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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6

        

       비행기를 여러 차례 거쳐서 한국에 도착한 이들은 적다고 할 수 없는 숫자였다.

       얼핏 봐도 열은 훌쩍 넘어 보이는 숫자였다.

         

       그들은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그렇게 질서를 지켜서 내리는 그들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뿌듯함과 우월감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과 관계가 없는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한국에 대한,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라고 생각하며 별생각 없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만약 그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다들 경악했으리라.

         

       ‘쯧. 꽤 그럴듯하게 꾸며놓기는 했군. 하지만 일본을 따라가기에는 멀었어.’

         

       ‘깨끗하기는 해. 하지만 그 국가 특유의 멋이 하나도 없어. 일본의 공항에는 민화에다가, 일본이 자랑할만한 장식들이 가득 붙어있는데…. 동양의 멋은커녕 서양식에, 서양화 좀 걸려있는 게 끝이로군.’

         

       ‘그래도 한국의 것을 걸어놓는 것보다는 낫군. 덜떨어지는 한국 전통문화를 걸어놓느니, 차라리 어설프더라도 우월한 서양의 것을 따라 하는 게 훨씬 나으니까.’

         

       ‘역시 한국은 멀었어.’

         

       한국에 관광이라도 온 것 같은 그들의 옷차림과는 다르게, 그들의 머릿속에는 한국에 대한 폄하와 경멸만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을 보며 한국을 깎아내렸으며, 동시에 서양식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공항을 보며 한국의 전통문화를 비웃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일본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을 끌어올리는 한편, 한국이 서양식을 택했다는 것에 비웃음을 날리는 사람도 있었다.

         

       ‘역시 한국은 우리 일본 같은 서양을 따라오기는 멀었어.’

         

       그들이 생각하기에 일본은 서양에 속해있었으며, 동아시아 같은 낙후한 국가가 아니라 유럽에 한없이 가까운 나라였다. 그렇기에 한국이 서양을 따라 하는 것은 곧, 한국이 자신의 문화가 뒤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일본에 굴복했다고 여겼다.

         

       거기에 더해, 그들은 화족이 한국에 관해 이야기할 때 끊임없이 늘어놓았던 ‘일본은 형이고, 한국은 동생이다.’, ‘한국은 일본의 도움이 없이는 자립할 수 없었다.’, ‘한국이 근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일본의 공이다.’라는 말이 머릿속에 강하게 박힌 상태였다.

       그렇기에 그들은 한국을 깎아내려서 부족한 점을 어떻게든 찾아내었고, 그 부족한 점을 보면서 한국은 아직 모자란 동생 같은 국가이고, 그 국가에서 임무를 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마음속에 각인시켰다.

         

       당연하게도 이는 ‘작전’을 하기에 좋은 마음가짐은 아니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작전에서 저런 마음가짐을 갖는다?

         

       당장 죽여달라고 소리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대신, 반대급부로 그들의 마음속에는 용기가 가득 들어차게 되었다.

         

       이깟 나라에서 하는 작전이 그리 어려울 것 없을 것이라는 오만.

       자기 능력이라면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교만함.

         

       그 모든 것이 그들의 마음속에 근거를 만들어내었고, 용기를 만들어내었고, 당당함을 만들어내었다.

         

       역설적으로, 이렇게 작전에는 어울리지 않는 교만함을 품은 덕분에 그들의 태도는 참으로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긴장하지 않았으니 수상하게 보일 일도 없었고,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여행에 대한 기대감에 부푼 여행객처럼 보이게 만들었으며, 그들의 당당한 태도는 일본에서 한국으로 관광을 오는 나이가 있는 여행객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게 했다.

         

       비밀리에 작전한다기에는 조금 과하지 않을까 싶은 숫자는 그들이 여행 관광객이라는 주장에 힘을 더 실어주었고, 좋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단체로 왔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어수선한데다가 단합이 잘 안되는 분위기였기에 별다른 의심조차 받지 않았다.

         

       우습지 않은가?

         

       제대로 훈련받은 사람도 잡아낼 수 있는 감시인데, 도리어 훈련받지 않았기에 그 감시를 통과할 수 있었다니 말이다. 게다가 일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자 화족 가문들이 숟가락을 얹기 위해 앞다퉈서 능력자를 파견한 행동이, 도리어 약이 되어버리기까지 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아이러니를 전혀 모른 채 공항을 뒤로했다.

         

       그냥 자신들이 우수하고, 한국이 덜떨어졌기 때문에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공항을 빠져나온 이들이 간 곳은 바로 숙소였다.

         

       그들은 호스텔 같은 본격적인 숙박시설 대신 허름하지만, 꽤 커다란 게스트하우스를 숙소로 정했다. ‘여행객’이라는 주장에 더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이기도 했으며, 외국 어플을 이용해서 예약을 할 수 있기에 한국의 추적을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호스텔과 비교해서 보안이 허술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호텔 같은 곳은 곳곳에 CCTV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위치에 따라서는 옥상에 군사시설이 있는 경우도 많았다. 게다가 돈 있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이기에 자체적인 보안도 강한 편이었고, 정보기관과 연계된 경우도 많아 자칫 실수하면 바로 꼬리가 잡힐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는?

       CCTV가 있기는 하지만 그냥 사건이 발생하면 나중에 확인하는 용도로 달아놓은 것에 그치고 있었으며, 사설보안업체랑 계약이 되어있기는 하나 그리 믿음직스럽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근처에 군사시설이 있을 리는 만무한데다가, 외국인들이 자주 드나드는지라 무슨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추적하기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낡고 규모가 크기까지 하다면, 어지간한 이상한 점이 보이더라도 ‘외국인들이라서 그런가 보다’, ‘서로 문화가 다른 외국인들끼리 모이면 소동이 일어날 수도 있지.’라면서 넘어갈 수 있기까지 했다.

