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57

     제국식 블레이드, 도(刀)는 베기에 특화되어 있다.

     

     황제가 들고 있느 롱소드 또한 상대를 베는 게 가능하지만, 내가 든 칼날은 칼끝부터 그 날이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기에 상대를 베기에 용이하다.

     그러니 황제를 죽이기 위해서 가장 우선시 해야 하는 검격은 당연히 찌르거나 써는 게 아닌, 베기.

     

     카ㅡ앙!

     “날카롭군!”

     

     황제가 검을 튕겨낸다.

     동시에 내 얼굴을 향해 검을 찔러오지만, 나는 고개를 옆으로 비틀며 튕겨올라간 칼을 그대로 황제의 손목을 향해 휘둘렀다.

     카가강.

     칼날이 손목을 긁는다.

     순식간에 손목 위로 뻗어올라온 군청색 오러가 건틀릿과 같이 칼날을 막아낸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해!”

     

     황제가 어깨로 나를 들이받으며 밀친다.

     자세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육탄공격.

     황제가 나보다 체격이 더 크기에, 이대로 힘싸움으로 들어가면 밀린다.

     그렇다면, 흘린다.

     칼의 손잡이를 붙잡은 손의 손바닥 아래에 힘을 주면서 칼을 밀어낸다.

     건틀릿으로 빚어진 오러와의 접점을 회전축으로 삼아, 칼로 손목을 베는 게 아니라 손목을 축으로 미끄러지듯 아래로 손잡이를 비튼다.

     “에르윈, 그 여자의 검법이군!”

     역시, 알고 있다.

     에르윈 황후가 아닌 그녀의 어머니 백금경의 기술이지만, 제국도법으로 알고 있는 만큼 황제는 바로 대응하려고 한다.

     

     미끄러지듯 내려간 칼날은 어느새 황제의 손목 아래에서 수평에 가깝게 뉘이고, 나는 그대로 칼등을 한 손으로 받치며 앞으로 밀었다.

     사가각!

     칼날에 오러를 담아 오러를 가른다.

     회색 잿빛에 군청색 오러가 갈리며, 동시에 칼날이 분명히 앞으로 ‘전진’한다.

     “어딜!”

     황제가 검을 빠르게 회수하여 내 어깨를 찌르려 든다.

     

     피할 수 없다.

     피한다면 다시금 공격은 통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피하지 않는다.

     푸ㅡ욱.

     “이…!”

     어깨를 찔러들어온 칼날에 순간적으로 눈 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오러의 칼날이 뼈를 가르고 들어올듯 들어와 팔을 망가뜨리지만, 나는 신체에 마나를 둘러 황제의 검을 억누르며 계속 칼을 앞으로 밀었다.

     황제의 오러와 줄다리기 하는 동안에는 그저 칼을 미는 것으로 끝나지만.

     ‘지금.’

     오러를 전부 깎아내고 난 이후에는, 그 밀어내던 모든 힘으로 칼을 휘두르는 동작으로 이어지니.

     부ㅡㅡ웅!

     칼날을 휘두른다.

     오러가 깃든 칼날은 허공을 가르지만-

     “커헉…!”

     황제는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난다.

     

     갈비뼈로부터 반대쪽 어깨까지, 일자로 그어지는 붉은 상처가 터져나온다.

     “크, 흐흐….”

     황제가 비틀거리며 아랫입술을 깨문다.

     

     “닿기 직전에, 오러의 칼날을 늘렸군.”

     “마나의 조작은 이쪽의 특기…크윽?!”

     황제가 물러나기 직전, 검을 움켜쥔 손을 비튼다. 

     그와 동시에 내 어깨에 박혀있던 검이 내 팔을 비틀며 뽑혀나가고, 나는 그대로 한쪽 팔이 아래로 떨어졌다.

     “…….”

     “지브롤터를 상대하면서 느낀 건 말이지, 일단 팔부터 망가뜨리면 이길 수 있다는 거라서.”

     황제가 거칠게 호흡을 내뱉으며 거리를 벌린다.

     길게 갈라진 상처로부터 붉은 피가 철철 흘러나오지만, 황제는 출혈이 짙어진데도 불구하고 검을 겨눈 채 나를 경계할 뿐이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군. 나를 공략하는 방법을.”

     “…그 동안 그 몸에 얼마나 많은 피를 쌓았는지, 당신은 기억하고 있습니까?”

     “글쎄. 1만명 이후로는 헤아리지 않아서.”

     “그 피가, 지금 들끓고 있는 겁니다. 당신의 몸에 응축된 죽은 자들의 피가.”

     백은을 사용하는 자. 

     혹은 백은에 찌든 자.

     신체 능력을 폭발적으로 늘려준다는 장점은 있으나, 이렇게 상처가 터져도 여전히 심장은 빠르게 뛰며 전신에 활력을 불어넣기에 출혈은 멈추지 않는다.

