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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6

       과거 VR게임이 발매되고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사람들중에는 VR게임을 하다가 특수한 능력을 얻었다고 말하고 다니는 이들이 있었다.

       

       초능력자가 되었다면서 마이튜브에 영상을 올리던 이들은 인터넷상에서 커다란 화제를 얻었고.

       

       우리를 따르면 당신들도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추종자를 끌어 모으려 들었다.

       

       이전이었다면 사람들은 그런 사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저런 게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허나 VR게임이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그 말도 안 되는 기술력에 모두가 감탄하던 시절에는 달랐다.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생각을 품으며 저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덕분에 그 무리는 무척 빠르게 명성을 키울 수 있었지.

       

       허나 그들의 명성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그들이 올린 영상은 모두 조작된 것이었으니까.

       

       그 후에도 자잘한 일들이 몇 번인가 일어났지만 결과는 항상 똑같았다.

       

       그렇게 여러 자잘한 사건이 일어나며 사람들은 VR의 세상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초능력이니 뭐니하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사라졌다.

       

       엔리도 그랬다. 십 대 시절에야 그런 것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그녀지만 지금은 아니다. 모든 게 사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 지금 내 앞에서 일어나는 일은 뭐지?

       

       <쯧. 이 결계는 위치를 아는 자는 막지 못하는 가.>

       “히익?!”

       

       엔리는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에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서다가 중심을 잃었다.

       

       허나 그녀는 바닥에 엉덩이를 찍지 않았다. 그러기 전에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으니까.

       

       이 빌라에 들어오고 나서 지겹도록 겪었던 무중력의 풍경. 그 속에서 엔리가 마구잡이로 손을 휘젓고 있으려니 또 다시 그녀의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가만 있거라. 하여간에 겁이 많아선.>

       “누…누구세욧?!”

       <잠시 자고 있거라.>

       

       아라는 엔리가 무어라 목소리를 내기도 전에 이런 말을 전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엔리의 의식이 점멸하더니 그녀의 의식이 거멓게 물들어.

       

       “합?!”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킨 엔리는 재빠르게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았다.

       

       평소 그녀가 잠들던 방이 아닌, 만들어진 그 때에서 자그마한 변화도 허하지 않은 듯한 삭막한 풍경.

       

       그나마 침대 이곳저곳에 늘어져 있는 인형이 귀여운 기색을 더해주어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엔리는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인지조차 의심스러워했을 것이다.

       

       엔리는 이 곳을 이전에 본 적이 있었다. 여기는 분명.

       

       “아라 씨의 집?”

       “맞아요.”

       

       기척 하나 없는 곳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엔리가 어깨를 움츠러트리자 옆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웃음은 엔리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것이었다. 공포에서 빠져나와 눈을 게슴츠레 뜬 엔리가 고개를 돌리자 아라가 어깨를 으쓱였다.

       

       “잘 잤어요?”

       “…누구 덕분에요.”

       “숙면을 취하셨다니 제 침대를 양보한 보람이 있네요.”

       

       아라의 얼굴은 평소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세상을 무심한 듯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도. 별 관리 하지 안않음에도 불구하고 새하얘서 질투 나는 피부도. 이제는 슬슬 길어지고 있는 머리카락도. 후줄근한 후드티와 통이 너무 커서 펄럭일 듯한 츄리닝도.

       

       일상에서 지겹도록 마주한 그 모습은 방금 전에 보았던 그 모든 것이 꿈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라 씨. 저 방금 전에 봤던 건.”

       

       그랬기에 만약 아라가 여기서 능청스레 대꾸한다면 엔리도 뒷목을 쓰다듬으며 어색하게 웃고 말았을 것이다. 자신이 개꿈을 꾸었다 생각하면서 말이다.

       

       허나 아라는 그런 편한 길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걸 말하는 게냐?>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린다. 들려서는 안 될 목소리가. 게임 속에만 존재해야 할 목소리가. 방금 전에 들었던 목소리가.

       

       <아니면 이런 걸 말하느냐?>

       “흐갸악?!”

       

       엔리의 몸이 갑자기 허공으로 떠오른다. 대지 대신 하늘이 그녀를 끌어당기는 것처럼. 허나 하늘의 끈기는 길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엔리가 다시금 침대에 떨어진다.

       

       <꿈일 리가 있나.>

       

       어벙한 얼굴로 앞을 바라보던 엔리는 눈을 끔뻑거리면서 아라를 살폈다.

