어주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메리가는 이날 장례와 무덤이라는 개념을 처음 배웠다. 죽은 사람에게도 예를 다하는 후작의 모습에, 메리가는 고맙다는 말을 수시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책은 산에서 주웠다고 했지?”

       

       메리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카데미 학생들이 쓰다가 야산에 버린 모양이구나. 이것들, 감히 전공서적을 그런 데 버리고서는….”

       “그 멋진 건물이 아카데미인가요?”

       “어? 음, 그렇단다.”

       

       메리가가 눈을 빛냈다.

       

       아카데미, 학생.

       

       그렇다면 아카데미는 교육기관 아닌가?

       

       “마도사들을 기르는 보통학교예요?”

       “하하. 아카데미는 보통학교라고 안 한단다.”

       “그러면요?”

       “아주 아주 뛰어난 아이들만 입학할 수 있는 엘리트 기관이지.”

       

       엘리트!

       

       그 단어를 메리가도 한 번은 들어봤다.

       

       “이사벨이 그랬어요. 자신은 엘리트 귀족 출신이라고.”

       “모든 엘리트는 귀족 작위를 받지. 귀족이라고 모두가 엘리트인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면 엘리트는 누구나 될 수 있나요?”

       “음, 그래.”

       

       로베스피에르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게 바로 엘리트지.”

       

       역시.

       

       이 사람은 다르다.

       

       메리가는 지금껏 수많은 인간군상을 봐 왔지만, 이토록 정제되고 수준 높은 대화를 꺼내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이사벨이 변고 없이 귀족으로서 잘 성장했다면 이런 기품을 지니지 않았을까.

       

       메리가는 답답한 가슴을 꾹 누르며 양장본의 책장을 매만졌다.

       

       “보아하니 글도 읽을 줄 알고, 산수도 어느 정도 하는 모양이더구나. 스스로 배웠니?”

       “…이사벨 언니가 알려줬어요.”

       “그래, 그렇구나. 마법은?”

       “그것도 언니에게 배웠어요.”

       

       지금의 메리가는 1년 전의 메리가와는 사뭇 다르다. 모두 이사벨에게 이것저것 배운 덕분이었다.

       

       “엘리트가 되고 싶니?”

       “당연하죠.”

       

       지금까지와 같은 생활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 로베스피에르, 이 사람의 저택에서 먹은 요리가 얼마나 달콤했던가. 또 이부자리는 어떻고?

       

       길거리로 돌아가기엔 너무 눈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이지 않은가.

       

       “저, 귀족이 하고 싶어요.”

       

       기회는 있을 때 잡아야 한다.

       

       열한살의 메리가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귀족, 로베스피에르가 자신의 동아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사람의 저택에서 나가고 나면 두 번 다시 신분 상승을 할 수 없으리라.

       

       메리가는 능글맞게 웃으며 후작 앞에 고개를 숙였다.

       

       “이 은혜, 성공해서 반드시 갚을게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저를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까지만 도와주세요.”

       “오호.”

       “안 되나요?”

       

       로베스피에르가 메리가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안 될 거야 없지.”

       “정말요?”

       “그럼.”

       

       이제 된 건가?

       

       메리가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이제 나도 바뀔 수 있는 건가?

       

       잔뜩 잔뜩 공부해서, 늘 바라던 그 아카데미 건물에 입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인가?

       

       똑똑.

       

       “로베스피에르 후작님, 블랜튼 공작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아니, 블랜튼 공작이?”

       

       허허 웃던 로베스피에르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공작이신데 당연히 응접해 드려야지. 객실로 모시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메이드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갔다.

       

       “메리가, 넌 잠깐 여기 있거라.”

       

       로베스피에르는 채비를 단단히 하고 나갔다.

       

       ‘공작이라고?’

       

       공작이라면 후작보다 높은 작위다.

       

       더구나 블랜튼 공작이라고 했다. 메리가는 이전에 읽은 신문 기사에서 블랜튼이라는 이름을 본 적이 있었다.

       

       어린 금안족을 겁간한 남자 세 명을 거세하고, 오체분시하도록 했다는 물과 얼음의 공작.

       

       범죄자에게 가차 없이 행동하는 것을 보아하니 틀림없이 좋은 사람이리라.

       

       “가만히 있으라고는 했지만…. 궁금한데.”

       

       일주일도 안 되는 사이에 로베스피에르 저택의 공간상 구조를 달달 외워버린 메리가였다.

       

       손님을 맞는 객실이 어디인지는 눈 감고도 갈 수 있다.

       

       ‘귀만 살짝, 살짝 대 보는 거야.’