     “처음 어깨가 스쳤을 때 느꼈지. 오러로 억눌러서는 안 될 거라고.”

     “…후.”

     “하지만 고작 피가 흐르는 것 뿐이다. 한쪽 팔이 망가진 네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지?”

     “아직, 반대쪽 팔이 남아있잖습니까.”

     칼을 움켜쥔다.

     근육이 끊어진 것 같은 팔은 아래로 툭 떨어지도록 놔둔 채, 칼을 붙잡고 자세를 바로잡는다.

     “그리고, 이런 것도.”

     칼날을 옆으로 들고 팔에 가까이 댄다.

     벌어진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칼날을 타고 흘러, 칼 끝에 맺혀 아래로 떨어진다.

     “발도? 피를 윤활유로 삼으려고?”

     “칼집도 없는데 무슨.”

     발도술은 통하지 않는다.

     황제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그래. 이번에는 누구의 도법을 보여주려고? 에르윈? 아스타시아? 아니면 내가 모르는 또다른 도법의 고수?”

     이쪽에서 다가가야 한다.

     지브롤터가 가만히 500년 동안 적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이겨왔다고는 하지만, 그건 수호자 지브롤터의 길이다.

     “아니면 지브롤터에서도 블레이드를 연마했나? 그렇다고 한다면, 나는 지브롤터의 역사와 다시 싸우는 건가. 흐하하! 재미있군.”

     지브롤터는 달라져야 한다.

     적이 먼저 칼을 휘두르기 전에, 우리가 먼저 휘두를 줄 알아야 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먼저 상대를 향해 검을 휘두를 줄 알아야 한다.

     “연극, 좋아하나?”

     

     황제가 묻는다.

     “시간을 끌려고 합니까.”

     “뭘. 그대도 호흡을 가다듬지 않는가.”

     들끓는 피를 억눌러 출혈을 줄이기 위함이지만, 나 또한 마나를 가다듬기 위해 어울려주기로 했다.

     “크림슨 지브롤터와의 대결은 오페라였네.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되는,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클래식 그 자체.”

     “지금은 어떻습니까?”

     “모든 게, 애드리브로 이어지는 야성적인 연극.”

     “따로, 장르는 없는 거군요?”

     “글쎄. 언젠가 시대가 흘러, 그대와 나의 이 싸움을 정의할 용어가 생겨날지도 모르지.”

     황제가 웃는다.

     “자네는 이기적인 존재야. 오직 자신만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의와 민의를, 민중을 저버린 존재지.”

     “공포와 억압으로 민중을 굴복시키는 폭군이 할 소리는 아니군요.”

     “내 가족에게만 좋은 사람을 어찌 선인이라고 할 수 있겠나.”

     “내 가족부터 아끼지 않는 자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황제의 검에 비친 나 또한, 피를 흘리면서도 웃고 있었다.

     “대륙의 운명을 결정지을 이들이 이런 쓰레기들이어서야. 역사가들이 울겠어.”

     “알 바 아닙니다. 어차피 역사서에는 하나의 결말만 나올 거니까요.”

     “무엇인가?”

     “제국력 100년. 황제가 죽었다.”

     “……그것이, 나의 완성인가. 담백하군.”

     황제의 검에서 군청빛 오러가 다시 흘러나온다.

     나의 검 또한, 나의 피로부터 흘러나온 마나를 다시 오러로 빚어내어 칼날을 잿빛으로 물들인다.

     조금은 붉은 기운이 서려있는 칼날.

     그 색이 아버지의 색과도 같다고 생각이 드는 건, 그저 우연이겠지.

     “후.”

     분석한다. 

     승리로 나아가는 길을.

     상처는 어깨와 흉부. 

     그리고 전신에 자잘한 상처가 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

     황제를 이기기 위한 수단은 오직 시간을 이용하는 것.

     지금까지 내가 싸워온 모든 이들과의 경험을 되살리고, 그 기억을 되살려 최적의 경로를 구해낸다.

     목? 안 된다.

     목을 베러 간 수호자 그레이는 황제가 휘두른 검에 그대로 튕겨나간다.

     다리? 안 된다.

     허벅지를 찌르고 상처를 넓히려고 들어간 매국노 그레이는 황제에게 오히려 붙잡혀, 왕도가 황금의 폭풍에 휩쓸릴 때까지 억눌려있을 것이다.

     팔, 불가. 머리, 불가. 급소, 불가.

     모든 경로에서 황제의 군청빛 검날이 내 검을 받아낸다.

     

     결국 남아있는 건-

     “…후.”

     찾았다.

     수십 번의 궤적을 수정하고 검로를 다시 그려,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물리적인 궤적을 그려낸다.

     나의 검이 지금 황제에게 닿지 못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황제를 죽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조건은 갖춰져있다.