       

       <흐음. 생각보다 무덤덤하구나.>

       

       꿈이라 생각했던 일이 현실에서 펼쳐진 것인데 엔리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평상시의 그녀라면 소리를 지르면서 호들갑을 떨어야 할 터인데 가만 아라의 말을 기다리는 것을 보라.

       

       엔리는 눈을 뜬 그 순간부터 자신이 보았던 게 현실일 거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을 겪었으니 개꿈을 꾸었다 생각할 것이라 여겼다만.>

       “그게… 아라 씨니까요.”

       <흠?>

       “아라 씨라면 무슨 일을 벌이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걸요.”

       

       지금까지 아라가 벌여왔던 일은 단순히 VR게임을 잘한다라는 단어로 설명하기에는 과한 구석이 많았다.

       

       무공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판타지 게임에서 하늘에 뜬 용을 일단해 버린다거나. 하늘을 갈라 버린다거나. 좀비 무리를 걸음만으로 일소한다거나. 태양을 잘라 밤을 만든다거나.

       

       솔직히 말해 심증 자체는 차고 넘치는 상태였다. 물증이 없었기에 모두들 화령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하며 웃어 넘겼을 뿐.

       

       그랬기에 엔리는 그를 눈으로 보고서도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당혹스럽네요.”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한 것일까.

       

       아라가 헛웃음을 흘리더니 한 쪽 손에 든 곰방대를 입에 물고는 자신의 손가락 위에 불꽃을 만들어내더니 그걸로 담뱃잎에 불을 붙였다.

       

       아라가 숨을 품었다가 뱉음에 따라 연기가 피어오른다.

       

       “담배 안 피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괜찮아요. 이런 걸로 문제가 생길 몸은 아니거든요.”

       “저한테 날아오는 연기는요?”

       “보시다시피 안 날아가요.”

       

       아라의 말이 옳았다. 곰방대에서 피어오른 연기는 엔리 쪽으로는 하나도 다가오지 않았다. 의지가 존재하는 것 마냥 얌전히 창밖으로 날아가 버릴 뿐.

       

       “이해해줘요. 엔리 씨도 나이가 들면 알겠지만 이 버릇이라는 게 쉽게 바뀌질 않거든요.”

       “…저보다 동생 아니셨나요?”

       “아. 참. 주민등록상으로는 그랬었죠? 으음. 일단 동생은 아니에요. 자세한 건 비밀.”

       

       언젠가 아라가 엔리 언니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걸 상상하던 엔리는 자신이 언니라 불러야 할 상황임을 깨닫고 눈을 끔뻑였다.

       

       그건 아라가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을 때보다 더 커다란 충격이었다.

       

       말도 안 돼. 저 얼굴에 저런 피부를 가지고서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관리도 전혀 안 하면서?!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이 이야기는 대충 넘어가죠. 설명드려야 할 게 몇 가지 있으니까. 우선은. 이거부터 할까요. 이 방에 들어와서 보셨던 건 제가 깨달음을 갈무리하는 과정이었어요.”

       

       경지가 높은 무인이 운기조식을 하면 자연스레 주변에 영향을 끼친다는 아라의 말에 엔리는 이 빌라에 들어오고서 겪었던 여러 괴기한 현상을 떠올렸다.

       

       떠올랐다 아래로 내려앉는 몸. 기이할 정도로 침착한 정신. 괴이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고요한 건물. 그것이 꿈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서 발한 현상이었다면.

       

       “아라 씨는 그… 무인이라는 건가요?”

       “네. 정확해요.”

       “그것도 대단한 무인?”

       “대단하죠. 이래뵈도 천하 제일이라 불리는 몸이라서.”

       

       분명 VR게임이 처음이었을 아라가 압도적인 실력을 뽐낼 수 있었던 이유가 이 곳에 있었다.

       

       그녀는 VR게임은 처음이었지만 무공은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라 씨가 기캐릭을 다루는 사람들을 보고 혀를 찬 이유도 이거겠네. 진짜배기 무림인이 보기에 그 풍경이 마음에 들었지 않았던 거겠지.

       

       이딴 건 무공이 아냐! 같은 느낌일까? 예전의 기억을 회상하며 묘하게 납득이 된단 생각을 하던 엔리는 문득 그녀가 처음으로 골랐던 캐릭터를 떠올렸다.

       

       그녀와 한없이 닮아 있었던.

       

       외모만 따진다면 동일인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캐릭터가.

       

       아피스의.

       

       화룡무인의.

