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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57

       [나머지 둘이 가운데를 덮치기라도 했나? 왜 그렇게 지쳐 보이냐?]

        

       넌 나가라.

        

       방송 켜자마자 헛소리하는 놈이 있어서 바로 밴 해버렸다.

        

       “앞으로 엄한 소리 하시는 분은 바로 밴 하도록 하겠습니다.”

        

       [ㅔㅔ]

       [쟤 저러다가 밴 당할 줄 알았다]

       [아무리 그래도 자매한테 그러는건 좀]

       [근데 친자매 맞긴 함?]

        

       나는 마지막으로 뻘소리를 한 놈도 말없이 밴 했다.

        

       자매라면 자매인 거지 말이 많아.

        

       “무슨 일이야?”

        

       옆에서 내 손의 움직임을 보던 앨리스가 물었다.

        

       “별거 아닙니다. 무례한 소리를 하는 인간이 있어서.”

        

       “음, 그래?”

        

       내가 콘솔을 켜는 사이에, 채팅창을 가만히 바라보던 앨리스가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이 이 나라의 글을 배우는 게 낫겠지?”

        

       “…….”

        

       솔직히 그렇게까지 부담 주고 싶지는 않은데.

        

       하지만 이 둘이 언제까지 여기서 지내게 될지 알 수도 없으니 차라리 글을 배우는 쪽이 나을지도 모른다.

        

       클레어가 품 안에 들고 온 지보를 살펴봤을 때도 거기서 나오는 빛의 밝기는 별로 변하지 않았었으니까.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나!”

        

       클레어가 한 손을 번쩍 들어 보이며 말했다.

        

       “클레어.”

        

       “나, 사실 글 어느 정도 읽을 줄 알아. 옆에서 언니가 읽어줄 때마다 열심히 대조했으니까.”

        

       정확히는, 내가 하는 말과 글을 매치시킬 수 있다는 소리겠지. 발음까지 아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 글을 전부 별다른 번역 없이 한국어로 읽었으니까.

        

       하지만 크게 상관없으려나? 세세한 부분에서 다를 수는 있어도, 클레어가 그 글을 읽으면 사람들 귀에 알아서 번역되어 들릴 테니까.

        

       아니, 어쩌면 세세한 글씨 발음 하나하나까지 전부 제대로 바뀌어서 들릴지도 모르겠다. 질서의 여신이 우리를 한국인으로 바꿔놨으니, 그 정도는 해주는 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질서’를 생각하면 그게 더 논리에 맞아떨어지고.

        

       “음, 나도 옆에서 나름 열심히 노력하긴 했는데. 클레어 말대로 조금은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확실하게 읽으려면 직접 학습을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앨리스도 그렇게 말해서,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럼 내일부터는 글 읽는 법도 배우도록 하죠. 글을 읽을 줄 알게 되면 제가 혼자 하는 일도 두 사람이 분담할 수 있게 되니 일이 훨씬 편해질 테니까요.”

        

       내 말에 두 사람 모두 즐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어를 그렇게 잘하면서 글은 못 읽음?]

        

       “……이 둘은 드라마나 영화로 한국어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ㄷㄷㄷㄷㄷ]

       [드라마나 영화만 보고 한국어를 그렇게 잘할 수 있나?]

        

       그 말에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로서는 저 사람들이 우리 상황을 의심하면 의심할수록 좋으니까.

        

       *

        

       스토리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밀레니엄 사에서도 조금은 신경 썼는지, 초반부에 실비아 팬그리폰이라는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 보여준 뒤에는 순식간에 스토리를 진행해나갔다.

        

       그리고, 그 스토리는 우리가 겪은 일들과 매우 비슷했다.

        

       내가 미래를 알고 있어서 몇 년에 걸쳐 일어날 일을 고작 1년도 걸리지 않아 해치워버렸듯, 그 안의 실비아도 그랬다.

        

       그리고, 다시 메인 스토리 사이에 있는 잠깐의 휴식 시간.

        

       “실비아와 화해하지 않겠다고?”

        

       “그래.”

        

       앨리스가 옆에서 말리는 것도 무시하고 나는 앨리스를 공략하는 중이었다.

        

       모든 캐릭터의 인연 이벤트가 언제나 뜨는 것은 아니다. 게임에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뜨기도 하고 뜨지 않기도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모든 캐릭터가 언제나 근처에 서서 레오가 말 걸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건 그거대로 얼마나 부자연스러워 보이겠는가.

        

       이 경우에는 실비아를 선택할 수가 없어 인연 이벤트 포인트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다른 캐릭터를 골라야 했는데, 다행히 앨리스는 선택할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앨리스와 레오가 나누는 대화는 이런 것이었다.

        

       “이유를 알 수 있을까?”

        

       “네가 알 필요 없는 이유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생각을 혼자 품고만 있어서는 그저 괴로울 뿐이야. 가끔은 속에 있는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훨씬 편할 테니까.”

        

       “그걸 네게 털어놓아야 하는데?”

        

       “실비아도, 너도, 지금은 모두 나의 친구니까.”

        

       원작에서는 1편의 중반 이후가 될 때까지도 앨리스한테 존댓말을 쓰며 쩔쩔매던 레오는 어느새 이렇게 말을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걸 보고 나는 이 세계가 이미 한 번 시간이 돌려진 세계라고 확신했다.