         

       게다가 비교적 최근에 유행하기 시작한 숙박 형태인데다가, 우후죽순 생겼다가 순식간에 폐업하거나 다른 소유주에게 넘어가는 일이 잦기까지 한 덕분에 정보기관과의 연계가 부족하다는 사실 또한 매우 큰 장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아주 중요한 이유.

         

       “첫 번째 목표는 이 녀석인가?”

         

       “멍청하게 생겼군. 패배자 민족다운 생김새야.”

         

       ‘목표’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숙소라는, 지리적 이점이 있다.

         

       그들은 전세를 내다시피 점령한 게스트하우스의 한 층에서 목표물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음침하고 비열해 보이는 외모.

       피곤 때문인지 다크서클이 가득했고, 눈에 뭔가 광채가 번들거리는 듯한 모습을 한 남자였다.

         

       “이제순, 기자라….”

         

       “이 녀석에게서 정보를 캐내란 말이지?”

         

       그들의 처음 목표는 바로 이제순이었다.

         

       천황폐하와 연관된 주물에 관하여 기사를 쓴 사람이자, 그들의 고문과 협박을 거치고 ‘정보원’이 될 사람.

         

       “얼굴이 비열해 보이는데.”

         

       “관상이 돈과 권력을 탐하는 형태인데…. 그냥 매수하면 안 되나? 그게 더 쉬울 텐데.”

         

       “딱 봐도 비리비리해 보이는데, 아무리 조센징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약해빠진 놈을 괴롭히는 것은 조금….”

         

       “이봐. 말 잊었어? 이 녀석은 반드시 두들겨 패야 해. 밉보인 게 있는 녀석이라고.”

         

       사실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 꼭 폭력과 공갈이 동반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돈을 주고 매수를 할 수도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쪽이 훨씬 편하고 안전했다.

         

       돈을 받았다는 행동 자체가 약점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악감정 없이 이용할 수 있으니 훗날에도 계속해서 정보원으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들어가는 비용?

       분수에 맞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금액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낼 수 있었다.

       화족 가문들은 돈이 꽤 많았다.

       살아남은 화족 가문들은 지역 유지나 다름이 없었고, 그중 몇몇은 세계에도 이름을 알릴 정도의 기업을 이끌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 하나 매수하는 데 돈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그 매수하려는 사람이 한낱 말단 기자에 지나지 않는다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제순에게는 그 평화로운 회유라는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한 화족 가문에서 반드시 이제순을 고문해야 한다며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뭔 짓을 했길래 찍힌 거야?”

         

       “듣기로는 누구 애인을 건드렸다는데.”

         

       “멍청한 놈 같으니.”

         

       이제순에게 닥치는 불행에는 정훈상의 입김이 닿아 있었다.

       정훈상의 스폰서는 넌지시 능력자들의 한국행을 정훈상에게 언급해주었고, 정훈상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온 힘을 다해서 스폰서에게 부탁했다. 자신을 이렇게 곤란하게 만든 것이 이제순이니, 제발 복수해달라고.

         

       정훈상에게 푹 빠져있는 아키코는 그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모에게 정훈상의 요청을 들어주기 위해 애교를 부렸고, 말단 기자 하나 따위 어찌 되든 상관없었기에 그녀의 부모는 그 자리에서 이제순의 미래를 결정해버렸다.

         

       폭행을 가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는 것은 죽인다고 결정이 되지 않은 것.

       폭행은 몰라도, 살인까지 저지르면 공권력이 나설 것이 분명했기에 그냥 폭행을 저지르는 선에서 멈추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공권력이 심각하게 개입하지 않을 선에서 폭력과 협박이 동원될 것이라는 말과도 같았으니….

         

       이제순에게 있어 좋지 않은 일임은 분명했다.

         

       “이런 녀석 상대하는 데 여럿이 갈 필요는 없겠지?”

         

       “많이 움직이는 것도 그러니 두 명만 가자고.”

         

       게다가 또 하나의 불행이 있었으니.

         

       “그럼 내가 가지. 가주께서 손 봐주라고 말했으니, 일단 나는 여기 껴야 해.”

         

       “그래, 그러면 남은 한 명은?”

         

       “내가 간다.”

         

       “궂은 일일 텐데.”

         

       “괜찮다. 기자 놈 두들겨 패는데 오히려 좋지.”

         

       “하긴, 너는 기자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지.”

         

       이제순이 너무나 하찮은 존재였던 덕분에 그를 상대할 사람이 단 두 명뿐이며, 그 두 명은 이제순에게 폭력을 가하기를 꺼렸던 온건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둘은 아무런 단련도 하지 않은 이제순을 괴롭힌다는 사실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의욕이 넘치는 상태였다.

         

       “장비 착용하고 가는 거 잊지 말라고.”

       

       “알고 있다.”

         

       두 사람은 가문에서 챙겨준 목걸이를 착용했다.

         

       부적 주머니에 긴 끈을 더해서 만든 것 같은 평범한 디자인의 목걸이였다.

         

       하지만 그 평범한 외형과는 다르게, 착용하고 있으면 영상과 사진에 왜곡된 채 기록되게 만드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그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피하고자 얼굴에 마스크를 꼈다.

         

       “갔다 온다.”

         

       그렇게 그들은 두 무리로 나뉘었다.

         

       이제순을 잡으러 가는 무리.

       관광을 빌미로 서울을 돌아다니며 활동 구역을 점검하러 가는 무리.

         

       그렇게 그들은 한국에서 ‘작전’을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6월 30일…
    1908년에 일어났던 퉁구스카 대폭발이 일어났던 날과 같은 날짜입니다.

    그 기념으로 이따가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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