     -네가 제일 잘 하는 건, 검술이 아니라 협잡질이잖니.

     백금경의 말이 스쳐지나간다.

     -그레이. 검을 갈고 닦는 건, 네게 더 이상 의미는 없을 것 같구나.

     

     아버지의 말이 스쳐지나간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게. 누군가가 저열하고 비겁하다고 해도, 결국 이기면 되는 것이야.

     통일대제 합스베르크 황제의 말이 스쳐지나간다.

     그래.

     이기면 되는 거다.

     -그레이는 알고 있어요. 그레이가 제일 잘 하는 게 뭔지.

     아스타시아가 말한다.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눈을 스쳐 흐려진 시야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남아있는 유일한 궤적을 향해 칼을 겨눴다.

     -다루는 무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녜요!

     그레이 지브롤터가 제일 잘 하는 게 뭘까.

     인간에 대한 파악.

     인간의 심리를 바탕으로 하여, 그 상대의 움직임과 행동을 예상하고 그에 맞춰 움직이는 것.

     -상대는 어떻게 움직일까, 그걸 생각하는 거예요. 

     

     황제라면, 나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까.

     마지막 경로에 그 대응과 예상을 담는 순간, 최후의 일격이 완성된다.

     기술은 충분하며, 마나는 충만하다.

     

     남은 것은 황제가 나의 예상대로 대응하느냐, 아니냐.

     타ㅡ앗.

     뛴다.

     엘프들이 숲을 거닐듯이 가볍게 달리며, 어깨 너머로 칼을 넘긴다.

     “결국, 마지막은 엘프의 검이라는 건가?”

     황제가 비스듬히 놓는다.

     제국교범에서 나오는 검술의 기본 그 자체로, 강자의 검을 한 번 막아내고 역공을 펼치기 위한 자세를 잡는다.

     세 발자국.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며.

     “그것이 마지막이라면.”

     두 발자국.

     어깨 너머로 넘긴 손을 전방을 향해 크게 흩뿌리듯 당기며.

     

     “나의 승리다.”

     

     한 발자국.

     황제의 영역에 들어간 순간, 그대로 전력을 담아 칼날을 휘두른다.

     카ㅡㅡㅡㅡ앙!!

     “이것이, 결과다.”

     황제가 심해처럼 깊은 눈으로 나의 칼을 막는다.

     

     “검과 함께, 통째로 베려고 했나. 아쉽게 됐군.”

     나의 칼날이 황제의 검을 절반 이상 가르며 파고들었으나, 잿빛 오러의 칼날을 받아내듯 반쯤 갈라진 검신에서 군청빛 오러가 아슬아슬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제, 끝이다.”

     황제가 칼날을 튕겨내며 빠르게 검을 역수로 움켜쥔다.

     교범과는 조금 다르지만, 상대의 움직임을 억제하기 위해 검으로 나를 찌르려는 궤적이 보인다.

     움찔.

     살짝 몸을 트는 순간, 황제가 인상을 찌푸린다.

     “너-”

     

     아래로 찍으려는 검의 궤적이 정확하게 나의 예상위치를 향하고, 나는 허공을 향해 튕겨올려진 칼을 내던지고 손 끝에 마지막 오러를 쥐어짜냈다.

     “지금, 무슨-?!”

     손으로부터 뻗어나가는 오러는 그 길이가 블레이드는 커녕 단검만도 못했으나.

     푸ㅡ욱!

     황제의 검이 내 왼쪽 가슴에 박힌 순간, 황제의 움직임이 멈췄다.

     두근.

     심장이 마지막으로 크게 뛰며, 피가 끊어지는 듯한 감각.

     동시에 눈 앞이 하얗게 물들기도 하고, 어둠으로 짙어지기도 하는 가운데.

     ‘보인다.’

     최적의 경로.

     황제가 나를 향해 몸이 기울어진 지금.

     황제가 나를 찌른 순간, 황제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며 움직임이 멈춘 순간.

     -살아주세요, 나의 왕자님.

     빈틈이, 보였다.

     예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궤적.

     -상대가 나보다 크다면, 아래에서 파고들어 베어야 하지.

     언젠가, 누가 보여줬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그 궤적을 향해.

     오늘을 위해 수 없이 휘두르고 연마한, 이 육신이 기억하는 동작을 그대로 움직인다.

     회귀 이전부터 칼을 배우는 순간부터, 회귀 이후 매일 밤마다 목검부터 시작하여 진검으로 휘두르며 황제를 어떻게 벨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휘둘렀던 그 수많은 궤적.

     그 수천만, 아니 수억 번의 시뮬레이션 중 지금 이 순간의 정답.

     -잘 들어라. 그레이.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냥, 베면 된다.

     이제야, 그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네요.’

     서걱.

     칼 끝에. 느껴진다.

     너무나도 익숙한.

     사람을 벤 감각이.

    다음화 보기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