        

       내가 환상 속에서 보았던 레오도, 처음과는 다르게 우리에게 쉽게 말을 놓았으니까. 지금 내가 게임 속에서 보는 레오처럼 말이다.

        

       “…….”

        

       레오의 그 말에 앨리스는 입을 떡 벌린 채 굳었다.

        

       참 민망하게도 순간 잘 흘러나오던 배경음악까지 딱 끊어져서 다소 민망한 분위기를 자아내더니.

        

       “하, 하하…….”

        

       게임 속의 앨리스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하!”

        

       다소 어색한 모션으로 배를 부여잡고 서서 한참을 웃던 앨리스는,

        

       “하아.”

        

       하고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게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내뱉는 한숨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뭔가 속에 있던 무거운 것을 다 뱉어낸 것 같은 편안한 한숨.

        

       “너, 대체 황녀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

        

       앨리스가 놀리듯 물어보자, 레오는 눈을 피하고 볼을 긁적였다.

        

       “……후우, 뭐, 좋아. 정 그렇게 알고 싶다면. 다만, 다른 사람들…… 아니, 실비아 본인한테도 말하지 마. 내가…… 내 자매의, 비밀을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고 다닐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니까.”

        

       “맹세할게.”

        

       “…….”

        

       앨리스는 다시 한번 잠깐 망설이더니 말했다.

        

       “실비아 방에서, 모르핀이 나왔어.”

        

       “모르핀?”

        

       레오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앨리스는 다소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물론 실비아가 사용하고 있었다는 건 아니야. 실비아한테서는 그런 약을 사용하는 사람 특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너도 알지?”

        

       레오가 고개를 끄덕이자, 앨리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실비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알잖아. 우린 황녀야. 만약 누군가와 싸우게 되더라도 분명 옆에는 치유마법을 쓸 줄 아는 치유사나 마법사가 따라붙을 거라고. 그런데 그런 모르핀을 사용해야 할 일이 있을까? 그렇게 싸워야 하는 이유가 뭘까? 실비아는…… 실비아는 가끔 미래를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니까, 분명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나는 그걸 모르겠어.”

        

       “…….”

        

       “……실비아는, 분명 나랑은 언제나 잘 맞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줬으면 좋겠어. 의지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래, 네가 말한 것처럼 고민을 나눌 수는 있으니까.

        

       “그렇다면 더 화해해야 하는 거 아닐까?”

        

       “알고 있어, 나도. 그래야 하는 거. 하지만 어떻게 해야 이 이야기를 꺼내게 할지 모르겠어. 나도…… 정작 이렇게 말하면서도 실비아를 완전히 믿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그냥…… 여러모로 복잡하단 말이야. 사실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그래서 답답한 거고.”

        

       “그렇구나.”

        

       “응…… 그래도, 네 덕분에 조금 개운해지긴 했네. 좋아. 나도 노력은 해봐야겠지.”

        

       “나도 뭔가 듣는 게 있으면 도와줄게.”

        

       “말이라도 고맙네.”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는 레오를 놀리듯 말하며 작게 미소 지었다.

        

       *

        

       그리고 내 옆자리에 있는 진짜 앨리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처음 들킨 이후로 학교에 마약류를 들고 간 적이 없었으므로 금시초문이었다.

        

       “저는 마약 같은 것은 해본 적 없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많은 시간 동안? 싸우는 동안에도 전혀 써본 적 없어?”

        

       “썼다면 지금쯤 이미 중독된 상태였겠죠. 제가 이쪽 세상으로 와서 여러분과 있으며 어떤 금단증상을 보인 적이 있습니까?”

        

       “……그런 적 없기는 하지.”

        

       하지만 앨리스의 눈이 여전히 가늘어서, 나는 한숨을 꾹 참은 채 계속 말했다.

        

       “그리고, 시간을 돌려가며 마약을 복용하지도 않았으니 안심하십시오. 지금의 제가 앨리스 당신에게 숨기는 게 있겠습니까?”

        

       “……그건, 뭐.”

        

       내가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그렇게 말하자, 앨리스는 다소 민망한 듯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는 거지?”

        

       클레어는 조금 충격받은 듯 말했다.

        

       “……그 가능성은 앨리스가 철저하게 부숴버렸으니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클레어는 앨리스 쪽을 보았다.

        

       “고마워, 언니를 지켜줘서.”

        

       “동생을 지키는 건 언니가 해야 할 일이니까.”

        

       “켁.”

        

       앨리스의 말에 클레어는 감동이 팍 식어버린 모양이다.

        

       [우애좋아보여서 보기 좋네요]

       [진짜자매같아요]

        

       뭐, 그렇지.

        

       진짜 자매 맞으니까.

        

       솔직히, 여기 나 혼자 이러고 있었으면 하루하루 멘탈이 갈려 나가는 기분이었을 거다. 매일 이렇게 함께 지낼 두 사람이 있으니 이렇게 버티고 있을 수 있는 거고, 즐겁게 지내고 있는 거겠지.

        

       [우효wwwww 자매 백합이냐고 www]

        

       넌 나가라.

        

       나는 눈치 없이 헛소리하는 놈을 밴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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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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