       

       천마.

       

       엔리는 화룡무인에 접속하면서 여러 번 아라와 천마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둘이 이야기하는 모습은 자매가 대화를 나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전에는 우연히 닮았을 뿐이라 생각하며 넘겨버렸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라라는 사람이 진짜 무인이라는 사실이 그 위에 더해지면 이야기가 바뀐다.

       

       만약 아라 씨가 화룡무인에 나오는 천마 본인이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엔리가 침을 삼킨다.

       

       최근 화룡무인에 재미를 붙이며 무협의 여러 클리셰에 대해 공부하던 엔리다.

       

       그녀는 천마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보통 천마라는 캐릭터 뒤에 붙는 호칭은 안 좋은 것들이었다.

       

       잔혹하다거나, 미쳤다거나, 생명을 가벼이 여긴다거나. 하는 것 말이다.

       

       물론 엔리는 아라와 가까이 지내며 그녀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느껴왔다.

       

       허나 상황이 좋지 못했다.

       

       알아서는 안 될 지식을 알고만 엔리. 그런 그녀에게 모든 비밀을 순순히 이야기해주는 아라.

       

       …이거 아무리 봐도 살인멸구를 하는 그림이잖아?!

       

       이전에 보았던 소설 속 이야기가 떠오른 엔리가 눈을 부들거리고 있으려니 아라가 고갤 갸웃거렸다.

       

       “더 안 물어 보세요? 궁금한 게 많을 것 같은데.”

       “저. 저기. ㅇ…아…아라 씨.”

       “네?”

       “저 죽이실 거에요?”

       

       물음을 들은 아라는 멍하니 엔리를 바라보다 겁에 질린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곤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말이 나올 거라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단 것처럼.

       

       한참 동안이나 아라가 키득거리는 동안에도 엔리의 목에는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이거 클리셰잖아. 이제 갑자기 웃음이 멈추고 잘도 눈치 챘네? 같은 대사가 나오는 그림이라고!

       

       나 죽는 거야?! 진짜로 죽어?!

       

       얼마가 지났을까. 간신히 웃음을 그친 아라는 곰방대의 불을 끄면서 목소리를 냈다.

       

       “제가 그렇게 나쁜 사람으로 보여요?”

       “아뇨! 그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저어. 상황이.”

       “무협지를 너무 많이 읽으셨네요. 안 죽여요. 뭐하러 그러겠어요.”

       

       잔뜩 겁을 먹은 엔리의 모습이 재밌는 것일까. 아라가 또 다시 웃음을 흘린다.

       

       그를 불안하게 바라보던 엔리는 우물쭈물거리다가 마음을 굳히고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럼 왜 다 말해 주시는 거에요?”

       

       아라가 무인이라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알려져도 좋은 일이 아니다.

       

       숨길 수 있다면 숨기는 쪽이 나으리라. 이 일이 밝혀진다면 분명 여러모로 귀찮아 질 테니까.

       

       허나 아라는 그러지 않았다. 숨길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엔리에게 모든 걸 말했다.

       

       엔리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왜 자기한테 순순히 이야기를 해주냐고.

       

       그러자 아라가 웃음을 멈추고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엔리 씨. 생각해봐요. 어차피 들킨 마당에 얼버무려봐야 의심을 사잖아요? 괜히 어중간하게 굴면서 오해를 사느니 다 밝히고 양해를 구하는 편이 낫죠.”

       “실리적인 이유…인가요.”

       “엔리 씨라는 사람을 믿는다는 감성적인 이유도 있답니다.”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나온 말에 엔리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나는 나를 믿고서 모든 걸 이야기해주는 분을 의심한 건가?! 그런 건가!?

       

       “아. 바란다면 엔리 씨의 입을 막을 방법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도 이유랍니다.”

       “에엑?!”

       “농담이에요.”

       

       천마(추정)께서 그런 말을 하시면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데요.

       

       엔리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던 그 때에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엔리의 벨소리였다.

       

       “잠시. 실례해도 될까요?”

       “마음대로 하세요.”

       

       엔리가 스마트폰을 꺼내 통화를 연결한 그 순간 전화기 너머의 남자가 고함을 내질렀다.

       

       “사장님! 대체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으시는 겁니까?! 지금 제가 몇 번이나 전화를 걸…”

       “미안해요. 사정이 있었어요. 무슨 일이에요?”

       “…하아. 사장님께서 최근에 하시는 화룡무인에 난리가 났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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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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