       

       이 정도라면 들킬 일 없겠지.

       

       객실 앞 문에 도착한 메리가가 살짝 귀를 가져갔다.

       

       – 며칠 전 슬럼에서 있었던 일 말이오. 제가 잘 처리했으니 근심하지 마십시오.

       – 사창가 화재 사건 말입니까? 그것참, 기사로 보았는데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 맞소. 대부분은 숯불이 되어 있더군. 열둘 열셋 정도 된 어린 소녀들도 그대로 검댕으로 변했고. 

       – 그렇습니까? 세상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나 보군요.

       

       말을 늘어놓는 사람이 블랜튼 공작이고, 그 말을 받아주는 사람이 로베스피에르.

       

       대화 대상을 식별한 메리가가 정신을 집중해서 이어지는 말을 들었다.

       

       – 그렇소. 그런데 그곳에서 타다 만 직원 명부가 하나 있는 거 아니요? 그 자료를 바탕으로 수사를 진행했지.

       –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 알렉, 모리스. 이렇게 두 남자의 신상이 적혀있더군. 그 정보를 바탕으로 이 일대를 샅샅이 뒤졌고, 결국 그, 둘을 찾아 검찰에 넘겼지. 그래서 그 남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아나?

       – 어떻게 되었답니까?

       

       그 다음 이어지는 남자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 일단 마취 없이 음경과 고환을 토막 쳐 돼지 먹이로 주었지. 그러고는 고문실로 끌고 갔지. 건방을 떨 때마다 손톱이나 발톱을 하나씩 뽑았지.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이사벨을 죽게 한 남자가, 그런 일을 당했다고?

       

       존경심과 공포감이 동시에 솟아오르긴 이번이 처음이었다.

       

       – 마지막으로 목을 잘라 그 거리에 걸어놓았네. 이제 아동성범죄를 저지르는 것들은 모두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겠지. 방범 효과는 톡톡할 걸세. 안 그런가, 후작?

       – 너무 지나치셨던 건 아닙니까?

       

       메리가 말이 그 말이다.

       

       물론 자신을 유괴하고, 때리고, 길러서 창녀로 팔 계획이었던 사람들은 명명백백한 악인이었기에 동정심은 안 들었다.

       

       메리가가 정말로 두려웠던 건, 저리 말하는 블랜튼 공작의 어조에서 한치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 지나칠 게 뭐가 있나? 법은 범죄자를 심판하고, 피해자를 위로하는 데 의의가 있네. 암, 그렇고말고.

       

       실제로 여론조사에서 밝힌 블랜튼 공작의 국민 지지율은 높았다.

       

       그 방식은 조금 과격하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척척 해 주니까.

       

       – 이 건의 처리에 대해선 황제 폐하께서도 윤허하셨네.

       – 폐하께서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지요.

       

       대화가 슬슬 마무리된 것 같았다. 메리가는 황급히 방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로베스피에르가 접견을 마치고 돌아왔다.

       

       어째 나갔을 때보다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메리가, 지금부터 나를 삼촌처럼 대해도 좋단다.”

       “숙부… 말인가요?”

       “그런 어려운 단어도 아는구나. 좋아, 우리 둘이 있을 때는 그리 불러도 된다.”

       

       메리가는 고개를 갸웃했다.

       

       후작과는 만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됐다.

       

       아직 남남에 가까운 사이인데, 벌써부터 가족처럼 친근감을 표현해도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로베스피에르가 메리가의 손을 맞잡았다.

       

       “메리가야. 이 제국에는 도무지 미래가 없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이대로라면 우리나라는 사악한 무리에게 먹히고 말겠지. 나라가 망가지고 말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거짓말은 아닌 듯했다. 

       

       로베스피에르의 눈동자가 우수에 가득 차 있었으니까.

       

       “마수와의 오랜 싸움으로 국력은 마모되고 있는데, 안으로는 일개 귀족이 황권을 틀어쥐고 있어. 이런 국가에는 위로부터의 혁신도, 아래로부터의 혁명도 없겠지.”

       “…….”

       “지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너는 그냥 공부만 하면 돼. 당장은 열심히 공부해서 아카데미에 합격하는 것만 생각하거라. 지원은 얼마든지 해줄 테니까.”

       

       메리가는 얼떨결에 머리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그리 말해주니 안심이 되는구나. 곧바로 가정교사를 찾아보마.”

       

       그날, 메리가는 책 네 권을 더 받았다.

       

       기초화계, 기초수계, 기초공계마도이론서.

       

       그리고 중등학교용 수학 교재까지.

       

       로베스피에르 후작의 영재 교육은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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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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